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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탄생 도화선… 다시 빛 보는 ‘김일성의 아이들’
김덕영 감독 6·25 직후 동유럽에 보낸 北전쟁고아 5000명 비극 조명
휴먼드라마로서 취재하던 중 김일성 체제 모순과 이승만 업적에 눈 떠
박찬욱 감독 제보로 15년 취재… 文정권 2020년 개봉했으나 흥행 참패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8 19:22:38
▲(왼쪽부터)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 포스터. *북한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나라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매일 아침 김일성 얼굴이 들어간 인공기에 경례를 했다. *1950년대 동유럽 여러나라에 분산 위탁된 북한의 전쟁고아들 1만 명의 이주경로. *현지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북한 고아들. 폴란드 프와코비 국립중앙 제2학원에 남아 있는 북한고아들 우정의 기념탑. *1956년 헝가리를 방문한 김일성이 북한 전쟁고아 기숙사를 찾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 직후 국내 정치상황 급변으로 급거 귀국하게 된다. *평양 중심가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 김덕영·연합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여정에서 시작된 건국전쟁의 길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연일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봐야 할 또 하나의 다큐가 김일성의 아이들’(2020)이다. 이 작품은 김 감독이 15년 취재 끝에 완성해 6·25전쟁 70주년 기념작으로 내놓았으나 결과는 참패, 총 관객 966명에 그쳤다. 몇몇 유튜브 채널이 주목했을 뿐 언론의 관심도 부족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다고는 하나 문재인 정권·지지층에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게 흥행 참패의 더 결정적 배경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정권엔 북한이 주장해 온 ‘6·25전쟁은 민족해방전쟁’론과 중국의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론에 직·간접적 동조자가 적지 않았다수십 년간 ‘6·25전쟁은 북침’이라는 주장에 편승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해제된 기밀문서를 통해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지원하는 김일성 주도의 남침 전쟁이었음이 자명해지자 브루스 커밍스 류의 수정주의에서 논리를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것은 곧 어차피 오랜 모순의 누적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니 누가 먼저 침공했나는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국·소련에 의해 그어진 38선 부근에서 빈번하게 있었던 군사적 충돌이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북한 도발을 남측이 유인했다는 시각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미국 및 유엔군의 참전을 통일 방해로 보기도 한다. 최근 윤미향 의원 주도의 국회 토론회에서 난무한 북한 옹호 및 반()대한민국 발언은 우리 사회 내에 북한 위주 통일지향 세력이 엄존해 왔음을 말해 준다.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인 김 감독 역시 이런 역사관·세계관에 익숙한 586세대의 한 사람이다. 다만 본인이 밝혔듯 그는 진성 운동권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분명한 저항 입장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그럴 만한 논리적·학술적 근거가 충분히 구축되기 전이었다. 그 세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586 세계관·역사관의 자장 속에 있던 김 감독은 김일성의 아이들제작을 위해 취재를 하다가 이승만 다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북한의 전쟁고아 추적한 휴먼 다큐 만들다 뜻밖에 이승만 다큐필요성 절감
 
흥행 성적은 처참했지만 ‘김일성의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영구보존 자료로 등록됐으며 주요 12개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본선에 오르고 그중 로마국제무비어워드(최우수작품상)와 동유럽국제영화제(실버 어워드)에선 수상을 했다. 현재 유튜브에서 1400(구매 1650)으로 손쉽게 관람 가능하다. 또 제작 과정의 드라마틱한 사연 등 뒷이야기가 단행본 및 전자책 김일성의 아이들로 출간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5년에 걸친 김일성의 아이들취재 과정이 이승만 다큐 제작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건국전쟁개봉 후 주요 언론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김일성의 아이들제작을 위해 북한 자료·정보를 접하던 중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있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었다고 밝혔다. 3년 전부터 조갑제TV 등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도 언급됐던 내용이다.
 
사후 30년 이상 된 인물을 타도 대상으로 내세운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김일성 정권에게 이승만이 두려운 존재였다는 뜻이다.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들다가 김 감독 자신이 역사 인식을 바로잡게 된 것 또한 기막힌 아이러니다. 1950년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 위탁된 북한의 전쟁고아 5000(실제는 1만 명 추산)의 운명을 추적하면서 그는 김일성 체제의 비극성과 그것을 예측하고 막으려 몸부림친 이승만의 진실을 찾아가게 됐다.
 
휴먼드라마로 구상된 전쟁고아 이야기… 알고 보니 스탈린과 김일성에 이용·폐기된 비극
 
김일성의 아이들은 당초 두 개의 고향이란 제목의 휴먼 드라마로 구상됐다. 그러나 김 감독이 사비 15000만 원을 들여 15년간 현장을 누비는 동안 확인된 것은 김일성 우상화 및 주체사상 확립기의 희생자들이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북한 아이들이 1952년 열흘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동유럽 여러 나라에 도착했. 공산 진영의 연대를 과시하고자 스탈린이 독려한 프로젝트였다.
 
이들 전쟁고아의 수는 루마니아(2500)·폴란드(1400)·체코(700)·헝가리(500)·불가리아(500) 등 공식 외교문서 기록상 약 5000명이지만 실제 1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들 동유럽 5개국의 문서보관소와 북한 고아들이 머물렀던 학교·기숙사 등을 김 감독은 하나하나 찾아 인터뷰와 영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유럽 각국에서 찾아낸 관련 영상 자료는 양적으로 풍부하고 반세기 이상 지났음에도 화질이 생생하다. 단체생활을 하는 북한 아이들이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 조회를 하며 김일성 얼굴 그려진 인공기에 경례하거나 제식 훈련을 하는 장면 등에서 해방 직후 이미 김일성 우상화가 진행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김일성의 아이들엔 이들과 함께 공부한 루마니아·불가리아 친구들이 60여 년이 지난 뒤 여전히 김일성 장군의 노래’(1947년 작곡)를 정확히 기억해 한국어로 부르는 장면, 북한 친구들의 이름을 또렷이 거명하며 그리워하는 모습, 왜 그들의 서신이 당사자들 의사와 무관하게 두절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게 되는 장면 등은 그들이 거쳐 온 비정한 시대적·정치적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의 학연으로 출발한 '김일성의 아이들' 
 
김일성의 아이들탄생엔 학연도 크게 작용했다. 2004년 초 서강대 철학과 2년 선배인 박찬욱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동유럽 답사 중이던 박 감독이 루마니아 할머니 제오르제타 미르초유생이별한 북한인 남편을 40여 년 기다리고 있다는 사연을 접하고 알려 온 것이었다. 김 감독은 루마니아로 날아가 미르초유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사범학교를 막 졸업한 그녀가 19세때 북한에서 온 고아들을 가르치며 북한 측 교육·관리자 조정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4년 밀애 끝에 1957년 결혼했다
 
그러나 행복은 짧았다. 미르초유가 1959년 귀국 명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평양으로 간 지 얼마 안 돼 남편 조씨는 탄광 노동자로 전락한 후 소식이 끊겼다. 미르초유는 평양에서 출산한 딸과 함께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북한 내 반(反)외세  분위기 속에서 생계마저 잇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르초유는 남편의 생존을 믿으며 남편 나라의 언어를 잊지 않으려 루마니아어·한국어 사전을 자필로 만들었다. 16만 단어를 수록한 대사전이다. 이 사연이 20046·25특집 지상파 방송에서 공개됐다.
 
미르초유 부부의 운명은 이례적인 게 아니다. 1956년부터 본국 송환되기 시작한 북한 고아들의 운명과 동일한 배경 속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소련 영도자 스탈린이 죽자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가 동유럽에 초래한 변화는 스탈린이 세운 인물 김일성의 권력에도 위기를 불렀다
 
당시 북한에선 ()종파 투쟁명분으로 친소파·연안파 등을 향한 대대적 숙청이 감행됐다. 김일성 유일 체제와 주체사상의 확립을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 길목이었다동유럽에서 북한 고아·유학생이 서유럽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거나 반소(反蘇투쟁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 가자 순차적 강제송환이 이뤄진다. 이들을 태운 열차가 북한 역내에 진입하면 역마다 무더기로 내려졌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20년 5월 조갑제TV에 출연한 김 감독은 “이들 북한 전쟁고아는 북한과 동유럽에서 두 번이나 삶의 터전을 잃고 뿌리를 뽑힌 셈이다. 탈북인들조차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삭제된 역사라 김정은도 모르는 사실일 수 있다”며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의 비극적 운명을 재조명하는 것 역시 넓게 보면 우리의 책무”임을 짚었다
 
다큐 감독이란 충실한 시각적 증거 자료에 기반해 세상을 향해 말하는 존재
 
김 감독은 이라크 전쟁·탈북인 문제 등을 다뤄 온 시사 다큐 전문가다그가 17일 채널A ‘오픈 인터뷰에서 건국전쟁를 둘러싼 이승만 미화 논란 등에 관해 차분히 반박했다. 철학을 전공한 게 행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질문을 하게 만드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 감독은 다큐의 가치란 자료와의 싸움임을 역설하며 이번 건국전쟁도 충분한 자료와 기록 필름들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세상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각오가 있었다고 강조했다차기작은 재일교포 북송’ 관련 작품이라고 한다. 김일성 체제의 비인간성을 또 다른 측면에서 조명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되고 건국전쟁은 안 돼?... 보지도 않고 폄하하기?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3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쓸데없이 이런 영화(건국전쟁) 좀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현행 헌법 전문에 적시된 ‘4·19정신에 의해 쫓겨난 존재가 이승만이라는 오래된 논리에 근거해 반(反)헌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김일성의 아이들’을 호평한 바 있는 진 교수의 반응에 김 감독도 적잖이 당황해 하는 분위기다. 
 
14일 김 감독은 진 교수를 향해 “‘건국전쟁어디에 잘못된 증거가 있는지” SNS를 통해 공개 질의했다. 또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의 무연관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떻게 4·19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냐”며 “그동안 우리 사회가 3.15 부정선거를 이승만이 획책했다고 여겨 온 불의를 바로 잡는 것이 진정한 4·19 정신 아닌가”고 되물었
 
김 감독은 시종일관 진 교수에 대한 존중과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늘 우리 사회에 소금이 되는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건국전쟁관람을 청했다. “보시고 나면 조금은 화난 심정을 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경하는 교수님 명성에 흠집을 내거나 이 글을 통해 다른 뭔가를 얻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는 등 거듭 진심을 호소했다.
 
한편 오피니언 리더들을 넘어선 시민의 식견을 보게 된 것 또한 김 감독 다큐의 성과다. 좌우합작 내지 공산·사회주의 세력 우세의 시대적 분위기 한가운데서 자유민주공화국 수립을 밀어붙인 이승만에게 4·19는 오히려 그런 일련의 노력을 마무리하는 성공 스토리였음이 지적되고 있다. 4·19 세대는 이승만의 건국과 교육개혁의 수혜자들이다이승만은 조만간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시스템을 만든 셈이고 그것이 작동했을 때 기꺼이 받아들였다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해 울먹였고 장하다”고 치하한 후 변명없이 물러났다.
 
건국전쟁이 말하지 않은 것?
 
중앙일보 고정애 칼럼 건국전쟁이 말하지 않은 것말미엔 관람 후 흐느낀 관객을 들어 우리, 이상하다”고 한 구절이 있. 이에 대해 60개 댓글의 99.9%가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건국전쟁을 보지도 않고 폄훼한 진 교수에게도 해당될 만한 내용들이다. “기자의 역겨운 선민의식” “시대착오”를 꼬집는 취지의 장문 댓글이 다수였다.
 
대한민국 국부에 대한 오해·편견이 무너지는 그 순간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울음이 터져나온 거다” “터키 사람들은 케말이 천사인 줄 아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수카르노를 하느님의 아들로 착각하고 있나? 대만 사람들이 장개석이 한 짓을 몰라서 아직도 국부로 모시나? 미국인들은 워싱턴과 제퍼슨이 노예 농장주였다는 걸 몰라서 국부로 모시나?” “극장에서 흐느낀 관객보다 이승만을 부패한 살인마 ·독재자로만 가르친 사회가 이상했다. 대한민국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이 논설위원이 수상하다고 일갈한 댓글도 있다.
 
건국전쟁’ ‘기적의 시작으로 확연해진 전선(戰線)
 
작년 10월에 나온 기적의 시작’(권순도 감독)까지 22일부터 CGV에 재개봉되면 이승만 바로알기 물결은 재차 도약을 맞게 될 전망이다. 4월에 있을 총선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영화 서울의 봄과 다큐 길위에 김대중이 기반한 현대사 관점에 맞서 김일성의 나라가 아닌 이승만의 나라’로서의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인식·재인식을 이끌 수 있다. 
 
건국전쟁’ ‘기적의 시작’ 이 두 편의 이승만 다큐를 통해 관련 지식을 섭렵해 가면 대한민국 건국자체가 전쟁같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이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하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 시간이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치열한 대결은 진행 중이다. ‘건국전쟁을 둘러싸고 보이는 관객의 대치된 반응에서도 이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가수·배우 등 대중예술인들인들이 관람 인증과 소감을 밝히며 비난 댓글에 시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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