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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6월에 생각하는 ‘건국’과 ‘호국’
▲ 임명신 국제·문화부장
6월이 ‘호국의 달’인 것은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일과 그로 인해 생긴 6월6일 현충일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30년간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성장과 함께 그 의미가 급속히 퇴색해 왔다. 이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친일파·미제국주의가 득세한 시대’로 여기게 만든 과정이기도 했다. 
 
6·25전쟁 관련한 팩트 오류를 바로잡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막힌 게 ‘한강 인도교 폭파와 800명 민간인 희생’이다. 이 괴담의 정설화에 1993년 KBS의 다큐멘터리 역할이 컸다.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한 재현 드라마까지 삽입해 그 안타까운 사고를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가적 무책임과 폭력성’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 썼다. 그 사고로 인한 확인된 사망자는 버스로 단체 이동하던 종로경찰서 소속 공무원 77명뿐이다.
 
김덕영 감독의 다큐 ‘건국전쟁’이 이 문제를 지적했고, 지난달 뜻있는 시민들의 ‘포럼1948’이 주도한 ‘한강 인도교 폭파의 재구성’이란 심포지엄을 통해 사고의 전말이 드러났다.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필자인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와 ‘땅의 역사’ 시리즈로 알려진 박종인 조선일보 기자가 국내·외 관련 자료와 활자‧이미지 증거들을 샅샅이 뒤져 밝혀냈으며 이 내용을 박 기자가 관련 기사로 정리했다. 반드시 KBS로부터의 사과와 함께 바로잡힌 내용을 담은 후속 보도가 있어야 한다.
 
섣부른 ‘800명 민간인 희생 단정’과 ‘건국 대통령 모욕’은 ‘대한민국 부정’의 논리로 쉽게 연결된다. 사고 직후 현장에 당도한 인민군 측도 사진과 기록을 남겼으나 민간인 얘기는 안 나온다. 절호의 선전 소재였음에도 말이다. “김일성도 못 한 일을 대한민국 내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해냈다”고 홍승기(인하대 로스쿨 정년 교수) 변호사가 자유일보 칼럼에서 개탄하기도 했다.
 
동작동 국립묘지와 현충일의 출발점은 6‧25 전몰장병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6월6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일이기도 하다. 우익 전체주의와 싸운 제2차 세계대전, 좌익 전체주의에 맞선 6‧25전쟁의 역사가 함께 담긴 현충일인 셈이다.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전몰장병기념일)’ 역시 남북전쟁이라는 전쟁을 계기로 지정된 것이다. 미국의 실질적인 국가 통합성은 남북전쟁(1861~65)을 거치며 형성됐다. 
 
전쟁을 통해 무수한 나라들이 생기고 또 사라졌지만 근대 이후 전쟁 승패의 핵심은 ‘국민의 성립 여부’다.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확립 측면에서 6‧25야말로 실질적 건국전쟁이라 할 만하다. 대한민국 탄생에 따른 산고(産苦)였으니 비극으로만 볼 게 아니다. 그때 남하한 100만여 실향민이 우리 사회 발전에 끼친 영향과 공헌은 지대하다. 다수가 기독교나 교육‧상공업을 통해 근대 문물을 접수한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의 이탈이 북한 정권에겐 큰 손실이었다. 
 
일제하에서 양성된 군인들의 의미도 다시 살펴야 한다. 대한민국 창군·건국·호국의 주역인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을 탐구한 ‘충성과 반역’(정안기 저)에 따르면 일제 말 육군특별지원병 조선인 지원자 80만2047명 중 1만7664명이 심사를 통과했다. 조선과 대만은 식민지 출신이 고급 장교로 입신할 수 있었던 전 세계 유일한 사례다. 1930년대부터 일제가 벌인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국민 내지 문명인으로 거듭나고자 몸부림친 조선인 청년들의 운명을 재해석한 이 연구서는 한반도 근대 여정의 엄청난 역설을 치열하게 들여다본 명저다.
 
조선왕조를 거치며 한반도에선 상무적 기질이 사라졌다. 동시대 세계사와 비교할 때 조선의 이런저런 긍정적 특이 요소도 발견되지만, 극단적 문치주의와 그것을 발판으로 한 사농공상의 계급 질서로 잃은 게 많다. 무기의 진보가 농기구 등의 발달로 이어져 생산력을 증대시켰다. 인류는 그렇게 살아 왔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없는 농업 중심의 유교적 이상국가란 ‘노비’ 없이 결코 추구할 수도, 유지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군인은 명예로운 직업이다. 근대 이래 부강한 나라들의 엘리트나 귀족‧왕족들 사이에선 군무‧참전의 경험이 존중된 반면, 198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선 군인을 ‘군바리’로 멸시하는 감성과 논리가 보편적이다. 그러고도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대단하다. ‘대한민국 곧 망한다’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믿는 학생운동권에 ‘문사철’(문학‧역사‧철학) 중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음을 여러 당사자들이 회고하고 있다. 반대한민국 세력이 현대문명보다 중세적 전통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증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선 그들의 80년대 후반 이후 행보가 ‘친북’ 지향으로 귀결된 것은 자연스럽다. ‘돈‧빽을 이용한 병역기피’에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는 것 역시 조선적 유산이다. 그런 편법이 어느 정도 이상 횡행하지 못한 것은 그나마 냉전체제의 특수성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주목받게 된 우리나라의 방위산업 또한 전쟁 중(휴전)인 상태로 70여 년 살아 온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국강병은 국가의 기본이다. 그게 이뤄져야 ‘문화 강국’이든 ‘인도주의 강소국’이든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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