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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정확히 한 달을 남겨두었다. 안철수·문재인 두 후보의 단일화 여부가 대선 최대 이슈로 부각된 가운데 박근혜 후보는 민생행보를 통한 초심잡기로 표밭을 누비고 있다.
이번 대선판도는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이 ‘양자대결’ 아니면 ‘삼자대결’ 구도에 달려 있다. 이를 지켜보는 박 후보 입장에서 보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대결구도다. 항간에는 누구 한사람이 피격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 정도다. 양자대결 구도가 정해진다면 이변이 없는 한 박 후보는 패배의 쓴잔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민생행보’라는 초심 이외에도 특단의 대책으로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래서 계속 제기된다. 안·문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한다는 전제 하에 대선구도의 승세를 이끌어야 할 ‘박심의 진짜 구도’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박 후보가 그 노정의 하나인지 아니면 회심의 카드인지 모를 비전을 하나 꺼내들었다. ‘국민행복 10대 실천공약’이 그것이다. 박 후보가 지난 18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비전선포식에’에 전격 내놓은 실천공약은 ‘이슈’로만 보면 그동안 나온 내용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사실 주목되지 않는다. 다만 대단히 주목되는 것은 이 공약에 투입될 천문학적 예산액과 쓰임새다.
박 후보가 제시한 투입예산은 매년 평균 27조원에 달하고 5년간 총 135조원에 이른다. 이른바 ‘국민행복 재원’의 천문학적인 밑그림이다. 표밭을 의식한 나라살림 씀씀이 계획치고는 역대 최고라고 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재원마련 방안이다. 이를 의식한 듯 박 후보는 개략적이나마 재원마련 계획을 몇 가지 내놨다. 국민부담을 최소화 하는 ‘알뜰한 나라살림’을 하면서 재원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이니 국민 입장에서는 언뜻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민행복 재원에 필요한 수입·지출표인 소위 ‘국가 가계부’를 작성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모종의 세부 그림이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 박 후보는 정부재정도 아끼고 공약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의 씀씀이’를 아끼면서 ‘공정한 조세를 통한 세수 증대’를 내세웠다.
우리는 이 방안이 나온데 대해 조목조목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부예산의 낭비적 요소와 중복예산을 줄이고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는 ‘세출구조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늘상 제기돼 온 해묵은 과제다.
정부예산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이 새는 것을 막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 범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낭비와 중복이라는 기준은 각 부처나 지자체 등의 사업명분에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울러 이 일을 하는 주체도 정부가 아닌 국회가 하는 일이다. 정부는 사업을 벌이는 입장이고 국회는 국민 혈세를 아껴 써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박 후보의 약속은 현실적으로 허언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재원마련을 위한 방안으로 밝힌 조세부문도 그렇다. 박 후보는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보다는 투명하고 공정한 조세개혁과 세정강화를 하겠다고 했다. 누락되고 탈루되는 세금을 제대로 거두겠다는 것인데, 이 역시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나온 빛 바랜 공약이다.
공정한 조세개혁의 범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금의 경제민주화 분위기를 보면 그 의미는 결국 ‘부자증세’다. 과연 박 후보가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자와 보수층들을 향해 선거가 끝나고 ‘토사구팽’을 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 후보는 또 복지지출의 누수나 유사·중복지출을 막겠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 복지지출에서 실효성을 높이는 것을 ‘복지행정 개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복지지출의 누수가 과연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려면 결국 복지예산 전체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복지부문은 많이 지급하면 할수록 좋다는 인식 때문에 누수·중복의 기준이 더더욱 모호한 탓이다. 과연 줄일 수 있을까.
공공부문 소유자산과 부채 관리도 효율화 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약속도 뜬구름 잡기 식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는 천문학적인 부채의 늪에 빠져 있는 공기업들을 염두에 둔 약속인 듯 보인다. 책임경영 확대를 통해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 문제와 개혁도 숱하게 나온 과제 중 하나다. 역대 어느 정권도 공기업에 제대로 칼을 대지 못한 이유를 박 후보가 과연 모를까. 공기업은 선거후 논공행상에서 꼭 필요한 ‘떡고물 자리’라는 점에서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 측근관리 차원에서라도 절대 칼을 대지 못하는 구조가 일상화 돼 왔기 때문이다.
공기업 칼질을 제대로 하려면 박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그 어떤 조직이나 자금도 지원을 최대한 받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공기업 수장을 노린 수많은 벌떼가 벌써부터 새누리당 근처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진동하다는 이야기가 떠돈다는 것을 모르는가.
이런 점들을 뜯어보면 매년 27조원이라는 거대한 예산을 만들겠다는 박 후보의 스케치는 진정성을 묻기에 앞서 말 그대로 스케치 같다. 시도는 해보겠지만 현실성이 없어 한마디로 기대난망이다.
우리는 박 후보가 현실성 있는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했으면 한다. 그것은 표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기에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진정성 있게 사랑하는 ‘국가의 가장’이 되려면 가족 같은 국민들에게 먹기 좋은 단 것만 주어서는 안 된다.
가장은 가족이든 국민이든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 아픈 채찍을 들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채찍을 맞은 뒤에는 어떤 희망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2만불 시대에서 어떤 아픔을 겪으면 3만불, 5만불 시대를 만들 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아픔을 수반한 국민 모두의 노력과 땀이 수반되면 그 비전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재탕삼탕의 약속은 비전도 아니고 약속도 될 수 없다.
박 후보는 지금 아버지 박정희가 가졌던 ‘조국 근대화’와 같은 뚜렷한 비전이 없이 온통 표에만 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국가의 장래가 자칫 누란의 위기에 빠질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과연 박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맞는가. 대통령이 될 욕심에만 똘똘 뭉쳐 국민을 허약한 콩나물처럼 만들려고 하는가.
‘국민 걱정 반으로 줄이기 4대 약속’에서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22만 금융채무불이행자를 위해 신용회복 신청자의 빚 50%를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해당자들에게는 ‘꿀 중의 꿀’이다. 나아가 기초수급자처럼 더 어려운 해당자들에게는 70%까지 빚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농어촌 지원시 수조원을 들여 농민부채를 탕감해 주었지만 오히려 농민부채가 눈덩이처럼 증가한 전례를 박 후보는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다. 빚을 탕감해 주면 당장은 좋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진 부채들이 더 늘어나게 된다. 나아가 부채를 진 사람들도 어려움을 이겨내기보다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흔하다.
5살까지의 아이에 대한 국가 무상보육체계도 반드시 해야 할 이상적 과업이지만 시기가 중요하다. 오랜 준비 끝에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일을 급조한다면 말 그대로 돈 잔치만 될 뿐 실효성 없는 보육정책이 될 공산이 대단히 크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대학등록금 부담을 반값으로 낮추는 것도 대단히 보기 좋은 선물 꾸러미다. 하지만 야당과 색깔이 없는 것을 내놓은 것은 국민 돈으로 돈 잔치를 벌여서라도 표를 얻겠다는 값싼 대응 아닌가. 박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셋째 자녀부터는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하겠다고까지 했지만 이 또한 표를 의식하기에 앞서 중장기 대책으로 수립해 나가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너무도 분명하다. 아니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박 후보는 아버지의 ‘공’을 잊으면 안 된다. 독재자·살인자라는 욕을 먹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굶어죽는 나라를 구제한다는 일념으로 국민들의 희생과 땀을 주문한 것은 대단히 하기 힘든 ‘공’이다.
박 후보가 독재자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과’만을 씻어내기 위해 막말로 ‘사탕발림 표나 의식하는 후보’를 자처한다면 지하에 있는 아버지가 통탄할 일이다.
국민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아낀다면 아픈 말을 해주고 그 아픔의 대가로 만들어질 미래의 과실이 무엇인지를 박 후보는 제시해야 한다. 산고가 없는 과실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 박 후보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에 돌을 던지면서까지 표를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과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후보인지 딸의 입장에서 먼저 자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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