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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 인문책방

내 언어세계 바깥의 충격과 공포…트라우마

인문학 키워드 - 무의식과 트라우마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11-03 13:04:19

▲ 문화평론가 고태경
심리학이 유행하는 이 시대만큼 ‘무의식’과 ‘욕망’에 집중하는 시대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대체 무의식이란 어떤 것일까.
 
무의식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도 엄격한 개념정의 없이 사용되곤 한다. 예컨대, “아침에 방에서 일어나면 너무 몽롱해서 무의식 상태인 것만 같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때의 무의식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 사리구별이 불분명한 상태 정도를 뜻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의식이 모호하거나 없다는 것으로,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미가 대체로 이러한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정의에 다다를 수 있다. 개념의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어떤 이론보다도 무의식의 개념을 엄격하게 정의한 것은 정신분석학임이 분명하다. 여기서는 정신분석학의 정의에 집중해 보자.
 
무의식과 언어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언어와의 관계에서 정의내릴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무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식의 표상은 사물의 표상과 그 사물에 속하는 언어표상을 다 포괄하고 있는 반면에, 무의식의 표상은 사물표상 하나만을 포함하고 있다.”
 
다소 어려운 문장 같지만, 뜻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다. 인간은 말을 하는 동물이고, 자연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의미와 이미지의 망을 통해 직조된 세계다. 언어표상이라 함은 이러한 의미의 망들을 일컫는다. 인간의 의식은 자연 사물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추상화된 의미망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언어화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어떤 통증이나 증상이 존재한다. 우리는 사회의 생존경쟁 속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고, 고립감과 함께 깊은 우울감을 느끼곤 한다. 특정 이미지의 누군가를 보면 이상하게 공포감이나 거부감이 생기며,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때 병에 걸린 것처럼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아우슈비츠 수감생활의 기억을 되새길 때 극심한 심리적 불안을 느낀다고 하며, 성폭력 피해자들과 고문 피해자들 역시 가해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사물 표상이라 함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사물’, 즉 물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통증이나 증상처럼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과 관련한 이미지들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언어 바깥의 세계, 혹은 언어의 결핍점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눈앞에 있는 쇳덩이는 우리가 보통 ‘노트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트북이 타임머신을 타고 수세기 전 한반도에 떨어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나가던 누군가는 노트북이라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릴 수도 있고,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점에 놀라 신의 선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의 언어 속에 ‘노트북’이라는 관념이 없다는 것, 자신들의 언어세계 바깥에 있는 것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과 트라우마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 나치즘의 폭력을 회고할 때,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 폭력의 극단성이 이들의 언어세계 바깥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자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세계의 고결함이나 교양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자신이 한없이 하찮아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인간의 정신세계는 손상되며 내면에 내상이 남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 내상의 기억과 마주하지 않고자 하는 경향에 의해 지배된다. 그 기억을 적극적 의미에서 거부한다기보다 다른 거짓 이미지를 가져와 스스로를 속이며 자아를 보호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렇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유명 연예인들이 사실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기부 등의 자선행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 ‘선행’이 모두 비즈니스적 동기에 의한 것일 뿐이라면, 우리 삶은 얼마나 하찮은 것이 될까? 우리는 노력을 해도 ‘중산층’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내가 중산층도 못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앞서 인용한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오면, 무의식은 언어화되지 않는 이 폭력의 요소들(즉, 사물표상)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의식의 세계에 나타난 이미지와 그 의식 이면에 놓인 혼동/폭력의 요소들 사이의 타협물이다. 무의식이 포함하는 것은 의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식될 수 없었던 것, 의식되는 순간 내상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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