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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산서성 태원과 관련된 우리 역사를 찾아서

졸본성 역사 지우기 위해 태원을 산서성 중부로 옮긴 중국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7-29 18:51:01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산서성의 성도(省都) 태원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모본왕 2년(49) 봄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했다. 그러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는 문구가 있다.
 
위 내용은 <후한서>광무제기에 “건무 25년(49) 봄 정월, 요동 밖 맥인들이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침략하니 요동태수 제동이 복속하겠다는 항복을 했다. (建武 二十五年春正月,辽东徼外貊人寇右北平、渔阳、上谷、太原,辽东太守祭肜招降之。)”라는 기록이 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대무 22년(49) 을묘 정월, 장군 우도와 오의 등이 네 길로 나누어 진격해 우북평·어양·상곡·태원 등을 공략하고 그곳의 보물·미색·비단·진미 등 다수를 빼앗았다. 한 해 내내 이런 일이 잦았더니, 제동이 크게 두려워하며 매년 조공하겠노라고 약속하고 화친을 구걸했다”고 기록돼 있다.
 
참고로 49년은 <삼국사기>에는 모본왕 2년이다. <고구리사초략>에는 대무신제 22년으로 기록돼있다. 두 사서간 고구리 초기에 아래와 같은 역년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느 사서가 옳은 지에 대해서는 국조왕(태조황제)의 97년간 재위가 과연 가능했을지 여부를 판단함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 [표=필자 제공]
 
식민사학자 이병도 박사는 공격의 주체를 고구려가 아닌 오환 또는 선비의 오기(誤記)로 봤다. 이와 달리 고구려의 습격을 긍정하거나 또는 산서성 태원 만이 오기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습격의 성격이 영토 확장이 아닌 일회성 약탈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현 강단사학계의 반도사관의 이론대로라면 당시 고구려는 집안(국내성)에 상곡·어양·우북평은 북경 부근에 태원은 산서성 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고구려가 태원을 습격했다는 것은 거리상으로 너무 멀기에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반도사관의 이론은 틀렸다는 말인 것이다.
 
역사왜곡을 위한 지명이동 전의 상곡·어양의 위치는 산서성 동남부 로성(潞城) 부근, 태원은 산서성 남부 강현(絳縣), 우북평은 산서성 남단 영락진 일대다. 실제는 산서성 중부에서 산서성 남부를 공격했던 것이라 가까웠기 때문에 습격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 반도사관으로 해석한 고구리 공격로(왼쪽)와 지명이동 전 49년 공격도. [사진=필자 제공]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도 태원이 언급된다. “홍무 23년(612) 수나라 군사 130여만이 바다와 산으로 나란히 공격해왔다. 을지문덕은 능히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이를 초격(抄擊)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러 마침내 이를 대파했다. 수나라 군사는 수륙 양군이 무너져 살아서 요동성까지 돌아간 자가 겨우 2700인이었다.
 
양광은 사신을 보내 화해를 구걸했지만 문덕은 듣지 않고 영양제 또한 이를 추격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문덕은 제장과 더불어 승승장구해 똑바로 밀어붙여 한쪽은 현토도로부터 태원(太原)까지 추격하고 한쪽은 낙랑도로부터 유주에 이르렀다. 그 주군에 쳐들어가 이를 다스리고 그 백성들을 불러다가 이를 안무했다”
 
위 문구는 사학계에서 위서라고 하는 <환단고기>에 수록된 기록이다. 그 내용이 <삼국사기>와 <자치통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고·수 전쟁에 동원된 수나라 병력의 수가 130만 명인 것 △그 선발대를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대파한 것 △요동성으로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2700명에 불과했다는 것 등 주 내용은 같다.
 
위 문구의 해설을 강단사학계에게 의뢰하면 한결같이 “살수대첩은 청천강에서 일어난 전쟁인데 어떻게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병사들을 산서성 중부 태원까지 추격했다는 내용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것만 보더라도 환단고기가 위서임이 입증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 신성과 남소성과 지척거리에 있었던 태원. [사진=필자 제공]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 이전에 유주(幽州)의 현토(玄菟)군에 속하는 남소(南蘇)성은 병주(并州)의 태원(太原)군의 치소인 강현(絳縣)과 사실상 그리 멀지 않았다. 남소성과 지척거리에 있다는 신성(新城)의 위치가 바로 곡옥(曲沃)이다. 곡옥과 강현은 무척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어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산서성 남부 강현에 있던 태원을 지금의 산서성 중부로 옮겼을까. 옛날 그 땅에는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아마 중국은 바로 고구리의 초도 졸본(卒本)성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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