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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우리민족의 조상 치우천왕, 중국인 조상됐다

일본 역사조작 영향에 슬그머니 조상으로 가져가버린 중국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6-30 11:59:36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유주(幽州)에서 지리적으로 어양(漁陽)군과 함께 다니는 군(郡)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상곡(上谷)군이다. 그 이유는 상곡군에 속해있는 군도현에 대한 설명에 “온여수(溫餘水)가 동쪽으로 로(路)현까지 흘러 남쪽에서 고수(沽水)로 들어간다”가 있는데 그 고수가 나오는 어양현과 온여수가 동으로 흘러가는 로현이 어양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온여수는 탑여수(漯餘水) 또는 습여수(濕餘水)로 돼있기도 하다.
 
“上谷郡(상곡군),秦置。莽曰朔調。屬幽州(유주)。戶三萬六千八,口十一萬七千七百六十二。縣十五:沮陽(저양),莽曰沮陰。泉上(천상),莽曰塞泉。潘(반),莽曰樹武。軍都(군도),溫餘水東至路,南入沽。居庸(거용),有關。雊瞀(구무),夷輿(이여),莽曰朔調亭。寧(녕),西部都尉治。莽曰博康。昌平(창평),莽曰長昌。廣寧(광녕),莽曰廣康。涿鹿(탁록),莽曰抪陸。應劭曰:「黃帝與蚩尤戰于涿鹿之野。」 且居(차거),樂陽水出東,東入海。莽曰乆居。茹(여),莽曰穀武。女祈(녀기),東部都尉治。莽曰祈。下落(하락)。莽曰下忠。”
 
<바이두백과>에서 상곡군에 대한 설명은 “연 소왕 29년(B.C.283) 진개가 동호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상곡군을 두었고 연장성을 쌓았는데 서쪽기점은 상곡군에 속하는 조양(朝陽)이었다. 이후 진시황의 중국통일 후 36군의 하나로 설치되었다가 한 고제가 나눠 탁군을 두고 유주자사부에 속했는데 처음 12개현에서 후에 증가돼 15개현에 3만6800호 인구 11만7762명이 됐다.
 
상곡군은 한과 흉노간 전쟁의 요충지였기에 좌우 2개 도위를 뒀다. 신나라 왕망이 상곡군을 삭조군으로 바꿨다가 동한이 상곡군으로 복귀시켜 8개 속현에 1만352호(인구5만1244명)이었다가 동한말기에는 선비·오환 등 부족이 활동했다.(이하 생략)”고 되어있다. 즉 고대 중국과의 경계인 상곡군은 연장성의 기점으로 현재 지도에는 속현 모두가 북경 서북쪽에 그려져 있다.
 
▲ 북경 서북쪽에 그려진 상곡군. [사진=필자 제공]
 
진시황 때 쌓았다는 장성은 연(燕)장성과 제(齊)장성을 수축한 것이다. 연장성에 대해서는 <사기 연세가(史记·燕世家)>에 “연이 장성을 쌓으니 조양(상곡군)에서 양평(요동군)까지이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두어 동호로부터 지켰다(燕筑長城自造陽阳至襄平,置上谷·渔陽·右北平·遼西·遼东郡以拒湖)”는 기록이 있어 장성이 유주지역을 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인의 조상이 된 치우천왕
 
고대 중국과의 경계였던 상곡군의 속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현은 바로 동한 때 응소가 <한서지리지>에 “황제(黃帝)와 치우(蚩尤)가 탁록의 들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주석을 붙인 탁록(涿鹿)현으로 현재 북경 서북쪽 장가구(张家口)시 소속이다. 황제천(黃帝川=阪泉), 황제성유적(黃帝城遺蹟), 중화합부단(中華合符壇),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 헌원호(軒轅湖) 등의 유적이 조성돼 있는데 모두 관광용 가짜다.
 
황제천은 황제족의 식수를 위해 만든 샘으로 옛날에는 판천(阪泉)이라고 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가 용의 몸을 씻었기에 고칭 탁용지(濯龍池)라고도 한다. <바이두백과>는 황제와 염제가 판천의 들에서 싸웠던 곳으로 △산서성 양곡(陽曲)현 동북 △하북성 탁록현 동남 △산서성 운성(雲城)현 남쪽 △하남성 부구(扶沟)현의 4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특히 ‘산서성 운성현 남쪽’ 설에 따르면 “송나라 심괄(沈括)이 쓴 《몽계필담·변증-1(梦溪笔谈·辩证一)》에 사방120리 해주 염택(解州盐泽)은 장마로 주변 산의 물 모두가 그 가운데로 흘러도 일찌기 넘치지 않았고 큰 가뭄에도 굳어지지 않은 것은 판천(阪泉) 아래 있는 간수의 색이 적색이기 때문인데 세속에서 치우의 피라고 한다”고 설명돼있다. 해주 염택은 바로 운성염지(雲城鹽池)를 말하는 것이다.
 
1997년에 판천 200m 북쪽에 세워진 중화삼조당에는 중국인의 조상들이 모셔져 있다는데 가운데에 황제 헌원, 우측에 염제 신농, 좌측에 치우천왕이 좌정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인 치우천왕이 급기야 중국인의 조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일제가 조작한 단군신화의 영향으로 단군과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한국인들이 치우천왕이 자기 조상인지도 모르고 있자 중국이 슬그머니 중국인의 조상으로 가져가버린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인의 조상을 한국축구국가대표팀의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공식 캐릭터로 써왔단 말인가.
 
▲ 중화삼조당 좌측에 모셔진 치우천왕. [사진=필자 제공]
 
<위키백과>에 “치우는 중국의 여러 기록과 전설에서 헌원과 함께 탁록의 전투에서 싸웠다고 전해지는 전쟁의 신 또는 옛 부족(九黎)의 지도자로 현재 묘족(苗族)의 조상신이다”고 소개돼 있다. “치우는 신농의 후예로 황제 헌원과 탁록지전 등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신농의 치세 말기 세상이 혼란해지자 헌원이 신농을 대신해 세상을 안정시켰는데 이때 치우가 가장 포악해 염제도 손을 대지 못했다. 헌원이 신농을 대신해 제후들을 다스리고 세상을 평정했을 때 치우가 다시 난을 일으키자 헌원은 군대를 일으켜 치우를 탁록(涿鹿)에서 잡아 죽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황제에 대해서는 “중국 문명의 시조로서 오제(五帝)와 하·상·주 3대의 공통 시조로 알려져 있다.《사기》에 의하면 소전(少典)의 아들로 이름을 헌원이라 하며 치우를 물리치고 신농(神農)에 이어 제왕이 됐다. 의복, 수레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품과 문자, 60갑자, 한의학 등의 학문과 기예를 창시했다고 하며 100년 동안 재위했다”고 설명돼있어 마치 중국판을 그대로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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