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출생률 추락… 경제적 조건 때문만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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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10 00:02:30

플라스틱 페트병이 한 개 있다고 상상해 보자. 뚜껑은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페트병 몸체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재활용률은 60%다.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하면 뚜껑 한 개와 몸체 한 개를 같은 비율로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몸체 100개가 있다면 어떨까. 재활용률이 60%이기 때문에 뚜껑 30개·몸체 30개를 만들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한 번 더 재활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뚜껑은 재활용이 되지 않으니 버려 주고, 30개의 몸체를 재활용해 9개의 뚜껑과 9개의 몸체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의 재활용 만에 재활용 가능한 몸체는 100개에서 약 10%인 9개만 남았다.

여기서 뚜껑과 몸체가 결합한 플라스틱 페트병은 남녀 한 쌍이다. 그리고 뚜껑은 남자, 몸체는 여자다. 재활용은 출산으로 치환할 수 있다. 재활용률인 60%는 0.6이고 이는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0.65)을 가정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평소 즐겨 보던 한 과학 유튜버의 흥미로운 비유 영상에서 주장한 것이다. 이 유튜버는 남녀 한 쌍의 손자·손녀가 어른이 됐을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손녀는 현재의 약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생물사에서 유례없는 멸종 속도’라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로 영상은 끝이 났다.

올해에도 ‘재활용률’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달 발표한 인구동향 통계에서 2월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2만 명 선 밑으로 내려갔다. 2월 출생아 수는 1만9362명으로 1년 전보다 3.3% 줄었다. 1월에 태어난 아이도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7.7%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이달 29일 1분기 출생률을 알 수 있는 ‘3월 인구동향’을 발표한다. 그러나 출생률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페트병의 비유처럼 올해 합계출산율도 0.6명대에 고착될 수 있다. 2060년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5배가량 많아질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정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저출생 문제 해결에 380조 원을 들였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이다. 대부분 출생률과 관계없는 사업에 쓰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국내 가족지원예산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로 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인 33위다.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전국 25~49세 남녀 20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효과 없다’고 응답한 비중이 90.8%나 됐다. 헛돈을 쓴 셈이다.

여러 저출생 대책들이 통하지 않자 정부는 최근 부영그룹이 먼저 제시했던 ‘1억 원 지급’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정책 소통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지난달 17~26일 정부가 출산지원금으로 자녀 1인당 1억 원을 줄 경우 출산에 동기부여가 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민 10명 중 6명(62.6%)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권익위는 “정책 제안을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의견 수렴 과정”이라며 “정책 채택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출산하는 직원에게 1억 원을 주기로 한 부영그룹 사례에 ‘파격적’이라는 국민 반응이 일었던 것과 더불어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기획재정부가 기업 출산지원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한 점을 감안하면 1억 원 지급의 효과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듯싶다.

돈을 쏟아부은 대책들이 통하지 않았으니 직접 돈을 지급하는 ‘색다른 시도’에 나선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저출생은 일·가정 양립 문화의 부재, 고물가, 페미니즘 등 복합적인 사안이 얽혀 발생한 문제다. 단순히 ‘경제적 조건이 나아지면 애 낳겠지’ 식의 1차원적인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김기찬 기자 gc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