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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94

삼국사를 반도에 가둔 역사무지 종지부 찍어야

김유신 활동무대가 반도라면 그 사실을 밝혀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12-22 20:07:48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는 김유신이 반도에 살았고 김해 김씨로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後裔)로 알고 있다.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는 모두 거짓 조작된 말이라면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허나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그리 배워왔기 때문에 그리 믿는다.
 
그러나 김유신은 대륙에서 성장했고 대륙에서 활동했다. 서화(西華) 몽성(蒙城)의 남북(南北)에는 김유신(金庾信)시대 지명이 19개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해서도 반도가 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김유신은 반도가 아니고 대륙 사람으로 그 조상부터가 대륙에서 나서 자랐다. 김유신의 조상의 묘(墓)도 다 대륙에 있고 김유신 자신의 무덤도 대륙에 있다. 따라서 반도의 이야기는 다 허구로 김유신이 대륙의 사람이란 것은 지난 11월 24일에 이미 다 밝혔다.
 
근대 조선이후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말도 되지 않은 ‘반도사관’으로 9세기 이전 즉, 삼국시대의 우리 백성도 민족도 우리 동족이 아닌 모순된 역사로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단군(檀君)과 광개토태왕도 반도 밖의 왕이니 우리와 상관없는 것으로 침입자로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웃기는 가관의 사관이다. 우리가 다민족(多民族)인데도 일제가 단일민족(單一民族)이라해 반도 밖의 선비족이나 여진족이나 몽골족은 우리와 상관없는 오랑캐로 만들었다.
 
일제가 만든 사관(史觀)은 모순되는 웃지 못 할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 우리 역사로 둔갑시켜 서 중국 「동이전」을 반도에 맞추어 9세기 이전 역사를 숨기고 있다. 또한 1986년 4월 독립기념관법을 만들어 ‘광복기념관’이 아닌 ‘독립기념관’으로 한 것도 우리가 나라와 역사가 없었던 민족인  것 같이 되고 있다. 단어 하나라도 제대로 잘 선택하여 하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동이전(東夷傳)」은 황해 서쪽 대륙의 기록임에도 대륙과 반도가 모두 우리의 민족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한반도에 맞춘 조립식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잘 알려진 김유신이 반도사람이라면 그것을 입증해줬으면 한다.
 
김유신(金庾信)은 대륙의 사람으로 반도에 없었다. 그의 행적이 모두 대륙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활동무대는 대륙에만 있다. 주로 서화(西華) 항성(項城)의 주위에서 활동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김유신의 활동무대가 반도에 있다고 하는데 이를 밝히고 말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고지도와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만든 우적도(禹跡圖)에도 삼국시대의 지명(地名)이 대륙에 나와 있어서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임에도 한반도에 맞춰 역사를 왜곡시켜 우리민족을 이질화시켰다. 한심하게도 이에 따르는 자가 반도식민사관자다.
 
오늘은 9세기 이전 역사를 기록한 유일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 나온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유신 살던 대륙,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전 주(周) 때도 「삼국사(三國史)」 권(卷)46 지역인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의 나라들이 있던 대륙에 우리가 있었다. 이는 중국사서 「남제서(南齊書)」 권(卷)58에도 명기(明記)되어 있다. 대륙의 동해안을 따라 기름진 땅에 우리가지배하고 살았던 영역(領域)이다.
 
역사기록은 거짓 없이 바르게 정립(鼎立)할 뿐이지 취사선택의 자료가 되어선 안 된다. 취사선택이란 전체를 믿을 수 없을 때 하는 일로서 믿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여 바르게 정립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역사된 왜곡은 수치(羞恥)스런 행위로 해선 안 된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왜곡시키고 부정하게 하고 있는데 극히 5세기 이전 기록을 부정하고 9세기 이전도 모르게 하기 위해 사서(史書)들을 불태우며 없앴다. 이는 수치로 알아야 한다. 그나마 동이의 유구한 역사에서 9세기 이전을 알 수 있는 기록인 「삼국사기」가 이를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제대로 연구는 하지 않고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부정(否定)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들은 「삼국사기」 기록이 반도의 기록이 아니기에 부정하는데 이는 우리의 영역이 대륙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 동쪽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임을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들이 다 반도가 아닌 대륙이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광대한 영역이고 백제가 황하유역에 있었던 것과 「삼국사기」만이 서화(西華) 동쪽의 왕 신라와 반도의 칸(干)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당(唐)영호징신라국기(新羅國記)」와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 기록을 남겨서 두 신라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입증하면 된다.
 
칸(干)은 고구려의 지역통치자로 기록하고 있어서 광개토대왕비와 진흥왕비(眞興王碑)가 입증하고 있다. 반도의 칸(干)신라(동신라)는 503년에 고구려에서 독립했음을 말하고 있는데 김유신(金庾信)의 반도에 없었다. 있었다면 입증을 제대로 하고, 역사를 가르치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 역사를 제멋대로 왜곡(歪曲)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지난날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유구하고 위대한 역사를 바로 연구하고 바르게 가르쳐 주기를 바라지는 것이다.
 
김일연(金一然)이가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나 중국(中國) 25사(史) 동이(東夷)의 기록에서는 요(遼)의 동쪽인 동명(東明)·서화(西華)·항성(項城)·덕안(德安) 동쪽에 백제(百濟)의 수도(首都), 한성(漢城)과 웅진(熊津)이 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한성(漢城)에 대한 고고학적(考古學的) 기록(記錄)과 주위지명(周圍地名)을 남겼다.
 
즉 한수(漢水)와 하수(河水)의 황하(黃河), 숭산(崇山)과 연와(煉瓦)로 쌓은 성터와 하수(河水)의 제방(堤防)이 있어, 황하 유역에 백제 한성(漢城)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곳은 반도가 아니다. 반도에 김유신이 있었다는 분은 어디에 있는지 밝혀줬으면 한다.
 
또 웅진(熊津)은 대산(大山)이 있는데 이 대산을 태산(太山)·태산(泰山)·대산(垈山)으로 고쳐 왜곡하나, 대산 서쪽에 웅진(熊津)이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곳도 반도가 아닌 대륙이다. 이곳을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을 반도로 보는 자는 연구를 하고 말해야 한다.
 
사서(史書)에 나타난 동이(東夷)의 역사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의 대륙역사(大陸歷史)를 일제(日帝)가 조작(造作)하고 왜곡한 역사만을 믿고 반도역사(半島歷史)로 오늘날 까지도 우리 역사에 역적(逆賊)같은 추태를 보이고 있다. 세계의 저명학자와 중국의 사서(史書)까지도 대륙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 동이족의 영역(領域)이 서화(西華)중심의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이 있는 양자강 이남:최치원전(崔致遠傳):한서진번(漢書眞番)에서 북상하면서보면 남월지(南越地)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진번(眞番)도, 이곳에 있다. 우리가 배운 것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데 사실이다.
 
또한 우리 역사에 나오는 지명들은 다 믿을 수 없게 변경하고 이동시켜서 알 수 없게 한 것을 그대로 믿고 있는 우리나라 강단학파의 역사는 허구역사로 믿을 수 없는 위사(僞史)인 것이다.
 
예컨대 계백장군의 5천의 결사대가 싸운 황산(黃山)은 중국 여러 곳에 있는데 이 황산(黃山) 하나를 우리나라에 가져다가 이곳에서 김유신의 신라군과 싸웠다고 동화(童話)같은 이야기다. 이 같은 말로 사기(詐欺)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 같은 억지 지금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의자왕(義慈王)에 관해서도 강서성(江西省)·산서성(山西省) 등에서의 활동이 「신구당서」에 기록이 있고, 21대 개로왕(蓋鹵王)이 반도 아닌 대륙에서 활동한 것을 위시해서 기록들이 남아 있다.
 
고구려 5대 모본왕(慕本王), 21대 문자왕(文咨王), 28대 보장왕(寶藏王) 등이 「신구당서(新舊唐書)」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와 「북사(北史)」 등에 그 활동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대륙이다.
 
역사를 왜곡하게 된 것은 사가(史家)가 아닌 김일연(金一然)과 사학자인 신채호가 우리 역사를 반도에 국한하는 그들 저서가 대륙이 아닌 반도에 맞춘데 있다. 이것은 「삼국사」 권46과 「남제서」 권58을 모르고 쓴데서 문제가 있다.
 
김일연(金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東夷) 기록을 인용하여 환국과 배달국을 빼고 고조선을 국가 기원으로 하여 고조선 이전 상고사를 삭제한데 문제가 있다. 그는 소동파가 역사 왜곡을 위해 만든 우적도(禹跡圖)를 보고 한반도의 역사로 한 것 같다.
 
한편 「삼국사기(三國史記)」 역시 상고사(上古史)와 고대사(古代史)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점을 아니 둘 수 없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역사는 마치 5000년 역사인양 말하고 헌법에도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우리영역으로 해 애국가도 3천리로 한 것은 역사무지가 낳은 결과다.
 
이렇게 한 것을 보는 장안(長安) 중심의 한족(漢族)은 자기들의 기록인 「중국 25사」 동이기록을 숨기고 왜곡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것을 숨기고 중국역사를 정립하면서 사기(史記)에서 당서(唐書)까지 우리를 동이민족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동이의 영역은 하남성 서화(西華)의 남북에 있는 덕안(德安)·항성(項城)·태원(太原)·은산(銀山)의 동쪽에서 해주(海州;금주 북쪽 고구려 장성상(長城上)까지 동이족(東夷族)의 각국(各國)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서 그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즉 역사시대인 배달국(倍達國時代)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의자왕(義慈王)시대, 김유신(金庾信)시대 모두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서 우리 동이가 활동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느 사서(史書)에서도 동이각국(東夷各國)이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의 서쪽까지 기록하고 있지만 반도에 동이(東夷) 국가(國家)가 있다는 기록은 없다. 단지 고구려별도(高句麗別都);(현 평양)과 자칭 무강왕(武康王);현 익산)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원(元)나라 때 쓰여 진 요사(遼史)의 일부에 만주와 반도의 신라(東新羅);칸(干新羅)를 기록했을 뿐이고 9세기 이전에는 서화(西華)동쪽에서 요하(遼河)까지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5세기 이후 중국의 역사왜곡 상상을 초월
 
중국은 당(唐)나라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데 상상(想像)을 초월하리만큼 엄청나다. 그것은 5세기 이전 백제(百濟)·신라(新羅)·왜(倭)가 반도(半島) 쪽에 있다고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닌 허구(虛構)로 진실이 아니다. 백제·신라·왜가 반도에 없었다.
 
이로 인해 11세기 이후 아시아인들은 9세기 이전 신라(新羅)·백제(百濟)·왜(倭)가 반도 쪽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25사동이」기록에서 그 위치를 살펴보면 확실히 들어난다. 즉, 왜(倭;위(衛) 경우 광개토태왕 이전부터 양자강(揚子江)이남에 있었고, 인물로서 소강(小康);(삼국지(三國志)에 나와 있고 일본 고대국가 왕이라는 히미코(卑彌呼)와 노자(老子)가 사기(史記)에 쓰여 있다.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간다고 진(秦)나라를 빠져 나온 서복(徐福)도 후한서(後漢書) 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를 대륙에서 밀어내기 위해 제멋대로 조작하고 왜곡을 감행했다. 그것은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데서 나온 소치이다.
 
지명(地名)으로는 회계(會稽)(삼국지,후한서), 담이(儋耳);남월(南越),주 애(朱崖);삼국지(三國志), 후한서), 단주(澶洲);후한서)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이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왜(倭)의 특징(特徵)은 문신(文身)을 하였고, 비단과 면(綿;목화)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이다. 이후 당 태종시대(唐太宗時代)에 발간한 「남사(南史)」까지의 기록도 동일하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한반도에 있다는 한(韓)=마한(馬韓), 변한(弁韓)은 서화(西華)동쪽에 있었다. 특산물은 비단, 면(綿;목화)를 사용하였고 인물로는 기회(箕淮;準)이 있다.
 
한(韓)에는 50여국이 있었다. 그 중 백제국(伯濟國), 무녀(巫女)가 세운 히미코(卑彌呼)의 이도국(伊都國)과 남자가 세운 구노국(狗盧國)등이 있었다. 백제국(伯濟國)은 백제(百濟)로, 사로국(泗盧國)은 신라로, 왜(倭는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과 구노국(狗盧國)이 있었는데 670년 대만(臺灣)에서 일본(日本)으로 발전되었다, 이 나라들 모두가 대륙에 있었다.
 
양서(粱書)에서 당서(唐書)도 신라 백제는 석문(石門), 대방(帶方), 항성(項城;西華南)이 하남성(河南省)이고, 덕안(德安), 진평이군(晉平二郡)이 산서성(山西省)이라 기록하고 있다.(新舊唐書)
 
한편 고구려는 247년 이전에 하북성 서안평(西安平;贊皇)까지 진출하였고 5세기 이전 안휘성(安徽省)의 섭라(涉羅;흡(歙)까지 진출하였으며, 49년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평정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三國志, 後漢書).
 
그런데 고구려(高句麗)가 진출한 안휘성(安徽省)의 섭라(涉羅;흡(歙)를 504년에 백제(百濟)에게 빼앗겼다고 기록하고 있다.(魏書, 北書). 위에서 보듯 「중국(中國)25사(史)」에 의한 동이(東夷)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기록은 분명한데 어찌해서 이곳을 반도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광개토대왕시대 백제, 신라, 왜(倭)가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동쪽에 기록하고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왜곡하고 있는 사학자(詐學者)들은 오늘도 우리역사를 반도 안에 가두고 우리역사를 황폐시키고 있다. 위정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들은 역사학자들이 아니다.
 
이런 자들을 학자라고 기용하고 있는 교육부도 문제이고, 우리역사를 바로세우지 않은 것은 더 큰문제다. 일제가 역사자료 없앴으나 남은 사서에서도 5세기 이전 동이국가가 대륙에 있음이 입증 된다. 허구가 밝혀졌다. 사서(史書)에 의한 동이국가의 위치는 변경될 수없는 것이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48面~55面)을 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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