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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섭의 재테크 전망대

자본주의 노예 벗어나려면 자본가 돼야한다

임금노동자가 노예라는 사실 자각해야…빚이 클수록 노예와 가까워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11-05 12:02:07

▲ 김장섭 JD 부자연구소 소장
노예란 무엇일까요? 노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일만 못하는 게 아니라 행동, 시간을 주인에게 구속 받는 사람이죠. 근무 시간에는 근무와 관련없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행동을 하면 그것은 짓이 됩니다. 다른 짓은 자본가나 자본가가 심어놓은 관리자에 의해 발각이 되고 발각이 되면 굳이 그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노예로서의 삶도 포기하고 공동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는 공동체에서 벗어나면 실업자가 되며, 실업자는 굶주림이라는 생활고를 겪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뛰어 넘어 일을 통해 다른 노동자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죠. 가치를 인정받아야 노동자로서의 삶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자신의 여가 시간까지도 반납하게 만듭니다. 여가시간이란 근무시간 외의 시간을 말하죠. 여가시간에도 싫어하는 회식, 주말 등산, 워크숍 등에 참석해야 합니다.
 
예전에 노예가 되는 길은 3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전쟁으로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전쟁에서 패한 국민은 승전국의 노예가 됐죠. 둘째 빚으로 노예가 됐습니다. 빚이 많아지면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도리가 없다면 그 사람을 노예로 삼는거죠. 노동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노예가 됐습니다. 그래서 노예는 어느정도 신분사회가 고정이 되면 대물림됐죠.
 
예전에는 자신이 노예인지 아닌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자신이 노예인지 모릅니다. 노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러나 노예가 되는 길은 예전의 노예가 되는 길과 대동소이합니다.
 
첫째 전쟁에 패한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전쟁은 무엇인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노예가 될 것인지 주인이 될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노동자가 되면 노예가 되는 것이고 자본가가 된다고 생각하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되는 길이 순탄할리가 없죠. 누구도 말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대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에서 아무 자본도 없이 자신의 아이디어 하나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길은 좁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하면 노예에서 벗어납니다. 비로소 주인이 되죠. 그러나 현재 주인의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한눈을 파는 순간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죠.
 
중소기업 신화를 이뤘다가 바로 법정관리에 파산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하는 자본가라 하더라도 사업은 자신이 하지만 재산은 아내의 명의나 자식의 명의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나 모를 사업실패에서 본인만 신용불량이 되고 감옥에 가더라도 빼돌린 재산이 있다면 자본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대기업은 다를까요? 우리나라에서만 대기업이지 세계적으로 보면 중소기업인 경우가 흔합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대기업이라 하면 삼성전자, 현대차 등등 몇몇을 빼고 나면 어디가 있나요? 그러니 우리도 전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에 기준에 맞춰보면 그냥 다 중소기업입니다. 그러니 이런 기업들도 코닥, 모토롤라,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죠. 그러니 아무리 자본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영업자라면 자본시장에서 패자가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임금 노동자가 되고 임금 노동자는 노예의 다른 말이죠. 임금노동자는 노예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노동을 돈을 주고 파는 것이 다르죠. 노예는 노동뿐 아니라 인격까지 파는 것이 노예입니다. 그러니 임금노동자가 갑질에 격분하는 이유는 자신이 판 것은 노동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신이 팔지 않은 인격까지 무시 당했을 때 격분할 수 밖에 없죠. 지금의 한진일가와 같은 자본가는 멍청하고 시대착오적입니다. 진정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인격을 소중히 다루면서 노동을 최대한도로 끌어 올리는 것이 진정한 자본가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중국의 오기와 같은 장군이 진정한 자본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오기는 오나라 사람입니다. ‘吳子’라는 벙법서를 남긴 유명한 사람이죠. 그는 노나라 사람이었지만 노나라에서 푸대접받았습니다. 위나라 문후가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섬겼습니다. 오기와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된 吮疽之仁(연저지인)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는 어짐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기는 장군이 되자 늘 솔선수범했습니다. 그는 가장 서열이 낮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먹었습니다. 잘 때도 바닥에 자리를 깔지 않았죠. 행군할 때도 수레나 말을 타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식량도 손수 가지고 다녔습니다. 오기는 부하들을 믿고 사랑했으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습니다.
 
언젠가 어떤 병사가 몸에 심한 종기가 났는데 오기가 입으로 직접 그 종기의 고름을 빨아 낫게 해 줬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병사의 어머니가 소리 높여 슬피 울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람이 말했죠. “그대 아들은 보잘것없는 한낱 병사이나 오기 장군이 몸소 그 독한 종기를 입으로 빨아 줬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리 소리 높여 슬피 우십니까?” 그러자 병사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독한 종기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오기 장군이 그 독한 종기의 고름을 손수 빨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감동하여 전쟁터에서 물러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마침내 적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기 장군이 이번에 또다시 아들의 심한 종기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미는 제 자식이 열심히 싸우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게 됐습니다. 그래서 소리 높여 슬피 우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본가란 임금노동자의 최대한의 노동을 정신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면에서 한진일가는 천박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습니다. 천박은 무식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식하다는 말과 돈이 만나야 천박이라는 단어가 형성됩니다. 즉 무식이 돈을 만나면 그것이 천박하다는 것이죠. 노예가 되는 길의 첫 번째 예는 자본가가 되려 하다가 시장에서 싸움에 패하고 임금노동자가 되는 길입니다.
 
둘째 빚으로 노예가 됩니다. 빚은 그 자체로 사람을 노예로 만들죠. 빚을 못 갚아서 노예가 되기도 하지만 빚을 내는 순간부터 우리는 빚의 노예가 됩니다. 왜냐하면 빚을 갚지 않는다면 신용사회에서 퇴출당하기 때문이죠. 신용사회에서 퇴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퇴출과 같은 말입니다. 빚을 못 갚아 은행권에서 월급에 차압이 들어오는 사람을 써줄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면 필사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빚을 권하는 사회죠. 빚을 지고 있어야 진정한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상가 세입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상가를 사무실 용도로 쓰고 있는 사람이 사업이 안 되었을 때 빨리 옮길까요? 음식점의 용도로 쓰고 있을 때 빨리 옮길까요? 당연히 사무실 용도로 쓰고 있을 때 빨리 옮깁니다. 왜냐하면 인테리어 비용, 권리금과 같은 고정비가 안 들어갔기 때문이죠. 그래서 음식점을 하는 세입자는 고정비용을 뽑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장사가 안 되더라도 장사를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호구가 나타나 자신의 가게를 인수해 줘야 그 곳에서 해방이 되죠.
 
그러면 집을 예로 들어보죠. 강남에 대출을 많이 끼고 산 집주인은 자본가인가? 노예인가?
강남에 집이 있으니 자본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빚을 많이 지고 있다면 그는 빚의 노예입니다. 10억 짜리 집을 대출 9억을 받아서 이자 600만 원을 내고 있다면 그가 집주인가? 아니면 은행이 집주인인가? 당연히 은행이 집주인입니다. 그러니 빚을 많이 지면 질수록 더 확실한 노예가 됩니다. 바로 빚의 노예입니다. 600만 원의 이자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눈 팔 새가 없습니다. 열심히 노동을 팔아 그 이자를 감당해야 하죠. 빚이 크면 클수록 더 강도 높게 일을 해야 하며 주말이고 명절이고 없습니다. 놀 새가 어디 있나요?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이자 갚아야지. 이자를 갚지 못한다면 바로 신용사회의 퇴출과 자본주의 사회의 퇴출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빚이 크면 클수록 더 큰 노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강남에 대출이자 600만원을 갚을 정도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 전문직, 대기업, 공무원 등의 좋은 직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는 노동으로서 돈을 더 많이 버는 노예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빚이 크면 클수록 노동의 강도는 더 심해집니다.
 
그는 왜 강남에 빚을 지고 집을 샀을까요? 빚을 지고 사도록 사회에서 유도한 것은 아닐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따라하기 소비와 부유층의 소비행태를 매스컴을 통해 보여주고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쓰는 삶이 행복이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러기에 돈을 더 많이 벌수록 더 많은 빚을 낼 수 있고 더 많이 빚을 내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을 더 럭셔리한 삶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죠. 사회제도는 이런 것을 뒷받침 해주는데 전문직, 대기업의 대출한도가 더 높은 것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대출한도가 높을수록 내 여가시간은 극도로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나는 그 빚으로 인해 자발적인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큰 빚은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큰 빚은 부동산에서 나옵니다. 부동산은 외풍으로부터 취약하죠. 그 취약함은 1997년 IMF와 2008년도 금융위기 때 알게 되지 않았나요? 강남의 그 큰 부동산이 반토막이 나는 경험을 말이죠. 나중에 부동산을 시작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13억짜리 은마아파트가 6억5천까지 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담보대출의 한도가 떨어져 갭투자를 한 사람들의 눈 앞엔 지옥이 펼쳐집니다.
 
수 억 원의 담보차액을 한 순간에 갚아야 하는 경우가 벌어지기 때문이죠. 한 순간에 그런 큰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갭투자했던 종자돈은 하루 아침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죠. 전세를 끼고 샀어도 역전세난이 일어나면 이것은 신용의 위기와 다름 없습니다. 세입자가 경매에 집어 넣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빚을 지지 않고 강남 아파트를 사면 그는 노예가 아닙니다. 자본가죠. 그런 자본가들에게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합니다. 은행의 VVIP 기준은 현찰 40억 이상 예치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러면 은행은 VVIP로 대접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더 빌리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은 적은 빚으로도 충분히 노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강남의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아파트를 사려면 빚을 얻어야 하고 자본주의는 빚으로 그를 구속합니다. 어차피 빚을 갚아야 하고 빚을 갚으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을 지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사회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저축액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용이 쌓이는 것은 빚을 지고 그 빚을 성실히 갚으면 됩니다. 그래서 신용도 1등급은 빚을 많이 지고 빚을 수 년간 꾸준히 갚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야 카드도 만들고 카드를 통해서 돈 없이 소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죠.
 
세번째는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흔한 예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그는 자연스레 임금노동자가 됩니다. 최고의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좋은 학교, 전문직이 될 수 있는 과에 진학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임금노동자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렇게 임금노동자가 됐어도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노예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노예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자신이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누군가를 위해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지를 모를 것이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왜 임금노동자로 태어났으며 임금노동자로 죽는지를 모르고 죽습니다. 그러나 노예임을 자각한다면 그것은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엇인가를 비로소 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노예가 되는 길은 쉽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행동하면 됩니다. 돈을 쓰고 허비하면 되고 남들 따라 부동산을 사면 됩니다. 책을 보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며 시간을 물쓰듯 쓰면 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노동능력이 떨어질수록 살아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그제서야 왜 자신이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게 되죠. 그러나 그것도 생각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면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 주인의 길로 가는 길은 어떤 걸까요? 이것에 대해 답한 위대한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한 말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디어로 기업을 세우는 겁니다. 둘째 여자로 태어나 신데렐라와 같이 자본가와 결혼하는 것이죠. 셋째 자본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즉 금수저로 태어나는 거죠. 넷째는 투자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스톨라니는 자본가가 될 아이디어가 없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고 자본가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자신은 투자자가 됐다고 얘기했습니다. 투자자가 되는 길은 우량한 주식을 사서 평생을 모으는 길입니다. 그리고 빚을 지지 않는 것이죠. 차근차근 모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모아 자식에게 주면 자식은 자본가의 자식이 됩니다.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세 가지입니다.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빚을 지지 않으며 자본가로 죽으면 비로소 인생의 주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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