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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104

고대 중원대륙 지배한 역사 우리 선조들이었다

양심적 3.1절 평가, 사사카와 노리카쓰(笹川紀勝) 교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3-09 15:37:21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일본의 사사카와 노리카쓰(笹川紀勝) 국제기독교대학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 형사판결문 6608건 중, 3282건이 3·1운동 관련이라며 “3·1운동 판결문은 인류문화 유산이 되어야 한다(조선일보 201922523)”고 했다. 그는 판결을 받고 투옥되었던 100년 전 목소리를 후세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금년은 3·1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유달리 역사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한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위해 일어선 3·1운동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는 세계역 사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민족이었기에 거족적인 3·1운동 의거가 가능했다고 보고들 있다.
    
이 거족적인 독립운동은 당시 2000만의 인구 중 10분의 1200만인이 동참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조선인이 친일 망동(妄動)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은 박중양 등 자제단(自制團)의 방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어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애족의 국민은 분연히 일어셨다. 이 운동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우리의 위대함을 국내외에 제대로 보여준 역사적 광복운동이었다.
 
일제는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을 흐려놓기 위해 조선사를 왜곡(歪曲)하여 열등의식패배의식’, 반도식민사관을 온 국민에게 심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일제(日帝)가 심어놓은 역사를 그대로 믿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역사가 대륙역사임도 모른다.
 
 
세계석학(世界碩學)들이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해서 우리에게 일러줘도 역사를 가르치는 반도식민사학자들까지도 일제(日帝)가 조작하고 변조한 왜곡된 조선사편수회’ 35권의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국가와 민족에게 어떠한 죄를 얼마나 짓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참담(慘憺)함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이다.
 
그들은 우리역사가 대륙역사인 것을 연구하지 않고 일본이 왜곡한 역사만을 금과옥조로 가르침에서 우리역사가 11천년 이상이 넘는 역사임에도 반만년(半萬年)역사로 일반화시킨 장본인들이다.
  
우리의 역사서(歷史書)삼국사(三國史)나 중국이 정사(正史)로 여기는 25()뿐 아니라 삼국지(三國志)의 동이전(東夷傳),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만 봐도 알 수 있는 역사를 묵살(黙殺)하며 우리역사를 황폐화시켰고 지금도 여전히 그 패악(悖惡)을 저지르고 있다.
 
이들은 역사연구도 문헌도 보지 않으면서 우리 선조들이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대륙을 지배한 역사는 물론, 반도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서 알고 있는 것같이 행세하며 위대하고 찬란한 우리역사뿐 아니라 민족의 기상(氣像)과 민족혼(民族魂)마저 망가트리고 있다.
 
오늘은 우리역사는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위대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대륙역사임을 외국의 역사학자는 물론 중국의 학자와 정치가까지도 인정(認定)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의 조선사기록, 언제부터 잘못하고 있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리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우리가 유라시아를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하여온 역사를 모름으로 얼마나 역사교육이 잘못 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로 인하여 헌법에 재제된 우리의 영역과 국경선이며 3천라라는 국가면적도 말이 아니다.
 
고대부터 우리역사는 왜곡되고 있는데 특히 당(), (), (), ()과 일본(日本)등에 의해서 그 왜곡(歪曲)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주객이 바뀐 엄청남에서 놀라움 금()할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上古史)가 없고 역사가 불실하기에 그 역사는 어느 정도 그들의 역사기법을 알고 연구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내세우면서 하고 있는데 기자(箕子)는 한반도에 건너온 적도 없고, 한반도에 기자조선이 있었다는 것은 허구이다.
 
기자(箕子)는 하북성(河北省) 귀주성(貴州城)까지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 기자(箕子)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자랐고 그의 무덤은 안휘성 몽성(安徽省 蒙城)에 있다. 그리고 기자(箕子)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문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기자(箕子)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에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까지 밝히고 있다. 그는 반도사람이 아니고 그가 대륙의 사람인 것은 이미 다 밝혀져서 숨길 수없는 데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은 기자(箕子)가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허구(虛構)일 뿐이다.
 
기자조선(箕子朝鮮)에 관한 기록은 기석(箕釋), 기후(箕詡), 기준(箕準)만 사서(史書)에 나와 있고 기후(箕詡)부터 왕이라 했는데 기자(箕子)는 왕이 된 사실이 없다. 또 자는 작호(爵號)이다.
 
기자조선이 46대라하나 기후(箕詡)이전의 40명은 왕이 아니며 그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역사연구를 제대로 한 학자들은 인정하지도 않는다. 41대 기후(箕詡)부터 기준(箕準)까지가 6왕이다.
 
기자조선 제1대 서우여(徐于餘)~40대 수한(水韓)까지는 추론(推論)이고, 나머지는 추서(追敍)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자조선(箕子朝鮮)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모두 조작이고 왜곡(歪曲)된 것으로 실체(實體)가 없음을 이미 밝혔다.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기자조선에 문자(文字)가 다른 기자(箕子)가 셋으로 보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번한세가(番韓世家)에 나오는 제1대 서우여(徐于餘)~40대 수한(水韓)은 번한(番韓)왕이 아니고, 그 후손 기후(箕詡)~기준(箕準)까지 번조선왕이고, 그 이전은 추존(追尊)으로 본다.
 
이렇게 역사를 꾸민 것은, 해모수의 북부여(北夫餘)와 호동왕자(好童王子)와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슬픈 비화(悲話)인 최승(崔勝)의 낙랑국(樂浪國)을 감추려는 시도(試圖)에서 장안(長安)-낙양(洛陽)중심에 접한 사실을 부각해서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당() 때부터 같이 우리역사를 왜곡하며 환국, 배달국, 고조선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또한 기자조선(箕子朝鮮)이 위만(衛萬)에게 뺏겼다는 곳도 하북성(河北省), 위만(衛萬)에 뺏겼을 뿐이라 하는데 언제 하북성까지 기자조선이 확대한 것인가도 기록이 불명하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기자조선부터 썼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은 대륙에 있었다. 작은 국가로 고조선(古朝鮮)영역에 기자가 와서 작은 부족 제후국(諸侯國)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재성 우리역사연구원장은 기자조선(箕子朝鮮;서기전341~194)=번조선(番朝鮮)은 기자조선을 대체한 이칭(異稱)으로 구분하고, 위만조선을 예조선(濊朝鮮)이라고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숨기고 지워가며 기자를 부상시키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서 본 역사왜곡과 우리강역 우리민족사는 국가의 영토로 맞추어 서술하는 국가사관(國家史觀)의 국사(國史)가 아니다. 상고시대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시대와 고조선(古朝鮮)시대를 기준(基準)으로 한, 민족사관(民族史觀)으로 이 시대의 영역(領域)과 백성(百姓)은 거의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민족이었다.
      
우리는 고조선 이전의 우리의 영역과 국가의 기원도 숨기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들 있다. (), (), (), ()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한족(漢族) 25사시대의 우리역사도 모르고들 있다.
 
또한 중국사기(史記;401)[삼국사기(三國史記)] 역시 고조선 이전의 구리(九藜)라는 국호(國號)의 나라, (;九藜), 국호(國號)시대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중국은 구리(九藜)를 삭제하고 조선(朝鮮)으로 하고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우리 역사를 숨기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왜곡된 역사만을 배워 왔기에 우리가 유라시아를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사실을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면 오로지 반도 안에서 역사가 이뤄진 것같이 말들을 하는데 외국인들이 우리를 자기나라 역사도 모르는 무지한사람으로 비웃고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영역은 중국의 정사(正史)25()기록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북사(北史), 양서(梁書), 신구당서(新舊唐書)등 사서(史書)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학자(歷史學者), 정치가, 저명인사들 까지도 우리가 대륙사(大陸史)임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우리 조선영역을 숨길수가 없어서 상고시대(上古時代)는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영역이고 중국은 가장 영역이 좁았다고 했다.
 
또한 중국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 엄문명을 비롯해서 타이완(臺灣)의 서량지(徐亮之)같은 역사학자도 대륙의 하남성(河南省), 광동성(廣東省),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안휘성(安徽省), 호북성(湖北省)과 요동반도 만주와 한반도가 우리나라 영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삼국시대 회계남월(會稽南越)에 있던 왜()와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동쪽인 강회(江淮)지역에 신라(新羅)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삼국사 권46][남제서권58]지역으로 고대 우리가 지배한 서화(西華)에서 한반도(韓半島)가 우리의 영역(領域)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는 [중국사(中國史)]에서 서기전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黃河)와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中國族)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東方天子)인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東夷族)배달국이 강회(江淮);양자강과 황하의 중간)지방에 진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사학자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25()은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중원(中原)대륙을 지배 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變造)작업을 해놓은 것이다했다.
      
우리는 삼일절100주년을 맞이하였는데 100년 전 삼일운동이 있은 후, 1932429일 일왕의 생일과 상해사변 전승을 기념하는 중국 상해 홍구공원;(지금은 루신공원으로 바뀌었음)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상해임시정부를 도운 장개석(蔣介石)총통은 임시정부 이시영(李始榮)부통령을 만난자리에서 우리나라 독립군의 눈부신 활약상을 치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의고향은 옛날 백제 땅이었습니다. 어쩌면 내 몸에도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백제라니요?”하고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우리의 역사무지를 질타하는 말을 이렇게 했다. “당신들의 선조(先祖)가 이 땅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우리는 너무 역사를 너무 모르고들 있다.
    
역사를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광복73년과 3.1100주년을 맞으면서도 아직도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역사가 우리역사같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일제가 조작한 역사는 우리역사가 아니다. 우리역사는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재정립해야 한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봐도 김유신의 활동무대가 백제와의 전쟁터인 대륙의 항성(項城), 독산(獨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백마하(白馬河), 황산(黃山), 평원(平原), 대산(大山)등이고, 김부식(金富軾)도 이 때 역사지명을 모르는 360의 지명이 대륙에 있다. 아직도 한반도의 장군으로 둔갑하고 있음은 우리 역사무지가 빚은 비극이다. 3.1100주년을 맞으면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역사왜곡과 고분 발굴 하지 않는 이유
 
여기에 덧붙이는 것은 일본은 어찌해서 그들이 자랑하는 왕릉들을 하나도 발굴 하지 않는가! 필자가6~70년대 일본 유학 시 일본인들과 역사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원시생활을 하는 일본을 개명(開明)하게 한 것은 바로 우리민족이라고 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역사가 앞서고 있다면 140만 명을 동원해서 만든 닌토크 덴노(仁德天皇)의 왕릉()을 발굴하면 자명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왕릉을 발굴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를 발굴하면 일본의 역사가 다 밝혀질 것임에도, 발굴을 하지 않는 그 이유가 어디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 왕릉에서 나오는 유물(遺物)이 모두 우리의 선조(先祖)들의 만든 것이고 그 주인공은 일본인 아닌 우리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고사기(古事記)]도 모두 백제본기(百濟本紀)의 내용 등을 이입(移入)한 것임은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소명(疎明)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우리역사를 폄하하고, 연대나 역사사실을 지우며 지금도 양자강 이남의 왜()670년의 일본(日本)이 대만(臺灣)에 있었음을 숨기고 역사왜곡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역사사정(歷史事情)이다 
 
근래 일본에서는 전후 상가야(上伽倻)의 역사연구를 하는 학자가 많아지며 부여(夫餘)와 가야(伽倻)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 이는 일본의 조상이 부여부족(夫餘部族)인 일부가 남하(南下)하여 양자강 이남의 왜()왕 초대에서 10대까지 왕이 가야계임을 일본학자들도 앎에서다.
 
우리가 중원대륙을 지배하고 있을 때 왜()와 일본은 우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백제가 망한 후, 서기663년 백강전투에도 연합하여 백제부흥을 시도가 실패되자 그 연합군은 해적이 되어 대륙해안과 14세기에는 조선을 침범하며 약탈을 일삼았기에 태종(太宗)은 근거지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했다. 일본은 따지고 보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민족임도 숨길 수 없다.
      
일본이 관서(關西)에 있는 거대한 오진왕릉(應神王陵)과 닌토쿠 왕릉(仁德王陵)은 앞으로도 절대로 발굴(發掘)되지 않을 것이다. 발굴하면 일본역사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닌 대륙이고, 그 위치는 양자강 이남의 왜(), 670년 타이완, 일본 행적(行蹟)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들 왕릉을 바굴(發屈)되면 그곳에서 나온 유물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伽倻) 소위 삼국시대 우리의 유물임이 들어나고, 그들의 역사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며 중원대륙(中原大陸)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伽倻)의 지배를 받은 것이 들어나기에서다.
      
일본은 그들은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을 숨기고 있으나 이를 숨길 수도 없다. 삼국지(三國志) 왜인전(倭人傳)에 왜인(倭人)의 항목(項目)으로 처음 기록된 [삼국지집해(三國志集解)()30]을 비롯해서 왜()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그 기록들을 보면 모두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왜인(倭人)대한 기록이 나와 있는 서적은 삼국지(三國志)’외에도, ‘위서())’, 동이(東夷;43~49)에 기록이 있고 진서(秦書)’,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수서(隨書)’, ‘구당서(舊唐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등에 고대일본(古代日本)에 관한 대륙에서의 기록이 실려 있어서 감히 왜곡(歪曲)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살펴보면, 고사기(古事記)는 왜() 천무왕(天武王)의 명()으로서 히에다 아례가 송습(誦習)한 전승(傳承)을 안만려(太安萬呂)712년 찬록(撰錄)한 것으로 신대(神代)부터 스이코 왕(推古王;592~628)까지의 왕()의 계보(系譜)와 왕()에 관한 설화(說話)가 기술된3권을 5~6세기경(世紀頃)의 제기(帝紀), 구사(舊辭)가 개작(改作)되어 편찬(編纂)된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도 신대(神代)로부터 지토우왕(持統王;687~697)까지 내용을 전30(30)을 한문편년체(漢文編年體)6국사(國史)인데 5세기이전의 기술(記述)은 사실과 작위(作爲)가 합쳐서 사실부분이 고증이 아니 되고 6세기이후의 것은 백제사와 중국사를 참고로 하고 있어 객관적 기술이 많다 하나, 거의 왜곡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없는 서적임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일본이 대륙에 있어다는 것도 동이전(東夷傳)과 왜인전(倭人傳)에 나오는 자연현상, 특산물(特産物)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제는 통하지 않은 왜곡역사도 버려야 할 때다. 일본이 왜곡한 역사도 3.1운동 발발(勃發)100주년을 맞는 이해는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할 때라 본다.
        
(다음에 계속). 
(이상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단군을 찾아서’.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 番朝鮮史)’. ‘三國史 高句麗本紀’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李進熙’ ‘好太王碑’.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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