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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의 ‘법과 정의’…제국 고조선<11>-지방 및 후국(侯國) 통치체제

동유럽 역사 흔든 돌궐제국 선조는 ‘고조선 한민족’

제후국 돌궐족…고조선족 아사나(阿史那 Asana) 왕족에 아사달(阿史德, Asadar) 귀족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5-07-11 21:41:17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세계문명 주도한 기마민족 한민족(韓民族)
 
세계역사를 보면 기마민족(騎馬民族)은 문명과 국가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교통로, 교역로(交易(路), 산림(山林)의 길, 초원의 길, 오아시스의 길, 비단길 등이 기마민족에 의해서 열렸다. 요하문명을 시작으로 이집트의 나일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하강 등 유역에서 문명을 주도한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역사가들은 이를 총칭해 기마민족이라고 불렀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고 하면 이민족(異民族)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기마민족은 고대 유목민, 반 목축(半 牧畜), 수렵민(狩獵民) 중에서 승마를 한 채로 활을 잘 쏘는 기마전술을 몸에 익힌 기동력을 증대(增大)한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유라시아와 앗시리아, 페르시아 중동까지도 평원과 농경지대에서 정복왕조를 세운 그 기마민족이다. 이 같은 기마전술을 몸에 익힌 고대 우리민족은 가을 추수 후 12부족들이 모여서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광의적으로 볼 때 바로 이들이 기마민족인 셈이다.
 
기마민족에 대해 소위 중국인들은 “흉노족이다. 선비족이다. 예·맥족이다. 돌궐족이다. 여진족이다. 말갈족이다. 몽골족이다” 등으로 언급했다. 따라서 기마민족은 이들 민족들을 총칭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이 민족들은 고조선시대 형제와 같은 유대를 쌓으며 상호 교류했다. 따라서 혈연적으로 융합된 민족이다. 우리는 일본이 역사왜곡 한 것을 배워 ‘단일민족’이라고 하고 있으나 엄밀히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다. 이는 일본 자신들이 ‘단일민족’으로 내세우려 한데서 나온 것이다. 일본민족 역시 우리 한민족이 85%를 점하고 있는 대륙에서 건너간 한민족(韓民族)이기 때문이다.
 
기마전술을 익혀 기동력을 발휘한 농경민, 유목민, 수렵민은 일찍부터 교류가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최초의 요하문명이 우리 한민족에 의해 홍산(紅山)에서 일어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한민족은 서기전 6000년대로부터 보리 등 농경(農耕)을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지배자들이 출현해 각기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며 각각의 국가로 세워졌다. 이런 현상은 서기전 3000년 기(紀)에 많은 도시국가가 세워진 것으로 나타난다. 바빌로니아왕국의 경우는 서기전 2000년경 세워지는데, 서기전 1700년경 함무라비 왕 때 ‘함무라비법전’을 완성했다. 또 나일강의 여름 범람은 상류로부터 비옥한 흙을 가져다주어 농업을 발달하게 하고 그 부를 기반으로 많은 도시국가들이 세워진다. 이집트왕국은 기원전 3000년경 도시국가를 통일하면서 통일 왕국을 이뤘다. 그 후 왕조는 몇 번 교체(交替)되어 기마민족 정복왕조 됐다.
 
인도와 황하유역에서도 중원 각지에 도시국가가 생성돼 서기전 15세기~서기전 12세기경에 많은 도시국가가 있었다. 이 국가들은 선진 기마민족의 전술은 물론 철제무기와 농구(農具)를 보유했다. 이에 농업이 발달하고 상업이 성(盛)했다. 세계사는 기마민족에 의해 문명이 일어나고 기마민족에 의해 세계 제국이 출현하면서 쓰여졌다. 이번 칼럼은 고조선의 후국 중 하나인 기마민족 돌궐(突厥)과 오손(烏孫)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조선 파견 거수(渠帥)가 다스린 돌궐(突厥)…선조의 성(姓) ‘아사나(阿史那)=고조선’
 
돌궐(突厥)은 고조선이 파견한 거수(渠帥)가 다스린 고조선의 후국(侯國)으로 중원에서 용맹스러운 맹위를 떨쳤다. 수서(隨書)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돌궐의 선조는 평량(平凉)의 잡호(雜胡)로 성(姓)은 ‘아사나(阿史那)’씨라고 기록돼 있다.(隨書, 卷84, 列傳 北狄, 突厥傳). 여기서 ‘아사나(阿史那)’는 고조선이다. 돌궐의 선조가 고조선족(韓民族)임을 알려주는 반증이다.
 
고구려 수(隨)나라시대에 수도(首都) 고구려는 한역해 ‘평양(平壤)’ ‘평량(平凉)’ 벌의 뜻으로 기록했다. 주서(周書)는 “돌궐은 곧 흉노의 별종(別種)인데 ‘아사나(阿史那)’씨이다. 이들은 별도로 부락을 이루고 있다”고 기록했다.(周書, 卷50, 列傳, 突厥傳 참조) 북사(北史) 역시 “돌궐은 그 선조가 서해의 서쪽에 살던 하나의 독립부락이었다. 본래 흉노의 별종이며 성은 ‘아사나(阿史那)’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北史, 卷97, 列傳, 突厥傳 참조) 신당서(新唐書)는 ‘아사나(阿史那)’씨는 시초에 옛날 흉노의 북방일부였으며 후에 금산(金山, 알타이 산) 남쪽에 거주해 연연(蠕蠕), 유연(柔然), 대단(大檀)의 지배를 받았으나 자손은 번영했다. 아울러 ‘아사나’씨는 토문(吐門), 두만(頭曼,Tuman)의 때에 이르러 매우 강대하게 되자 가한(可汗, gahan, Khan) 제왕(帝王)의 제호(帝號)를 취했는데 흉노의 단우(單于 선우)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新唐書, 卷215,, 列傳, 突厥 上 참조)
 
서기 552년 돌궐왕국 거대대국 건설…동돌궐 제국 확대하며 동유럽 역사까지 흔들어
 
원래 고조선 후국이었던 돌궐족은 고조선족(韓民族)인 아사나(阿史那 Asana)족을 왕족으로 하고 역시 고조선족인 아사달(阿史德, Asadar)족을 최고 귀족(聖骨)으로 하는 지배계급을 갖췄다. 서기 552년 아사나 두만(頭曼)은 돌궐왕국을 세우고 이리가한(伊利可汗 Il Khan)이라는 호칭으로 제위에 올랐다. 그는 재위 30년 간 영토를 동쪽은 흥안령으로부터 서쪽으로는 카스피해에 이르는 거대대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돌궐은 서기 580년에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누어지고 동돌궐은 630년 당(唐)의 공격을 받아 일시 굴복했다가 52년 후인 682년 왕족 아사나 쿨투르크(Asana Kulturk, 阿史那骨咄祿)의 지휘아래 재독립해 옛 강토를 회복했다.
 
돌궐(동돌궐)족은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서남쪽으로는 티벳의 일부인 탕크트까지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한 뒤 당(唐)의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당과 겨루었다.(新唐書, 卷215, 列傳, 突厥 上 참조) 또한 돌궐족은 서서히 서진(西進)해 투르크(turks) 민족이란 이름으로 중앙아시아, 동유럽의 역사를 흔들어 놓았다.
 
돌궐족이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으로 절멸(絶滅)의 위기에 빠졌을 때 건국설화가 있다. 그것은 “적에게 다리가 잘려 버려진 유아를 늑대가 구해주어 성년이 되자 늑대족 여자와 혼인해서 ‘위투캔(Utukan)’ 산기슭에서 마을을 일구어 부흥했다”는 이야기다. 돌궐족의 성지인 ‘위투캔(Utukan)’ 산은 현재 몽골국 항가이 산맥이 있는 4021m 높이로 우뚝 솟은 산이며, 현재 몽골 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오토콘 탱그리 산’이라고 호칭하고 이 지방의 사람들은 ‘박다(달) 산’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위투캔(Utukan)’의 이름은 고조선어와 현재의 한국어로 ‘우뚝한’과 같은 용어다. 중국인들이 돌궐(突厥)이라고 기록한 ‘돌(突)’도 ‘우뚝한’의 한자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위투캔 산기슭은 작은 강이 흐르는 목축에 적합한 평원으로 이들의 터전임을 알 수 있다. 이 돌궐족은 서역으로 서진하여 오늘의 터이키가 바로 돌궐족이 세운나라다.
 
고조선 제후국 오손(烏孫), 흉노국에서 벗어난 후 강성해 ‘서역(西域) 최강국’ 부상
 
오손(烏孫)은 원래 대릉하 유역에서 살다가 서기전 206년 흉노가 동호(호맥 신조선)를 멸망시킬 무렵 서방으로 민족이동을 시작해 하서(河西)지방에 정착했다. 오손은 한 때 매우 강성했던 본래 고조선 후국(侯國)족이다. 오손(烏孫)은 고조선 지방후국 장수(가·加, 오·烏)계통임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손(烏孫)은 그 후 흉노의 노상왕(老上王) 재위(서기전 174년~서기전 161년)의 후원을 받고 당시 이리(伊利)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월씨(月氏)족을 서쪽으로 몰아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서(漢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오손국(烏孫國)은 대곤(大昆)이 다스리는 적곡성(赤谷城)에 있다. 장안(長安)에서 8900리 거리다. 호수(戶數)는 12만, 인구는 73만, 승병(勝兵)은 18만8800인이다. 상(相)과 큰 벼슬이 아치는 좌·우 대장2인, 후(候)3인, 대장·도위(都尉) 각1인, 대령(大領) 2인, 대리(大吏) 1인, 사중대리(舍中大吏) 2인, 기군(騎君) 1인 등이다. 동으로는 도호치소(都護治所)가 1721리이고, 서로는 강거번내(康居蕃內)의 땅이 5000리다…(중량)…오손(烏孫)국에는 말(馬)이 많으며 부자는 4~5000필 까지도 갖고 있었다. 백성들은 매우 강하고 탐욕스러우며 믿음이 없고 약탈을 잘한다. 그러나 서역(西域)의 최강국이다. 처음에는 흉노에 복종했으나 후에 성대(盛大)하게 돼 굴레를 벗어 버리고 조회(朝會)에 가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흉노, 서북쪽으로는 강거(康居), 서쪽으로는 대완(大宛), 남쪽으로는 성곽제국(城郭諸國)과 서로 접하고 있다”
 
오손(烏孫)은 본래 색(塞)땅이었는데 대월씨(大月氏)가 서쪽에서 색왕(塞王)을 격파하자 색왕(塞王)이 남쪽 현도(縣度)로 넘어갔고 대월씨(大月氏)가 그 땅에 거주했다. 후에 오손(烏孫)의 곤막(昆莫)이 대월씨(大月氏)를 격파했음으로 대월씨(大月氏)는 서쪽으로 이동해 대하(大夏)를 복속시키게 됐다. 오손(烏孫)의 곤막(昆莫)이 여기에 거주하게 되자 오손(烏孫)의 백성들 중에는 색(塞)의 종족이 있고 대월씨(大月氏)의 종족도 있다고 한다.(漢書, 卷96, 西域傳, 烏孫國條 참조).
 
한무제(漢武帝)는 하서(河西)로부터 흉노를 격퇴 한 후 오손(烏孫)을 하서(河西)에 불러 들여 흉노를 막고 또 서역(西域)과 무역로를 확보하려고 서기전 106년 장건(張騫)을 오손(烏孫)에 대사로 파견했다. 오손(烏孫)왕 곤막(昆莫)은 흉노 사이에 중립을 취하려고 했다. 오손(烏孫)왕은 한(漢)이 옹주를 왕비로 시집보내자 이를 우(右)부인으로 삼았다. 이를 본 흉노가 공주를 시집보내자 오손왕은 이를 좌(左)부인으로 삼았다고 했다.(史記, 卷123, 大宛列傳, 참조).
 
위서열전에는 오손(烏孫)이 적곡성(赤谷城)에 살다가 연연(蠕蠕), 유연(柔然)의 침략을 받고 서쪽으로 이동해 총령(葱嶺, 파미르고원)의 산속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 후 오손(烏孫)이 어떻게 됐는가는 중국문헌에서 사라졌는데, 유연(柔然)과 함께 중앙아시아 및 유럽역사에 다른 이름 표기로 등장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신용하 논문 50~51면 참조·인용>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의 통치체제’, 고조선학회 '고조선 연구 제1호 소수(所收)',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윤내현· 박선희·하문식 공저 ‘고조선의 강역을 말한다’,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백원 김백룡 원저·단동 김정일 편저 ‘天符經’,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김세환 ‘고조선역사답사기’ ‘동남아유적지를 찾아서’ ‘노을속의 메아리’,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Joseph Eidelberg 著·中川一夫 譯 ‘大和民族はユダヤ人だった’,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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