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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75>

삼황오제(三皇五帝), 우리의 조상이다(2)

삼황오제(三皇五帝)는 그 계보상으로 봐도 한족(漢族)아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9 14:14:42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는 황제 헌원(黃帝 軒轅)을 지나의 시조(始祖)로 기재하고, 또한 한족(漢族)의 혈통을 황제 헌원에서 비롯되어 전욱(顓頊), 고양(高陽)과 제곡(帝嚳) 고신(高辛)을 거쳐 당요(唐堯)로 이어졌다고 기록하면서 지나의 혈통이 구축되었다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날조한 조작으로 여러 기록들은 헌원에 앞서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한족이 아닌 동이족(東夷族)으로, 복희는 태우 환웅(서기전3512~서기전3419)의 아들로 주로 기원전 35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신농은 서기전 32세기 인물로 환웅천황(서기전 3897~3804)때 알려진 고시씨(高矢氏)의 방계(傍系) 중에 소전(少典)과 소호(小嗥)의 후예로 이들은 신라김씨(新羅金氏)로 이어졌다. 또 헌원은 헌구(軒丘)로 흘러든 소전의 별종인 공손씨 등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사마천은 헌원은 소전의 아들이고 헌원의 아들이 소호라고 하면서 요(堯)임금까지는 헌원으로부터 혈통(血統)을 끌어다 붙이고, 순(舜)임금은 효(孝)를 행하고 큰 덕을 이루어 요(堯)임금으로부터 선위(禪位)를 받은 것으로 연결하고 있다.
 
여기서 지나의 역사학자라는 자들은 사마천의 사기를 해석하면서 헌원으로 부터 요 임금으로 혈통이 이어지며 한족(漢族)들이 중원대륙(中原大陸)을 경략(經略)한 것과 같이 붓끝을 놀려댄다. 그러나 고시씨(高矢氏)와 혈연이 닿는다해 소전(少典)과 소호(小嗥)를 단일한 왕력(王歷)의 범위 안으로 포섭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마천의 ‘소전-헌원-소호’의 계보를 만드는 것은 사기에 불과하다. 사마천의 계보에 따르면 황제헌원과 염제(炎帝) 신농이 형제가 되는 모순이 생긴다. 또 황제 헌원과 요순(堯舜)사이의 연결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요(堯)나 순(舜)은 부용국(附庸國)의 제후(諸侯)일 뿐이다. 즉, 당시 배달국에서 요순에 이르기까지 한족(漢族)은 우리의 지배를 받으며 그 거주한 곳도 섬서성(陝西省)의 일부와 하남성(河南省) 일부에 불과한 좁은 지역의 영토에서 살았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지나(支那)에서는 헌원이 하(夏), 은(殷), 주(周)의 공통시조라는 주장까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날조가 정사(正史)가 되었다. 이것은 조작된 거짓의 위사(僞史)임에도 황제헌원을 단일시조로 받들어온 것을 80년대부터는 헌원과 신농을 포함시키고 90년대에 와서는 배달국의 제14대 자오지천황;蚩尤天帝)를 삼황으로 모시고 있다. 
이번 원고에서는 하북성 탁록현(涿鹿縣)에 소위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건립해 삼조(三祖)로 모시고 제사 드리고 있는 이 삼황(三皇)도, 오제(五帝)도, 모두가 우리의 선조이지 지나의 선조가 아니라는 점과 고대 지나의 역사를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신농염제(神農炎帝)는 어느 민족의 사람인가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알아야할 것은 지나 역사는 상고사(上古史)가 없고 배달국(倍達國), 고조선보다 뒤의 역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해가 잘 되리라 본다. 또한 삼국시대도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원을 우리가 지배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인류의 시원국(始源國)인 환국(桓國)과 배달국시대 지나에는 나라다운 나라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나는 배달국시대의 우리선조를 가져다가 자기들의 삼황오제라 하는데 어떤 이는 삼황(三皇)은 수인 복희씨, 신옹씨, 여와씨(女猧氏)이고 오제(五帝)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이라 하는 자도 있는데 이는 날조이고 조작된 역사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런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삼황 중의 한 분인 신농도 지나 사람이라 주장하나 전혀 아니다. 그 역시 우리 선조이다. 그의 출신성분을 고기(古記)의 기록을 보면, 신농은 배달국 제8대 안부련환웅(서기전 3240~서기전3167)의 신하인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원래 웅씨(熊氏)의 분파로 환웅의 명을 받아 강수(姜水)에서 병력을 감독하는 일을 한 인물이다.
 
소전은 고시씨(高矢氏)의 방계(傍系) 중에는 소전과 소호가 있었는데 소전의 아들이 신농인 것이다. 고시씨는 신지(神誌), 혁덕(赫德)과 더불어 서기전 36세기에 활동한 인물로 배달조선 1대 거발한(居發桓) 환웅천황의 신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풀을 맛보고 약을 만들고 성장해서는 열산(列山)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우고, 기산(淇山)의 양지에 백가지 곡식과 백가지 채소를 심고, 오곡을 심어 9주(州)의 백성들이 곡식을 알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곡식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당시 백성들은 정착해 생업에 종사하면서 점차 마을을 이루었고 밤낮의 길이가 같은 때에는 장을 열어 교역을 하니 사람들이 엄청 편리하였다고 했다. 또한 곡식, 의복, 약재, 석공의 기술 역시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태백일사 제4 삼한관경본기 참조)
 
신농은 전형적인 조선인이지, 지나의 사람이 아님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지나는 치후천제(蚩尤天帝)와, 헌원과 신농까지 삼황으로 모시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만행(蠻行)을 자행하고 있는데 경악함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는 그 얼마나 역사가 빈약했으면 이러한 날조와 조작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우리의 고대 자료가 그리 많지가 않으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 사기는 제멋대로 붓을 옮긴 것이 너무 많고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들을 쓰고 있는데 그 오류와 허구가 많다.  
 
사마천은 상고시대는 물론 고대에 역사라 할 기록물이 없으니 우리역사를 지나의 역사인양 쓰고 있다. 그가 쓴 사기를 살펴보면, 고대 지나의 패권(覇權)이 황제헌원-전욱(顓頊)-고양(高陽)-제곡(帝嚳)-고신(高辛)-당요(唐堯)로 이어진 것처럼 기록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나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설령 황제헌원의 혈통이 면면히 이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영토는 오늘날 하남성(河南省) 남양시(南陽市) 당하현(唐河縣) 일대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유주(幽州)에 이르는 작은 나라에 불과 했다.  
 
실재가 확인된 지나(支那) 고대왕조는 은(殷)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의 사서(史書)에 관해 서적들을 읽다보면 지나의 역사는 너무 소설같은 내용이 많다. 지나인들은 제대로 된 역사가 없음에도 요순시대(堯舜時代)가 하(夏), 은(殷), 주(周)순으로 이어졌다고 사마천이 사서에 쓴 대로 주장한다.  
 
그러나 한민족의 시조는 단일(單一)이 아니라 멀리 서북방면의 사막과 산악지대로부터 살기 좋은 황하(黃河)를 따라서 동진(東進)해서 많은 유목민이 비옥한 황하유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민족이 융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재가 확인되는 지나의 최초의 왕조는 은(殷)으로서 서기전1600~서기전1100년까지 황하중류에서 번영했다고 주장하는 중·일(中日)의 학자들도 있으나 황하유역은 당시 동이민족들이 번영한 지역이다. 그리고 은(殷) 역시 동이족이다. 
 
그런데 2004년 7월에 은보다 전의 왕조인 하(夏)의 궁전적(宮殿跡)이 발굴되었다고 지나의 사회과학원이 발표했으나 한민족이나 부족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불명(不明)하다. 세계의 학자들이 말하는 학설은 여러 개가 있어 흥미가 있으나 결정적인 것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영, 독, 불, 학자 간에도 일치된 것이 없는 상태이다. 
 
역사시대에 들어선 은시대(殷時代)가 되면 갑골문자 문자에 의해서 은족(殷族) 이외에 50정도의 씨족집단과 50을 넘는 만족(蠻族)의 이름이 들 수는 있다. 이 족속들은 후에 나라를 만들어 국가가 된다.
 
그런데 은의 세력권 확대방향을 보면, 그 후에 계속되는 진출방향이 낙읍(洛邑;洛陽)이나 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현재의 서안(西安))으로 부터 동방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민족이라는 민족집단은 서방으로부터 사막지대를 넘어서 살기 좋은 황하(黃河)나 위수(渭水)에 와서 정착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은족이 황하중류로부터 하유역(下流域)에 걸쳐서 씨족연합체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 지나 각지에도 각기 선주민(先住民)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지나인의 조형(祖型)은 몽골인이 주류로서 퉁구스계, 몽골계, 티베트계, 터이키계, 이란계 등의 유목, 수렵민족이 융합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이미 기술한바 있으나 한민족의 형성에 유목민족이 북방과 서방으로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사실로 보고 있다. 그것은 가자(茄子), 호고(胡瓜;오이가 인도(印度)원산)과 수박(西瓜;아프리카원산)이 빠르게 지나에 생산이 되고 있음이 입증됨에서다.
 
이것은 고고학적 인류학적인 자료는 적으나 서방 이란 페르시아로부터의 민족도 페르시아 원산의 포도와 석류 등의 식물과 함께 이입(移入)되고 있는데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유목민족의 활동무대가 광범위하게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하(夏)도 단군조선의 제후(諸侯)였을 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믿을 수 없는 사서(史書)인 것은 헌원의 역사에서와 삼황오제의 역사부터 모두 조작된 역사라는 데서부터 확인되는 것인데, 오늘날 지나 대륙 전체에 미치는 패권이 황제헌원을 필두로 요순(堯舜)을 거쳐 하(夏)로 이어졌다는 것을 비롯해서 진(秦), 한(漢)역사가 허구로 과장된 소설임을 알 수 있다. 
 
하(夏)는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의 하나로 하남성 정주(鄭州)일대에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정의(正義)에 따르면 제왕기(帝王紀)에 이르기를 우가 봉함을 받아 하(夏)의 제후(諸侯)백(伯)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하(夏)는 제(帝)가 우(禹)에게 봉한 나라의 이름이라고 했다. 
 
또한 부도지에 따르면 요(堯)의 무리였던 우(禹)는 순(舜)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어 유상에게 쫒겨서 달아나던 순(舜)을 죽이고는 유호씨에게 귀순했다고 한다. 하(夏)는 우두머리의 직위가 ‘제(帝)’나 왕(王)이 아닌 ‘백(伯)’이란 점에서 하(夏)의 시조 우(禹)는 삼황오제의 계보를 이은 것이 아니라 단군으로부터 보해진 제후(諸侯)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우(禹)가 황제 헌원의 현손(玄孫)이라고 하더라도 하는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에 불과하니 위대한 지나의 역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있지도 않은 허구의 역사를 있는 것으로 조작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夏)는 어떻게 멸망한 것인가?
 
[부도지]에 따르면 그 후, 우(禹)는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병기를 만들고 수리해 유호유(有戶)씨에게 대항하며 스스로 하왕(夏王)이라고 칭하니 유호씨가 하(夏)를 토벌하고 우(禹)를 죽였는데 그럼에도 하(夏)의 무리들이 완전히 토벌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단군조선13세 흘달단군(屹達檀君) 16년 겨울, 은(殷)이 하(夏)를 정벌하였는데 이 때 그 임금 하(夏)의 걸(桀)이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제(帝)가 읍차(邑借), 말량(末良)으로 하여금 구환(九桓)의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원조케 하니 은(殷)나라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함으로 말량(末良)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다. 
 
그런데 하(夏)나라 걸주(桀主)는 조약을 위배하고 병력을 보내 길을 차단하고 맹약을 깨트리자 이에 은(殷)과 함께 하주(夏主)의 걸(桀)을 정벌하기로 해 은밀히 신지(臣智)인, 우량(于亮)을 보내어 견군(畎軍)을 이끌고 가서 낙랑(樂浪)과 합세해 관중(關中)의 빈(邠), 기(歧)지방을 점령하고 그 곳에 살며 관제를 설치했다. 이 때가 갑오16년 서기전 1767년의 일이라고 한다. 
 
이 흘달단군(屹達檀君)은 이 은(殷)과 함께 고조선의 제후였던 하(夏)를 정벌하고 나아가 관중(關中)일대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이 흘달단군(屹達檀君)은 바로 조서(詔書)를 내려, 주(州)와 현(縣)을 나누어 정하고 직책의 제도를 수립해 관리는 월권(越權)을 하지 못하게 하고 정치는 법도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자, 백성은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글을 맺으며 
 
삼황오제가 우리조상인데 자학반도식민사관 학노(學奴)들은 아직도 지나와 일본이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가 진실인양 연구를 뒷전으로 우리역사를 파괴하는 일에 영혼을 팔고 있다. 이에 하루속히 거짓역사를 버리고 진실을 교훈으로 미래를 구하는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
 
지나의 역사서는 거의가 소설과 같은 것으로 사마천의 사서에도 현혹함이 없어야 한다. 또한 일본의 역사도 조작과 날조된 역사임은 일본 학자들이 더 우리보다 잘 알고 있다. 
 
전후 일본에서는 1403년 명(明)이 역사를 왜곡하게 ‘왜(倭)가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라(加羅);任那), 모한(慕韓), 진한(辰韓)을 다스렸다고 왜곡(歪曲)해서 왜인전(倭人傳)에 집어넣고 이를 왜국에 전해주며 일본의 국호를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써도 좋다고 했다.
 
이것은 위만의 예조선과 기준(箕準)의 삼한 위치를 찾지 못해서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러한 역사를 알고 있어서 지금까지 금서(禁書)로 되어 있는 신황기(神皇紀)등이 출판됨으로 일본역사가 잘못임을 깨닫고 지금은 우리역사를 바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그 내용들을 보면, ‘일본이 우리역사를 한반도역사로 한 것이 잘못이고, 신라도 둘이 있음과 대륙의 신라는 신라방(新羅坊)이라고 조작한 것도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며, 우리역사가 유구하며 같은 조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더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니 한심하다.’ 
 
이 사서들이 전후 잘 알려진 고사서(古史書)로는 수진전(秀眞傳), 궁하문서(宮下文書;神皇紀), 죽내문서(竹內文書), 구카미(鬼文書)등과 여기에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한국고대사의 접점을 찾는 중요자료가 덧붙여져 있다. 그런데 자학반도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은 환단고기(桓檀古記)도 위서(僞書)라고 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다. 
 
위 서적 중 궁하문서(宮下文書;神皇紀)는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도 100년이나 먼저 쓰여 졌고, ‘일본천황가의 7000년 역사’를 [신황기(神皇紀)]로 1921년에 이어 1980년 복간이 되어 지나 ‘위지(魏志) 왜인전’보다도 50년 일찍 쓰여진 것이다.  
 
이 [신황기(神皇紀)]에는 한국인이 일본열도에 이주하기 이전의 통치자들(神皇)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신왕(神皇)이 일본 땅에 온후 역사는 신왕과 황후며 친족의 이름까지 기록하고 있으며 그 때 다스린 내용과 지명 일람도(一覽圖), 지도까지 첨부한 책이다. 
 
1890년 1200년간 후지산록 대나무밭 서고에서 발견된 [신황기(神皇紀)]는 미와요시히로(三輪義熙)에 의해 공개되어 일본학계에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서로 사학을 가장(假裝)하고 있는 학노(學奴)들에게는 극도로 자극한 것이 되고 있다고 당시 신문에 소개되고 국내에도 몇 권이 있다. 우리학계도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서 바른 역사를 세워지기를 기대되는 상황이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정희철[중국은 없다.]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朴昌和 찬술, 金星謙 번역,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朴昌和 筆寫 金星謙 번역, [고구리 창세기].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中國の歷史].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小倉芳彦,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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