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K팝의 큰 성취와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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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09 00:02:30

K팝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면서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위상이 확대된 만큼 그림자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2012년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의 빌보드 핫100 음악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의 기록을 세웠다. 그 뒤 8년 만인 2020년 9월5일 빌보드 핫100에서 방탄소년단(BTS)이 ‘다이너마이트’로 1위를 달성했다.

같은 해 10월 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코스피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이듬해인 2021년 빅히트는 하이브로 사명을 바꿨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BTS가 거머쥔 글로벌 진출의 행운을 일회성으로 놓치지 않고 지금의 K팝을 이끄는 하이브를 일궜다. 이 부분에서 방 의장의 경영자적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하이브 상장으로 촉발된 급격한 외형 성장으로 인한 문제가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진의 ‘따라 하기식’ 경영이 한계에 봉착했다.

K팝 팬들의 가장 큰 불만은 팬들을 돈으로 보는 듯한 기획사의 태도다. 팬들은 자신이 아끼는 아이돌 가수를 볼모로 앨범 구매를 강제하는 기획사의 태도에 실망하고 있다. 현재 음반 기획사는 CD 앨범에 랜덤으로 포토카드를 끼워 넣거나 팬 사인회 당첨권을 삽입해 팬들이 필요도 없는 음반을 대량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젊은 층은 물론 기성세대까지 유튜브나 멜론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 CD 플레이어는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아이돌의 CD만 발매되기가 무섭게 몇 백만 장씩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달 25일 하이브의 레이블 가운데 하나인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이미 앨범을 구입한 팬덤이 같은 앨범을 계속 사고 있다고 폭로했다. 많은 K팝 팬 역시 이 문제를 K팝 업계의 병폐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이미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뽑기는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법으로 규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겠는가. 이에 3월22일부터 직·간접적으로 유상 구매가 가능한 모든 게임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시행됐다. 게임업계의 자업자득이다.

음반업계 역시 스스로 쇄신하지 않으면 게임업계처럼 외압에 의해 정화될 확률이 높다. 아니면 끊임없는 아이돌 상품 구매에 지친 팬들이 K팝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국내 팬이 등을 돌리면 그다음은 해외 팬 차례다. K팝에 대한 국내의 피로감이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확대된다면 K팝의 열기가 식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형 기획사의 비슷비슷한 아이돌 찍어 내기도 문제다. 자세히 보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개성도 없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 K팝 가수를 보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대형 기획사는 K팝 가수는 물론 그들의 음악에 개성을 부여해야 한다.

K팝이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메이저 자리를 차지하려면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가수 아이유가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아이유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RM은 아이돌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담은 솔로 2집을 낸다. SM의 에스파는 자신들만의 컨셉을 들고 다시 컴백한다. 이들의 사례에 주목할 때다.

잘나갈 때 조심하고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팬 쥐어짜기로 K팝이 잘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엄재만 기자 jmeo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