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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60>

지나(支那) 역사왜곡에 휘둘린 연구 경계해야

한족정사(漢族正史)와 일본의 허구역사 바로 알고 논해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5-31 09:53:01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많은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지명과 지역, 연대 등에 대한 것을 잘못 인식함으로서 우리역사를 잘못 서술하는 것이다. 
 
이는 당(唐)나라 때부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지명과 지도를 동으로 이동해 적극적으로 역사왜곡을 하는 것과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서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지배를 받았던 것을 숨기기 위해 왜곡한 역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지나(支那)와 일본이 우리역사에 대한 열등감과 멸시감을 감추기 위해 마치 자기들이 더 우월하고 우수한 문물제도를 가지고 오히려 우리를 지배한 것같이 우리역사를 멸시하는 조작과 왜곡함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훼손시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주변을 살펴보면 아직도 일제의 반도식민사관과 이를 조장하는 역사연구를 자 중에는 우리의 시조가 단군이라 하며 단군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의 상고사에는 아예 무지함을 볼 수 있다.
 
진정 우리의 시조가 단군인가?!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의 환웅(桓雄)과 환국시대의 환인(桓因)은 어느 나라의 조상인가? 어느 민족도 자아를 무시하는 민족은 침체, 타락, 멸망하여 타민족의 무시를 받는 것인데 이를 망각하고 있다. 
 
또한 아직도 교과서에는 일제(日帝)가 왜곡한 역사를 고수하며 일본이 우리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축소한 것을 그대로 두고 가르치고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 사학계는 이것이 옳은가? 아직도 말도 아니 되는 식민사관으로 일제(日帝)에 의해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 것을 방관만 하는 우리나라 사학계는 정상이 아니다.
 
연구는 하지 않고, 일본의 왜곡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역사를 망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연구해서 그르치지 않게 이 나라를 바로 이끌어 가야하는데 아직도 반도사관에서 헤매고 있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조국광복이 되어 백년이 다가 오는데도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따르며 역사 망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우리 사학계 잘못된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역사학계의 역사 무지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학계가 어찌해서 이렇게 나태(懶怠)되어 있는지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단군을 시조로 역사도 5천년이라 하는데 이들은 언제까지 ‘조선사편수회’의 유령을 따를 것인지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한심함을 금할 수가 없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우리역사가 5천년역사인가? 세계석학들도 우리역사는 ‘1만2천년’이라 하고 컬럼비아대학의 개리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교수는 ‘1만 5천년’으로 보고 있는데 일제가 단군조선도 신화라며 2000년이나 잘라버렸던 역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오늘날 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때 배달국의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天黃)이 서기전 2707년 즉위해 109년간 통치한 천황(天黃)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전설로 보는 국민이 많음은 우리가 얼마나 역사를 모르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미 밝힌바 있는 장개석(1887~1995) 총통은 이시영 상해임시정부 부통령시절 만난 자리에서 자기의 고향이 옛날 백제 땅이었다 하면서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았겼지!”하며 역사를 모르는 것을 질책함으로 그 후 이시영(李始榮) 부통령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좋고 똑똑하나 역사는 너나할 것 없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에 유학을 간 이병도, 손진태, 이기백 등도 쓰다쇼우기치(津田左右吉) 교수의 잘못된 왜곡역사를 배워 이를 다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로 인해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을 모르게 했다. 우리나라는 원래 “약해서 다른 나라 침범도 하지 못하는 약한 나라”라고 부각시켜 우리가 유라시아를 지배한 사실을 아예 생각지도 못하게 반도식민사를 가르쳐서 식민사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타이완(대만;臺灣)의 서양지(徐亮之) 교수가 한갑수 박사와 미공군참모대(美空軍參謀大)에 같이 입학했을 때 찾아와 말한 것을 다시 옮기게 되는데 “귀국 한민족은 지나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지나인(支那人)이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지나 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할 정도로 양심적으로 말을 했다. 
 
서양지(徐亮之) 교수는 1943년 처음 저서인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4000년 전 한족(漢族)이 지나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해 경영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한족(漢族)이 지나에 들어 온 뒤에 점점 더불어 접촉했다”고 대륙의 주인이 우리였음을 말했다.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海祥) 교수도 지구의 땅 40%가 유라시아인데 우리 영역은 그중 80%가 되는데 비해 지나 한족은 산악지대 조그만 한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역사학자 유엠 부틴도 영토에 대해서 그의 저서 [고조선]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지역 한반도에 이르렀던 광활한 영역이고, 우리는 지나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설(箕子朝鮮說)은 주왕(周王)이 자신이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나의 역사가들은 연(燕)나라가 지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연(燕)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고 하면서, 당시 국력으로 보아 조양(朝陽)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은(殷), 주(周) 이전과 은(殷)과 주(周)때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 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이었다”면서 한반도가 아님을 말했다.  
 
인류 최초에 등장한 문화민족은 우리 민족이다
 
우리나라 사학자 중에는 지엽적인 내용을 가지고 전체를 뒤엎는 “고려도 중국역사”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역사학(歷史學)도 법사회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어떤 사서에 써 있다고 그것만이 옳게 보는 시각은 대단히 경계해야 한다. 
 
지나는 지명과 지도를 여러 번 옮겨서 고지 그대로 보면 큰 착오를 낳게 된다. 한 외연(外延)을 가지고 전체를 덮지 못한다. 고려는 엄연히 우리나라 역사이다. 다음에 이에 관하여 다음에 말하려 하지만 그런 사서는 모두 조작된 것인데도 이를 잘못 알고 함부로 단정은 금물이다. 지나와 일본의 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려가 963년에 송(宋), 994년에 요(遼), 1126년에는 여진족에 복속되었다는 것의 진위를 제대로 바로 보고 고려(高麗) 역사를 왜곡한 지나와 일본이 제멋대로 조작한 허구역사서 보고 대륙과 한반도 지배한 고려역사 폄하하지 말기를 바라진다.
 
오늘 과제는 우리가 세계 최초의 문화민족으로 고대부터 우리는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 문물제도 전설도 고대대륙 문화를 개척한 자는 모두 우리민족이었음을 말하겠다.
 
지나는 대륙문화를 개척한 자도 자기들이라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요순시대(堯舜時代)부터 우리민족인 것을 지나 사학계(史學系)의 제1인자인 사마온공(司馬溫公)과 지나문화(支那文化)의 대종사(大宗師)인 공자(孔子)의 견해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은 계고록(稽古錄)에서 지나문화(支那文化)를 개척한 자는 동이(東夷)의 순(舜)이라 말했다. 이 순(舜)은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과 사기(史記)에 동이인(東夷人)이라 기록했다. (史記卷 一, 五帝本紀第一(註, 周處風土記)). 
 
그리고 은(殷)의 신화(神話)가 난생설(卵生說)로서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신화와 동일하고 은인(殷人)이 백의(白衣)를 입는 것도 한민족(韓民族)과 동일하다고 했다. 
 
지나사가(支那史家) 임혜상(林海祥), 지나 문인(文人) 전사년(傳斯年)도 은인동래설(殷人東來說)을 주장했다. 그런데 예기단궁편(禮記檀弓篇)에 공자가 은인(殷人)이라 자청하고 사기에도 공자가 은인이라 기록했다.(史記卷四十七, 孔子世家第十七) 
 
지나문화(支那文化)를 개척한 자가 한민족(韓民族)인 순(舜)이요 지나문화의 총본산인 유교(儒敎)를 창설한 공자(孔子)가 한민족(韓民族)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책역(冊歷)도 중국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양지(徐亮之) 교수는 “지나의 책역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책역(冊歷)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고,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의 조상이다. 동이(東夷)가 달력(月歷)을 만든 사람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창조한 우리민족은 자기를 바로 발견할 때이다. 우리는 달력뿐만 아니다. “세석기문화(細石器文化)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지나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炎帝), 신농(神農)등이 본래의 종족이다”고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주자(朱子)는 이런 사실을 숨기며 소위 대중화사상(大中華思想)에 편향하여 지나를 높이고 한국을 폄하(貶下)하였다. 주자(朱子)는 공자(孔子)가 창조한 유교(儒敎)도 한국인의 사상을 계승한 것을 무시하려고 한 것이다. 
 
이에 공자(孔子)는 지나에서 자신의 사상을 보급시킬 수 없음을 개탄하고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대중화사상 무지 때문에서였다.  
 
지나(支那)의 모든 문물제도가 동이에서 나왔다
 
군주제도(君主制度)나 황제제도와 모든 문물제도가 우리에게서 나왔음에도 이런 역사를 모르는 모든 문물이 지나에서 나온 것 같이 쓰여 있는 사서를 보고 모든 문물제도와 진시황도 처음 황제라 칭해서 진시황제라고 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관제(官制)와 천자의 문물제도가 우리에게서 창조되고 지나는 고대부터 우리가 창조한 문물제도를 수입한 것이다. 지나에서 가장 유명한 범엽(范曄)이 공자가 천제(天帝)의 관제(官制)를 동이(東夷)에게서 배웠다고 말한 것을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기입하고 태평우기(太平寰宇記), 조선조(朝鮮條)에 기입했다.
 
이는 공자를 가르친 담자(郯子) 선생과 공자(孔子)가 한민족(韓民族)이다. 한(漢)나라의 채옹(蔡邕)이 저술한 ‘독단(獨斷) 권상(卷上)’에 천자(天子)라는 칭호(稱號)는 이적(夷狄)이 창조한 것이오, 이적(夷狄)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의 피를 받은 민족으로 자처함으로 천자(天子)라는 칭호를 창조했다고 한 것이다. 
 
지나의 고서(古書) 산해경(山海經;海內經)에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또한 포박자(抱朴子)에 “지나 민족의 시조라 칭하는 신화적 제왕(帝王)인 황제(黃帝)가 동으로 청구(靑丘)에 와서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얻었다”고 했다.
 
여기서 청구(靑丘)는 우리 한민족을 가리킨 것인데, 삼황(三皇)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가리킨 것인데 지나는 우리가 창조한 그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수입한 것이라는 것 이로서 입증이 된다.(崔仁, 韓國學講義15~84參照,引用하다.)
 
이런 내용은 이미 밝혔는데 지나 역사에 병가(兵家)의 시조(始祖)는 강태공(姜太公)의 군사철학이 후세에 전파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 강태공은 동이(東夷)의 사(士)라 했다. 이것은 지나의 군사학(軍事學)도 우리에게서 수입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史記三十二, 齊太公 世家 第二).
 
그리고 불교(佛敎)도 우리의 사상을 수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불교(佛敎)는 인도(印度)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우리민족의 사상을 수입한 것이다. 인도에는 불교(佛敎) 이전에 인도의 고유한 사상을 계승한 파라문교(婆羅門敎)가 있었다.
 
파라문교(婆羅門敎)는 교조(敎祖), 교조(敎條), 교단(敎團)이 없고, 신(神), 사제자(司祭者), 기도(祈禱)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종교로서 인도의 전통을 계승하고 고유의 신앙을 고수했다. 파라문교는 절대 신(神)을 신앙하고 인간을 무시했다. 
 
인도의 고유사상은 신본주의요, 인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특히 전통적인 파라문교를 뒤집는 것이 불교이다. 불교는 인도사상을 부정하고 타민족의 사상을 수입한 것이다. 영국사학자 스미스는 석가(釋迦)가 우리 동이족계통이라 풀이했다.  
 
우리역사 바로 알아야 식민사관 탈피한다
 
우리역사는 지나와 일본사가(日本史家)가 우리역사를 패배와 수치의 역사로 조작, 위조하고 거기에 식민사를 장식(裝飾)했다. 때문에 우리 한국사는 식민사관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의 민족사관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과학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런데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자주독립의 민족사를 찾아내려고 노력했으나 그의 사관은 생명력을 잃고 위조된 역사였다. 좀 더 깊이 역사를 연구해야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리의 역사가 대륙사임에도 한반도에 국한하는 크나큰 과오를 범했다.
 
지금 그 흐름이 우리나라 역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 역사가 뒤집혀졌다. 이것은 문서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음에서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 백제가 강성한 때는 100만 대군으로 유연제노(幽燕齊魯)와  오월(吳越)을 다물(多勿)하고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 예로 [삼국사(三國史)권46]과 지나(支那)[남제서(南齊書)권58]도 보고 연구도 않고 김일연과 신채호 사관은 오로지 한반도에 맞추려는 사관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있기에 출발부터 잘못되어 공허한 관념에 의해서 전개되었기에 잘못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문화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무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하는데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의 문화사상을 발견 못하고 무사(武士), 영웅(英雄)이 승패(勝敗)를 논(論)하는 기록에 그쳤다. 
 
그리고 <오월춘추(吳越春秋)>, <해상잡록(海上雜錄)>, <갓쉰동전(傳)> 거짓말 책에서 취재했기 때문에 신채호의 역사는 그릇된 것이다. 자학반도시민사관을 바로 잡으려면 자주독립의 민족사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문화사상을 중심으로 다뤄야 하는데 그 방법은 위서(僞書)를 배제하고 진서(眞書)에서 취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류발달사(人類發達史)는 보편적역사(普遍的歷史)이다. 우리역사는 보편적 역사를 고찰하면서 우리민족의 특수성을 발견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우리역사를 발견하지 못한다. 한국사를 발견하는 방법은 진서(眞書)에서 취재하고 다시 인류발달사를 원칙으로 하면서 우리민족의 특수성을 토대로 다뤄야 한다. 
 
즉, 우리민족의 특수성은 특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창조된 특수한 문화 사상이 창조하는 다른 민족에 없는 것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고시(楛矢), 석족(石鏃)과 산삼(山蔘)의 생산이다. 이는 당시 우리에게서만 생산된 것이다.   
 
우리는 석기시대(石器時代)에 석기, 철기를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한 우리 민족은 사방원시민족을 정복하고 인류사상 최초에 대국(大國)으로 등장하고 다시 자존심을 가한 우리 민족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창조해 인류의 대표로 자처했다. 패배의식이나 열등의식은 찾아보지 못했다.  
 
또한 특수한 사회적 조건은 931회의 외침에 저항한 민족투쟁이었다. 민족투쟁의 제1의 요소는 자주(自主), 자존(自存)의 민족의식이다. 그리하여 전통적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민족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고 지나 문헌에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의 천자, 황제의 문물제도를 창안했다고 한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천자(天子), 황제(皇帝)를 칭했다. 이런 사실은 분명히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한다. 지나와 일본이 천황(天皇)이니 천민(天民)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서 가져다가 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과 문물제도 창조한 우리민족이 자학반도식민사관을 가질 이유가 없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 「우리역사(東夷傳」.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상)’. 이강민 「대학국고대사」.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 2, 3.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世界歷史の基礎知識’ 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參照,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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