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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사람들]-청년문화기획단 ‘천재지변’

“시각장애인도 동등한 문화 향유권 보장 받아야죠”

마음을 기획하고 문화를 만드는 작은 거인들의 모임

김찬주기자(cj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12-28 14: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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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문화기획단 ‘천재지변’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해 사회에 기여하는 비영리단체다. 특히, 이들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구상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천재지변 단원인 진수, 백수정, 최재현 대표, 최민지 씨. [사진=서종민 기자]
 
2018년 6월, 20대 청년들이 만났다. 평범한 대학생인 이들은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사회 곳곳에 도사린 작은 어둠을 향해 다가가자며 마음을 모았다. 학교도, 전공도 모두 다르지만 ‘장애인’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만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천재지변’의 이야기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대를 오르내리며 3차 유행이 한창인 어지러운 시국. 청년문화기획단 천재지변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를 찾았다. 학교 후문에서 취재진을 맞은 이들은 마냥 파릇하고 순수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코로나로 기존의 사무실 이용이 어려워져 임시로 빌린 교내 빈 강의실로 취재진을 초대했다.
 
‘천재’들이 기획하는 시각장애인 문화 향유의 ‘역동’
 
청년문화기획단 천재지변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해 사회에 기여하는 비영리단체다. 특히 이들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구상하며 구성한다.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면서 이들은 약간은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단체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곧 활기있는 태도를 보였다. 우선 최재현 천재지변 대표(26)에게 단체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천재지변이란 단체명이 가진 뜻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하세요. 저희 단체명의 뜻은 ‘천재(千才·다양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이 땅(地)의 문화를 변(變)화 시킨다’는 뜻이에요. 저희 단원이 모두 전공도 다르고 학교도 달라요. 방송작가, 연극영화, 촬영, 영어통번역전공 등 해당 분야에서 각자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죠.”
 
“약 3년 전쯤 한 문화기획 단체가 주최했던 대학생 대외활동에서 우리 단원들을 만났어요. 그 활동이 종료되면 거기서 끝날 수도 있던 인연이었지만 우리의 아이디어를 모아 현실에 적용시켜보자는 마음을 가진 몇몇 친구가 뜻을 함께한 거죠. 그렇게 다시 모여 ‘또라이 꾸러기’라는 문화 기획공모전에 참가하게 됐어요.”
 
“어감이 좀 그렇지만 또라이라는 의미가 ‘우리의 도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청년들을 후원한다’였죠. 즉, 또라이가 바꾸는 세상이라는 의미에 끌려 참가했어요. 해당 공모전에서 1등을 하고 지원받은 후원금으로 2018년에 지금 저희의 천재지변이 만들어졌어요. 올해 1월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도 완료했죠.”
 
사회단체의 설립 계기를 설명한 이후 기자는 최 대표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최 대표에게 나이를 물어봤다. 스물여섯이라 답했다.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세상을 바꾸는 ‘또라이들’의 행적이 궁금해졌다. 천재지변의 활동 사항을 물었다.
 
“첫 과제로 선정한 건 시각장애인에 관한 문화 프로젝트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심(心) 봤다 프로젝트’였어요. 시각장애인들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가능한 선에서 이뤄드리는 활동이죠. 예를 들어, 사진촬영 등을 함께 했는데 그 때 그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심봤다 사진전시회’를 열기도 했어요.”
 
▲ 청년문화기획단 '천재지변'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더 많은 소통을 돕고자 지난해 ‘심(心)봤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시회는 시각장애인이 찍은 모든 사진마다 찍을 당시의 심경을 적은 점자를 부착하고 직접 만지며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제공=천재지변]
 
“그들이 찍고 싶었던 것, 사진을 찍고 나서의 기분 등 그 당시 그분들이 느꼈던 감정을 모두 사진에 담아 찍혀진 사진 위에 점자를 부착했죠. 그렇게 전시회를 열고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최 대표의 설명에 이어 천재지변 창립 단원인 백수정 씨(26)가 활동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어갔다. 
 
“올해 9월부터 시작해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는 ‘메일 데이지’에요. 메일 데이지란 시각장애인 독자들께 저희 천재지변이 원고를 매주 발송해드리는 독서 메일링 서비스죠. 수신하는 분들은 오디오나 점자로 변환해서 받아보실 수 있게 만들었어요.”
 
글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서를 꾸린다는 점에서 문화의 거대한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글에 익숙한 비장애인들과는 달리 시각장애인은 글을 귀로 듣거나 손끝으로 읽고 느낀다. 그렇기에 글을 접하는 과정과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적 어려움이 따른다. 천재지변은 이런 힘든 과정에 기꺼이 뛰어들어 시각장애인이 독서 문화를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며 느꼈던 감정을 들려줬다.
 
인터뷰에 함께했던 단원 최민지 씨(26)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에 가졌던 우려와 극복과정을 회상했다. “처음엔 거리감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지속적으로 뵙다보니 지금은 친구처럼 가까워졌어요. 사실 장애인과 허물없이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든 직접 만나보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현재 진행 중인 메일데이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에요. 점자책과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시각장애인분들이 ‘꼭 필요한 걸 해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단원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가진 불편함에 대해 비장애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단원들은 시각장애인에 대해 ‘알고 있다’가 아닌 ‘알아 간다’는 태도로 백수정 씨부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창단 이후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느낀 것 중 하나는 ‘제한적인 문화 향유권’이에요. 비장애인은 심적으로 힘들 때 영화나 책 같은 문화를 즐기며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문화·예술·체험·창작 등의 기회가 훨씬 적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접근 방법도 모두 어려운 상황이에요.”
 
차가운 현실·부족한 관심… 그 속에 위태로이 매달린 아름다운 한 장의 ‘꽃잎’
 
천재지변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문화의 한 조각을 건네며 장애인의 삶 속 작은 행복을 자신의 큰 행복처럼 여겼다. 그러나 천재지변 같은 소규모 비영리단체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사회적 지원과 관심조차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 이들의 주머니에서 털어낸 사비로 운영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단원인 진 수 씨(26)에게 천재지변 같은 사회단체가 활동하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현실적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대부분 소규모 비영리단체가 그렇겠지만 재정적인 부분에서 가장 어려워요. 천재지변 단원의 사비로 운영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회사원, 취준생, 대학생 등 저희 현실이 모두 달라요. 그래서 사비로 걷는 봉사활동 진행비가 여의치 않아 활동규모를 크게 하고 싶어도 강제적으로 축소를 해야만 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진행하면서 장애를 가진 분들께서 저희에게 ‘정말 고맙다. 이 기억을 평생 간직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 그 자체가 저희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행복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 “정말 고맙다”는 한 마디를 듣는 것이 천재지변이 이 활동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끈이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쪼개가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은 마치 ‘마지막 남은 꽃잎 한 장’처럼 위태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장애인복지를 담당하지만 무책임하며 수동적인 여느 공무원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 최재현 천재지변 대표는 "시각장애인에 대해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도 있는 반면, 그 시선을 함께 타파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 피력했다. [사진=서종민 기자]
 
시각장애인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작지만 큰 걸음으로 나아가는 이 작은 거인들에게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최 대표는 우선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연민의 감정’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어요. 장애인을 향한 비장애인의 이런 시선은 오히려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에요. 향후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나 활동 등이 많아져도 그런 인식이 그대로라면 좋은 제도가 있어도 엇나갈 뿐이죠. 그들도 그저 같은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꼭 필요해요.”
 
“다만, 시각장애인에 대해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도 있는 반면, 그 시선을 함께 타파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나설 수 있도록 장애인 문화와 관련한 공모전이나 프로젝트 같은 그런 기회와 자리가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대표는 시각장애인의 독서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제약이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이 독서를 하려면 글을 점자로 바꾸는 점역(點譯) 과정이 필요한데,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국립도서관에 점역을 의뢰하는 방식이어서 점역 기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점역을 통해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빠르면 몇 주, 늦으면 몇 년까지 소요돼요. 사회가 겉으로는 ‘시각장애인의 독서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신청을 하면 점역해서 준다’고 말은 하는데 시각장애인의 현실과는 정말 동떨어진 거죠. 모든 정책이 형태만 갖춘 게 아니라 현실과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그는 비장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덧붙였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관심이 선행돼야 해요.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될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이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잖아요. 관심이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걸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거죠. 장애인도 결국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에요. 의무적인 도움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의 관심이 필요해요.”
 
이어 최민지 씨 역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비장애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을)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비장애인이 팔을 다쳤다고 장애인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저 다친 사람일 뿐이지 동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김찬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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