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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110>

지금의 한반도 역사는 실제 역사의 5% 밖에 되지 않는다

김일연(金一然)은 고조선, 유연제노오월를 묵살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4-20 21:07:20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삼국사(三國史)는 고려 17대 인종 때 김부식(金富軾)이 여러 학자(11)의 도움을 받아 1146년에 출간된 우리나라 국보322-1호 책으로, 우리나라 정사(正史)로 삼국시대 중국의 유연제노오월(·····)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역사를 밝혀주는 책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서기 1281년에 편찬된 책으로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하여 상고시대 환국이 있음을 기록한 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고조선(古朝鮮)이 없고 삼국사(三國史)46의 유연제노오월(·····)을 다물(多勿)했다는 기록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사서로서는 너무 미흡한 책이다.
 
삼국사(三國史)95%가 유연제노오월(·····)의 기록이다. 이에 반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정신왕과 무강왕(武康王)의 기록 밖에 없다. 이 두 왕은 대륙에 없었고 반도에서 왕() 또는 분왕(分王=()으로 있었던 왕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떠했는가? 한서지리지(漢書地理誌)에 의하면 기원전 1세기경 왜인(倭人)은 한()78개국 제후의 하나였다.
 
동이(東夷)인 왜()는 한()78개국 제후(諸侯)인 비미국(卑彌國;伊都國)과 구노국(狗虜國)의 발전국가로 삼국사(三國史)() 46 범위에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숨기려하나 이 사실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당()나라 때부터 우리역사를 반도로 옮기고 왜()는 일본 열도로 옮기려 시도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나 이 역사의 진실은 바꿔질 수 없다.
 
()는 한()78개국 제후(諸侯)의 하나였기에 히미코가 세웠다는 비미국(卑彌國)과 구노국(狗虜國)670년 당()나라는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도록 하고 명()나라는 1403년에 우리의 왜인전(倭人傳)을 일본에 주면서 일본(日本) 국호(國號)를 쓰도록 하였다.
 
일본열도(日本列島)1403년에야 명()나라로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도록 한 다음, 계속해서 지금까지 일본(日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전 대륙에 있을 때는 왜(;() 또는 왜인(倭人)이었다. 1403년 전에는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는 야마토(大和)라고 했다.
 
중국의 18()동이전(東夷傳)에도 왜() 또는 왜인(倭人)이었다. 이 왜()는 유연제노오월(·····)지역의 나라이며, 월왕() 구천(句踐)의 후예(後裔 )국가이고 한()의 비미국(卑彌國)과 구노국(狗虜國)의 발전국가로 78개국 제후의 하나였다. 이 지역은 회계(會稽), 이주(夷洲), 주애(朱崖), 담이(儋耳), 남월(南越)이 살던 나라로 삼국사(三國史)() 46의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숨기며 일본열도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 바꿀 수 없다.
 
오늘은 우리의 대륙 역사를 반도로 옮기며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 왜곡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역사교육, 일제 식민사관교육 그대로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1910829일 국치일을 당하고 한 달이 지난 101일 총독부가 의도한대로 우리가 쓰던 교과서를 모두 불법화한 후 1920년부터 일본역사를 우리국사라 하고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바뀐 것이 없다.
 
더욱이 1922조선사편수회가 총독부산하에 두고 총독부 제2인자인 정무총감(政務摠監)을 책임자로해서 만든 조선사(朝鮮史)라 하여 나온 이 조선사(朝鮮史ㅖ」내용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국사는 광복 이후 95%를 되찾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3공화국 때인 1973, 박 대통령은 일제식민사관이 들어 있어서 교육에 심한 해독을 끼친다.’는 이유로 국사교과서를 전부 폐기해 버린다고 선언하고 신학 년부터 국사교과서를 만들어 1974년부터 개정한 교과서를 쓴다고 했으나, 전과 다른 것이 없다. 이러한 것을 국정교과서 시정청원 때도 거론되었으나 여전히 그대로이다. 반도 역사는 5%밖에 안 되는 데도 그대로다.
 
그것은 환국과 배달국역사도 빼고 우리민족의 천손민족으로 12000년 동안의 위대한 역사적 사실과 유리시아의 주인공으로 7천년 이상 지배하며 통치해온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5대문명을 주도하고, 인류사회에 어떻게 기여하여 왔으며 중원의 주인으로 삼국시대까지도 지배한 아시아의 역사를 고작 반도 안에 가두어놓은 5%의 옹졸한 역사내용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하여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반도식민사학과 중국의 패권주의 사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우리 역사교육을 맡은 교육부가 지금까지 제대로 역사교육을 하지 않고 무사안일에다 국사사학계(國史史學界)를 장악(掌握)하는 데에만 매달리며 이에 대한 대안(代案)조차 눈감고 있었다는 비난을 피 할 수 없다. 참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지나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잘못한 것이 없고 국사학 교수를 믿은 죄밖에 없다는 변명을 듣는데 교육부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광복 73년간 이런 말로 변명될 수 없다. 그 안일함이 문제이다.
 
이런 당국의 안일함에서 중국과 일본은 우리 역사를 제멋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함은 우리사학계가 반도사관을 조장한 친일학자의 것만 따르는 우리 사학계의 매국적 허구만을 추종한 결과, 지금 우리 역사는 갈 길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우리 역사를 반도에 한정하여 우리상고사는 아예 빼어버리고 단군에만 매달린 옹졸함에도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며 우리사서를 다 몰수하고 다 거둬 갔으나 남은 사서와 중국의 사서들로서도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연구를 하지 않은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의 국사학계를 장악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 얼마나 우리역사와 거리가 있는지!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실현토록 정책을 왜 못하는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
 
우리의 국가영역도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도 대륙이었다. 중국사학자 임해상(林惠祥)상고시대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영역이고 중국은 아주 작은 영역이었다고 했다. 유라시아가 반도인가? 연구도 하지 않고 일제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왜곡역사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 일의 역사왜곡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 역사는 연구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역사기록이 뒤엎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도 40년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역사교재 우리나라의 발달 1,2를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지금 역사를 연구하면서 당시 배운 우리나라 역사는 반도 안의 역사로 배웠다. 그런데 고대사를 연구하며 우리역사가 반도가 아닌 대륙의 역사이고 상고시대부터 대륙의 주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초교 때 배운 우리나라의 발달1, 2는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역사를 광복 후에도 그대로 가르친 것이다. 그 역사교과서에는 환국도 배달국도 없고, 단군신화부터 나오는 고조선이 나오는데 이병도의 반도사관의 이론 그대로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 역사가 반도역사인가?
 
더구나 반도에 없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도 다 반도에 있었다고 하며, 위만(衛滿)이 연()나라 사람이고, 김유신(金庾信), 장보고(張保皐), 최치원(崔致遠)도 다 반도사람이며, 그 역사가 모두 반도에서 역사가 이뤄진 것 같이 꾸며 있는데 이는 가소로운 일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반도에서 건국한 나라는 없다. 그 수도도 대륙에 있다.
 
우리 고대역사의 주 무대가 대륙인 것임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왜곡된 역사만을 배워서 모르고들 있다. 아직도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는 사람을 보는데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고구려 도읍지 수도가 한 두 번이 아닌 8~9번이나 수도를 옮기었다. 1. 졸본(홀본), 2. 눌현, 3. 국내성, 4. 환도성, 5. 평양성, 6. 돈황선, 7. 평양성, 8. 안성, 9. 해주(海州)이다. 이를 살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위만(衛滿)은 연()나라 사람이 아니고, 조선 사람인 것과 최치원(崔致遠)도 신라인(新羅人)이 아니고 고구려인이다.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이 반도에 있은 적이 없다. 이는 일제가 만들어낸 허구역사다. 중국의 사서에 한사군이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면 내 놓아보시기 바라진다. 일제(日帝)의 왜곡역사 이제는 끝내어야 한다.
 
또 위만(衛滿)이 연()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병도(李丙燾) 박사도 말하고 있고 최치원(崔致遠)이 신라인이 아닌 고구려인(高句麗人)이라 했다.(唐書卷60 禮文志 又桂花筆耕20, 461). 
 
환국·배달국·고조선도 삼국시대의 나라들이 다 대륙에서 건국했음을 밝혔는데도 아직도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인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있지도 않은 반도안의 역사로 날조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연구를 하지 않음을 입증한다.
 
날조(捏造)는 일제의 왜곡역사만을 역사로 보며 우리역사의 사서(史書)를 살펴보지도 연구도 하지 않은 해태함에서 나온 결과다. 삼국사(三國史)() 46의 연구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왜곡논리만을 답습하는 반도식민사관의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들의 행태는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용납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며 교육부도 교육관료주의(敎育官僚主義)에서 벗어나, 이를 바로 잡아야 올바른 교육부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는 거의가 허구이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교재는 하나같이 우리나라가 반도에서 삼국이 병립(竝立)하고 그 수도도 반도에 있다고 하나 고대의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야(伽倻;加羅)가 대륙에 있어서 그 수도(首都)가 반도에는 없었다. 당시 백제(百濟)의 수도(首都)는 석문(石門) 남쪽에 백제수도(百濟首都) 한성(漢城)이 있다고 했다. 이곳은 삼국사(三國史)()46 지역인 것이다.
 
백제(百濟)도 대륙의 대국으로 백제의 한수(漢水)는 하수(河水)이며, 삼국사(三國史)() 46에 있다. 또 한강(漢江)- 하수(河水)- 한수(漢水)라는 강은 황하(黃河)이다. 백제(百濟)는 황하(黃河)가 있는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세계사학자(世界史學者)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김부식(金富軾)삼국사(三國史)도 문제가 없는바 아닌 것으로 안다. 한국사 전반부2000년을 잘라낸 역사서로 단군에 대한 기록도 없어서 신뢰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륙중원의 역사를 연구하며 삼국사(三國史)의 기록 중 삼국시대의 기록은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김부식이 한국사 전반부 2000년을 잘라낸 역사서(歷史書)이기 때문인데, 당시 묘청(妙淸)등 당시 반대파의 북진논리(北進論理)를 막기 위해서라 하지만 이는 역사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은 결코 잘한 일이 못 된다.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필자도 비판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한 것은 평가를 받을만한 삼국사(三國史)이었기에 신뢰하는 것이다.
 
당시 김부식(金富軾)과 같이 수고한 공로자는 김영은·최우보·이황중·박동주·서안정·허흥재·이온문·최산보·김충효·정습명·김부식 11명이 10451 222일 편찬했는데 금년(2019)이 편찬972년이 된다. 삼국사(三國史)46의 기록은 대륙을 지배한 내용으로 일제가 왜곡한 삼국시대 왜곡역사를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어서 금과도 바꿀 수 없는 내용이다.
 
한편, 신라의 기록은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터가 반도라고 거짓말을 하나 삼국통일의 전쟁터가 다 대륙에 있지 반도에는 없다. 반도에 있다는 것은 다 왜곡된 허구이다. 그리고 계백(階伯)장군이 김유신(金庾信)신라군과 싸운 황산도 대륙에 있으며 환산이라는 곳은 여러 곳에 있다.
 
곡부의 황산(黃山), 권한진-황산(黃山), 간장진-황산(黃山), 곽리진-황산(黃山)등이 있는데 계백장군의 전사한 황산은 어디인가? 이다. 그 곳은 간장진의 황산(黃山)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도가 아니다. 그리고 김유신도 반도에 없었다. 그는 대륙에서 자랐고 그 조상도 대륙에 있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의 첫 번째가 헌원(軒轅)으로 김유신도 헌원(軒轅)의 후예(後裔). 헌원(軒轅)은 염제 신농(神農)의 자손으로, 이들의 무덤도 다 대륙에 있다. 허무 명랑한 거짓으로 이 사실들 숨길 수 없다. 중국 요()임금도 헌원(軒轅)4대손(4代孫)이다. 또 절강통지(浙江通志)()9 산천초에는 신라로 건너편에 저장성 신라지명이 줄줄이 분포했다고 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대륙의 나라가문어진 후, 반도로 와서 유민이 세운 백제의 수도가 부여이다.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는 왕()이 다스리고, 서라벌의 동 신라는 칸()이 다스렸으나 503년 낙랑국(樂浪國)이 고구려(高句麗)에 흡수되고, 지증왕(智證王)이 왕()이 되기 이전부터 서라벌(徐羅伐) 경주(慶州)가 칸 신라(干新羅)의 수도(首都)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한족의 정사(漢族正史)도 왜()위치 분명히 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대처해야 할 것은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에서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음이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3세기 진()때의 삼국지(三國志)4세기 송()나라 때의 후한서(後漢書)는 왜()의 위치(位置)를 분명히 하고 있다.
 
()500년 이전 대륙에 있었다. 우리는 왜()가 일본역사로만 봐왔으나 우리역사이다. ()는 고조선(古朝鮮)의 일부이고 동이(東夷)의 일부이지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님에도 현재 반도와 일본의 상황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는 한()78제후국(諸侯國)의 하나였던 왜()인데 이제는 그 거짓이 다 드러나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아시아의 학자들은 왜()가 현재의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었다고 왜곡(歪曲)하고 있다.
 
4세기이전 기록이지만 당태종(唐太宗) 이전 까지 발행된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까지도 왜()가 회계(會稽), 담이(儋耳);남월지(南越地)에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야마토국(大和國)은 대륙에서 396~669년 타이완(臺灣)으로 망명정권으로 일본국호(日本國號)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신당서(新唐書) ()220, 일본전도, 함형원년(670)이라 하고 있다. 즉 서기670년에 카히라코라(賀平高麗), 한어(漢語)를 배워 왜()가 싫어서 670년 처음 제정된 것이라 한다. 일본정권(日本政權)670년 이후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명(國名)을 타이완(臺灣)에서부터 쓰기시작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일본 학자 중에도 모르는 자 있다.
 
후한(後漢)이 서기57년에 왜왕(倭王)이 사자(使者)를 낙양(洛陽)에 파견하여 노예160인을 광무제(光武帝)에게 봉공(奉貢)했다고 하였다. 이에 광무제가 왜왕(倭王)에게 끈을 단 사유(蛇鈕);도장(印綬)을 주었다고 했다. , 손잡이가 밧줄로 감은 금인(金印)이 뱀을 본뜨고 있는 사유(蛇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남북의 외신(外臣)에게 주는 법도인데 이를 모른 것이다.
 
보통 중국이 외신(外臣)에게 주는 인장(印章)은 북방민족에게는 낙타유(駱駝鈕)를 주고, 남방민족에게는 뱀을 본뜬 사유(蛇鈕)를 주는 것인데, 일본의 사학자가 왜 사유(蛇鈕)를 받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니, 이는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숨기고 있어서 모르기 때문이다.
 
이 법도를 모르는데서 자기들은 뱀을 본뜬 사유(蛇鈕)를 받은 것은 파격(破格)의 대우를 받은 것이고 북방기마민족(騎馬民族), 흉노(匈奴)에게는 낙타유(駱駝鈕)를 준 것은 수수께끼라고 고무되고 있었다. 이는 역사무지이다. (以上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108參照하다.)
 
여기서 역사의 진실은 우리는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서화(西華)에서 살았던 기자(箕子), 위서(魏書), 서신라(西新羅), ()에 의해서 결코 반도만의 사실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아니 되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외국의 고지도는1666년 타이완(臺灣)이 분명히 일본(日本)이라 나와 있다. 제아무리 중국과 일본, 국사학자(賣國史學者)인 반도식민사관자는 양심을 팔면서 까지 역사를 왜곡하나 역사의 진실은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게 마련이다. 이를 숨길 수 없다.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는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동북아세아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한 사서(史書)를 중국과 일본, 국사학자, 매국사학자(賣國史學者)인 반도식민사관자에 의해서 반도로 왜곡하나, 우리역사는 아시아의 역사이며 세계의 시원국(始源國)으로서 세계사학자들에 의해서도 연구가 심도 있게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 왜곡된 것이 다 더 밝혀지리라 본다.
 
지금 이세아의 국가 중 중국과 일본은 물론 다른 국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서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데서 오는 왜곡이 큰 문제이고 또한 이들 나라들은 상고사는 없음에서 쟁점이 적으나, 관점이 많은 5세기이전 역사를 수록한 사서들이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부정하면서 왜곡과 조작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5세기 이전의 기록인 정사(正史)연구가 제대로 될 때 왜곡과 조작은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관한 사서로서 한무제(漢武帝) 때 편찬된 사기(史記)를 비롯해서 후한효장제(後漢孝章帝;서기76~88)때 편찬된 한서(漢書), (;265~316)때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 420~479)때 편찬된 후한서(後漢書),고려(高麗;1145)때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우리민족의 5세기 이전을 밝히되 당시의 역사사실, 위치, 지명들을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
 
필자가 연구하며 한()에 대하여 봐도 한()나라가 이기지도 않은 조선과의 전쟁에서 다 이기고 한사군도 설치하였다고 하나, 한 무제가 조선에 보낸 수륙양군이 구욕(俱辱)을 당하고 장졸 중에 한사람도 후()가 된 자가 없다고 쓰여 있다. 이것은 한나라의 사마천이 한나라가 졌다는 전쟁인데 우리가 망하고 졌다고 하는데 그 근거를 대라고 말하고 싶다. 그 근거는 없다.
 
한무제(漢武帝)는 위만의 손자인 걸왕(傑王)도 이기지 못한데도 한사군 설치하였다고 운운함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인데도 어엿이 이긴 것으로 조작 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인가? 3류 소설만도 못한 것을 역사로 교과서에까지 의젓이 나와 있다. 이게 진짜역사인가 묻고 싶어진다.
 
또한 교과서에는 진번, 임둔, 낙랑, 현토등의 사군(四郡)을 한무제가 두었다고 그랬는데 이것도 사서(史書)에는 없는 낭설이다. 진번(眞番)과 임둔(臨屯)은 한무제(漢武帝)가 설치한 군()이 아니라 그의 선조 한고조(漢高祖)때에도 있던 조선의 지명(地名)이다. 또 낙랑(樂浪), 현토(玄菟)는 사기(史記)에는 아직 안 나타난 지명이다. 한무제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소제(昭帝)때에 현토(玄菟)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나고 낙랑(樂浪)이라는 지명은 나중에 처음 나타난다.
 
현토(玄菟) 낙랑(樂浪)은 어느 지방인가 하면, ()나라에 속한다고 한서(漢書)28권 지리지(地理志) 에 나와 있다. () 즉 지금의 북경지방 근처라는 것이다. 삼국의 건국연대에 대해서도 끌어내리고 상고시대의 환국과 배달국은 거론조차 않았고 동주(東周)시대부터 1000년 간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해온 예맥(銳麥=濊貊)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고구려는 맥족(貉族)이라 했는데 맥()은 논어와 시경(詩經)에도 벌써 나와 역사기원이 오래다. 3000년 전 구국(舊國)이라는 예맥(銳麥=濊貊)조차 잘라버리고 그 역사를 숨기고 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감히 우리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방관만하는 자는 우리나라국민이 아니다.
 
우리는 거짓 없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상고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세에 이르는 역사를 초, , , 대학의 학생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우리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 알도록 해야 국가도 민족도 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가치관이 변질된 것을 되찾아 회복이 가능하며 국가와 민족의 공동체의식도 연대의식도 되찾을 수 있다. 분발을 기대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國會 文公分科委員會, 國史敎科書內容要求請願-國史公聽會 陳述人 發言內容.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 .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參照, 本文引用 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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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집&빌딩

연예인 중 가수들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은 어디에 있을까?
강민혁
씨앤블루
신형원
우지호(지코)
블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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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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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이뤄주는 크리스탈 볼처럼 꿈 이루고 싶어요”
다섯 명의 소녀들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

미세먼지 (2019-08-20 23:30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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