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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와 일본사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81
상고시대 유라시아 대륙 지배한 우리 역사
고대 중국 영토는 우리 영토 5분의 1 이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9-22 10:23:03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어느 나라나 역대 왕조의 말기에는 조정 내의 관료에 의해 지위나 재산이 독점되어 귀족도 세습돼 하층계급에 대해서는 농노적(農奴的) 지위가 고정화 되는 등, 사회 전체가 경직화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체제를 파괴해서 신체제 성립을 시키려는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고대 미개한 중국과 일본에 문물을 전수(傳授)한 강대국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로 상고시대 환국시대부터 대륙을 지배하였을 뿐더러 대륙의 제 민족들은 우리의 지배를 받았다.
 
이 지배는 상고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수천 년 이상 이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主席)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대화(對話)에서 중국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나라가 지난날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자랑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우리가 중국을 몇 천 년 이상 지배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야 말로 우리의 지배를 받은 나라로 그 한민족(漢民族)도 찾기 힘든 오늘이다. 3국시대로 불러지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중국은 물론 왜를 지배하고 4~5세기경 소위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에 와서는 한족(漢族)이라는 인종(人種)은 거의 절멸(絶滅)했다.
 
대륙 산악지대에 우리의 5분의 1 정도에 살던 한족이라는 민족은 타민족과의 혼혈(混血)에 의한 새로운 한족(漢族)으로 오늘날 순수한 한족(漢族)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수(隨)나라(581~619년)부터 시작하는 현재의 중국인은 신종(新種)의 한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한족(漢族)인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고대 북방 민족으로, 중국에서는 흉노(匈奴)로 대표되는 우리 동이족은 기마민족으로 기마전술(騎馬戰術)을 통해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배달국시대부터 철기(鐵器)를 사용한 우수한 선진민족으로  우리가 앞선 선진철기문화를 꽃피운 결과였다. 우리 외의 타민족에게 철기는 꿈도 못 꾸던 시대였다.
 
치우천자(蚩尤天子)와 동이족이면서 화하족(華夏族)의 왕이 된 황제헌원(黃帝軒轅)과 치우천자(蚩尤天子)의 오랜 싸움에서 황제헌원(黃帝軒轅)이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치우천황의 탁월한 병법과 군기(軍紀)와 철기(鐵器)무기 사용이 크게 기여한 사실은 이미 다 아는 바이다.
 
우리는 배달국 시대부터 다른 민족이 갖지 않은 철기무기로 유라시아의 80%를 지배한 넘볼 수 없는 대국으로 군림(君臨)했던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학자들이 말하고 중국과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세계를 정벌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한 역사를 살핌으로서 반도식민사관역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영역과 민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을 인정한 사서와 학자들
 
우리나라 역사를 반도에 가두어 두려는 무지하고 반민족적인 반도식민사관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은 다 같이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었고 대륙을 지배한 사실을 그들의 저서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솔직히 말하는 중국 학자들은 양심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학자인 임해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상권 제5장에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중국의 중부와 남부는 본래부터 배달동이 겨레인 구려, 즉 묘족(苗族)이 살고 있었는데 한족이 이주하여 들어온 뒤부터 점차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의 도리이 류조(鳥居龍藏)도 ‘묘족조사보고(苗族調査報告)’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한족(漢族)은 고인류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조사해보면 대륙의 주인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학자 왕동령(王桐齡)도 ‘중국통사(中國通史)’ 4면에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현재의 호북성(湖北省), 호남성(湖南省), 강서성(江西省) 등의 지역은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였다. 이 종족의 국명은 구려(九黎)라 하며 그 군주(君主)의 이름은 치우(蚩尤)라 하였다”고 상서(尙書)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또 상서(尙書)는 “구려(九黎)는 곧 치우의 무리라고 하였다”
 
또한 서량지(徐亮之)도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은나라 주나라 이전은 물론 은주(殷周)시대까지도 동이 즉 배달 민족의 그 활동 분포가 현재의 산동성, 하북성, 발해연안, 하남성의 동남부 지역과 강소성의 서부와 서북부지역, 안휘성의 중북부지역, 하북성의 동부 및 요동반도와 한반도 등을 포함한 광대한 지역이었다. 중심지는 산동반도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해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주나라 성왕(成王)때(서기전 1300년~서기전1200년)에도 지나(支)那)의 영토가 가장 좁았다. 중국 낙양(洛陽)을 동경(東京)이라 하였는데...중국이라는 땅은 오직 몇 십주에 지나지 않는다. 중원 전체의 5분의 1밖에 되지 안 않다”고 하였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5분의 4는 배달 조선의 영토였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땅은 중원 전체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중국이 우리를 지배한 것 같이 역사를 조작하고 위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배달국 시대에도 배달 동이 구이(九夷)인 구려(九黎)가 현재 중국 땅을 합친 동부아시아의 전 지역을 차지하고 동양문화를 창조한 우리이다.
 
이 역사는 고조선에 와서도 대륙에 정착하고 살아오면서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 문화를 이루면서 아시아 전 지역에 동방문화권을 형성하여 중국문화와는 다른 독창적이고 독특한 독자적인 문화를 수천 년 동안 계승 발전시켜온 우리 민족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외국 학자인 러시아의 유. 엠. 부틴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도 일일이 열거하여 고증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내용도 참고 하였으면 한다. 어찌 같은 민족으로 다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국가와 민족에게 재앙을 남기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부틴의 ‘고조선(古朝鮮)’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고조선에서는 농업과 축산업, 직물업, 도기산업(陶器産業)비금속, 보석가공업의 야금술(冶金術), 수송수단, 수레와 선박의 제조가 각기 분업화되어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외국학자가 밝힌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우리나 학자 중에서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는 숫자도 외국연구자와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반도의 민족인가! 우리역사가 반도역사가 아닌데 반도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언제까지 반도사관으로 우리역사를 좀먹게 하려고 하는지! 양심이 있다면 제대로 연구하고 나라 망치는 역사 놀음을 이제는 그만 두고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말하라!
 
중국이란 국호는 우리 국호였고, 한족 인종 지금 없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호칭(呼稱)은 우리가 우수한 문화와 문명을 가져다가 꽃피우게 한 것을, 자신들이 꽃피우게 한 것 같이 중국인이 자칭(自稱)하는 중앙(中央)의 국가(國家)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즉 중화(中華)란 중국인이 자국(自國)을 부를 때의 미칭(美稱)인 것이다.
 
중국이란 국호는 원래 우리가 쓴 국호이다. 즉 가야(伽倻)의 김수로왕(金首露王)도 가야를 중국(中國)이라 국호를 썼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중국을 지나(支那)로 불렀다.
 
그 유래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진시황(秦始皇)이 건국한 진(秦)에 있으며 주로 외국인이 중국을 부를 때에 사용한 것이다. 이 국명(國名)이 주변국으로부터 유럽에 전해져 지나(支那), ‘차이나’가 된 것이다.
 
지나(支那)라는 국호는 인도(印度)에서 쓰여 진 산스크리트(Sanskrit)어(語)의 불전(佛典)에 쓰여 진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중국을 지나(支那) 등으로 한역(漢譯)되어서 다시 역수입되었다. 현재도 거의 모든 나라 중 서구(西歐)에서는 거의가 지나(支那)로 부르고 있다.
 
주(周)시대에는 이미 황하유역으로부터 하류역(下流域) 일대(一帶)에 정주(定住)해서 한자(漢字)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한족(漢族)이라 하여 한자(漢字)를 사용하지 않은 주변 다른 이민족(異民族)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부르며 비하(卑下) 하였다.
 
이는 기가 차고 웃기는 일이다. 우리가 한자(漢字)를 만들고 문화와 문명을 열어준 우리 동이족에게 고마움과 은혜를 못 갚을망정, 은혜(恩惠)를 원수(怨讐)로 갚고 있는 중국이라 함이 옳다.
 
또한 그들은 고대에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다른 이민족(異民族)을 부를 때는 조수(鳥獸)나 곤충(昆蟲)에 가까운 한자(漢字)를 쓰게 하여 자기들과 명확히 구별한 것이다. 이는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것이라 함이 옳다. 자기들의 근원도 제대로 모르면서 웃기는 일인 것이다.
 
4000년의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한 사실은 중국에 문명(文明)을 가져다 준 우리민족의 공헌(貢獻)을 모르고 무시하며 한족(漢族)을 내세우나, 한족(漢族)은 내세울 것이 없다. 그들은 고대 우리민족이 중국을 정복하여 지배하여 왔음을 의도적으로 감춘다.
 
주(周)가 서기전 770년에 서방의 견융(犬戎)의 침공을 받아 호경(鎬京)을 버리고 수도를 동쪽의 낙읍(洛邑)에 옮긴 이후 호경(鎬京)에서 약 330년간을 서주(西周)라 칭하고, 서기전 256년, 진(秦)에 멸망할 때까지 낙읍(洛邑)에서 514년간을 칭해서 동주(東周)라 부르고 있는 것도 바로 동이족이 중국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대륙을 지배한 것을 말해주는 한 예(例)이다.
 
중국은 동주(東周)시대부터 우리에게서 석족(石鏃)과 궁시(弓矢)며 모든 선진문물을 비롯해 군사무기를 수입하고 춘추전국시대에는 우리의 기마전술과 철제무기 사용을 배웠다.
 
기마민족인 동이(東夷)의 기마전술에 고민하던 전국시대 조(趙)의 무령왕(武寧王)은 호복기사전술(胡服騎射戰術)을 수입하여 그 수득(修得)에 노력하였다. 호복(胡服)은 북방민족의복이다.
 
여기서 기마전술은 점차 전국시대에 넓혀져 전차전술을 무용한 것으로 하여 진왕(秦王;시황제(始皇帝))는 기마전술을 사용한 포위섬멸전을 펴 한족(漢族)사회를 통일했던 것이다. (以上)은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20面~70面 參照, 引用)
 
중국은 우리 동이(東夷)를 무서워했다
 
우리의 기마전술과 전법을 배워서 한(漢) 이후의 역대왕조(歷代王朝)도 기마전술을 가지고 국가통일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3000~4000km까지 원정(遠征)을 시도하여 판도(版圖)를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수(隨) 이후의 중국인에게는 남부의 농경민족을 포함해서 유목기마민족으로서의 체질이 농후하게 되었다. 이것도 모두 기마민족에게서 배워 체질화된 것이다.
 
한편 중국이 얼마나 우리 동이족의 기마군단을 무서워했으면 만리장성을 쌓았겠는가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고, 국토방위를 하기 위해서 춘추전국시대 열후(列侯)들이 장성(長城)을 쌓기 시작하여 그 후 진시황의 계속했고 명(明) 왕조까지 건설이 계속해서 장성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가 중국(中國)에 관광(觀光)을 가면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고 안내받는 곳은 진시황(秦始皇) 때 쌓은 것이 아니다. 명(明)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인 것이다.  
 
이 장성(長城)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동은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이고 서는 가곡관(嘉峪關)까지 지분(枝分)이 나눠져 있는 부분을 포함하여 총연장 6000km에 미치는 인류 역사상 최장의 건축물이라 말해지고 있다. 얼마나 북방민족이 무서웠으면 인류 역사상 최장의 장성을 쌓겠느냐는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에 있어서 북방 유목민족의 중국 침입은 왕조에 있어서 협위(脅威)이었는가를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장성은 북방 이(異)민족과 한족 국경선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4세기~5세기에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 이후 한족(漢族)이라는 인종(人種)은 혼혈(混血)에 의해서 새로운 한족(漢族)의 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서특필할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 순수한 한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와도 혼혈이 된 한족(漢族)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장성(長城)을 넘어 중국인이 동북지방, 만주(滿洲)에 이주(移住)하고 있는 것은 한족에 의한 침략의 증거로 앞으로 우리가 찾을 영토를 침범하는 것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동북지방은 명나라 주원장도 우리 영토임을 말하였는데 근래에 와서 한족(漢族)을 대거 이주시키고 있는 것은 영토 문제임을 바로 알고 우리도 이에 대처해야 한다. 이를 저해하는 무리가 바로 반도식민사관자들이다. 이 동북삼성(東北三省)은 우리가 찾아야 할 영토인 것이다.
 
이제 글을 접으려고 함에 있어서 우리는 영토와 역사가 반도가 아니고 상고시대부터 대륙이었다.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한 대륙 역사를 더 이상 반도 역사라 하지 말라. 역사를 연구해보면 우리 역사인데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반도역사라 할 수 없는 것 왜 모르는가!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진시황 이전의 역사는 황제(皇帝)의 고대사(古代史)도 또한 맥동(貊東), 즉 동이(東夷)에 속한 역사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래도 우리 역사가 반도역사라 할 것인가?! 반도사관은 그 어디에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는 선조의 지상명령이고, 반드시 이룩해야할 우리의 사명임을 국민모두가 각성하고 나서야 할 때라 사료 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윤진영 編集 「三國史」.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문화열차」. 이강민 「대학국고대사」.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外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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