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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이 잡은 개발시대인 1970~80년대 영업시장에서는 책 외판원이 유행했다. 그 중에서도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웬만한 국민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책 외판의 대명사였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으면서 가장 무시 받고 천대받는 영업직종이 책 외판사원이었다. 이런 상황이어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20대 시절 브리태니커 입사 한 달 만에 전국왕, 1년 만에 글로벌 판매왕에 오르는 영업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후 1980년 직원 7명의 작은 사무실로 사업깃발을 든 그는 단 10년 만에 국내 최대출판사의 꿈을 완성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는 다시 책장사만큼 무시당하는 물장사(웅진코웨이) 사업에 뛰어들어 대박을 또 낸다. 윤 회장은 한때 IMF 위기를 겪었으나 다시 승승장구하면서 무서운 독식으로 몸집을 부풀려 창업 30여년 만에 재계 32위의 그룹을 일구었다. 창업 이후 한 번도 성장곡선을 꺽지 않으면서 커온 웅진그룹이다. 이는 곧 윤 회장의 격렬한 심장과 멈출 줄 모르는 엔진으로 비유됐다. 창업 오너십이 가장 강력하게 주입된 그룹이라는 평가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둔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재계 인사들의 귀띔이다. 한 재계 회장은 스카이데일리와 만나 “밑바닥부터 큰 사람이지만 최근 들어 너무 서두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결국 무리하게 인수한 극동건설이 제1파도로 덮쳐오는가 싶더니 서울저축은행이 제2의 측면파도로 넘실댔다. 윤 회장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미래산업인 태양광에 힘을 기울였으나 그 조차 제3의 측면파도가 돼 운명처럼 그를 덮쳤다. 윤 회장은 결국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을 법정관리 신청하는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그의 자존심상 법정관리는 의외였다. 재계에서는 재기를 위한 몸부림이라는 시각이 대세다. 스카이데일리가 재계 지근거리 인사들의 평가와 평판 등을 종합해 그의 살아온 인생역정과 사업경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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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에 있는 웅진그룹 본사 사옥(위). 웅진홀딩스와 자회사 극동건설이 26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전해지자 직원들일 어수선한 가운데 삼상오오 모여 앞일을 걱정하고 있다.
▲ 사진=김신기자 ⓒ스카이데일리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자회사인 극동건설과 함께 26일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한 것은 단순히 한 기업의 경제사건이라는 측면 보다는 창업주 ‘윤석금의 사건’으로 앵글을 줌업(zoom up)해 봐야 한다.
웅진은 유수의 국내 재벌 창업주 오너기업 보다 훨씬 강력한 오너십으로 삽시간에 재벌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에 ‘웅진은 곧 윤석금’이라는 끈끈한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 단 7명의 직원으로 창업한 뒤 30여 년간 단 한 번도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 오늘의 재계순위 32위를 만든 웅진의 성장신화는 사실 전무후무한 일로 여겨진다. 웅진의 성장기인 1980~90년대는 앞선 60~70년대의 개발시대와는 달리 재벌기업의 ‘이너써클’로 들어가는데 한계가 많았던 탓이다.
윤 회장이 맨주먹 사나이, 뚝심의 열정맨, 긍정의 에너지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7명 출발한 ‘하꼬방 회사’가 10년 만에 국내 최대 출판사
남대문로 대우빌딩의 작은 공간에서 출판사로 시작한 소위 ‘하꼬방 회사’가 오늘의 재벌기업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이처럼 윤 회장의 멈출 줄 모르는 강인한 사업정신과 불굴의 의지가 독특하게 배어 있다.
윤 회장은 출판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형출판사가 꿈이었다. 그는 목표를 세우면서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를 내던지고 반드시 이뤄내 온 도전신화는 바로 출판사부터 시작됐다.
▲ 위기에 빠진 웅진그룹의 지주회사 웅진홀딩스 사무실에는 법정관리 신청일 당일 임직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웅진이 오늘날 교육출판, 환경생활, 가전, 에너지, 건설·레저, 소재, 식품, 금융, 태양광 등까지 전 산업을 아우르는 재벌로 성장한 배경은 이처럼 끝없이 샘솟는 불가능에 대한 성공믿음이라는 윤석금 회장의 남다른 열정과 그것을 뒷받침 하는 뒷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28개 지주회사에 6조1000억원의 매출을 시현했다. 3년 뒤인 오는 2015년에는 두 배에 달하는 매출 15조원, 영업이익 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2010년 4월 1일 윤 회장이 창립 30주년을 맞은 기념식 자라에서 선포한 자신과 회사의 약속이자 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안타깝게 ‘만우절의 약속’이 될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충남 공주 태생인 ‘빈농의 아들’이 만든 대한민국 재계의 신화가 자칫 꺼질 우려가 있다. 20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브리태니커백과사전 외판사원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행로가 막바지 최대의 시련에 봉착했다.
‘빈농의 아들’ 신화 끝내 좌절하나
윤 회장은 20대 외판사원 시절에 입사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국내 판매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뛰어난 영업수완은 멈추지 않고 계속돼 1년 뒤에는 전 세계 판매왕을 차지하는 ‘끼’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 윤 회장의 성공신화를 상징하는 웅진의 옛 사옥 전경.
‘방문판매의 달인’, ‘외판의 고수’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하지만 전두환 전 정권 시절인 1980년 과외가 일절 금지되자 윤 회장은 오히려 사업의 꿈을 키웠다.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녹음해 파는 판매사업이 그의 첫 삽이었다.
그가 세운 대우빌딩 소공간의 헤임터내셔널은 오늘의 웅진그룹을 있게 한 씨앗이 됐다.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대형출판사로 발동움하자 사명을 웅진출판으로 바꿔달고 본격적인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다.
1989년 설립된 웅진코웨이는 윤 회장에게 또 다른 도전이자 성공의 좌표였다. 스카이데일리가 윤 회장을 잘 아는 재계의 지인들을 지근거리에서 확인해 본 그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조직의 대부’라는 것이다.
▲ 자료:웅진그룹 홈페이지 ⓒ스카이데일리
재계의 한 창업회장은 스카이데일리와 만나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은 특유의 영업정신도 있지만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는 이어 “영업정신이 몸에 배 있는 탓인지 아주머니들의 현장영업을 진두지휘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윤 회장은 ‘바닥부터 긴 외판사원’ 답게 여성의 심리를 꿰뚫는 독심술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또 다른 재계 회장의 설명이다.
▲ 자료 : 금감원<2012년 6월 기준>
혹자는 이를 두고 돈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하는 비하를 하고 있으나 이는 단순히 겉만 본 것이라는 평가다. 윤 회장은 돈을 쫒기보다 사람과 인맥을 중시한다는 것이 재계 지근인사들의 전언이다.
그는 영업 3D중의 하나인 정수기 시장의 발판을 닦았으나 IMF 위기를 피해나가지 못한다. 이에 윤 회장은 당시에도 특유의 영업정신으로 나온 아이디어를 사업에 접목시켜 위기를 돌파한다. ‘렌털 사업’이 그것이다.
이는 1986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웅진 아이큐’와 유사한 윤 회장만의 렌털 작전이었다. 당시 책은 할부구매가 대세였기 때문에 윤 회장은 항상 자금난으로 어려움에 처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학습지 사업이었다.
학습지는 연 회원제를 통해 선납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기 구독료로 150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윤 회장은 ‘렌털의 맛’을 익히 알던 터였다. 웅진코웨이 렌털 사업은 그렇게 성공의 발판을 탔다.
3D 영업업종 중에서도 가장 무시 받는 업종이었던 책장사와 물장사는 이처럼 영업의 달인이라는 잔뼈와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탕이 돼 이뤄낸 ‘재계의 거사(巨事)’로 평가될 만한 일이었다.
극동건설 위기에 저축은행·태양광 삼각파도 덮쳐
하지만 윤 회장 특유의 승부사 근성은 극동건설을 인수할 당시부터 다소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려의 시선으로 바뀌었다. 무리한 외형 확장도 ‘지나치다’는 평판이 잇따랐다.
▲ 웅진그룹 로고
윤 회장은 극동건설 인수시 6600억원에 달하는 무리한 인수대금 외에도 4400억원을 더 쏟아 붇는 무리수를 두었다. 결국 그룹의 주력회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해 숨통을 터보려 했지만 이 조차 ‘될 듯 말 듯’ 하기를 반복하다가 여의치 않았다.
▲ 웅진그룹 사업영역(2010) ⓒ스카이데일리
극동건설이 이처럼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주역이었다면 서울저축은행은 이에 일조한 보조역할을 했다. 서울저축은행은 윤 회장이 사재 800억원까지 총 3000억원을 정상화에 투입했을 정도로 힘들게 했다.
여기에 미래사업의 청사진을 꿈꾸며 도전한 태양광 사업은 목표는 맞지만 현실은 맞지 않는 비전이었다. 웅진폴리실리콘과 웅진에너지를 쌍두마차로 내세워 미래에 도전한 윤 회장의 꿈은 앞서 극동건설과 서울저축은행이 휘청이면서 위험한 삼각파도가 돼 돌아왔다.
두 회사는 폴리실리콘 가격의 하락이라는 수지위험은 물론 수요감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업혼이 깃든 웅진코웨이를 버리면서까지 잡으려 했던 미래 태양광이 이처럼 윤 회장의 발목을 더불어 잡았다.
하지만 윤 회장의 재기의욕은 아직도 남아 있어 보인다. 윤 회장에게는 최악의 자존심 상처라는 법정관리 신청이 재기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 아니냐는 것이다. 극동건설이라는 부담을 털어내고 활로를 찾아보고자 한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IMF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온 윤 회장은 이후 M&A의 귀재로 불릴 만큼 무서운 독식으로 몸집을 부풀려 왔다. 본래 사업은 ‘서두르지 말라’, ‘욕심내지 말라’라는 상투적인 언어가 있지만 윤 회장은 언제부터인지 이를 외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한 재계인사의 전언이다.
▲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진 웅진 사옥 인근에는 걱정하는 직원들의 근심어린 표정이 이어졌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초심을 잃고 확장욕을 무리하게 부리면 그동안 도와주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먼저 떠난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이 같은 ‘저주의 철길’에 무섭게 돌진한 ‘M&A 기관차’ 웅진그룹은 끝내 막다른 철길에 와 있다.
샐러리맨들의 꿈이자 이상인 윤 회장이 그의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의 신념과 같이 또 다른 긍정의 신화를 써 위기를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 ‘샐러리맨 재벌’ 윤석금 회장의 위기는 비단 그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이상으로 여기는 한 ‘성공한 영혼’의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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