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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역사왜곡을 위해 북경서부로 옮겨진 대군(代郡)

조선·고구리 역사 지우기 위해 대군 지명 산서성 북부까지 옮긴 중국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13 17:16:54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한서지리지>에서 유주(幽州)의 대군(代郡)에 속하는 참합(參合)현은 한나라 개국공신이었던 한왕 신이 참수를 당한 곳이다. 동시에 395년 북위(北魏)가 후연(後燕)을 대파하고 북조(北朝)의 주도권을 쥐었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지금의 산서북부 대동(大同)시 양고(陽高)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북위 시조 탁발규(拓跋珪)를 포함한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대왕(代王)을 지냈다. 대 땅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모친의 부족 하란부에 도착한 탁발규에게 옛 부족의 수령들이 투항해와 386년 초에 대왕으로 추대돼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남북조시대의 최강자 북위였다.
 
탁발규의 북위가 강성해진 데는 처음엔 후연 모용수(慕容垂)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관계는 뒤틀어졌다. 모용수가 사신으로 온 탁발규의 동생을 인질로 잡고 전쟁에 쓸 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고 탁발규가 이를 거절하니 모용수가 동생을 죽여 버렸다. 이후 북위와 후연 사이는 적대관계로 급변했다.
 
북위군과 대치하던 후연군은 탁발규가 퍼트린 ‘모용수가 죽었다’는 헛소문에 속아 서둘러 회군하던 중 참합피에서 기습을 당해 수만 명이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모용수가 이듬해 북위를 치러 가는 길에 참합피를 지나게 됐는데 후연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 충격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가 병이 들어 얼마 후 죽고 만다. 이로부터 후연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았다.
 
▲ 사분오열됐던 5호16국을 정리한 북위. [그래픽=필자 제공]
 
전연을 세운 모용황의 3자 모용수는 후연을 세워 업(鄴)을 도성으로 했다가 386년 중산(中山)으로 옮겨갔다. 업은 하남성 동단 안양시와 접하는 하북성 남단 한단(邯鄲)시 임장(臨漳)현 서쪽이다. 중국은 조위(曹魏), 후조(後趙), 염위(冉魏), 전연(前燕), 동위(东魏), 북제(北齐) 등의 도성이 있었다고 한다. 업성과 바로 동남쪽 위현(魏縣) 일대가 대대로 위(魏) 땅이었다.
 
<한서지리지>의 중산국의 속현 당(唐)현과 망도(望都)현에 대한 아래 설명에서 요임금과 그 어미의 무덤이 있는 망도현은 하남성과 산동성의 경계였던 발해 서쪽인 지금의 하택(荷澤)시 견성(鄄城)현이다. 그 서부가 바로 중산국의 땅이었으니 업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렇듯 후연과 북위의 도읍이 북경 부근이었다는 중국의 주장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 하북성 남단 한단시 임장현에 있는 업성 유적지에 세워진 조조상. [사진=필자 제공]
 
中山國(중산국) 高帝郡,景帝三年為國。莽曰常山。屬兾州(기주)。戶十六萬八百七十三,口六十六萬八千八十。縣十四 : (생략) 唐(당현),堯山在南。莽曰和親。應劭曰:「故堯國也。唐水在西。」 張晏曰:「堯為唐侯,國於此。堯山在唐東北望都界。」 (생략) 望都(망도현),博水東至高陽入河。莽曰順調。張晏曰:「堯山在北,堯母慶都山在南,登堯山見都山,故以為名。」
 
결론적으로 대군이 속하는 동안양(東安陽)현은 하남성 안양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상곡군과 어양군의 고수(沽水), 발해군에 언급된 문안(文安)과 평서(平舒), 병주(幷州) 등의 위치로 미루어보아 안양과 동접하는 업성 부근에 있어야하는 참합이 산서성 북부 대동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 망도현(하택시 견성현)에 있는 요임금 무덤. 임분 요능은 가짜이다. [사진=필자 제공]
 
그렇다면 탁발규가 북위의 황제위에 오르면서 도읍했던 평성(平城)은 과연 어디였을까. 평성의 백등산은 한고조의 부인 여치(呂雉)가 흉노의 묵돌선우의 포위를 풀기 위해 치마끈을 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서지리지>에서 평성은 병주의 안문군(鴈門郡)의 속현으로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치소였다.
 
중국에서는 산서성 북부 대동(大同)시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태원군 등이 속하는 병주는 산서성 남부에 있어야하는 행정구역이지 산서북부에 있을 수 없는 지명이다. 이유는 병주의 안문군과 함께 붙어 다니는 유주에 속하는 대군이 북부하남성과 하북성 남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성의 대략적인 위치는 아래 <한서지리지>에서 찾을 수 있다. 낙양과 형양현과 함께 하남군에 속하는 22개 현 중에 평음(平陰)현이 있는데 응소가 “옛 평음은 평성 남쪽에 있다”라는 주석을 붙였다.
 
河南郡(하남군),故秦三川郡,高帝更名。雒陽戶五萬二千八百三十九。莽曰保忠信郷,屬司隷也。戶二十七萬六千四百四十四,口一百七十四萬二百七十九。縣二十二:雒陽(락양),滎陽(형양), (생략) 平陰(평음) 應劭曰:「在平城 南,故曰平陰。」 (이하 생략)
 
평음의 정확한 위치는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하남성 맹진현 동쪽으로 춘추시대에는 제(齊)읍이었으며, 삼국시대 위가 하음(河陰)으로 바꿔 불렀다고 설명되어 있다.
 
(원문) 春秋时平阴邑,《左传昭公二十三年》“二师围郊,晋师在平阴,王师在泽邑。” 汉置平阴县,应劭曰:“在平城南,故曰平阴。” 晋废,故城今河南孟津县东,三国魏改曰河阴。春秋时齐邑,隋置榆山县,改曰平了,清属山东泰安府,今属山东济南道。
 
▲병주와 대군 등을 산서성 북부까지 지명을 이동시킨 중국. [사진=중국 지리지, 필자 제공]
 
<대청광여도>에는 정주(鄭州)시 서쪽 형양(滎陽)시의 북쪽에 하음(河陰)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 북쪽에 평성이 있었다고 하니 황하 건너 맹주(孟州) 또는 온현(溫縣)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선비족의 고향인 요택 주변이었다.
 
중국은 산서성을 중심으로 했던 조선과 고구리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병주와 대군 등을 산서성 북부까지 지명을 이동시켰다. 명나라와 민국에서 본격적으로 진행시켰던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의 실체가 이제야 밝혀져 그 진상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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