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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74>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우리조상, 한족(漢族)아니다

상고사가 없는 지나(支那)의 궁색한 역사정립은 어불성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2 09:13:36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는 상고사(上古史)가 없으므로 우리나라의 역사인물을 가져다가 삼황오제(三皇五帝)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아니다. 그들의 말하는 삼황오제가 살던 시대에 지나에는 나라다운 나라가 없었고 원시생활을 하는 부족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삼황오제가 살던 시대는 우리나라 배달국시대로 지나에는 나라 자체가 없었다. 제대로 알면 이런 허구역사는 거론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치를 모르는 것은 문명인이라 할 수 없다. 
 
지나인(支那人)들은 예부터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그들 조상이라고 하며 헌원부터 요순(堯舜)시대를 거쳐 하(夏), 은(殷), 주(周)시대로 이어졌다고 굳게 믿고 있으나 이는 후에 사가(史家)의 붓끝에서 조작된 것일 뿐이다. 
 
지나인들이 확고히 믿고 있는 헌원은 배달국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과 73회의 싸움도 했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 헌원은 김유신(金庾信) 조상이기도 하다. 한족(漢族)아니다. 그는 화하족 우두머리가 되어서 치우와 싸웠을 뿐 한족이 아니다.
 
삼황오제는 3명의 황(皇)과 다섯 명의 제(帝)를 말하고 있으나 사서(史書)마다 각각 지칭하는 바가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나인들이 고대 지나의 기원을 헌원에서 찾으며 그 이전시대를 전설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본다. 
 
필자가 2016년 8월에 고조선지역을 답사하며 박물관마다 가보면 자오지 치우제천황(慈烏支;蚩尤帝), 헌원황제(軒轅黃帝), 신농염제(神農炎帝)를 삼황(三皇)으로 모시고,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삼황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말하고도 있다.
 
남송(南宋)때 호굉(胡宏)이 지은 [황왕대기(皇王大紀)]에 따르면, 오제(五帝)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을 지칭하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오제는 황제, 전욱(顓頊), 제요(帝堯), 제순(帝舜)을 말하기도 해 정립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나인들은 자기들의 시조(始祖)는 황제헌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황제헌원은 한족의 시조가 아니며, 다만 한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문명이 앞선 선진 배달국의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과 대결한 것뿐이었다. 
   
오늘은 지나인들이 말하는 삼황오제는 그들이 역사를 조작한 것이라는 점과 학설이 분분한, 삼황오제에 거명되는 선조들의 면모와 행적 사실을 정확히 살펴보고자 한다.  
 
삼황오제는 모두 한족(漢族)이 아닌 우리의 선조들이었다
 
먼저 자오지치우제천황(慈烏支蚩尤帝;서기전 2707~서기전2598)의 경우를 보면 그는 복희(伏羲)의 시대로부터 약 800년이나 지나서 역사무대에 등장한다. 치우시대는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의 제14대 환웅(桓雄)으로 동아시아를 호령하였던 황제였다.
 
그는 누구나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타민족의 석기시대에 우리는 철기시대를 구가하며 제일 먼저 인류사상 철의 문명을 이룩한 것을 입증하듯 제철소(=구야(九冶))를 건설하고, 철광석을 녹여 무기를 만들고 자신도 투구며 철로 무장함으로 천하가 두려워하였던 배달국 환웅이었다. 
 
그는 동철(銅鐵)투구를 쓰고 대륙의 동쪽 평야지대에 태평하게 사는데 반해 서쪽 산악지대에는 다른 부족들의 살고 있었고 당시 천하는 신시배달국 말고도 여러 부족들의 나라가 정립하고 있었다. 그 때 당시 부족국인 대요(大撓)와 창힐(倉頡)과 화하족을 이끄는 헌원이 있었다. 
 
헌원은 치우를 병력으로 이기고자 했으나 전쟁의 왕으로 불리는 치우천황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시 치우천황은 갈로산(葛盧山)에서 구리와 철(鐵)을 캐서 칼과 창과 투구, 갑옷 등 병기를 제작해 무장을 하고 제후국 구려(九黎)를 평정한 왕이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한지 1년 만에 9제후를 평정하고, 다시 병장기를 정비해 공상(空桑), 대요(大撓)와 창힐(倉頡), 헌원 등 12제후국(諸侯國)을 평정했다고 삼성기(三聖記),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비기(三韓秘記), 규원사화(閨怨史話), 태백일사(太白逸史) 등에 기록되어 있다.
 
지나의 사서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구려(九黎)는 곧 치우의 무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배달국의 제후국으로 순응했으나 치우 천황보다 늦게 일어난 화하족의 우두머리가 된 헌원은 73번이나 치우천황과 겨뤘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 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헌원이 제후를 이끌고 정벌하니 치우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싸워서 마침내 치우를 물리치고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하고, 그리하여 제후들이 헌원을 천자로 받들어 신농(神農)씨를 대신하니 이가 황제라 하나, 이는 허구다. 
 
사마천의 사기는 자기들의 시조라 하며 헌원을 치켜 세우며 말도 되지 않은 역사 조작했다. 그것은 ‘헌원이 염제 신농(神農)을 격파해 제후들에 의해 천자(天子)로 추대된 후,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하고 있는데 이 역시 허구다. 
 
왜냐하면 헌원과 신농은 같은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원과 신농의 시차가 사실상 500년이나 되니 이는 사마천의 역사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헌원이 치우를 죽였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  
 
사마천은 헌원이 치우를 죽였다고 금살치우(禽殺蚩尤)라고 하나, 이도 허구임이 다 드러나고 있다. 도시국가의 부족장인 헌원이 치우천황(蚩尤天黃)을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고, 치우는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공을 떨쳤다(蚩尤起靑邱萬古振武聲)라고 세계가 다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진실은 헌원이 하남성 일대에서 세력을 키우고 왕위에 올라 질서를 어지럽게 하자, 치우천재는 바로 탁록(涿鹿)의 들판으로 나아가 헌원을 무찌르고 10여년간 73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고 최종에는 헌원을 사로잡아 서안(西安) 북쪽 광릉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치우(蚩尤)는 구려(九黎) 천자로 그 영역도 광역이었다
 
치우천황(蚩尤天黃)은 배달국의 도읍이었던 신시(神市)를 서기전 27세기에 청구(靑丘)로 옮겼는데 이곳은 현재 산동성(山東省) 동평현(東平縣)으로 치우천황의 능도 동평에 있다. 
 
또한 이 당시 배달국의 영역도 유라시아의 80%가 배달의 영역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각 학자가 말하는 것을 보면,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祥) 교수는 그의 저서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상권 제5장에 이르기를 “한족(漢族)이 들어오기 이전에 지나의 중부와 남부는 본래부터 배달(倍達), 동이(東夷)의 겨레인 구려(九黎), 즉 묘족(苗族)이 살고 있었는데 한족(漢族)이 이주해 들어온 뒤부터 점차적으로 서로접촉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학자 도리이(鳥居龍藏)도 [묘족조사보고(苗族調査報告)]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나학자 왕동령(王桐齡)은 그의 저서 [중국통사(中國通史)] 4면에 “지금부터 4000년 전 현재의 하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 지역은 묘족(苗族)이 점령하였다. 이 종족의 국명은 구려(九黎)라 하며 그 군주의 이름은 치우(蚩尤)라고 했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서량지(徐亮之)교수도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이르기를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이전은 물론, 은주(殷周)시대까지도 동이(東夷) 즉, 배달민족의 활동분포를 알 수 있는데 현재 지나의 산동성, 하북성, 발해연안, 하남성의 동남부지역과 강소성의 서부와 북부지역, 안휘성의 중부와 북부지역, 호북성의 동부 및 요동반도와 조선반도 등을 포함한 실로 광대한 지역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활동의 중심지는 산동반도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모든 사료에 의하면 ‘치우천황은 배달국의 21제후국들이 서로 반목해 불복함으로 이들을 평정하니 그 지역이 산동성, 하북성, 발해연안, 하남성의 동남, 강소성 서북,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및 요동반도, 만주일대, 연해주, 내몽골, 조선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고 했다.
 
지나의 문헌인 상서(尙書)에서도 구려(九黎)는 치우(蚩尤)의 백성이라 했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치우는 구려(九黎)의 임금(天子)이라고 했다. 그리고 국내외의 역사문헌은 한결같이 배달국의 동부 아시아를 개척하고 통치한 강대국이었음을 똑같이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언급해온 바와 같이 임혜상 박사는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인 서기전13세기~서기전12세기에도 지나의 영토가 가장 좁았다고 했다. 당시 지나의 하남성낙양(洛陽)을 동경(東京)이라 했는데 이 동경도 동이의 겨레인 내이(內夷), 모이(牟夷), 개이(介夷), 거이(莒夷)가 차지하고 기도(杞都), 옹구(雍邱)및 변주(邊州;하남성 개봉)에 예속된 읍(邑)이 동이가 다스렸으며 노(魯)나라에 예속된 읍(邑)과 주국(邾國) 등도 동이(東夷)라 했다. 
 
따라서 지나라는 땅은 진(秦), 위(魏), 제(齊), 노(魯), 송(宋), 정(鄭) 등의 지역 전체를 합쳐도 몇 십주에 지나지 않아서 대륙 중원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하고 있다. 이를 바꿔서 말한다면 중원(中原)의 80%가 배달국이 다스렸던 영역이라는 것이다. 
 
지나(支那)의 문헌도 이를 말하고 있다
 
지나의 문헌에 나온 배달국 시대의 우리의 영역을 살펴보면 지나 25사(史)에는 배달동이(倍達東夷)의 구이(九夷)인 구려(九黎)가 현재 지나의 땅을 합친 아시아의 전 영역을 개척하고 살았으며 동양문화의 창조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2016년 8월초에 요하문명(遼河文明;홍산문화(紅山文化))도, 배달국 시대의 문명이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세계 5대의 문명이 우리 동이민족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기술하였기에 여기서 재론하지 않겠으나 세계가 우리민족에 의해서 문명이 나온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세계의 학자들도 우리나라 역사와 영역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유라시아를 지배했고 고대문명을 일으킨 선진민족임을 말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브라운 교수는 “인류의 역사는 99.9%가 구석기시대이고, 서양은 1만년 전이라 하나, 우리는 1만8000년 전이 신석기시대라고 했다.” 필자는 1만년 전의 구석기시대에 우리는 신석기시대라 했는데, 브라운교수는 이보다 8000년이 앞서서 말하고 있음에 놀랐다. 
 
러시아의 유. 엠. 부틴은 그의 저서 [고조선(古朝鮮)]에서 이르기를 “고조선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 60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만주와 한반도는 물론 지나 북부와 남부에 걸친 넓은 대륙에 분포하여 정착해 살아오면서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 문화를 이루면서 동아시아지역에 걸친 동방문화를 형성해 지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독특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수천여년동안 계승 발전시켜온 민족”이라고 소명자료를 일일이 열거 고증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나와 일본은 우리를 자기들보다 뒤진 나라라고 모든 사서에 쓰고 있으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의 너무나 앞선 문물에 대한 시기와 질시의 글들로 역사를 왜곡하나, 고고학적인 고증을 통해서 보면 우리역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고조선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을 더욱더 진흥시키고 축산, 직물, 도자기, 제철비금속과 야금술, 수송수단 선박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각기 분업화가 이루어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따를 수 없었던 국가 운영을 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배달국 시대부터 우리의 모든 문물이 수 천년이나 앞서 있었던 것이다.
 
지나의 사마천의 사서(史書)와 상서(尙書)등에서도 배달국의 치우는 천자라고 호칭하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지나와 일본이 제아무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도 배달국시대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의 역사를 지울 수 없다. 구려(九黎)의 천자인 치우가 아시아를 개척하고 광대한 영역을 통치한 강대국이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배달국의 제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天子)을 지나(支那)는 자기들의 선조라고 삼황으로 모시고 헌원과 신농까지 삼황으로 삼조당(三祖堂)에 모시고 있다. 그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모신다고 지나 조상이 되는가! 지나는 사가(史家)들의 붓 끝에서 우리역사를 폄하하며 동북공정까지 하며 역사를 조작하나, 역사는 사실에 근거한 것만이 역사이지 조작하고 거짓된 날조한 기록이 책자로 나왔다고 역사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21세기에 와서 과학적으로도 위조역사가 모두 규명되는 오늘날 역사왜곡은 결코 통할 수 없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정희철[중국은 없다.]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朴昌和 찬술, 金星謙 번역,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朴昌和 筆寫 金星謙 번역, [고구리 창세기].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中國の歷史].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小倉芳彦,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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