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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87

일본은 삼국사가 아시아 역사임을 알고 왜곡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 우리의 정신이 바로 선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11-03 13:12:05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금 우리나라 역사교재에 나온 역사와 용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민족의 개념과 영역개념의 무지가 그대로 들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말살하는 가장 써서는 안 될 용어 선택이 어디가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실려 있다. 이는 저자들의 무지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음은 사학자들의 각성이 요구되는 바이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의 석학들도 동경하고,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가라, 신라, ()가 대륙에서 그 시원(始源)된 역사가 시대에 따라 발전하고 각기 그 국호와 백성의 호칭도 각기 달랐는데 지금 우리는 다 한민족(韓民族)’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상고(詳考)해야 할 문제는 한민족이라는 말은 역사인식과 민족개념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한민족이라는 명칭으로 우리 조선인의 명칭이 다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라 하여도 이의가 없지만 그 외의 호칭은 적합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개념에는 우리 동이의 족속을 다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12부족을 아우르는 환국에서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가라 역사도 반도가 아닌 대륙의 실체를 몰라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음을 본다. 지금 교재를 보면 민족의 개념의 잘못 게재함으로 우리의 역사를 모두 외국의 역사로 만들게 한 오류를 낳은 점이다.
 
예컨대 삼국유사를 쓴 김일연과 고조선사를 쓴 신채호의 거짓 고대사로 우리역사를 모두 반도 안에 집어넣으며 반도안의 사람만이 우리 동족이고 만주에 살면 만주족·여진족· 거란족이라 한다면 우리의상고사, 고대사의 단군도 광개토태왕도 다른 나라의 왕으로 외국인이 된다.
 
이렇게 편협하게 족속들을 갈라놓으면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다 잃고 만다. 따지고 보면 원래 요((), (), (), ()은 우리역사에 편입되어야 할 역사로 같은 동이이다.
 
유구한 역사를 계승한다고 하면, 언어도 기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의 첨가일 뿐으로 말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이 변형되었다고 이에 대한 연구도 하지 않고 말이 다르니 우리와 다른 족속이라고 가르친다면 국어교육도 역사교육도 반도 안의 역사만이 우리역사로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 삼국시대 우리역사는 다 외국의 역사가 되고 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대한인(大韓人)한민족이라 한다. 그런데 만주인의 조상을 여진족이라 한다. 이 와 같은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고구려의 후예가 압록강 이남에 살면 한민족, 그 이북에 살면 여진족으로 보며 언어가 같지 않으니 외국인이라 하면 역사와 국가는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인도 다 아는 우리 역사가 아시아인의 역사의 중심에 있음을 밝히려 한다.
 
언어 종족 다르다고 외국인 아니다
 
우리는 대한사람을 대한인 또는 한민족이라 한다. 그런데 만주인의 조상을 여진족이라 한다. 이 같은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고구려의 후예가 압록강 이남에 살면 한민족, 그 이북에 살면 여진족인가! 또한 언어가 같지 않으니 외국인이라 하면 역사와 국가는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치우천황이나 헌원(軒轅)천황·광개토태왕·을지문덕·김유신·의자왕· 계백장군·최치원·장보고·강감찬도 우리역사의 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이 되고 만다. 민족이라는 말은 1902년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민족이란 말은 19세기 이후 생성된 것이다.
 
한족(漢族)은 유방(劉邦)이 한()나라를 세운 이후 한족(漢族)이라 했으나 오늘날 한족은 우리민족과 혼합하고 융화(融和)되어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유방은 동이족의 한 가지로 갈려나간 것이지 한족(漢族)도 아니다. 유방도 우리의 동이족으로 한족(漢族)이 될 수 없는 자이다.
 
오늘날에는 자국인과 외국인의 국적(國籍)의 결정은 국내법으로 결정하는데, ‘혈통주의출생지주의이 두 가지로 나눠지고 있다. 고대에도 언어가 달랐다고 외국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환국시대에도 12부족이 다 같이 추수 때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눠 먹은 축제가 있었음이 말해준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중국과 일본의 탓만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 광복이 된지 73년이 되었어도 이를 바로 정립하지 않고 있음은 우리 사학계가 얼마나 우리역사를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한 예로 한민족(韓民族)’이라는 말은 19세기 이후에 생성된 말로서 이를 마치 고대부터 쓰여 진 것같이 보고들 있으나 1902년 이전에는 한민족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쓰지도 않았다. 우리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오만(傲慢)이 우리역사를 잃게 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두어놓고 여기에 거주하는 자는 한민족이고 만주에 사는 사람은 거란족, 여진족이라면 고조선은 거란의 역사이거나 여진족의 역사가 되고 마는 것임을 망각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의 강단학파라는 사람들은 한반도에 살면 한민족(韓民族)이고 만주에 살면 여진족, 거란족이라면 우리나라의 상고사와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가라·왜까지도 모두 모순이 되는 것으로 역사의 체계가 바로 서지 못하고 무너진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실상이다.
 
때문에 한민족이라는 말도 오류를 낳지 않게 구분해서 말을 해야 한다. 민족이라는 말은 왕정(王政) 때 사용한 것이 아니고 18세기 이후 공화제를 시행한 이후에 국민을 민족으로 보는 인식 때문에 생긴 것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에 유의 할 점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학교에서는 만주인의 조상이 여진족이라 하면서 우리와 구분해서 말하며 고구려는 임진강 북쪽에 있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후예가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에 살면 한민족이고 이북에 살면 여진족인가? 이런 반도사관의 구분은 원천적으로 역사무지에서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에 문제가 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옥중에서도 대한국인이라 했듯이 대한제국 때는 대한인·조선족, 고리 때는 고리족,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인·백제인·신라인·가라인·왜인이라 했다. 오늘날에는 이를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음을 통감한다.
 
이 한민족(韓民族)이라는 말은 삼국시대 이후 삼국인의 후예를 2개 이상 다른 민족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단군조선의 후예라면 민족을 다르게 한다면 역사인식과 민족개념이 문제가 생긴다.
 
한민족이라는 말은 현재를 기준으로 여진족 한민족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분류함으로 파생된 반도사관으로 우리역사를 움츠리게 만든 용어라고 오해를 받기에 이를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언어종족이 다르다고 외국인으로 보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
 
우리역사 대륙에서 몰아내기는 당()부터 시작했다
 
고려 이후 조선이 건국되기 전 우리 조정은 명()에 국호를 선정할 것을 요청하여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받았다는데 참으로 자주국가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당시 국력이 명()에 못 미친다 해도 주권 국가가 자기나라 국호를 다른 나라에서 받는 것은 용납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명()은 어찌해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선택하였는가? 이에 대한 것을 바로 알고 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 왜곡은 당()나라 때부터 노골적이 되는데 명()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선정한 것은 우리나라의 유구하고 위대한 역사를 대륙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이었다.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우리의 역사를 몰아내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고 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체성을 바로 못 잡고 있음에서 한나라 이후 한족(漢族)이라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나 우리는 이 한족(漢族)이 어디서 왔는가를 알 수 없다.
 
한민족(漢民族)이 어떻게 해서 출현(出現)되었는가를 고고학서(考古學書)를 유해(紐解)해 봐도 한민족(漢民族)의 정의(定義), 그자체가 애매모호(曖昧模糊)하기 때문에 명해(明解)한 정답을 얻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외국의 학자도 말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고인류학적, 고고학적으로 조사해가면 중국 한족의 시조는 단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대 지도자들을 다 중국의 시조로 둔갑시켜 지금 중국의 삼황오제가 다 우리 조상들이다.
 
중국은 이러한 황제들도 서경(書經)이나 시경(詩經)등의 고문헌에도 그 이름이 볼 수 없는데도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난 당초(當初)에 연호를 황제기원(黃帝紀元) 4609년이라 칭했다. 이에 의하면 황제의 즉위는 기원전 2698년이라 했는데 물론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러한 역사왜곡이 고대부터 그것도 당()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고 있음을 본다.
 
이미 필자가 서술한 광개토태왕의 비문(碑文)에 관한 칼럼도 동이민족의 역사를 반도에 정착시킨 이후에 비문의 연구이기 때문에 사서(史書)에 의한 연구는 아니었다. 때문에 1875년 봉천유수(奉川留守) 숭실(崇實)에 의해서 발견된 광개토태왕의 비문(碑文)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일제(日帝)는 태평양전쟁의 사령부인 대본영(大本營)’은 광개토태왕의 비문(碑文)에 개입하여 1878년 사코이 가게아키(酒勾景信)가 비문(碑文)을 발견했다고 하며 제멋대로 회()를 칠하고 조작하였다.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만 해도 140자를 변조하였다.
 
이 광개토태왕의 비문(碑文)5세기 이전의 역사를 규명하지 않는 한 오류(誤謬)를 범하는 것뿐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의 동이기록을 숨기고 있으면서 어떻게 연구를 하였는지 우리가 반도에 있었다는 것을 바로 답해야 한다.
 
위의 사서(史書)들 가운데 어느 곳에도 5세기 이전 신라·백제·가야와 왜()가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살았다는 고조선의 땅 대륙의 서화(西華) 동쪽에 신라국(斯盧國백제국(伯濟가라(加羅(卑彌國,狗奴國)가 있었다는 기록은 있어도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는 유방(劉邦)이 한나라를 세우기 이전 이미 6992년 전부터 대륙에 존재했다.
 
·일 학자도 한국사가 아시아 역사임을 알기에 반도사관 시도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왕조를 유지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부족인지 나라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라도 아닌 나라가 우리에게 조공을 받았다는 가소로운 말을 하는 것을 본다.
 
중국 왕조의 평균 존속기간은 170년도 안 되는데 이보다 10배 이상 존속한 우리 왕조들의 역사를 거꾸로 뒤엎어 놓는 가소로운 말을 하고 있다. 이는 지나가는 개, 돼지가 웃을 일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양심적인 사학자도 있어서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5천년~8천년 이상임을 시인하는 학자들과 자기들의 역사가 크게 왜곡 과장됐음을 말하는 학자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의 저명한 서량지(徐亮之)와 북경대 엄문명 교수는중화족보다 동이족은 최소한 3000년 이상 앞서서 역사를 개척했다. 한자 또한 동이족이 발명한 동이의 옛 글자였습니다.”라며 양심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도 3천년이 아니라 5천년이나 앞서 개척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도 삼국시대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임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일본의 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鋼太郞)도 신라가 오월(吳越)과 제노(齊魯)사이에 신라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신라방이 아닌 신라를 연구했으나 이를 숨기고 있다.
 
일본은 삼국시대의 역사도 더 부정적으로 보도록 가르친 결과가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에도 우리 사학자들은 삼국사(三國史)를 믿을 수 없는 사서(史書)로 몰아갔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일본의 역사보다 못하다는 것을 유도했음인데, 이것을 우리는 반도사관이라 하고 있다.
 
이 사관(史觀)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만들어낸 식민사학의 일종이다. 일제는 우리의 역사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 되었고, 특히 대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변동에 따라 타율적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지리결정론의 일종이며 타율성론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주장한 자가 일본의 관학자(官學者),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가 쓴조선사개설(朝鮮史槪說)’에서 처음으로 입론(立論)되었다. 한국이 반도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는 동양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세력이 되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항상 외부세력에 시달리고 때로는 다른 세력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정신병자 같은 괴변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의 성격을 부수성(附隨性), 주변성(周邊性), 다린성(多隣性)으로 규정하였고 한국사의 이러한 반도적 성격은 대내외 관계에서뿐 아니라 정치· 사회·문화에서도 영향을 끼쳐 사대주의가 한국사 전개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고 당치도 않은 주장을 하였다.
 
이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는 더 나아가 한국은 사대주의로 인해 사회와 문화전체가 중국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며 나아가 사대주의적 성격이 한국인의 의식구조, 행동양식 등 일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여 민족성으로 발전하였다고 당치않은 논리를 주장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자주적인 역사 결정을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기게 되며, 외세에 의한 식민지배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식하게끔 했다. 일제는 이를 통해 대륙세력의 침략적인 지배보다 일본의 온정적인 지배를 받는 것이 한국인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 같은 괴설(怪說)은 억설임에도 우리나라의 학계는 타율성론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지배를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우리의 학계는 부패하고 무능한 일부의 매국적인 사람들의 행태로 이어져 우리의 역사는 뒤엎어지는 상태가 되었다.
 
식민사관 배제하고 우리 영토와 역사 바로 찾아야
 
우리는 광복과 함께 역사를 바로 세웠어야 함에도 학계나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우리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너무나 소홀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의 역사와 온 국민의 역사인식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가치관마저 변질돼 국가 장래목표의 지향을 잃고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잘못했음을 크게 각성하고 반성으로 새로운 결단과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학계는 물론 우리의 지도층은 눈앞의 이기심에만 연연하는 무리로 채워져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오늘 상황이다.
 
이미 일본의 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鋼太郞),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요시다 도고(吉田東伍),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廣)등 일본학자들도 한국사가 반도사가 아니라 대륙사임을 잘 알고 있는데 우리의 잘못으로 역사가 엉망이 되었다.
 
일본은 우리역사를 한반도 안에 맞추어 보이게 하고, 그 역사가 일본보다 낮추도록 단군 고조선의 역사도 전설이라 하면서, 절반이하의 역사로 잘라내었던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廣)의 식민사관교육을 받은 이병도(李丙燾)에 의해 반도식민사관이 뿌리를 내리게 했다.
요시다도고(吉田東伍)일한고사단(日韓古史斷)’이라는 책을 쓰고, 소우키치(津田左右吉)1919년 신라본기(新羅本紀), 21년에 백제(百濟本紀), 22년에 고구려 본기(本紀)를 차례로 사료비판 한다면서[삼국사기(三國史記)]초기기록이 허구(虛構)라는 주장을 펴서 일본의 왜곡사(歪曲史)를 체계화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일제의 어용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배운 이병도(李丙燾)와 손진태(孫晉泰) 등 일본에 유학한 이들은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조선사편수회역사를 그대로 가르쳤다.
 
특히 이병도(李丙燾)는 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이마니시(今西 龍) 밑에서 반도식민사관체계화에 참여하고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역사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에서 이 역사를 퍼뜨린 것이 오늘 우리나라 반도식민사학(半島植民史學)인 것이다.
 
이 식민사학은 일본의 어용학자들의 왜곡된 것으로 이를 우리 역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에도 일제는 우리역사를 말살을 위하여 명()나라와 조선(朝鮮)에서 잘못 전하여진 동이역사(東夷歷史)를 일본에 맞추려니 사서(史書)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들 일본의 학자들은 조선사회에서 김부식 쓴 삼국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점을 이용하여 중국지나(支那)18()동이전(東夷傳)과 김부식(金富軾) () 삼국사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기 위하여 사서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을 연구란, 미명하에 한반도에 일치하지 않음으로 믿을 수 없는 사서로 부각시켜 100여 년 간 우리스스로가 부정으로 보게 하였다.
 
이런 잘못은 김일연과 신채호까지 조선8도에 맞추려는 시도를 계승한 19세기 민족사관이 빚은 결과물이지 김부식(金富軾)삼국사(三國史)나 중국의 18() 동이전(東夷傳)에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데도 역사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 역사가 뒤집혀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한반도에 맞추어 보이게 하고 우리역사가 일본보다 낮추도록 유도했음을 뿐만 아니라 대륙사임을 나타내는 삼국사(三國史)를 부정적으로 가르치며 믿을 수 없는 역사로 몰아가며 우리가 일본보다 열등한 역사인 것처럼 부정적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일본이 1600여 년의 일본역사를 천년이나 늘리고 2600년 역사라 하며 단군조선을 절반이하로 깎아 내렸다. 또 태평양전쟁사령부인 대본영(大本營)’의 교육국장인 해군소장 다카기 쇼기치(高木ソキチ)38선을 긋는 흉계 등 일본의 본심을 바로 알고 역사연구도 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고정시킨 일본의도 제대로 알고 연구해야
 
일본은 우리가 대륙이란 것을 꺼리며 우리강역을 반도라는 신조어(新造語)로 만들어 1900년 병사잡지사(兵事雜誌社)조선반도의 천연과 사람(朝鮮半島天然)이 쓰여 졌다. 1901년 노부오 쥰페이(信夫淳平)한반도(韓半島)라는 책자도 우연히 아니라 본다.
 
1904년 사토세이지로(佐藤政次郞)한반도의 신일본(韓半島新日本- 一名 韓國)이라는 책자가 나오고, 1911년 산직 양(山直 襄)조선반도(朝鮮半島)라는 책을 썼다. 이후 일본에서는 조선반도라는 용어만을 썼고 대한민국에서는 한반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생각 없이 쓰는데 한번생각 해볼 문제이다. 우리는 섬도 자가 필요 없다. 대륙이 맞다. 반도라는 말과 단일민족이라는 말과 한반도기(韓半島旗)는 우리와 맞지 않다.
우리의 영역은 반도가 아니라 본래부터 대륙이다. 단어 하나도 신중히 다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영역을 압록강 두만강으로 한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중에도 우리영토가 대륙으로 뻗어갈 것을 막기 위해 청일 간에 우리영역을 압록강 두만강으로 조약을 체결한 의도를 제대로 알고 역사문제도 다뤄야 한다.
 
대륙의 간도(間島)는 우리영토이며 통일 후 간도는 물론, 외침으로 잃었던 우리영토와 왜곡되고 조작되어 뒤엎어진 우리의 역사를 제 위치로 바르게 세워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선조들이 묻힌 우리의 옛 영역을 되찾는 일은 위대한역사의 후손들이 해야 할 사명이 아닌가!
 
(이상은 1027[우리역사연구원]오재성 원장발표와 구성원이 토론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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