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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가 광채 나는 빨간색 르망을 타고 승연의 집 앞에 나타났을 때, 승연은 깜짝 놀랐다. 서지오 바렌테 청바지에 검은색 가죽 재킷, 까만 레이벤 선글라스를 쓴 태주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새로 뽑자마자 여기로 달려왔어. 동해 바다로 가자. 승연은 환호성을 질렀다. 얏호, 너무 신난다! 차는 물 위의 제트스키처럼 날렵하고 빠르게 질주했다.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지나 마지막 스피드를 높이려는 순간, 마주 오던 덤프트럭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태주의 차로 향했다.
소리 지를 틈조차 없는, 순식간이었다. 빨간 르망이 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5분쯤 지났을까, 정신을 잃었던 승연이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트럭 아래에 갇힌 차에서 태주가 누운 자세로 옴짝달싹 못 한 채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태주 씨, 정신 차려! 태주 씨, 눈을 떠 봐!” 태주는 미동조차 없었다. 승연이 팔을 뻗어 태주 얼굴을 흔들었다. 태주가 낮은 신음을 내며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 태주는 승연을 향해 안도하는 미소를 지었다. 아, 다행이다. 살았구나. 승연은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승연이 눈을 떴다. 빨간 르망도, 트럭도 보이지 않았다. 승연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찌나 생생한지, 놀란 가슴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 꿈이라서 다행이야.
하얀 시트로 가려진 태주 얼굴이 드러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푸르스름한 입술에 창백한 얼굴을 한 주검이 아니었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태주 오른쪽 눈썹 옆으로 길게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승연은 손을 가져다 긁힌 자국을 만지려다 멈칫했다. 차가운 체온이 느껴질까 봐, 죽은 게 사실일까 봐 겁났다. 승연은 고개를 기울여 그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자기는 앞모습보다 옆모습이 훨씬 잘생긴 거, 알지?”
승연은 종종 태주 옆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이마부터 콧날·인중·입술·턱 아래까지 이어지는 선이 다비드 조각상보다 완벽했다. 키스하면 깨어날까. 이건 꿈이야. 아니, 꿈이어야 해. 승연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옥상에서 떨어질 때, 5초 남짓한 순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환영이 떠올랐다.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환영이었다.
몸이 휘청거렸다. 어수선한 소음이 영안실의 무거운 침묵을 깼다. 태주 가족이었다. 방금 도착한 태주 누이들이 문 앞에서 흰 시트 속에서 얼굴만 내민 태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처절하고 한 맺힌, 굉음이었다. 태주 어머니는 느린 걸음으로 태주 곁에 다가서더니 시트 안에서 태주 손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지만 소릴 내진 않았다. 어머니는 시트를 걷어 내고 아들 몸을 어루만졌다. 태주 청바지 앞주머니에서 흰색 천이 삐져나왔다. 승연이 준, 태주 이니셜이 박힌 손수건이었다.
“내 새끼야, 이런 건 왜 부적처럼 갖고 다녀?”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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