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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키워드 _ 협치

‘공적 가치’라는 절대적 준거가 사라져가는 현실

“보편적인 가치는 다수결로, 공공부문은 민간기업 몫 전락 가능성 있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2-09 09:35:59

▲ 문화평론가 고태경
협치라는 단어가 오늘날 언론에서 수없이 회자되고 있다. 영어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이 단어는 우리말에서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다. 한자어 그 자체의 의미에서 오늘날 거버넌스는 통치를 국가기관(정부)과 민간 부문 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재구축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협치’라는 말에서 강조가 되는 것은 단순한 이해관계 당사자들 간의 ‘협력’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공과 사 간의 파트너십이라는 개념
 
협치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처음 부상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 참여정부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87년 민주화 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부상한 참여정부의 통치 마인드는 기성의 권위주의 국가와의 결별을 통해 표방되었고, 이는 공적 권력과 민간 부문 간의 위계적 관계를 협력적 파트너십으로 대체한다는 마인드로 귀결되었다.
 
일종의 사고 대전환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통치는 권위주의 국가의 산물로 간주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위계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간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되었고, 가능하면 시민사회와의 협치하에 숙의민주주의가 권장되었다.(공론화위원회 등)  
 
협치는 중앙정부의 정치 패러다임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시/도 지방정부의 영향력을 활용하며 부상한 것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민간 부문이 많은 경우 자본을 갖고 있는 기업이었다는 점, 기존의 사회문제로 간주되었던 갈등적 관계들이 이 패러다임 속에서 모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를 보자. 현대자동차가 신규공장을 광주에 유치하되, 광주시가 대주주로 기업과 함께 지분을 나누고, 임금 및 노동조건들을 컨트롤하며 노동시장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노사관계라는 기존의 갈등적 역학관계는 노사상생의 이미지 속에 사라지고, 정경유착이라는 악의 이미지들은 민주적 파트너십이라는 미래지향적 이미지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2015년 서울시에 의해 도입된 사회성과보상사업(SIB) 또한 공-사 협치의 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이 사업에서 주되게 고려된 부분은 복지예산의 증가문제였다. 해마다 복지예산이 전체 시예산 대비 증가폭이 컸고,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는 복지 부문에 한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게 된다. 기업이 복지 부문 사업을 직접 집행하고, 사업 종류 후 평가를 통해 사업이 ‘성공’적이었을 때에 한해 서울시가 보상을 해주는 게 해당 정책의 골자였다.
 
이를 통해 사업의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서울시에서 직접 질 필요가 없어졌는데(따라서 정책집행의 효율화가 추구되었는데), 이는 역으로 말하면 복지라는 공공부문의 정책 집행 실패의 리스크가 시민사회로 이전되었다는 것을 함축하며, 복지라는 공공부문의 장기적 비전 역시 정부의 손을 떠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공적 영역의 혼란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통치에서 협치로의 이행’을 1980년대 이후 지속된 신자유주의화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영미권을 중심으로 제반 사회시스템을 기업화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국가의 통치는 기업의 경영처럼 이익추구를 중심으로 효율화/민영화하기 시작했고, 공공부문의 문이 기업투자에 열리면서 시민사회 전반이 기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공공 부문과 기업의 민간 부문 간 관계가 겹쳐지면서 동시에 갈등의 사회적 책임이 허공 속에 분산되기 시작했다. ‘갈등의 민주적 관리’가 새로운 시대의 통치 이미지로 떠올랐는데, 이러다 보니 사회적 정의의 물음을 야기한 구조나 책임자의 문제는 평가에서 완전히 배제되게 된다(왜냐하면 파트너십 속에서는 모두가 공범자일 것이기에). 사회적 정의의 추구는 갈등관리로 대체되었고(공론화위원회), 국가의 이름하에 추구되던 공적 가치는 여러 이해관계들의 타협점으로 오인되곤 한다.
 
이러한 시대에는 악의 이미지 역시 변하게 마련이다. 근대화 속에서 사회문제의 책임은 부정하게 부와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에게 돌려졌다. 반대로 오늘날의 협치 패러다임에서 비판의 화살은 사회문제 자체보다 그 문제해결의 파트너십적 관계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로 향하곤 한다.
 
요컨대, 문제는 이런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공적 가치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환원된다는 것은, 공적 가치(사회적 정의)라는 절대적 준거가 사라진다는 것을 함의한다.
 
보편적인 가치로 간주되어온 ‘인권’의 문제, 생태와 교육의 문제 등은 어쩌면 다수결에 맡겨질 것이고, 복지 등의 공공부문은 정부가 위탁한 민간 기업들의 사업과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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