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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우리와 중국을 비교하며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가장 잘할 것 같은 나라가 한국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가장 잘할 것 같은 나라가 중국이라는 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표면적으로 한국은 자본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을 채택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1979년 개혁·개방 이후 사유재산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오다가 2007년 물권법이 발효됐다. 이후 토지 공개념의 골격은 유지되면서도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자본주의적 요소의 도입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폐해가 있지만 경제에 지속적으로 성장 동력이 생겨나게 하는 긍정적 작용을 하고 있다.
1세대 창업자들의 성공 신화가 이어지고 있고 창업으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젊은 창업자들로 넘쳐난다. 외형만 보면 그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 지도자와 신흥 자본가 간의 적절한 타협과 협력을 통해 모순을 극복해 나가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중국 특색(特色)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성장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분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먹고 살만큼 경제가 좋아졌으니 이제는 파이를 나누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복지에 초점을 맞춘 북(北)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론이 한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인구 500∼1000만 정도의 이들 국가가 채택한 모델을 인구 5000만의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틀린 발상이다. 부분적으로 이들의 복지 모델을 도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 논쟁거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성장 동력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경제적 파이가 창출돼야 분배를 지속적으로 늘려갈 수 있는 구조다.
지구상에서 잘 나가는 나라들을 보면 대체로 자국의 형편에 맞는 국가 경영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체형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온갖 포퓰리즘을 남발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후에나 결국 당초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허다하다.
흔히 강한 중소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로 독일과 일본을 꼽는다. 사실 이들에게는 100∼200년이나 된 장수기업 혹은 알짜기업들이 많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3위 내에 들어가는 ‘히든 챔피언’ 혹은 ‘강소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이 두 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이 강한 이유는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이 있긴 하지만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하부를 튼튼하게 받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직접 견학도 하고 관련된 보고서도 다양하게 낸 바 있다. 아직 일본이나 독일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토종 강소·중견 기업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고 있기도 한 실정이다.
요즘 우리 강소·중견 기업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50년, 100년 혹은 그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으로 존속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뜨거운 이슈가 바로 과다한 상속세 문제다.
한국의 상속세는 세계 1위 수준으로 최고 50%며 대주주의 경영 승계권에 대해서는 30%의 할증이 추가돼 최고 65%까지 올라간다. 대표적 ‘불로(不勞)소득’으로 분류되는 상속세에 대한 과세는 정당하지만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상속세 명목으로 국가가 너무 과다하게 징수한다는 비난과 ‘이중(二重)과세’이자 ‘약탈적 행위’라는 비판도 크다.
완전고용·인구절벽 등 독일·일본도 기업승계 단절…제조업 경쟁력 후퇴 위기
우리의 상속세 수준은 독일의 10배, 일본의 5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과 비교할 때 2배나 높다. 이로 인해 상속을 포기하고 경영권을 파는 기업들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국내 혹은 글로벌 시장 선두권 기업들인 쓰리세븐·농우바이오·유니더스·락앤락·휴젤 등이 이 같은 행보를 나타냈다. 아쉬운 점은 기술력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편법 상속이나 경영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다. 비(非)상장사를 내세워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적정 가격 이상의 대가 지급 같은 행태도 생겨난다. 이들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글로벌스탠다드와 괴리감 있는 과다한 상속세에서 기인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맞춰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절해야할 시기다. 미국이나 일본을 위시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상속세 폐지 혹은 감면이나 완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나가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들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어느 쪽이 더 국가 경제에 이익이 되는 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최근 독일이나 일본도 걱정이 태산이다. 상속세와는 다른 문제가 추가적으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업 승계가 여의치 못한 틈새를 비집고 선진 기술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기업들이 이들을 인수하려고 안간힘이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 불리는 가족 소유 독일 중소기업들이 경영 승계자를 찾지 못해 중국 등 외국 기업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완전고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다 인구 절벽으로 가족 기업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소위 ‘세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으론 후세들이 어렵고 도시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제조업 경영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악의 경우 2022년까지 30만여 개의 미텔슈탄트가 폐업해 일자리 160만 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1∼2위 국가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만 봐선 안 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로 엄청난 문제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상속세를 손질하고 기업의 동물적 야성(野性)이 계속 살아날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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