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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조세(準租稅)’라는 말이 있다. 준조세의 개념 및 범위에 대해서는 통일된 정의가 정립돼 있지는 않지만, 보통 세금처럼 법적인 부담의무는 없으나 사실상 부담이 강제되는 기부금·성금 등의 비자발적 부담금을 의미한다. 전경련 등의 경제단체에서는 ‘기업이 기업활동 과정에서 부담하는 순수한 생산비용과 조세를 제외하고 경제적인 부담요인이 되는 일체의 금전지급의무’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준조세는 과중한 부담으로 기업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자발적’이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징수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북한의 수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면서 성금 모금 과정에서 기업의 매출에 따라 최소 700만원에서 최대 10억원을 강제로 할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정부가 들어와서도 준조세를 걷는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해 준조세의 수와 규모를 줄이려고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
2019년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준조세가 조세총액의 40%를 넘는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국민연금·4대 보험 등의 사회보험과 법정 부담금, 기업의 비자발적 기부금, 사용료·수수료 총액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준조세는 2017년 기준 약 138조6000억원으로 나타났고, 협의의 준조세는 약 58조3000억원으로 4대 보험이 90%를 차지했다.
4대 보험을 제외하더라도 준조세는 상당히 많이 걷히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매년 20조 안팎씩 모두 100조원 가량이 징수됐다.
기존에 있던 준조세로도 기업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최근 들어 새로운 형태의 준조세가 시도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로 ‘이익공유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오히려 돈을 버는 기업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고통받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고용취약계층을 돕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소득 격차의 극복 방안으로 나온 ‘이익공유제’는 주로 온라인 기반으로 배달·쇼핑·마켓을 운영하는 배달의민족, 쿠팡, 마켓컬리나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 형식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것(이익공유제)을 제도화해서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민간 경제계에서 어떤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전개가 되고, 거기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권장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야당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미덕이지만 집권 여당이 강권하는 것은 겁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7일 ‘이익공유제’는 이익 산정이 불명확하고, 주주와 외국 기업과의 형평성을 침해하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초과이익공유제’처럼 무산되거나, 박근혜 정부에서 나온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처럼 목표에 미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의 경우 연간 1000억원을 10년간 모은다는 목표까지 정해둔 사실상 강제 기금이었지만, 목표액의 30%도 채우지 못했다.
여당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인 이낙연 대표가 처음 제안하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제도에 대해 이에 참여해야 할 입장인 기업들이 과연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움직일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자칫 선거를 앞둔 일종의 ‘선심성 공약’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기업에 새로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없애야 한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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