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대한민국號 살길은 관료주의 청산·규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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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고·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좌초
尹정부는 프랑스 마크롱 개혁 모델 벤치마킹 하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30 06:31:30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 일간지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 자에 이례적으로 ‘한국 경제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는가(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제목의 보도 기사를 실어 시선을 끈다. 작년 말 맥킨지의 ‘개구리 보고서’ 2탄을 시발로 최근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이제 서방 언론까지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경고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막상 외부의 이런 시각을 받아들이는 우리 내부 모습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일부에선 충격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지만 대부분은 남의 집 살림살이에 별 참견을 다 한다고 불편해 하는 듯하다. 달라지는 것을 애써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 닥치는 대로 살려는 반발 심리가 의외로 강하다. 그러니 갈수록 남보다 뒤처지게 되고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랜다.

FT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한국의 성장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과거의 성공 방식에 얽매여 낡은 프레임을 여전히 꿀단지 모시듯 신봉한다. 제조 대기업에 맹목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원천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로 밀려 이제 첨단 반도체를 제외하곤 중국에 앞서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저출생·고령화와 지방 소멸로 인구 구조가 빠르게 붕괴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직면하고 있다. 철이 지나 수명을 다한 기존의 방식을 접고 새로운 성장 동력 모델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 결과로 나타난 여소야대 정국은 이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말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고 순위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통하지 않는 정답을 가지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꿰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억지스럽다. 부조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정치와 정부의 무능력으로 개혁 의지는 실종되고 경제는 늘 기진맥진·허겁지겁이다. 반세기 만에 농업 국가에서 제조 강국으로 부상한 것을 두고 상당수 후진국이 한국형 성장 모델을 본받으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효력이 약화되고 있다. 향후 3년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 성장 모델을 설계하는 중요한 시기이지만 레임덕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는 인기 없는 현 정부가 이를 주도적으로 실현해 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날개를 단 야당은 벌써 반시장·반기업 입법 폭주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대에 맞지 않아 곪아 터질 정도의 만성질환 상태가 심각하다. 기업의 수익 악화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세출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 지원금에 저출생 대책으로 막대한 지출이 예고돼 있다. 그런데도 곳곳에 관(官) 주도의 그림자가 짙다. 기업은 정부에 밉보일까 두려워 기상천외의 대관 업무가 줄지 않는다. 퇴직 공무원 마피아가 득실거리며 정부 예산 빼먹기에 혈안이다. 모(기재부)피아·산(산자부)피아·국(국토부)피아·교(교육부)피아 등이 즐비하다. 궤도를 한참 벗어난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는 ‘황제’를 모시는 듯한 작태를 연출한다. 전직 판사 혹은 검사 벨트로 만들어진 전관예우의 고리는 우리 사회의 요지경·구태의 썩은 이빨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선진국 혹은 후진국을 막론하고 지구촌 어디에도 이런 막장 천태만상을 보이는 나라는 없다. 특히 국민 평균 눈높이에서 한참 벗어나는 권위주의적 꼴불견을 보기 어렵고 절대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편적 관행이다. 공사(公私) 구분이 명확하며, 행차하든 무엇을 하든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고 직위의 높낮이와 무관하게 자기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공직자의 부정과 부도덕에 관해서는 무관용을 고수한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중학교 교장이 편의점 커피를 제값보다 큰 분량으로 마셔서 7차례 총 4000원 정도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들통 났다. 이 일로 그는 30년을 봉직해 온 교직에서 쫓겨나고 억대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것이 그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영국 총리는 공관 전기세를 본인이 부담하고, 다수 유럽의 총리들이 주말에 마트 쇼핑 등을 혼자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우리와 비교되는 모습들이다.

총선 패배로 대통령이 몸을 낮추고 소통을 늘리겠다고 한다. 정치를 하겠다고까지 천명했다. 그동안은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이 무엇인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 임기 동안 소신껏 국가 발전을 위해 매진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유럽의 병자로 독일이나 영국에 뒤졌던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고질병인 관료주의 청산과 규제개혁에 팔을 걷어붙였다. 일시적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고질적 병폐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강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프랑스는 지금 병자가 아닌 우등생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한국이 나아갈 방향도 이와 흡사하다. 남은 3년 이런 일들을 과감히 해 나가면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기를 펴면서 대한민국 회생의 기틀이 마련될 수도 있다. 점점 낡고 늙어 가는 국가에서 오늘 이대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