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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08

중, 일은 우리의 역사 진실 언제까지 숨기려는가

중, 일은 우리의 역사 진실 언제까지 숨기려는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4-06 10:40:55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이등박문
(伊藤博文)1906년 조선 통감(統監)으로 부임하며 조선을 침략하려면 역사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며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한 후 조선총독부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어 환국과 배달국은 물론 고조선(단군조선)도 절반으로 하고 역사의 뿌리를 잘라버린다.
 
그 후 반도에는 일본의 임나부(任那府)를 두어 조선을 지배하였다고 조작한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임나(任那)는 유물도 안 나와 일본 학자들도 허구(虛構)임이 인정하고 있다. 허나 우리나라 반도사관자들 중엔 아직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얼간이가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670년 타이완(臺灣)에서 당()에 의해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그들은 1403년 명()나라가 야마토(大和)정부의 아시가가 요시미쓰(足利義滿)이 일본이라는 국호와 왜사(倭史)를 넘겨받고 난 후 우리가 지배한 일본을 오히려 자기들이 지배했다고 거꾸로 역사왜곡을 한다.
 
특히 이병도(李丙燾), 손진태(孫晉泰)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의 역사를 가르친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교수가 주장한 조선은 2000년의 역사라며 마한 54개국, 변한 12, 진한 12국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여, 조선 역사는 1600년이라고 왜곡한다. 그리고 2333년은 신화(神話)라고 하는데 식민사학자들이 이를 정통으로 수용한 자는 소위 사학자(史學者)아닌 사학자(詐學者)들이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일본은 867년 명치유신(明治維新) 후 식민통치를 하면서 우리역사를 부정하나 우리나라 학자들이 이를 바로 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자 중국과 일본은 얼싸 좋다고 하며 쾌재(快哉)를 부른다. 이후 우리역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음은 지금은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안호상(安浩相) 박사다.
 
초대 문교부 장관이신 안호상(安浩相) 박사는 현행국정교과서는 일제(日帝) 식민사관의 복사판(複寫版)’이라고 하시며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여 국사교과서내용시정요구에 관한 청원(請願)’1970년대 당국에 내시고 국회문공위원회가 국사공청회(國史公聽會)’를 연 자리에서 천년 만에 우리민족의 바른 역사를 찾을 기회를 주신 것은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바른 역사는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는 자들에 의해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학계가 연구하지 않고 식민사관을 따르고 있음에서다. 우리 국민도 크게 각성(覺醒)해야 하고 분발할 문제이다. 우리 역사는 중국과 일본이 감히 가타부타 할 역사가 아니다.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역사왜곡을 시작하여 기자를 조선으로 몰아내며 이때부터 모든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로 옮기며 자기들이 동북아 역사를 장악한 것 같이 왜곡한다.
 
일본(日本)1404년 명()나라로부터 왜인전(倭人傳)을 받고나서 일본이 마치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자생한 것처럼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오늘은 얼마나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일부만이라도 살펴보고 자 한다.
 
왜의 역사, 일본열도 가져가기위해 왜곡한 술책들
 
일본은 6개국을 통치했다고 왜곡하고 한반도도 다스렸다고 하는데 삼국지(三國志)왜인전(倭人傳)은 나라가 아니기에 왜인전(倭人傳)이라 했다. 그래서 삼한(三韓) 속에서 왜()를 따로 분리했다.
 
이 왜()는 나라도 아니고 왜인전(倭人傳)이라 했던 것이다.(史記 卷2). 이는 왜()에 대한 고민(苦悶)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삼한(三韓) 78개국에 왜(=()는 소강(小康)의 나라로 보고 있다. 또 이 왜()가 하남성(河南省)이라 하였으나 절강성(浙江省)에 있었다.
 
우리는 748년 동안 한()의 위치를 바르게 알려주지 않아 모르고 있으나 한()삼국사46지역인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로(, , , )지역이다. 김일연(金一然)삼국유사(三國遺事)가 발행된 이후 삼한(三韓)은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보았으나 반도에 없었다.
 
삼한(三韓)삼국지30 후한서(後漢書)85, 삼국사(三國史)()46의 위치에 있었다. 삼국지(三國志)30에 나오는 왜인(倭人)은 위인(衛人)이며 회계(會稽)에 봉하여진 소강(小康)의 후예(後裔)들의 나라를 일본열도화(日本列島化) 시키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왜()는 위()나라 역사이며 회계(會稽)지역에 있었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후예(後裔)나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한 이름이 왜()와 위()인 것이다. 또한 일본의 히미코(卑彌呼)가 세웠다는 비미국(卑彌國)과 구노국(狗奴國)의 비미궁호(卑彌弓呼)가 있는데 비미국(卑彌國=伊國都=邪馬臺國)은 여왕(女王)이고, 구노국(狗奴國)은 남왕())이다. 이 두 나라도 한()78개국의 하나이었다. 그들의 언어도 우리말이었다.
 
여기서 한전(韓傳)에 나오는 한() 78개국 중 사로국(斯盧國)은 사로신라(斯盧新羅=서신라)로 발전하고, 백제(伯濟國)은 백제(百濟)에 병합되고 고리국(古離國)은 고구려(高句麗)에 병합되고, 비미국(卑彌國)과 구노국(狗奴國)은 왜노(倭奴)로 왜()가 되었다. 이 때 왜는 대륙에 있었다.
 
()는 회계(會稽)지역에 봉해진 이후 회계돈야현(會稽東冶縣(會稽東冶之東)은 회계(會稽)동쪽 대주(臺州)를 말하는 것이다. ()의 지명(地名)으로 회계(會稽주작(朱雀담이(儋耳이주(夷州단주(澶州)가 있는데 주애(朱崖)는 해남도의 지명이고 담이(儋耳)는 한서(漢書)7에서 남월(南越)이라 하였고, 이주(夷州)는 주산군도(舟山群島)로 보여 진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고 왜곡된 역사에만 정신을 팔려 있어서 그 위치를 연구 하지 않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렇게 되자 중국과 일본은 이 왜()를 일본열도(日本列島)까지 끌고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왜인(倭人)이나 한()은 동이(東夷)가 만든 나라들이다.
 
즉 사로국(斯盧國비미국(卑彌國구노국(狗奴國백제(伯濟國고리국(古離國) 등은 한()의 일부이고, 비미국(卑彌國) 여왕 히미코(卑彌呼)로 일본 열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왜인(倭人)과 왜() 역사를 일본열도(日本列島)로 하기 위해 동이전을 한반도로 만들게 하여 왔다.
 
그러나 왜()78개국 중 하나임으로 사로국(斯盧國백제(伯濟國고리국(古離國사로국(駟盧國) 등과 함께 비미국(卑彌國구노국(狗奴國)이 있었기 때문에 18() 동이전은 왜(백제(百濟임나(任那가라(加羅진한(秦韓모한(慕韓) 등 여러 나라와 서로 지배를 나타내려고 하는 흔적들로 18() 동이전(東夷傳) 번역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륙역사를 한반도 역사로 왜곡한 중과 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당() 때 위()를 없애고 왜()로 만들기 위해서 왜를 완전히 옮기려 하였다. 내용자체를 하남성(河南省)으로 왜()를 밀어 낸다. 이 왜()670년 일본(日本)으로 국호(國號)를 쓰게 되면서 670년부터 1400년까지 일본으로 옮긴다. 일본은 670년 타이완=(臺灣) 때부터 일본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요사(遼史)에서는 기자(箕子)를 만주(滿洲)로 옮기고 조선에서는 기자(箕子)를 평양으로 옮긴다. 중국의 고대(古代) 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에는 하북성()에 있다고 하였는데 당()때까지였으나 이 후 한반도로 옮긴다. 고조선(古朝鮮) 때는 삼한(三韓)은 군()이었다.
 
회계(會稽)는 절강성에 있는데 이것을 하남성(河南省)으로 가져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지나(支那) 18() 동이전의 기자(箕子)가 살던 조선과 기후(箕珝)의 번조선(番朝鮮) 및 위만(衛滿)의 조선과 기준(箕準)의 삼한, 그리고 한사군(漢四郡)등 동이역사를 대륙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1401년 조선(朝鮮)이라는 국호(國號)와 동이전(東夷傳)을 밀어낸 사실을 바로 알아야한다.
 
() 때부터 왜(=)를 없애고 왜()가 일본열도(日本列島)로 만들기 위해서 왜()를 완전히 옮기려 하였다. 내용자체를 하남성(河南省)으로 왜()를 밀어 낸다. 이 왜가 670년 일본으로 국호를 쓰게 하면서 670년부터 1400년까지 일본으로 옮긴다. 일본은 670년 타이완=대만(臺灣)때부터 일본이다. 이 일본은 백제유민이 왜()로 가서 세운 나라였다.
 
또 왜구(倭寇), 백제와 왜()670~1300년 연합한 것이 왜구(倭寇)인데 당시 대륙 동해안과 동남아와 우리나라도 많은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지금까지 왜구(倭寇)연구에서 타이완(臺灣)만 왜구침입(倭寇侵入)을 받지 않았다. 이는 타이완(臺灣)이 왜구(倭寇) 본산지임을 말해 준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대륙에서 나라를 세운 우리겨레는 중국의 서전(書傳)사기(史記)7~8천 년 전에, 한밝산(장백산=백두산)지역에서 일어난 조이(鳥夷)가 기주(冀州)로 옳마가 살았는데 기주(冀州)는 현재 하북성(河北省), 하남성(河南省), 산서성(山西省), 찰합이해(察哈爾海), 열하성(熱河省)등 황하(黃河) 이북(以北)과 요하이서(遼河以西)이다.
 
단군(檀君)과 당요(唐堯) 시대에는 우리 동아전체(東亞全體)를 기주(冀州연주(兗州청주(靑州서주(徐州양주(揚州) 등 구주(九州)로 나뉘었는데, 연주(兗州)는 하북성(河北省)과 산동성(山東省)의 일부로서 현재는 바다에 가라앉아 없어진 지역이 있음도 감안하여 연구해야 한다.
 
청주(靑州)는 현재 요하(遼河) 동녘인 만주(滿洲)와 한반도와 산동성(山東省)을 합친, 지역인데 여기에는 동이에서 갈려나간 래이(萊夷우이(嵎夷동래이(東萊夷준이(准夷) 등이 살았다.
 
양주(揚州)는 현재 중국의 강소성·안휘성·강서성·절강성·복건성 지역인데 한밝산 지역에서 일어난 조이(鳥夷)가 가서 살았는데 조이(鳥夷)가 한밝산 지역과 기주(冀州)의 추운지방에 살적에는 털가죽 옷을 입었지만(鳥夷皮服), 남녘 따스한 지역에선 풀 입 옷을 입었다(鳥夷皮服).
 
위와 같이 우리 동이계가 대륙에 살았다는 기록은 중국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조이(鳥夷)는 기주(冀州)와 양주(揚州)에 다 같이 있었다고 하였다. (書傳 卷三 禹貢 鳥夷卉服;史記卷二 夏本紀 鳥夷卉服; 前漢書卷二十八 地理 林惠祥 中國民族史, 卷上 第四章 東夷系漢族來源之 (5) 鳥夷 鳥夷或作鳥夷 經注有謂 爲善補鳥者 冀州揚州 皆有之).
 
우리는 환국시대부터 대륙에 있었다. 사기(史記)는 진시황(秦始皇) 이전은 무조건 동이역사로 보고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 문화의 뿌리를 복원해야 동서문화권이 형성됨을 알아야 한다.
 
반도사관은 잘못된 조작 역사이다
 
반도사관자들은 당() 때부터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여온 일본은 아시가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명()으로부터 우리의 왜인전(倭人傳)을 받은 후 일본왕 1대 진무(신무(神武)가 서기전 660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조작하나 당시 일본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도 않은 때이다.
 
이때는 우리 기마민족(騎馬民族)이 대륙을 호령하며 지배한 때로 유라시아는 우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더구나 일본열도에는 나라다운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 때 진무(神武)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일본의 학자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조작과 왜곡도 분수가 있지, 당시 왜()는 대륙 양자강(장강(長江)이남에서 우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 바로 보고 말을 해야 한다.
 
또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도 모두 대륙에서 건국하고 한반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다. 이 삼국들이 한반도에서 건국했다는 것은 허구(虛構)임을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했으면 한다. 이때는 왜()가 대륙에서 우리의 제후국(諸侯國)으로 있었던 시대다. 숨길 수 없다.
 
우리 역사는 우리의 사서들을 다 잃음으로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국(), 한문(漢文)로 단군역사를 쓴 저명한 학자들이 많은데 197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 동이족이 중국의 춘추와 전국시대(서기전 8~4세기)에 점차 만주로 이동해 왔다고 왜곡하는데 도대체 이런 거짓말은 무엇을 근거로 썼는지 참으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예사로 거꾸로 논리를 전개 하고 있다.
 
우리 동이(東夷)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서기전 6~7천 년 전 배달국시대도 중원대륙(中原大陸)과 유라시아로 뻗어간 것인데 고조선도 중심지가 대동강가에서 일어나고 고조선의 문화중심지대동강이라 한데 대하여 중국의 사학자 서량지(徐亮之)와 임혜상(林惠詳)은 그들의 저서에서 이는 거짓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거짓말 국사는 일제식민사관의 찌거기라고 반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식민사관자들은 계속해서 고조선은 대동강유역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정신병자(神病者)같은 소리를 지금도 말하고들 있는데 역사(무지歷史)무지(無知)가 얼마나 수치(羞恥)을 모르고 있다. 위서(魏書), 전한서(前漢書), 지리지(地理志), 삼국지(三國志), 부여전(夫餘傳), 삼국사(三國史)와 남제서(南齊書) 등 사서(史書)는 우리가 중원을 지배한 것을 확실히 입증해 주고 있음을 어찌 모르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 교과서는 일제(日帝)시대의 내용 그대로인데 참으로 거짓 역사를 73년이나 계속해 왔다는 것은 우리국민도 이제는 바른 역사 찾고 바로 세우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켰다. 는 것도 위만조선을 멸망시켰다는 것도 다 거짓이다. () 나라는 위만조선의 우걸도 못 이겨 위만조선이 멸망은 내분에 의해서라는 것을 이미 다뤘다.
 
기원전 8세기는 도시국가를 만들고 철기를 사용하는 높은 문명을 일궈낸 시대로 당시 우리기마민족은 유라시아를 지배하며 서기전 5~4세기에는 세계교통의 요로를 장악한 기마민족(騎馬民族)이 대륙을 지배한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서기전 1~2세기의 세계는 우리 기마민족이 영토를 확대하고 제민족(諸民族)을 지배하며 번영한 것을 제대로 알면 의문은 사라진다.
 
특히 기마민족인 우리선조들은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열리게 하며 5대문명을 여는 매개역할을 한 것은 물론 황하문명까지 우리 동이족이 주도하며 번영해간 역사를 알고 우리역사를 논해야 한다. 우리선조들은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열고 국가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했다. 한사군도 제 멋대로 관리도 못한 한()나라를 부상시키나 이는 너무 과장되어있다.
 
글을 맺으며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대륙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고대부터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왜곡하고 조작하여 왔다. 우리가 대륙에서 대륙을 지배한 것은 중국역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의 삼황오제가 다 우리의 선조임은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대륙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기록은 다 없앤다고 했으나 지금 남아있는 사서에서도 나타난다. 사마천의 쓴 사서(史書)도 순()은 김유신의 조상이기도 한 헌원(軒轅)8대손이라고 하고 있는데 중국역사는 1천여 년 밖에 아니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예맥(銳麥=(濊貊)은 중앙아시아에 크나큰 세력을 잡고 1~2세기경에는 강력한 힘으로 대륙을 지배하였다. 지금 중국은 이 예맥(銳麥=(濊貊)도 숨기고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지 않고 있는데 이 예맥(銳麥=(濊貊)도 복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대학자라는 사람들도 중국의 눈치를 보노라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분이 몇 아니 되는 것은 불행이다.
 
조선조 태종(太宗)은 김부식(金富軾撰) 삼국사(三國史)를 권근과 하륜, 이첨에게 1권으로 축소할 것을 명해 조선에 맞추기를 획책했고, 정약용(丁若鏞)<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가 발행하여 지나(支那)18()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 역사로 해석하기에 이르게 한 잘못들은 우리가 크게 반성하고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이렇게 되자 중국과 일본은 춤을 추는 격이다.
 
여기에 일본은 이러한 왜곡사를 굳히려고 연구비를 하바드대에 제공하며 삼국사 연구를 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도 원문을 재현하는 해석이 아닌 한반도 맞추는 방법을 하바드 대에서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사학계는 무엇을 하는지 송장들 같이 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백제사(百濟史)사에 있어서도 백제는 서안(西安) 등에서 편찬된 지나18(支那18) 동이전(東夷傳)도 한반도 역사로 할 수 있는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제와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다 대륙의 역사로 삼국시대 지역이 대륙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음에서다.
 
삼국시대의 영역이 삼국사권46과 남제서권 58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백제는 고구려, 사로신라와 가야와 함께 환국과 배달 조선을 계승한 아시아의 역사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는 일본이 야마토(大和)를 말하는 것도 알고 말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國會 文公分科委員會, 國史敎科書內容要求請願-國史公聽會 陳述人 發言內容.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 .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參照, 本文引用 함을 밣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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