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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콰이강의 다리에 갑니다.”
창원의 이색명소 ‘콰이강의다리’를 방문할 때 여행객은 사뭇 공손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저도는 1인칭 대명사가 아니라 돼지 형상의 섬 ‘저도’이다.
국내에는 저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많다. 대통령 별장이 있는 거제 저도가 가장 유명하지만 창원 저도가 그 아성을 뒤쫓고 있다.
빨간색 철제 교량 ‘저도콰이강의다리’
창원 저도는 남서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비치로드를 대표 경관으로 갖고 있다. 조각배 하나 대지 못할 만큼 가파른 절벽과 철썩이는 파도 사이를 거니는 일은 저도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산책 경험이다.
저도에 입도하려면 빨간색 철제 교량 ‘콰이강의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의창군 시절인 1987년 구산면 육지부와 섬 저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됐다.
그러나 2004년 바로 옆으로 더 크고 넓은 신 교량이 설치되면서 차량 통행을 양보하고 보행 전용으로 물러났다. 명칭도 저도연륙교에서 ‘저도콰이강의다리’로 변경됐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바닥도 콘크리트에서 강화 유리로 교체됐다. 낮에는 투명한 바닥을 통해 13.5m 아래 바다를 감상하고, 야간에는 LED 조명으로 연출한 은하수 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섬과 육지를 잇는 해상교각에 ‘저도콰이강의다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조금 뜬금없긴 하다. 외관도 비슷한 데가 거의 없다. 누구라도 ‘저도콰이강의다리’가 태국 콰이강의다리를 닮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저도콰이강의다리는 1980년대 건설 당시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상단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하단에 아치를 둔 모습이 날개를 한껏 펼친 갈매기 형상이다.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콰이강의다리’
원래 콰이강은 메콩강의 지류로 태국과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테나셀림 산지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리고 ‘콰이강의다리’는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버마철도’의 한 구간이다.
총길이 400km에 달하는 버마철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군인과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건설됐다. 그 최종 목표는 인도네시아 점령이었다.
일제는 철도 건설에 연합군 포로와 징용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다. 자료에 의하면 전쟁 포로 6만여 명과 태국·인도네시아·미얀마·말레이시아 노동자 20만 명이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환경에서 철도 건설을 강행하다 보니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 시기 질병·부상·영양실조·중노동으로 사망한 사람만 11만6000여 명이 이른다. 투입된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면서 버마철도에는 ‘죽음의 철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때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다리’다.
1987년 태국 내에서 버마철도의 폐선 구간을 복원해 관광 노선으로 부활시키자는 의견이 있었다. 태국 정부는 일본에 복구 비용을 물릴 계획이었다.
남의 돈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는 이 매력적인 계획은 철도 건설에 끌려갔던 연합군 측 재향군인회의 반대에 직면해 없던 일이 됐다. 그들로선 고통의 장소를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재난 장소를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콰이강의 다리’를 포함해 버마철도 일부는 이미 다크투어리즘이라는 명목 아래 관광지가 되었다.
태국 방콕 근교 도시 칸차나부리를 방문하면 전쟁의 상흔이 깃든 역사적 장소를 둘러볼 수 있다. 방콕에서 칸차나부리까지는 차로 3시간 거리로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이동이 어렵지 않다.
1939년 개통된 ‘북한강철교’
태국 콰이강의다리를 닮은 다리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과 양평 양서면을 잇는 ‘북한강철교’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개통된 철도 교량이다. 원래 이름은 양수철교다. 난간부를 철제로 마감한 것이며 레일의 흔적까지 영락없는 콰이강의다리다.
2008년 중앙선을 복선전철화하면서 철도 교각의 임무를 바로 옆 신 교량이 떠맡게 됐다. 양수철교가 은퇴하면서 양수철교라는 이름도 신 교량이 가져 갔다. 구 교량에는 북한강철교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현재 구 교량은 바닥에 보도용 나무판을 깔아 보행교로 사용 중이다.
구 교량은 운길산역에서 북한강을 건너 남한강을 따라가는 남한강자전거길의 일부 구간이다. 그래서 재밌게도 다리 진입로에는 ‘남한강자전거길’ ‘북한강철교’ 두 개의 강 이름이 표기돼 있다.
팔당에서 양평군을 거쳐 여주시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자전거길은 구 중앙선 노반을 그대로 사용하기에 레일도 만나고 다리도 건너고 터널도 지난다. 국내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재밌는 도보 길은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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