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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73>

진(秦)의 영정(嬴政)은 한족(漢族) 아닌 동이족

진제국(秦帝國) 6국통일 성공 이유는 철기(鐵器)등에 있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05 11:30:49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에서는 춘추시대부터 철기(鐵器)사용이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중원(中原)은 우리의 독무대였다. 따라서 우리 동이족은 산악지대가 아닌 살기 좋은 평야지대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다. 반면 산악지대에 사는 민족들은 인구의 증가로 영토 확대가 필요하게 됐다.
 
산악지대에 사는 한족(漢族)을 포함한 제 민족들은 그들이 말하는 이적(夷狄)을 토벌해서 영토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동이족은 동(東)은 요동반도, 서(西)는 황하의 중류 전체를 포함한 지역까지 확대되고, 남(南)은 현 호남성(湖南省)과 강서성(江西省)까지 크게 팽대해 있었다.  
 
즉, 그들은 황하 중류지역부터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과 양자강 중류, 하류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기 좋은 평야지대를 동경(憧憬)하던 때에 철기사용이 시작되면서 진(秦)이 강한 6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계속되는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서기전 403부터 서기전 221년까지의 약 200년간을 말한다. 중원대륙에는 가장 서쪽에 진(秦)이 있었고, 그 동쪽에 위(魏), 한(韓), 초(楚), 조(趙), 연(燕), 제(齊), 7개국이 병립하고 있어 하극상의 시대에 들어감과 함께 약육강식의 풍조가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각 제후(諸侯)는 부국강병책을 쓰게 됐다. 
 
여기서 부국(富國)이란 조금이라도 많은 농지를 넓혀서 곡물의 생산액을 높이는 것이며, 강병(强兵)이란 인구의 증대에 의한 병력증가와 우수한 지휘관의 획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든 자국영토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해서 가장 산악지대의 서쪽에 있던 진이 평야지대의 중원을 통일한 것인가! 진이 과연 다른 6국보다 강했는가. 이를 살펴보면 당시 전국7국(戰國7國)중에서 가장 문화가 앞서고 인재가 많았던 위가 망한 때에 많은 인재가 진에 이주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우수한 군마와 이를 잘 타는 주변의 유목민족을 많이 포용할 수 있었던 것과 현재의 사천성(四川省)을 얻은 것 등을 들 수가 있다. 이 파촉(巴蜀)의 땅은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으로 둘러싼 분지이기 때문에 물산(物産)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중원(中原)이 전란이나 기근에서 살기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풍요한 사천(四川)을 향하여 이주를 했다. 후삼국시대에 위나 오(吳)가 평야를 끼고 있는데 반하여 촉한(蜀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서기181~234년)은 평야가 적으면서도 물산이 풍부한 사천(四川)을 선택해 20년간에 걸쳐서 국가를 경영한 것은 유명하다. 사천의 땅은 티베트로부터의 루트를 통해서 인도와도 교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역상의 부(富)도 많이 모였다. 오늘은 진에 대한 것 중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진왕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진왕(秦王)의 6국통일과 진시황이란 시호는 어떻게 된 것인가
 
먼저 진은 북(北), 서(西), 남(南)의 세 방면에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과 함께 이민족 병사를 양성해 기마전술의 습득과 군마의 수입과 증산에 힘을 기울여 중원을 도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재상(宰相) 이사(李斯)를 통해서 강력히 동방6국에 외교에 의해서 한(韓)을 시작으로 6국을 하나하나 격파하고 동방(東方)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이 때문에 이웃하고 있는 한과 위(魏)영토는 날마다 침략되어 7국 중, 최고의 판도를 가진 초국(楚國)도 그 동진(東進)하는 세(勢)에 눌려서 수도를 무한(武漢)에서 회수유역(淮水流域)의 수주(壽州)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전국말기(戰國末期)에 무력으로 진에 대항한 것은 조국(趙國)밖에 없었는데 서기전 260년 산서성의 황토태지(黃土台地)를 차례로 화북평원(華北平原)에 내려가는 요지(要地), 장평(長平; 현재의 산서성(山西省 高平原)에서 전국시대를 통해서 최대의 격전을 연출했다. 
 
이 결전에 대승을 거둔 진국은 이 세(勢)를 타고서 동침(東侵)해 서기전 256년 주(周)의 난왕(赧王)을 항복시켰다. 그래서 동주(東周)의 평왕(平王)이래 23대 514년 계속되어온 주왕조(周王朝)는 여기서 멸망했다. 이는 주무왕(周武王)으로부터 통산하면 35대째이다.
 
서기전 246년, 13세에 즉위한 진왕정(秦王政)은 성인(成人)이 되니 그의 지원자(支援者)로서 실권을 잡고 있던 재상(宰相) 여불위(呂不韋)를 사임시키고 이사(李斯)를 재상으로 임명해서 동방6국에 공작을 진행시켰다. 서기전 231년 한을 시작으로 위(魏), 초(楚), 연(燕), 조(趙)를 멸망시키고 서기전 221년 최후로 제(齊)를 멸망시켜서 완전히 6국을 통일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나에서는 역사를 조작해 진왕(秦王) 스스로 고대 이상적인 군주(君主)로 되어 있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칭호를 빌려서 황제(皇帝)라는 시(諡)를 붙이는 것은 불경(不敬)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나 이는 근거 없는 허구이다. 
 
시황제라고 한 것은, 진왕의 죽임을 당한 것을 숨기기 위해 조작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진실을 말한다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진왕 37년(서기전 210년 7월) 진왕이 순행도중(巡行途中) 병을 얻어서 사구평태(砂丘平台;河北省廣宗縣西北)에서 갑자기 붕어(崩御)했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거짓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진왕은 가족을 죽인 원한을 늘 품고 있던 진왕 마차의 마부 창해(滄海)사람 여후영이 그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중 왕(王)이 민란을 피하는 도중에 박살(撲殺)내어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황제라고 하는 것도 재상 이사(李斯)와 진왕의 뒤를 이은 장자 부소(扶蘇)가 진왕의 사후(死後) 시호(諡號)로서 시황제라고 한데서 나온 것이다.
 
진왕(秦王)의 공적(功績)은 어떠한 것이 있나
 
진왕은 고대적인 신권정치(神權政治)와 도시국가적인 민주주의를 이론화한 유교의 정치철학과 연을 갖고 절대적인 군주국가를 주장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국가를 구상한 법가(法家) 정치철학의 입장에 서서 재상(宰相) 이사(李斯)로 하여금 이 정책을 구체화 시켰다. 
 
진왕이 지나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6국을 통일해서 영토를 지금 지나의 영토와 거의 같은 영토의 범위를 정한 것과 오랜 부족국가나 도시국가의 대립을 넘어서 소위 지나가 말하는 민족의식을 높여 그 위에 엄격한 법률에 의해서 능률이 좋은 전국적 행정조직을 만든 것이었다. 
 
진왕은 약 1만호를 가진 현(縣)을 수십 개 합쳐서 군(郡)을 36개 내지 40이상으로 두어 중앙으로부터 군수(郡守), 위(尉)등의 장관(長官)을 임명해서 정치, 군사, 감찰을 하게 했다. 즉, 중앙에는 재상(宰相), 대위(大尉), 어사(御使)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우두머리로 관리의 정치, 군정, 감찰의 관청이 있어서 왕의 명령에 의해서 정무를 통괄하게 했다. 
 
또 주왕조(周王朝)가 일족에 다수의 소도시국가를 나눠서 세습적으로 통치를 하게 해 그들의 분가(分家)를 주(周)의 본가(本家)가 가족제도적인 종교의례와 도덕율에 의해서 통치를 하게 했다.    
 
예(禮)를 근본으로 한 소위 봉건국가인데 대해서 이것은 법을 근본으로 한 율령국가(律令國家), 즉 군현제국가(郡縣制國家)로 불렀다. 이 개혁은 지나 역사상 최대의 정치혁명이었다. 이는 봉건제를 지지하는 유교학자로부터 사회의 도덕을 파괴하는 폭정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지금 중공의 사회진보를 가져온 민족의식을 지향한 영웅으로 높이 평가되게 되었다고 하는 다른 평가도 있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는 7개의 강국이 각기 다른 법률이 있어서 다른 문자, 다른 화폐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도량형의 단위도 달랐다.  
 
진왕은 6국을 통일하자마자 바로 법률, 문자, 화폐, 도량형을 획일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은 당연한 정책이기는 하나 단시일 내에 실행한 것은 적극적 정신에 넘치는 정력적인 정치가였던 진왕의 개인에 의한 지도력에 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국내 절대군주에 대항해서 그 권위를 엿보고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또 국내의 금속무기를 모아서 폐훼(廢毁)해 그 지금(地金)으로서 12개의 거대한 동상(銅像), 즉 금인(金人)을 주조(鑄造)했다. 그리고 구6국에 살고 있었던 재산가와 호족들을 수도 함양(咸陽)에 이주시켜 선진 동방6국의 부력(富力)을 갖춰 중앙경제를 충실히 한 것도 진왕의 공적으로 보고 있다. 
 
한편 춘추시대 때 양자강 중류의 초(楚)가 남방만족(南方蠻族)의 대표로서 중원(中原)에 진출했으나 춘추말(春秋末)에는 소주(蘇州)지방의 오국(吳國)이 일어나고 또 절강성(浙江省) 지방의 월(越)이 이를 대신해서 전국초기에 패자(覇者)가 되었다. 
 
월(越)이 패권(覇權)을 잃으면 월민족(越民族)은 동월(東越), 민월(閩越), 남월(南越)등으로 분열했다. 이 중 안남지방(安南地方)의 남월(南越)이 가장 세력이 강했고, 진제국(秦帝國)에 대해서도 독립성을 견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진왕은 오령(五嶺)을 넘어 남진해 주강(珠江)유역으로부터 안남지방(安南地方)까지 군현제(郡縣制)를 이곳까지 넓혔다. 이로써 서주(西周)초기 성기(盛期)에 비교해 1.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한족(漢族)의 거주영역을 확정한 것도 영구히 남는 위대한 업적이라 보고 있다.
 
끝을 맺으며-진제국(秦帝國) 진왕(秦王)은 한족(漢族)아닌 동이족이었다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알기 위해 지나의 역사도 같이 연구하게 되었는데 한중일(韓中日)의 역사서의 진실만을 찾고 연구를 해왔다. 지금까지도 사서들을 보면 거의가 조작되고 왜곡된 사서가 대부분이고 사실대로 기술한 것은 지나의 역사교사인 위안텅 페이(袁騰飛)가 말한 것과 같이 “지나 역사는 5%도 아니 된다”는 것이 확인된다. 
 
진을 건국한 진왕도 그 이전의 하남성 정주(鄭州) 일대에 있었던 하(夏)와, 하남성 안양(安陽)에 있었던 은(殷)과 섬서성 서안(西安)에 있었던 주(周)의 조상들 모두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의 조상들이며 이 일대의 자리를 잡았던 헌원(軒轅)도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유사 이래 고대 대륙에 등장하는 수천 년 동안 중원(中原)은 각 지역에 희랍의 도시국가들이 명멸(明滅)한 것과 같이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던 지역이 황하유역에 난립하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중원을 통일한 나라들도 진(秦), 한(漢), 수(隨), 당(唐)과 원(元)을 거쳐 명(明), 청(淸)시대를 합쳐도 1000년을 넘지 못했다. 나머지는 모두가 우리가 지배한 것이었다.
 
6국을 통일한 진도 동이의 나라이지, 한족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 조상이 서이족(西夷族)으로 지나의 사가(史家)들도 진(秦)은 한족이 아니라 동이(東夷)의 나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의 역사는 4000여 년이라 하나 실상은 1000년밖에 아니 된다. 
 
지나는 우리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나라들을 자기들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헌원(軒轅)의 후손들이 하남성 정주일대를 고조선으로 부터 봉함을 받은 것을 알 수 없으나 요순(堯舜), 하(夏), 은(殷), 주(周), 진(秦), 한(漢), 수(隨), 당(唐), 원(元), 명(明), 청(淸)의 왕계(王系)가 모두 동이족(東夷族)으로 거의가 유목민(遊牧民)의 자손인 것은 숨길 수 없다. 
 
사마천(司馬遷)의 사서(史書)도 지나의 나라라고 하면서도 이를 부인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의 나라 역사가 4000~5000년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우리역사는 반도가 아닌 대륙의 역사인 것이 입증된다.   
 
지나는 역사 열등한 것을 우리역사를 도둑질했다. 자기들의 삼황오제도 우리의 선조를 박물관마다 조각해 모시고 있다. 얼마나 역사가 취약했으면 우리선조들을 모시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바로 알고 우리 정체성을 바로 잡고 가야 함이 요구되고 있다. 
 
(以上은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정희철, [중국은 없다.] 126面~181面,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上, 102面~150面,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58面~88面. 三浦一郞,小倉芳彦,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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