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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00

대륙왜사(倭史), 일본사(日本史)제대로 알아야

일본열도(日本列島)에 동이왜(東夷倭)는 없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2-09 10:10:08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고대(古代) ()였던 일본(日本)은 본래부터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일본국이 건국한 것으로 모든 일본 국민들은 알고 있으나 고전(古典)을 보면 이것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난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진서(晋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粱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수서(隨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에서나 우리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도 이를 말하고 있음에서 이를 숨길 수 없다.
 
일본은 지금도 왜곡 역사를 그대로 몰고 가고 있으나 대륙의 왜()와 일본(日本)도 고대부터 우리와 밀접한 접촉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왜는 구리(九黎)의 한 계파(系派)로 우리와 무관치 않다.
 
()는 고대 한()78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이었으며 그 지역이 양자강 이남의 호남성과 남월(南越)은 물론 월남(越南)과 일부 동남아까지의 지역을 점하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런데 일본은 대륙의 양자강이남에서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를 받아온 사실을 숨기려고 우리 역사를 왜곡(歪曲)하고 변조하며 이를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은폐되어 있다. 일본국민이나 우리나라 국민도 일본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쳐 그 진실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일본열도(日本列島)에는 동이왜(東夷倭)는 없었다는 사실과 일본은 원래 대륙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가야(伽倻)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최초 나라로 내세우는 30개 부족으로 구성된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이 구주(九州)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나 이것도 다 허구(虛構)로 대륙에 있었음이 다 밝혀져 있다.
 
당시 30의 부족국가는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 나온 것은 사마국(斯馬國), 이백지노국(已百支奴國), 이사국(伊邪國), 도지국(都支國), 미노국(彌奴國), 이노국(伊奴國), 호고도국(好古都國), 불호국(不呼國), 저노국(姐奴國), 대소국(對蘇)), 소노국(蘇奴國), 호읍국(呼邑國), 화노소노국(華奴蘇奴國) 귀국(鬼國), 위오국(爲吾國), 귀노국(鬼奴國), 사마국(邪馬國), 궁신국(躬臣國), 유파리국(有巴利國) 지유국(支惟國), 오노국(烏奴國), 노국(奴國)으로 22국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남쪽으로 구노국(狗奴國)이 있는데 남자가 왕인 여왕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했고 [대방 후한서(後漢書)에는 낙랑군(樂浪郡)]으로 부터 여왕국(女王國)에 이르는 거리는 12,000리라고 했다. 
 
()나라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도 다 조작되어 있으나 거리가 12,000()라는 이곳 역시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양자강 이남에 있는 대륙의 고대 왜()를 말한다.
 
오늘은 기마민족의 대륙정벌과 일본의 역사가 얼마나 허구의 역사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대륙을 지배한 기마민족이 끼친 영향
 
고대 중국인들이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하는 흉노(匈奴)와 선비(鮮卑), 몽골 등 기마민족은 대륙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시대 기마민족(騎馬民族)은 중국과 유럽까지도 넘나들며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기마민족(騎馬民族)4~5세기에는 지금의 중국 북부에 진출하여 많은 나라를 세웠다. 이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남북조(南北朝)이었다. 그리고 5~6세기의 화북(華北)은 북위(北魏)에 통일되었으나, 이도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이었다.
 
한편 서방(西方)에서는 기마민족인 훈족(HUN)족이 게르만민족의 이동을 재촉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와 같이 4~6세기에 걸쳐서 유라시아중앙부에 있던 훈족(HUN)족이 서방(西方)에 이동해서 로마제국에 위압을 받고 있던 북동부 게르만 인이 로마제국의 분열이 되자 이곳에 침입하여 게르만인 제국(諸國)을 건국했다.
 
당시 흉노(匈奴)를 훈족(HUN)이라고 하는 것은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지배(支配)한 흉노(匈奴)가 내분(內紛)으로 흉노의 일부가 북방훈족(HUN)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이들이 문자도 모른다고 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고대 중국과 왜()가 문자를 몰라 왕인박사(王仁博士)가 천자문과 논어 등 12가지를 가지고 왜()에 가서 문자를 깨우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흉노=훈족(HUN)은 마구(馬具)와 도검(刀劍)의 장식(裝飾)이나 예술이 매우 훌륭하고 전술까지 높은 기마전술(騎馬戰術)을 펴서 이민족(異民族)을 지배(支配)하고 이들에 의해 요하문명을 비롯한 세계5대문명(世界五大文明)이 꽃을 피웠다.
 
기마민족(騎馬民族)은 용맹(勇猛)하나 문자(文字)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폄하하기 위한 것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들은 고도의 문화와 문명을 동서양에 전했다.
 
한편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로마제국은 서기 395년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제국으로 분열돼 서(西)로마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인의 용병대장(傭兵隊長) 오도아케르가 인솔하는 군대에게 멸망했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것은 훈족(HUN)이 로마침입으로 이뤄진 것임을 숨길 수 없다.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제()민족을 정복하기 위해 동()과 서(西)에서 활약한 시대에, ()에서는 만리장성을 넘어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서(西)로는 서로마제국을 멸망케 했다.
 
이상과 같이 예맥,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대표되는 기마민족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화민족으로 등장하고 강대족(强大族)으로 등장한 역사의 주인공임에도 이를 시기 질시하는 중국과 일본은 이들의 역사기록을 숨기고 왜곡했다.
 
예맥(銳麥;濊貊)이 동주(東周)시대부터 한무제(漢武帝)시대까지 중국에 남출(南出)하여 한족(漢族)을 정벌(征伐)하고 정복(征服)하여 지배(支配)한 역사는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일본서기, 고사기, 천황, 허구역사 제대로 알아야
 
일본 민족은 역사조작(歷史造作)과 왜곡에는 중국과 쌍벽을 이루는 나라가 되고 있다. 그러나 양심적인 학자는 야마토민족(大和民族)은 천산산맥(天山山脈)지방으로 신강북부(新疆北西部)에 있었고 대륙의 왜()는 야마토국가(大和國家)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것도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대륙역사(大陸歷史)를 숨길 수 없어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왜()가 양자강 이남 지역임을 숨기려 지명을 옮겨서 말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당()때부터 역사를 왜곡하려고 지명을 수없이 옮겨 조작하고 있다.
 
일본의 왕계(王系)도 제1대에서 14대까지는 왕도 천황도 아니다. 일본의 최초 왕은 오진왕(應神王)이다. 일본의 왕계보(王系譜)도 천년이나 조작하여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닌도크덴노(仁德天皇)까지도 실재하지 않은 천황들을 천황이라 하는가 하면, 닌도크덴노(仁德天皇)의 원래의 이름도 여러 가지로 해석(解釋)되고 있어 분명치 않다.
 
천황(天皇)이라는 명칭이 실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6세기 말 쇼도크 다이시(聖德太子) 시대부터라고 하나 이때도 일본에 천황은 존재하지 않은 시대로 확실치 않다.
 
쇼도크 다이시(聖德太子)는 호류지(法隆寺)도 지었다고 하나, 이도 다 허구(虛構)이다.
 
일본에서 천황(天皇)이라고 최초로 쓰기 시작한 것은 백제(百濟)의 역사서를 그대로 옮긴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의 기록일 뿐이다. 쇼도크 다이시(聖德太子)가 섭정(攝政)하게 된 593년은 왜()의 시대로 이때는 야마토국가(大和國家) 시대이다.
 
이 때 수()나라에 보내는 견수사(遣隨使)에게 국서(國書)를 보냈다는데 국서(國書)속에 해가 뜨고 학()이 있는 천자(天子)’라든가 동쪽의 천황(天皇)’이라는 용어(用語)가 있어 이것이 일본에서 천황이라 부르는 최초라 하는데 이는 비약(飛躍)이다.
 
당시 중국(中國)의 사서(史書)에서 왜()를 천자(天子)라든가, ‘동쪽의 천황(天皇)’이라는 용어(用語)가 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왜곡은 긍정(肯定)할 수 없다.
 
일본의 양심적인 사학자 중에는 야마토(大和)라는 국가(國家)도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고 왜()가 있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속의 천황(天皇)이라는 명칭은 없었다. 그런데 8세기의 서책(書冊)에는 허구의 진무덴노(神武天皇)이후 대대로 천황(天皇)이 통치하였다 왜곡되어 있다.
 
일본은 이마니시 류(今西 龍)1932년 죽기까지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데 도쿄대학(東京大學)도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손보고 다 고친다. 일본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의 글자도 제멋대로 고치는데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도 240()조작했다고 한다.
 
이 조작(造作)된 것 중에 일본(日本)에 관한 것만 글자가 또렷하다. 그것은 역사를 왜곡(歪曲)하기 위해 본래(本來)에 새겨진 글자를 없애고 회()를 바르고 후()에 조작(造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이미 다 밝혀졌기에 이는 비밀도 아니다.
 
하사(下賜)를 헌상(獻上)이라하며 역사서도 숨기는 일본
 
일본은 552년 조선으로부터 불상, ()=(), 경전(經典)을 하사(下賜)받았는데 이것도 헌상(獻上)받았다 기록한다. 고류지(廣隆寺)는 스이코(추고(推古)593~628) 11년에 건립한, 일본 최고(最古)사찰로 일본 7대 사찰 중 하나로 일본 국보1호인 나무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이 반가사유상도 우리가 하사(下賜)했는데 이를 헌상(獻上)했다고 왜곡한다.
 
일본은 상고사가 없고 역사가 너무 빈약하니 우리나라 유물 유적도 숨기고 왜곡하고 조작도 모자라 우리 도서들을 수십만 권을 불사르고 우리 고서들을 훔쳐가는 나라다.
 
총리를 4번 지낸 이등박문(伊藤博文)도 충무공전서(忠武公傳書)등 우리 서책 1028권과 규장각(奎章閣)도서도 빌려간다고 하며 가져갔는데 이 책들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본왕실도서관 서능부(西陵部)에는 5만권이상 책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는 한일협정 시 이 서적들도 반환받지 못했다. 1897년 명성황후국장 시 2035명이 찍힌 장례(葬禮)의궤와 그 외 72개의 의궤(儀軌)와 은폐된 조선 상고사 몇 만 권이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은 조작을 위해 그 줄만 빼나 일본은 글자조작으로 역사를 왜곡 조작한다. 그들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의 신묘년(辛卯年)이 지워져 없앴으며 많은 글자를 변조했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태왕(太王)은 황제(皇帝)를 뛰어넘는 최상위(最上位) 왕이 태왕(太王)으로 대륙을 지배한 으뜸의 왕이므로 많은 조작을 해서 왜곡했다.
 
만요집(萬葉集);명가집(名歌集)에는 4000이 넘는 시()를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남겼는데 여기에 수록(收錄)된 말은 우리 고대어가 주종을 이룬다. 그들은 같은 동이족이면서 같은 선조를 가졌지만 대륙에서의 수치 역사를 숨기며 왜곡한다.
 
고대 대륙의 언어 역시 우리말이 공용이었다. 일본의 중,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재에도 고대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첫 왕이라는 히미코(卑彌呼) 역시 당시 대륙에서 쓰는 일반어(一般語)였던 조선어(朝鮮語) 밖에 모르는 여왕이었다. 일본은 지금은 다른 민족처럼 보나 고대부터 우리와 같은 동이족(東夷族)임이 사서(史書)는 말한다.
 
당시의 왜(=)는 양자강이남 진파(眞番)로 불리던 담이(儋耳;남월(南越)와 회계지역(會稽地域)의 민()을 말하며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도 동이(東夷)의 국호로 기록 되어 있다. (삼국지, 송서,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구당서, 당서),
 
이본은 본래부터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듯 포장하나 일본은 대륙에서 왜인 왜로 비미국(卑彌國) 구노국(狗奴國)이 발전한 것이 일본이다. 670년 이전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도 없는 나라다. 때문에 왜()가 대륙에 있을 당시의 670년까지의 기록은 몇 안 된다.
 
일본의 왕계보(王系譜) 허구조작 드러나다.
 
세계에 문명과 문화와 5개의 문자를 만든 우리 선조들은 고대부터 위대했다. 그런데 9세기 이후의 동이(東夷)의 후예국가(後裔國家)들은 그 어느 국가도 진정한 동이민족사(東夷民族史)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이민족의 동질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왜() 또는 왜인(倭人)으로 대륙의 남단(南端)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지배를 받았던 일본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본래부터 일본열도에서 국가를 건설하고 성장 발전해 온 듯 조작하느라 말이 아니게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에는 왜인(倭人)이 왜()로 나온다. 국가의 대접도 못 받던 왜이다. 더욱이 후한서(後漢書)에는 가라, 임나, 모한, 진한을 다스렸다고 왜곡, 조작하는가 등 일본의 왕계를 고찰해보면 연대(年代)를 늘리고 또 늘린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역사에는 가공(架空)의 왕들을 만들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왕계보(王系譜)를 만들어 1대에서 14대까지 제멋대로 왕()들을 등장(登場)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첫 왕이 진무덴노(神武天皇(서기전660~585)라 하는데 이는 있지도 않은 왕()을 천년이나 연대(年代)를 늘리고 1대에서 14대 츄우아이(仲哀:서기356~362)까지 왕()들은 모두 가공(架空)의 왕()인데 실제 있었던 것처럼 왜곡했다.
 
일본은 허구의 왕계보(王系譜)를 버젓이 교과서에 실어놓고, 거짓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왕들은 연대도 제멋대로 매겨놓아 학자에 따라 다르게 쓰고 있다.
 
일본은 가공(架空)의 왕들을 등장시켜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일본의 첫 왕도 아닌데도 첫 왕으로 조작했는데 최태영(崔泰永)선생은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학생시절 소화천황(昭和天皇)이 황태자(皇太子) 시절 스승이었던 사사가와 림푸 박사로 부터 <상기(上記)>의 기록에는 단군의 73대손인 오진(應神)이 일본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고 했다.
 
사사가와 림푸박사는 <상기(上記)>를 통해 한국고대사를 아는 박사였다고 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도 초대오진(應神)부터 14대 츄우아이(仲哀)까지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일본역사가 서기전 660년이 아니라 4세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구(虛構)의 왕들을 살펴보면 1대 오진(應神), 2대 스이제이(綏靖), 3대 안네이(安寧), 4대 이토쿠(懿德), 5대 코우쇼우(孝昭), 6대 코우안(孝安), 7대 코우레이(孝靈), 8대 코우갠(孝元), 9대 카이카(開化), 10대 스진(崇神), 11대 스이닌(垂仁), 12대 케이코우(景行), 13대 세이무(成務), 14대 츄우아이(仲哀)는 모두 가공(架空)의 왕들인 것이다.
 
()가 일본이었음을 숨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 ()가 존재했을 당시인 670년까지 왜왕에 대한 기록은 몇 안 된다. 3세기 히미코(卑彌呼), 비미궁호(卑彌弓呼), 일여(壹與), ()이 등장하고 5세기 왜()의 오왕(五王)은 진(), (), 세이(), (), (;雄略)를 들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왜가 일본으로 변경한 670년 이후 410년이 흐른 이후 왕계보(王系譜)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국 구당서(舊唐書) 이전에는 왜()의 왕계보(王系譜)가 없었다. 있어도 4~5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역사왜곡을 많이 한 <송사(宋史)>23(), <당서(唐書)>32, <해동제국기>12명으로 기록하고 <일본서기>는 신대(神代) 7대로만 기록하고 있어서 어느 왕계보(王系譜)가 옳은지 판단하기가 난해하게 하고 있다.
 
670년 일본(日本) 이전의 동이(東夷), 왜전(倭傳)에 전하는 왕들과도 구분 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한 기록을 숨기는데서 나온 것으로 본다.
 
왜국호갱일본(倭國號更日本)’이라고 하여 국호를 변경한 기록이 <당서><삼국사기>에는 있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기록이 없는 것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동이전(東夷傳) 왜왕계보(倭王系譜)는 분명한 것이 없었고, 알지 못하였으나 언렴(彦瀲)에서 광효(光孝)까지 2명만 수록된 것이 최초 계보(系譜)이고 송서(宋書)에 수록된 것이 두 번째이다. 어찌하여 왜()가 국호(國號)를 변경하고 390년이 지난이후에 왕계보(王系譜)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거의가 조작일 뿐이다.
 
송나라가 건국하고 100년이 지난 후인데 서이(西夷)와 동이(東夷)를 중화(中華)로 묶는 시점에서 왜왕계보(倭王系譜)가 시작한다는 것은 일본이 대륙사를 숨기는 데서 비롯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당서(唐書)>만이 왜()가 일본(日本)으로 국호를 변경(變更)한 사실을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한글자도 기록이 없다.
 
(以上吳在成, ‘九犂系, -日本史’. 53~55(參照하고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오늘날 일식 관측으로도 왜(=日本)는 양자강 이남임으로 왜왕계보(倭王系譜) 역시 이 지역 왕통(王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670년 이전은 왜왕(倭王)이고 그 이후는 일본왕이다. 이런데도 이를 숨기는 일본의 양식(良識)을 이해 할 수 없다.
 
이런 왕계(王系)역사를 가지고 우리와 역사논쟁(歷史論爭)을 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어불성설(語不成說)로 말이 아니 되는 것인데 일본은 왕()으로 모시고들 있다.
 
일본역사의 상반(上半)은 우리 역사를 가지고 가서 엮고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백제의 역사를 그대로 옮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본은 백제 유민이 가서 세운 나라이기는 하나 우리 역사를 일본역사로 하는 것을 수치(羞恥)로 알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 .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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