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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30만 비려군을 몸소 무찔렀던 광개토태왕

비려 700영 깨뜨렸던 호태왕…6개월 후 백제에도 대승 거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1-24 12:07:16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호태왕(광개토대왕) 비문의 1면 7행부터 새겨져 있는 공적내용은 영락 5년부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사학계에서 정사(正史)로 인정한 <삼국사기>에는 관련 기록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라 비문에 새겨진 공적 중 17년 숙군성 공격 이외 대부분이 언급되지 않았다.
 
“(비문)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麗不息征旅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 攻破其三部族六七百營 牛馬羣羊不可稱數 於是旋駕因過襄平道 東來候城力城北豊五遊觀土境田獵而還”
 
(번역) “영락 5년 을미년(395) 비려가 끊임없이 침공하므로 왕이 몸소 군사를 인솔해가서 토벌했다.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러 그 3개 부족 600~700 군영을 깨뜨리니 (노획한) 소·말·양떼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어가로 개선해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오면서 후성, 역성, 북풍, 오유에서 경계를 살펴보고 사냥한 후 돌아왔다.”
 
공적비의 첫 문구에서 영락 5년이 을미년(395)이라 했으므로 호태왕 즉위 원년은 신묘년(391)임을 알 수 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비문과 같은 년도로 기록돼 있지만 <삼국사기>에는 광개토왕 원년이 임진년(392)이고 마지막 해가 22년 기축년(413)으로 기록돼 있다.
 
이어 정벌원인이 새겨져 있다. 비려(碑麗)가 <고구리사초략>에는 비리(卑離)로 기록돼 있으며 왕의 가르침을 점점 어겼기에(漸違王化) 정벌했다고 설명돼 있다. 또 많은 학자들이 비려를 패려(稗麗)로 不息(불식)을 不貢(불공)으로 읽어 패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아 친정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비리국(卑離國)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 강역의 환국(桓國)을 구성하는 12개국 중 하나라고 <삼성기전 하>에 기록돼 있다.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삼한(三韓) 중 마한을 구성하는 50여개 나라에 속했던 소국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비문의 문구로 보아 패려는 유목민족이며 <위서 거란전>이나 <요사(遼史)>에 “거란의 고팔부(古八部) 혹은 기수팔부(奇首八部)가 고구려와 인접해 살다가 서쪽으로 밀려 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 중 하나인 필혈부(匹絜部)를 패려로 비정했다. 즉 거란의 일파로 본 것이다.
 
▲ 그림 속에 남겨진 거란인들의 두발 모습. [사진=필자 제공]
 
위치는 심양(瀋陽) 동남쪽, 서요하(西遼河) 중상류, 요하 서쪽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패려를 <진서 동이전>에 숙신(肅愼) 서북쪽 300리 거리에 있었다는 패리국(稗離國)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그 위치를 치치하르 부근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고 설명하는데 여전히 반도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攻破其三部族六七百營’의 部族을 부락(部落)으로 축소·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로 보인다. 겨우 3개 부락을 정벌하기 위해 호태왕이 직접 친정을 했다는 것인 바 이는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3개 부락보다 전과가 훨씬 큰 관미성전투와 거란정벌전쟁도 공적비에 새겨지지 못할 정도 아니었는가.
 
고대 전투부대의 기본단위는 병력 500명의 영(營)으로 지금의 군편제상 대대급이다. 따라서 600~700영이란 30만 이상의 적을 깨는 대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획한 가축이 셀 수 없다(不可稱數)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고구리사초략>에는 “그 부락 7백여 곳을 깼다(破其部落七百余所)”고 애매하게 표현돼 있다.
 
참고로 고대에는 현재 미군의 사각편제와는 달리 5 또는 10진법을 사용했다. 영의 상급부대는 5개 영의 2500명을 1개 군(軍)이라 했다. 10개 군의 2만5000명을 상(廂)이라 했다. 영의 하급단위로는 100명을 도(都)라고 했다. 그 아래는 십장(什長)이라 해 10명을 통솔했다고 한다.
 
<고구리사초략>에 따르면 영락 5년(을미)에 호태왕이 친정한 비려 토벌은 2월에 있었다. 8월에 백제가 쳐들어오자 호태왕이 직접 패수에서 백제 병사 8000명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두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비려의 근거지 염수와 백제의 패수는 어디였고 또한 위 비문에 언급된 지명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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