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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부활하는 아날로그 감성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4-15 0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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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옥 부장 (국제부)
출퇴근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10여 년 전에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 -E’.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인간들이 모두 인공행성으로 떠난 뒤 700년 동안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홀로 지구를 지키는 로봇 월-E가 주인공이다. 인공행성으로 이주한 인간들은 모든 일을 로봇한테 맡기고 식사마저도 자동으로 해결된다. 몸을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는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1인용 좌석에 앉아 각자의 눈앞에 설치된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저마다의 화면 속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영화 월-E에서 봤던 그 장면이 떠오르며 섬뜩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정확히 11년 전에 영화를 보면서 아주 먼 미래에나 닥쳐올 비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너무나 빨리 우리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행히도(?) 현실의 인간은 아직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기 전에는 지하철에서 전화기 대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학생들은 공책이나 책을 펴들고 시험공부를 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은 01로 구성된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정보를 생산·유통·전달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시각적·청각적 정보들은 01, 혹은 on/off의 이분법으로 환원된다. 디지털의 장점은 정보 처리와 전달의 신속함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밤과 낮 사이에 새벽과 황혼이 있듯이 자연에서 01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점들이 있다. 인간의 본성도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디지털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날로그적 정서에 감응하는 이유다.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전자책이 있지만 사람들은 직접 서점에 가서 읽고싶은 책을 골라들고 첫장을 넘기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터넷 신문이 있지만 여전히 잉크냄새 풍기는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또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듣는 대신에 굳이 LP판의 먼지를 털어내고 턴테이블에 바늘을 얹어 음악을 듣는 마니아층도 요즘 들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 백만장자 등의 별칭이 늘 따라붙는 워런 버핏은 이런 호칭들을 마다하고 신문 중독자라고 불리길 좋아한다. 소년시절 신문배달을 해서 용돈을 번 경험이 있는 버핏은 신문 예찬론자다. 물론 종이신문을 가리킨다. 버핏의 신문 사랑은 그가 지역 신문들을 포함해 60여개의 신문사를 인수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의 근원이 아날로그라 해도 우리는 이미 디지털의 편리함이 일상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아날로그로 완전히 회귀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두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둘 다 만족시킨 사례가 있다.
 
최근에 출시된 앱 중에는 예전의 코닥 카메라를 오마주한 듯한 이름을 가진 사진앱이 있다. 이 앱은 필름 카메라의 단점을 그대로 차용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이미지를 바로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3일 후에나 사진을 볼 수 있다. 과거에 필름을 맡기고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시간과 같다. 셀카 기능도 막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앱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이 불편하고 느린 이 앱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아마도 기다림의 기쁨과 설레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셔터를 누를 순간을 선택하는 긴장감과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기대감, 그리고 기다림 끝에 사진이 나왔을 때의 즐거움, 이것들은 모두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설레임이다. 
 
버핏은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가져오시는 신문을 기다렸다가 읽곤 했다. 그는 지금도 대여섯 가지의 신문을 구독한다고 한다. 아직도 삼성 폴더폰을 쓰고 있는 이 백만장자는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자보다는 신문이 오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장씩 넘기는 종이신문의 아날로그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이 디지털 신호에 지배당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근원이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건 역시 미각이다. 요즘 TV와 유튜브를 장악하고 있는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들이 그 증거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정성과 준비하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음식이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을 통해 완성된다. 또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눌 때 배가되는 감성은 분명 아날로그 방식이다.
 
영국의 한 지역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을 묻는 공모에서 당선작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좋은 친구와의 여행에서 시간은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숫자가 아닌 아날로그 감성이다. 내일 지하철에서 책이나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띤다면 어쩐지 기분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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