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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79>

후한(後漢)멸망 후 지나 역사의 허구 밝힌다(下)

후한(後漢)주민의 고구려 귀순과 황건적의 발흥(勃興)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26 11:53:49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서기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서 중원을 초토화시킴으로 정부는 황보숭(皇甫嵩)과 주준(朱儁)등의 장수를 보내서 반도를 토벌해 진압했으나 난 진압의 군웅들이 이 때 나온다.
 
이 때 황건적이 나오게 된 것은 당시 후한 제4대 화제(和帝)이후 유제(幼帝)의 즉위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자 모후(母后) 임조(臨朝)간은 외척의 전횡(專橫)이 심해서 장성한 황제가 권력을 잡으려 하면, 환관(宦官)의 힘을 빌려서 외척(外戚)을 넘어트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기서 실제에는 뺏고 뺏기는 것이 되자 유학(儒學)의 영향을 받은 관료(官僚)중에는 이러한 풍조에 저항하는 세력도 나타났다. 이들을 세간에서는 ‘당인(黨人)’이라 불리는데 이들 관료는 바로 탄압되어버렸다. 소위 ‘당고(黨錮)의 금(禁)’이었다. 
 
이 때 기주거록(冀州鉅鹿)의 장각(張角)이 세상에 호소하자 10년 내에 수십만 신도(信徒)를 얻은 것이 태평도(太平道)이다. 여기서 장각은 대현양사(大賢良師)로 칭(稱)하고 의술도 행하며 사람이 범한 죄에 대해서 신이내린 벌이 병이라 생각해 병인의 죄를 회개시킨 후 부적과 영수(靈水)를 줘서 치병을 했다고 했다. 많이 보아지는 종교 이단들의 하는 행태였다. 
 
또한 장각은 8인의 제자(弟子)를 지방에 파견해 포교(布敎)에 힘쓰니 광범한 지지를 얻어 36방(方)이라는 군단(軍團)조직을 겸한 교단(敎團)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방(方)이란? 장군의 호에 상당해 대방(大方)은 1만여 명, 소방(小方)은 6700인을 통솔했다고 한다. 이들이 봉기(蜂起)한 해가 좌원의 패전한 서기184년이었고 이들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되자 한(漢)의 백성들이 고구려로 피난해 귀순한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가 허창(許昌)이나 낙양(洛陽)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이기도 하나, 안전한 곳이 고구려이었기 때문에 고구려로 귀순했던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국천왕(故國川王)때 왕성(王城)은 위나암성(尉那巖城)으로 국내성이었다. 이 성은 한서지리지는 낙랑군 25성중 하나로 기록했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首都)는 산서성(山西省) 남부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 원소(袁紹)와 조조(曹操)가 난리를 피워 수많은 유민(流民)이 발생하자 이들이 고구려로 귀순할 수 있었던 것이다.  
 
(以上은 정희철’[중국은 없다.]148面~152面. 貝塚茂樹, [中國の歷史1]151面~188面.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106面~124面.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 55面을 參照, 本文 引用하다.)
 
장각(張角)의 몰락과 ‘태평도’는 도교(道敎) 교단형성원류가 된다
 
장각의 태평도(太平道)의 집단이 일제히 봉기하고 거사 일을 서기184년 3월5일 형주(荊州), 양주(揚州)의 신도(信徒)를 모우고 수만 명을 이끄는 대방(大方)인, 마원의(馬元義)가 기주(冀州)남단의 업(鄴)이라하는 곳에서 은밀히 결정하고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각의 제자였던 당주(唐周)의 밀고(密告)에 의해서 낙양(洛陽)에 잠복하고 있었던 마원의(馬元義)를 체포해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刑)에 처하고 또 1000여명의 동료가 주살되고 말았기 때문에 장각은 지체하지 않고 제방(諸方)에 지령을 내려 자신이 업(鄴)에서 기병(起兵)해 7주 28군의 신도가 일제히 호응하니 전국적인 반란으로 발전해 간 것이다. 
 
한편정부는 외척의 하진(何進)을 대장군으로 임명해 황보숭(皇甫嵩)을 좌중장 우중장에 주준(朱儁)과 함께 4만 명이 나가 토벌에 임해 승전하나 중랑장 동탁(董卓)은 이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장각이 10월 병몰(病沒)한다. 그러자 그 아우 장양(張梁)이 지휘를 했으나 장양 역시 죽으니 말제(末弟) 장보(張寶)가 지휘했으나 황보숭(皇甫嵩)의 군에게 격파되어 전멸한다. 
 
그러나 장각의 형제들의 사후에도 농민의 반란군은 각지에서 한조군(漢朝軍)과 대치했다. 그런데 이시기에 태평도(太平道)와 똑 같은 오두미도(五斗米道)라 하는 신앙집단(信仰集團)도 반란을 일으켜 한중(漢中)지역에서 서기 215년까지 독립정권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조조군(曹操軍)에게 항복해 조조배하(曹操配下)의 군대가 되어 태평도(太平道),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종교 활동은 계속되어 이 활동은 지나 사회에 뿌리깊은 도교(道敎)의 저류(底流)가 되었다. 그래서 도교 교단형성의 원류(源流)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위와 같이 후한의 멸망은 고구려를 침범했다가 두 번이나 좌원대전(坐原大戰)에서 패배와 장각이 일으킨 황건적의 난에 후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以上은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纊一, [世界を變えた戰爭, 革命, 反亂] 56面을 參照하고 本文 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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