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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내양이 탑승하면 버스 안 공기가 달라진다. 어린이에게 뽀로로와 하츄핑이 있다면 어르신에겐 김정연이 있다. 군내(郡內)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그곳을 힐링 토크쇼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국민 안내양’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KBS ‘6시 내 고향– 달려라 고향버스’ 국민 안내양으로 매주 시청자와 만나는 방송인 김정연.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 1호 트로트 가수로 유명세를 탔던 그는 2009년 ‘6시 내 고향’ 버스 안내양으로 발탁되었을 당시 “이 빨간 유니폼 평생 못 벗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말이 씨가 된 걸까. 그는 16년째 매주 버스에 올라 어르신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일 많은 듣는 얘기가 딸보다 반갑다는 말이에요. 제가 가면 국민 안내양 김정연이 우리 동네에 왔다고 이곳저곳 막 전화해서 자랑하시고 ‘6시 내 고향’ 방송 나가면 한 달 내내 제 얘기만 한대요.”
어르신들에게 국민 안내양은 한번 훌쩍 마을을 둘러보고 가는 손님이 아니라 딸, 며느리와 동급이다. 어르신들은 휴대전화 한 대쯤 다 갖고 있지만 전화 요금 무서워 통화를 안 한다고 한다.
“자식의 전화만 기다리는 마음의 빈틈을 내가 채워도 될까, 한편으로 죄송하면서 또 딸 대신 효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교차합니다.”
아무리 ‘리얼’을 표방한 프로그램이라도 최소한의 구성안이 있고 사전에 현장 답사를 가는 게 기본인데 그는 대본도 없고 리허설도 없이 곧바로 촬영에 임한다. 촬영이 시작되면 어르신 옆에 착 붙어 앉거나 무릎 꿇고 눈을 맞춘다.
“달려라 고향버스에는 대본이 없어요. 현장에서 부딪혀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죠. 현장감이 살아있어 좋은데 진행자로서는 아찔할 때가 많아요.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에게 말을 건네야 하니 더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요.”
인생 자체가 드라마인데 대본이나 리허설이 필요할 턱이 없다.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존중이요 성의다. 버스에서 어르신을 보고 “누구 주시려고 과자를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물으면 바로 아내 이야기, 장날 나온 김에 병원 다녀온 이야기, 소싯적에 잘나갔던 이야기까지 재미난 사연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온다.
“딸한테도 못한 얘기를 정연이한테는 다 해” 이러는 분도 있다. 고향버스는 어르신들에게 ‘속풀이 공감 소통 마당’인 셈이다.
그는 지난 19일 대구광역시가 주최한 ‘2025 인생 백년 아카데미 토크콘서트’ 강연 무대에 올라 ‘속풀이 공감 소통 한마당’을 펼쳤다.
“강연에서는 ‘행복은 큰 선물처럼 오는 게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온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녹록치 않았던 제 인생 이야기를 풀어놨죠. 저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통해 연예계에 첫발을 들여놨는데 처음에는 노래를 못한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어요.”
그럼에도 안치환·권진원·김광석 같은 쟁쟁한 가수들 사이에서 3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말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는 말을 잘하기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노찾사’에 들어간 거잖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노찾사를 나와 트로트로 전환했죠.”
그는 ‘노찾사 출신 1호 트로트 가수’라는 꼬리표에도 ‘고향버스’ ‘어머니’ ‘이별후애(愛)’ 같은 트로트곡을 꾸준히 발표했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방송하면서 만난 어르신들 삶 속에 행복의 실체가 있다고 대답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가평까지 배달일을 하는 어르신을 만났는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일로 돈도 벌고 자동으로 외출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답하셨어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데서 행복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전에는 라디오 진행을 ‘지푸라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거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동아줄’이었던 거예요. 지푸라기를 꼬아야 동아줄이 되듯이 제가 푸념했던 일들이 기회가 되어 6시 내 고향 국민 안내양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농촌의 어르신들을 보면 하나같이 걱정이 많다고 한다. 넘쳐나는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어르신들도 흔하다.
“그분들의 가장 큰 걱정은 치매예요. 인지 기능이 떨어져서 행여 자식을 못 알아보는 상황이 되면 어쩌지? 마을별로 인지기능강화 프로그램을 한다고 하는데 부족하대요. 노인들에게 소통과 공감을 담은 경청은 가장 좋은 효도이자 만병통치약인 거죠.”
그래서 김정연을 만나면 가슴 속에 묵힌 설움을 막 풀어놓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청력과 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말을 걸면 잘 안 들린다고 대화를 피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세 번째가 치아 건강인데 임플란트를 해야 함에도 행여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이를 숨긴다.
어르신들에게 김정연은 BTS요 뽀로로다.
“트로트계에 임영웅·이찬원을 비롯한 많은 스타들이 있고 도시에 유퀴즈 유재석·조세호가 있다면 국민안내양 김정연은 농촌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딸보다 더 믿음 가는 사람”이라는 칭찬에 걸맞게 어르신들에게 든든한 말벗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데 화려한 말솜씨도 테크닉도 필요 없어요. 그냥 진심이면 돼요.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고, 어르신 말씀이 끝날 때까지 맞장구 쳐드리면서 늘 그 자리에 있는 국민 안내양으로 어르신들의 말벗이고 싶습니다.“
그는 앞으로 노래하는 강사로 ‘가수 김정연의 힐링 효 토크 콘서트’ 무대를 많이 가질 계획이다.
김정연이 탄 고향 버스는 화려한 조명도, 무대도 없다. 이른 새벽 안내양 유니폼을 입고 고향 버스를 탄 그녀는 대본 없는 인생의 무대에서 어르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다.
인구소멸과 고령화로 갈수록 적막강산인 농촌에 신바람을 불어 넣는 ‘달려라 고향 버스’는 잠시 다녀가지만, 국민 안내양 김정연은 그들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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