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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우리는 모든 순간 두 개의 현실을 산다

‘내 안의 현실’과 ‘내 밖의 현실’이 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13 11:10:26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제목을 보면서 당신은 생각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두 개일 수 있을까. 이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당연하다. 당신은 지금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있거나, 코로 국화꽃 향기를 맡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유명 맛집 파스타를 포크에 감아 입안에 넣으면서 그 시큼한 듯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느낌에 몰입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행위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틀림없다. 지금 내가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일이잖은가. 그런데 이 순간이 두 개라니?
 
하지만, 당신은 이 순간에도 두 가지 상황을 겪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나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것은 단 일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벌어지는 각기 다른 현상이다.
 
당신은 ‘나라고 하는 한 존재’임에도 해수면 위쪽과 아래쪽처럼 판이하게 다른 두 종류의 현실을 만나곤 한다. 이른바 ‘내 마음이라는 현실’ 즉 ‘내 안의 현실’이 한쪽이고 다른 한 쪽은 ‘나의 외부적 현실’ 즉 ‘내 밖의 현실’이다. ‘내 밖의 현실’은 주로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언행이다.
 
사장실에 다녀온 이 부장이 잡쳤다는 표정 반, 결기에 찬 표정 반을 섞어서 말했다. “이거 오늘 밤새서라도 내일 아침까지 마칩시다. 한 달치 야근 다 쓴 사람은 다음 달치 당겨서라도 마무리하자구!” 당신은 마침 이마가 딩딩거려서 벌써 몇 차례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퇴근하면 회사 앞 사우나탕에서 몸부터 담그고 볼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날밤?
 
이때 당신에게는 틀림없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한쪽은 마음이라는 ‘내 안의 현실’이다. 분노인지 실망인지 모를 감정이 솟구친다. 하지만 ‘내 밖의 현실’은 ‘내 안의 현실’ 쯤은 가볍게 묵살한다. “아, 네. 언제든 마쳐야 할 일인데, 그렇게 해야죠.” 그렇게 대답하는 자신을 향해 속엣말 한마디 보탰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마칠 일 좋아하네! 너 꼭 그렇게 살아야겠냐?’
 
가만히 두면, 이 불균형이 저절로 바뀔까
 
오늘 하루만 놓고 봐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서는데 소비자 문의 전화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점심 후 보던 책 잠시 보려는데 후배 직원이 살살거리면서 말을 걸어온다. 기안 작성하려고 복잡한 자료들 뒤적이는데 부장이 ‘잠시 회의 좀 하자’고 불러모은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모니터에 주가동향 그래프 좀 열었는데, 부서 순시라고는 일 년에 고작 두어 차례 들르던 사장님이 떡 하니 의자 뒤에 서 있지를 않나.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돌아간다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나이다. 그런데도 예상치못한 돌발 사태 앞에서는, 늘상 새로운 벌레를 씹는 기분이 든다. 잘 돌아보면 이런 날이 한두 번이었던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돼왔다. 학교에서 돌아와 텔레비전 좀 볼라치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숙제하고 봐’라면서 뉴스 채널로 돌린다. 결혼해서는 회사 핑계대고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려는데 아내가 친구들 부부 모임 날짜 잡혔다고 통보해온다.
 
이 두 가지 현실은 항상 결렬되고 어긋나는 것만은 아니다. 내 안의 현실과 내 밖의 현실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거실 소파에 멍하니 누워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이럴 때 누가 홑이불이라도 덮어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데 딸이 홑이불 한 장을 말없이 덮어준다. 유난히 운동 한 게임 하고 싶은 날인데 워낙 부킹이 안 잡히는 시절이어서 언강생심 내 팔자에, 하면서 마음 비우려는 순간 친구 전화가 온다. “어이, 이번 주 일요일 어때?”
 
두 개의 현실이 일치하는 느낌, 기억하는가. 우리는 이럴 때 몸의 이완을 느끼고, 행복감을 경험한다. 그야말로 내외가 통합된 순간이다.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환경,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조건, 인정받고 싶을 때 인정받는 일… 당신은 이렇게 내 마음과 외부 조건이 일치하는 세상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이 왜 그렇게도 아득한가.
 
아득하다. 내 마음대로 먹고, 자고, 놀았던 기억이 아득하다보니, 세월이 가면서 그 ‘마음’을 잊고 말았다. 어차피 내 인생에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고 나도 모르게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변덕스럽고 무성했던 내 꿈, 소망, 야망, 희망 따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점에서, 인류를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한 자’라고 논파한 헤겔의 한 마디는 정곡을 찌른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삶의 뿌리를 잊은 채 ‘돈, 명예, 사랑’에 끌려 다녔을지도 모른다. 바다 밖에서 바다 속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마음의 힘을 회복해줄 방법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오면서 ‘돈, 명예, 사랑’을 좇아 정신없이 내달렸음을 흔쾌히 인정한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일상 속에서 가끔 자신에게 되묻기! 이게 무슨 마음이지? 손을 뻗으면서, 물어보라. 무슨 마음으로 손을 뻗지? 반드시 당신의 마음은 답할 것이다. ‘수저 잡으려고’ 혹은 ‘팔이 뻐근해서’ 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 질문 하나로 당신은 자신의 마음 안쪽으로 쓱, 들어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지금 무슨 마음이지?’이라고 묻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의 영토를 한뼘씩 되찾아가는 일이다. 물론, 그런 심리적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온 마음의 관성이 쉽게 그런 질문을 용인하지 않는다. 애써 의도적으로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무슨 마음이지?’ 너무 단순해서 ‘이게 효과 있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단순한 질문이 당신에게 삶의 휴식 공간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마음의 예쁜 공원 같은 것 말이다. 지금 해보시라.
 
 
본의 아니게 나의 주체성, 정체성, 존재감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마음’ 혹은 ‘의도’ 따위를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느 쪽에 치우쳐 살아 왔는가. 내 마음을 챙기면서 살아온 정도가 30퍼센트 정도는 될까? 그렇다면 ‘돈, 명예, 사랑’을 향해서는, 70 퍼센트? 만약 그런 수치가 나온다면, 이것은 삶의 심리적 기울기가 7 : 3 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삶은 평안했을까. 가만히 두면, 이 불균형이 저절로 바뀔까.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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