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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기의 한반도 테라포밍

1994년 소대장 길들이기, 2021년 참모총장 길들이기

강한 군대는 비싼 무기 아닌 정신전력에 기인

군은 중립 없어…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군인은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늘 푸른 청년이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1-22 21:00:26

 
▲박진기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테라포밍(Terraforming)’이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을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즉 ‘한반도 테라포밍’이란 지금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전향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21년 새해를 맞아 그동안 좌파 정치 그룹에 의해 왜곡되고 각색된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 배우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고자 한다. (Part 10)
 
고려 말 강군(强軍)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군대 중 하나는 우리에게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BC 356~323년)의 친위부대인 ‘은방패 병단(銀防牌兵團)’이다. 그 숫자는 3000명에 불과했음에도 언제나 주력 부대를 선도하며 수많은 전장(戰場)에서 병력수가 훨씬 많은 적군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다.
 
특히 BC 331년 당대 전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의 군대와 대결한 ‘가우가멜라 전투’는 인류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가장 유명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은방패 병단을 필두로 4만7000명의 병사는 10만명이 넘는 페르시아 군을 궤멸 상태로 몰아간 것이다.
 
한반도 역사 속에서도 은방패 병단과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고려 말 30만명에 이르는 강군(强軍)을 유지하면서 원(元) 제국과 명(明)에 대응하며 민족의 염원인 요동성까지 다시 점령하고 진포에서 3만명의 왜구와 500여척의 왜구 선박을 수장시키고 대마도까지 정벌하던 등 강력한 고려 말의 군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토록 강력한 군대로 보유하고 있던 국가 고려를 중국 사대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멸망시키고 건국한 조선은 불과 5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국방력을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몰아간다.
 
그 역사의 행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의 군사제도와 조선의 군사제도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사병(私兵) 제도’와 ‘갑사(甲士) 제도’라는 전문성을 갖춘 직업군인들의 몰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사학계를 보면 편협한 세계관과 신념으로 그저 고려 말의 상황을 과도하게 왜곡하고 중국 사대주의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급급한 모습일 뿐이다.
 
사병이란 말 그대로 경제력을 갖춘 귀족 또는 영주가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양성한 군대로 그 임무의 특성상 고도의 훈련을 받은 3000명 내외의 전사(戰士)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귀족 5명만 모이더라도 순식간에 1만5000명의 전문 군인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계 역시 원(元) 제국의 쌍성총관부 관리로서 ‘전통적 몽골의 기마 전투 방식’으로 양성한 여진족과 고려인 등으로 구성된 2000명의 직속 사병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왕이 되어서도 그의 휘하에 있던 사병들을 왕의 직속 부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로 편성하고 그대로 유지한다. 갑사(甲士) 제도의 첫 시작이기도 하다. 이는 유럽의 ‘기사 제도’와 일본의 ‘사무라이 제도’와도 유사성을 가지며 조선의 경우 수도 방위 ‘경갑사(京甲士)’, 북부 국경 수비 ‘양계갑사(兩界甲士)’, 호랑이 수렵 담당인 ‘착호갑사(捉虎甲士)’ 제도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1400년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의 사병 혁파 이후 세종(世宗, 1418~1450년)대에 와서는 국가 재정, 기득권 세력의 병역 기피 등을 이유로 갑사의 대우가 급속히 낮아지면서 이름만 남은 ‘명예직’으로 바뀌고 ‘군기가 문란’해지면서 조선의 군사력은 비참할 정도로 약해진다. 오죽했으며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병적부의 기록과 실제 병력의 차이를 보고 ‘조선의 군대는 서류 속의 군대이다’라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갑사 제도와 기병 전투 방식을 유지하던 조선군 전략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근대식 보병 전술에 밀리면서 임진왜란에서 탄금대 전투 등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거듭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조선처럼 군기가 문란해지고 위계질서가 무너져 버린 대한민국의 군대
 
지난해 12월 24일 육군 군복을 입은 군인 중 가장 상급자라는 육군 대장인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주임원사들이 인권위에 진정한 초유의 사건이 며칠 전 세상에 공개되었다.
 
주임원사들이 인권위에 진정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육군참모총장이 화상 회의에서 ‘군대는 계급사회인 만큼 장교가 부사관에게 반말로 지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려 차원에서 존대해주고 있다’고 무심코 한 말 때문이다. 물론 잘 해보자는 취지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회의에 참석한 주임원사들이 ‘자신들은 나이가 많은 만큼 젊은 청년 장교들에게 하대 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참모총장을 인권위에 진정한 것이다.
 
남영신은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창군 이래 최초의 학군(ROTC 23기) 출신 육군참모총장이다. 사실 비주류이던 그는 現 정부 들어 ‘특수전사령관’ 및 ‘군사안보지원사령부(舊 기무사) 사령관’ 등을 군의 요직을 차례로 거치면서 급속 성장한 대표적 인사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좌파 정치권에 줄을 댄 정치장교에 가깝다. 그런데 정작 그가 임명한 주임원사들이 그를 인권위에 진정한 것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지난 4년간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면서 1946년 1월 15일 창설한 이래 삼군(三軍)의 중심을 담당하는 49만의 육군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남성 부사관들이 여성 장교를 집단 폭행하고 성추행한 만행까지 발생하였다. 기실 이러한 일은 1991년 이후 지속되어 온 ‘군(軍)의 민주화’라는 미명과 허울 속에서 자행된 대한민국 국군의 와해 전략의 한 단편이기도 하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의 우수성보다 확고한 대적관과 정신전력이 기인
 
1999년 당시 북한의 기습도발로 시작된 1차 연평해전 직후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었음도 불구하고 2함대 사령관인 박정성 제독은 강제 전역조치를 당했다. 그나마 이때까지가 대한민국 군대에서 결의가 살아있던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싶다. 군의 전투력은 장비가 아닌 정신력에 기인한다. 그러나 첨단 무기 도입이라는 미명아래 정작 무기보다 중요한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철저하게 좌경화시키고 무력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한국군의 군사력이 세계 6위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보유중인 ‘핵무기, 화생방 무기’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더욱이 핵무기를 떠나 북한은 ‘세계 3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이다. 이번 ‘코로나 펜데믹’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생화학 무기의 위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의미한 숫자 놀이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군은 현 정부 들어 전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실전 경험을 가진 미군과의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시행하지 않았으며 지난 13일에는 괌 해상에서 진행된 다국적 대잠수함훈련인 시드레곤(sea dragon) 훈련에도 불참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시행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한바 있다. 훈련도 제대로 안 된 군대에게 비싼 무기체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고 선동’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군의 정치적 중립은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 논하는 것이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사이에서 중립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의 군사력은 미국의 전폭적인 무기 지원으로 동북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였다. 그런 베트남이 변변찮은 무기로 무장한 베트콩에게 패배하고 국가는 공산화되었으며 자유 베트남인이 집단 도살되고 수많은 보트피플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 군의 무력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과거를 돌이켜 보자. 1994년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는 김영삼 정부가 주도한 군의 민주화 열풍 속에 신임 소대장인 소위(少尉)들을 대상으로 한 속칭 ‘소대장 길들이기’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조한섭 소위(학군 32기), 김특중 소위(육사 50기)와 황정희 하사가 동반 무장 탈영을 하였는데 당시 육군사관학교 출신에게 조차 소대장 길들이기가 만연할 정도였으며 황정희 하사에게는 ‘일병 이상에게는 경어를 사용하라’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소위였던 ‘육사 50기’들은 2020년 12월 3일 ‘첫 장군 진급’을 하였다. 그리고 불과 21일이 흐른 후 주임원사들이 육군참모총장에게 항명에 가까운 인권위 진정을 하는 사건일 발생하였다.
 
어찌 보면 이번에 발생한 ‘장교를 대표하는 참모총장’과 ‘부사관을 대표하는 주임원사단’의 극명한 갈등은 수십 년간 곪아 온 군의 문제가 터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정권의 힘을 등에 업고 급성장한 ‘전형적인 정치군인’인 현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군의 내부 불만이 표출된 사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軍)은 일반 사회 조직보다 젊은 조직이다. 6.25 전쟁의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이 37세에 육군 참모총장을 하였고 1961년 5.16 혁명 당시 박정희 소장의 나이는 43세, 1979년 12.12의 전두환 소장의 나이는 48세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노쇠(老衰)하였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래도 충분히 젊은 조직이다. 지금 참모총장의 나이 역시 59세, 육군본부 주임원사 또한 54세에 불과하다. UN의 연령기준으로 보면 18~65세는 청년이다.
 
그렇다. 군(軍)은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청년이다. 20대 초반 임관과 임용 시 품었던 푸른 꿈을 다시 생각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키는 숭고한 사명 속에 목숨을 서로 지켜주며 동고동락하는 전우로서의 조직으로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만들자. 그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군의 참모습일 것이다. (Part 1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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