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 칼럼] 피의자 이화영의 진술과 ‘라쇼몽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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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9 00:02:40

대북 송금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관련 당사자인 이 전 부지사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이 완전히 어긋나고, 검찰과 이화영 씨의 진실 공방이 팽팽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한 달가량 ‘검찰청 내 술판 회유’를 주장하면서 검찰과 진실 공방을 벌여 온 이씨 측이 25일 담당 수사 검사와 쌍방울그룹 관계자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청에서 술자리를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이화영·김성태 세 축으로 구성된 이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1950년 일본 영화 ‘라쇼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엔 명백한 사건이 이해 당사자의 엇갈린 진술을 통해 전달되면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상황을 다루고 있다.

우선 이화영 씨는 6월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4월 한 달 내내 그가 꺼내든 ‘검찰청 술판’ 의혹이라는 이슈에 발목 잡혀 재판의 핵심이 되어야 할 ‘대북 송금’ 의혹이 묻히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검찰청 술판 의혹에 대해 이씨 측과 검찰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씨 측에선 느닷없이 마치 술판 의혹이 검증된 사실인 양 이번에는 해당 관계자를 고발했다.

이씨의 변호사인 김광민 변호사는 고발장에서 쌍방울그룹 관계자들이 수감 중인 김 전 회장 등에게 금지 물품을 반입해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관련 내용을 묻는 취재진에 “전혀 사실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며 이씨의 진술과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검찰도 이씨 측 주장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이씨는 4일 수원지법 법정에서 “1313호 앞 창고에서 술(소주) 마시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회유당했다”고 진술했는데, 이후 이씨와 그의 변호사는 장소·날짜 등과 관련해 수차례 번복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이씨가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그런 진술을 법정에서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정 녹취록을 증거로 이씨 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라쇼몽’에서는 한 남성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에 얽힌 인물들의 진술에 따라 사건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산적과 죽은 사무라이, 그리고 사무라이의 아내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면서 서로 다르게 진술한다. 이들이 철저히 각자의 관점, 더 정확하게는 각자의 욕망에 따라 증언하기 때문이다.

산적은 사무라이와 결투 끝에 그를 죽였으며 자신이 사무라이의 아내를 탐한 건 사실이나 그 여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죽어서 무녀의 입을 빌어 설명하는 사무라이의 진술은 다르다. 산적과의 결투에서 진 것이 아니라 산적과 아내의 행동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스스로 자결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의 아내는 또 다르게 말한다. 산적이 자신을 무력으로 겁탈했으며 그 상황을 이겨 내지 못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찔렀다는 것이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진실은 오리무중이 된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달리 해석하는 현상을 가리켜 ‘라쇼몽 효과’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화영 씨가 엇갈리는 진술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을 두고 이씨 측이 선고를 앞두고 여론전을 벌인다는 분석도 있다. 바로 라쇼몽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라쇼몽 효과’ 뒤에는 서술자의 욕망이 어른거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적의 진술엔 ‘사내다움’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여성은 사무라이의 아내로서 ‘정절’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 또 사무라이는 ‘무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욕망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계속 말을 바꾸는 이씨의 진술 뒤에는 무엇이 어른거리나. 그의 진술은 검찰을 향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일방적이다. 검찰이 반박하는 내용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마치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셰셰’ 발언으로 중국의 화답을 이끌어 냈듯, 이씨의 진술도 누군가의 화답을 기대하는 듯 읽힌다.

이씨의 ‘술판 회유’ 주장이 나오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재명을 죽이기 위한 윤석열 검찰의 사건 조작 실상”이라고 썼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 ‘라쇼몽’이 떠올라 IPTV에서 990원을 결제하고 다시 봤다. 현실에서는 ‘무료’로 더 흥미진진한 ‘라쇼몽’ 스토리가 전개 중이다. 한 달 후의 결말이 주목된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