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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13>

대륙의 왜(倭), 타이완의 일본(日本)은 왜 숨기나!

일본의 왕은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5-12 07:37:28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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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하는데 이때를 기하여 일본에서는 아키히도(明仁)왕에 이어 새 왕을 나루히토(德仁)로 하고 연호(年號)레이와(令和)’로 해 새 왕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연호(年號)레이와(令和)’는 약 4500여의 시()를 수록(收錄)한 만요슈(萬葉集)매화나무 꽃노래 32()의 서문에 있는 이른 봄 좋은 달밤에 공기는 맑고 바람은 온화하다에서 따서 이를 추천한 오사카여자대학(大女子大學) 나카니시 스스무(中西 進)교수는 레이와(令和)’아름다운 평화라는 의미라며 첫째도 둘째도 평화인 평화론자가 고안한 연호라고 말했다.
 
특히 레이와(令和)’ 연호의 두 글자 중 ()’7세기 백제에서 건너온 백제 지식인들과 쇼토쿠 다이시(聖德太子)가 만든 17조의 헌법에 등장한 것이라고 나카니시(中西 進)교수는 28일 중앙일보 서승욱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는 동아시아의 평화사상이라고 했다.
 
필자 역시 새 왕의 평화를 중시하는 일본의 새 출발을 축하하며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사이 좋게 유대를 한다면 세계를 이끌 수 있다고 이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세계 중심에 설 수 있다.
 
오래전 일본의 아매모리 호슈(雨森芳州)誠信之交隣을 강조했다. ‘외교는 신의(信義)를 가지고 이웃과 같이 교류하는 일의대수(一衣帶水) , ‘한 줄기의 띠와 같은 좁은 냇물이나 바닷물을 이루는 것같이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게 새 역사를 이뤄가야 양국이 더 발전한다.
 
지난날의 불행했던 과거를 뛰어 넘어 서로 훌륭한 점은 배우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며 서로힘을 합하여 대범하게 세계로 뻗어나가야 더 빛난다. 지금 우리는 지난날 일제의 잔혹했던 일은 기억하되 이제는 힘을 합쳐 국제사회에서 서로 힘을 합쳐 위대한 새 역사를 창조할 때다.
 
혹자는 저에게 친일한다고? 할지 모르나 필자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일본의 친지와 저를 학문적으로 키워주시고 아껴주신 여러 선생님께도 분명히 저는 지금 귀국하지만 귀국 후 한일우호에 친일도 반일도 아닌 지일파(知日派)로서 양국에 기여할 것을 피력하고 귀국했다.
 
지금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등 우호를 깨치는 자의 말에는 단호히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와 일본 민족은 조상이 같은 민족으로 형제와 다름이 없다. 여기서 역사왜곡이나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의 언동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에서 반론을 제기하게 된다.
 
이 같은 한일관계를 해치는 언동은 한일 양국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치 목적을 위한선동은 이제 그만둬야 할 때다.
 
필자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그 양심을 의심하게 된다. 필자는 일본의 친지에게도 다짐한대로 한일 간에 평화와 유익한 일을 할 것이며 한국과 일본 양국의 번영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평화를 위해 나루히토 덴노(德仁天皇)의 평화를 위한 연호(年號) ‘레이와(令和)’로 결의도 새로운 출발을 내딛는 일본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며 충심(衷心)으로 경하(慶賀)해 마지않는다.
 
오늘은 백제는 한일양국의 역사의 중심에 있는데 역사인식이 잘못된 역사를 밝혀서 한일 양국은 고대부터 같은 연대를 가져 왔음을 일본사의 왕계(王系)등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역사 바로 알고 가야 실패 없다
 
덴마크의 사상가이며 실존철학자인 쇠렌 키엘케고어(Soren Kierkegaard 1813-1855)지난날을 알면 자기를 알 수 있고 미래를 봐야 살 수 있다고 했다. 역사는 한사람 한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만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고대도 대륙사(大陸史)인데 이를 교과서(敎科書) 공정(工程)으로 한반도(韓半島)로 옮기고 우리의 대륙역사흔적을 지우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일본이 이 공정과 맥을 같이 하는데서 필자는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25동이전(東夷傳)에도 한반도 역사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중국의 모택동(毛澤東)은 삼한을 통일하지 못한 것이 한()이 라고 하며 6.25때 그 아들까지 한국전선에 왔다가 전사한 것도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고대에도 고구려, 발해를 동이족(東夷族)이라 하며 두려워했다. ()나라는 우리나라를 천자(天子)의 나라라 했다.
 
한때 일본은 가야건국 서기 42년 임나일본부설 369년 혹은 391년에 시작하여 568년에 멸망했다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허구의 역사를 조작하며, 야마토(大和)정권에 백제 고이왕(古爾王)왕이 칠지도(七支刀)를 하사(下賜)한 것을 헌납(獻納)했다는 등 역사왜곡은 한일 양국에 도움이 되지 못함에 필자는 그 진실을 바로하며 일본의 기만적(欺瞞的) 허구성을 질타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역사가 잘못 된 것에는 우리나라 학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시대 김일연(金一然)을 비롯해서 조선조(朝鮮朝)와 대한제국과 일제하에 자원반식민지(自願半植民地)로 변하게 하더니 졸지에 일본에 예속(隸屬)되는 강제식민지로 전락(轉落)했었다.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건국에 큰 공을 세운 위인이나 그는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기자조선을 토대로 조선(朝鮮)으로 했다. 이는 중국이 당()나라부터 명((() ....대륙에서 조선의 국호를 한반도로 옮기는데 우리 역사를 망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중국은 당((((()이 찬란한 우리의 대륙에서의 조선(朝鮮), 즉 환국(桓國배달국(倍達國단군조선(檀君朝鮮), 우리 삼국시대의 역사기록을 지우며 조작, 왜곡했다. 조선(朝鮮)은 조일(朝日)이 선명하다는 뜻이요. 해를 보고 즐거워하는 민족이다. 일본 역시 해의 신화를 가지고 일본(日本)이라고 한 것은 우리처럼 해에 대한 사상이 일치함을 말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것을 보며 우리를 양곡(暘谷)이라 칭하였다. 양곡(暘谷)은 해 돋는 동방(東方)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해 돋는 동방에서 아침 해를 보고 즐거워하는 한일의 국민이기에 신의(信義)로 유지하는 교류를 아매모리 호슈(雨森芳州)誠信之交隣을 강조했다.
 
즉 일의대수(一衣帶水) , ‘한 줄기의 띠와 같은 좁은 냇물이나 바닷물을 이루는 것같이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게 국교도 신의(信義)를 가지고 교류하며 한일의 새 역사창조를 일구어야 한다.
 
나루히토덴노(德仁天皇)의 연호(年號)레이와(令和)’가 시사(示唆)하는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우리도 미래에 대한 목표가 같은 두 나라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동이(東夷)의 위대함과 일왕의 계보(系譜)
 
우리는 상고시대 환국(桓國배달국·단군조선·예맥조선 등 우리나라는 대륙에서 나라를 세웠고 중원대륙을 지배하였는데 환국(桓國)은 세계 최초 시원국(始源國)을 말한다. 우리는 지구상에 없는 고시(楛矢)와 석족(石鏃)을 발견하고 최초에 대궁(大弓)을 발견한 민족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본 고대 중국인은 우리를 이()라 칭하였다. 이 이자(夷字)는 대궁이자(大弓二字)로 구성되어 대궁(大弓)을 발견한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우리는 일찍이 철()도 발견하였다. 이를 본 당시 중국인은 철자(鐵字)를 철자(銕字)로 사용하였다. 이 철자(銕字)는 이(), ()의 이자(二字)로 구성되어 동이(東夷)인 우리가 철()을 발견한 것을 표시한 것이다.
 
위와 같이 모든 요소로서 형성된 우리민족은 인류사상 최초에 문화민족으로 발전하고 인류사상 최초의 강대족으로 인류의 대표라 자처하여 천신의 피를 받은 천민(天民)으로 자처하였다.
 
또 지구상 타()에 없는 진단(震檀;人蔘)과 당시 타()에 없는 동주(東珠)가 이 땅에 생산되는 것은 이 땅이 세계중심지라 자처하여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은 가락국(駕洛國)을 중국(中國)이라 칭()하였다. 황천(皇天)의 명()과 결부된 가락국(駕洛國;中國)은 세계(世界)의 중심지(中心地)’라고 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
 
여기서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을 거론하는 것은 일본의 고대 초기 왕들이 가야계(伽倻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본사(日本史)의 왕계보(王系譜)를 살펴보는데, 왜사(倭史)연구에 있어서 왜()가 존재했을 당시인 서기670년 까지 왜왕(倭王)에 대한 기록은 몇 안 된다.
 
일본역사 교재에는 5세기 왜()의 오왕(五王)이라 하여 찬(인덕(仁德(;((;雄略)를 들고 있는데 이 오왕(五王) 이전에 수승(帥升히미코(卑彌呼비미궁호(卑彌弓呼일여(壹與)가 전부다. 일왕계보(日王系譜)’는 왜()가 일본(日本)으로 국호가 변경한 670년 이후 410년이 흐른 이후 일본왕계보(日本王系譜)’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참고로 일본의 왕계보(王系譜)’에 대한 자료가 실려 있는 사서 당서(唐書)1060년 송() 인종 때 칙령으로 구양수 송기 등이 225권을 편찬한 책이고, 송서(宋書)는 원() 순제 때인 1343년에 탈탈이 시작하여 3년 만에 요사(遼史), 금사(金史)와 함께 송사(宋史) 225권을 편찬한 것이고 신숙주가 성종 2년인 1471, 해동제국기를 완성하고 일본서기는 720년 발간했다.
 
그런데 구당서(舊唐書) 이전에는 왜왕계보(倭王系譜)’가 없었다. 고작 있어도 4~5명에 불과 했는데 송()나라 때 편찬된 신당서(新唐書)에는 32()가 되어 있으나 실제기록은 천어중(天御中)과 언렴(彦瀲) 2() 밖에 없다. 언렴(彦瀲) 당시에는 범() 32()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송사(宋史)에는 언렴(彦瀲) 23()라 하여 23인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언렴(彦瀲) 이전과 이후의 일왕계보도 불분명하다
 
1, 언렴(彦瀲)까지 당서(唐書)와 송서(宋書)8명의 차이가 있으나 기록된 인명(人名)으로는 실제로 21명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알 수가 없다. 언렴(彦瀲)이전의 왕 계보를 해동제국기천신 7, 지신 5인으로 기록하였으니 당서 송서와는 전혀 다르다.
 
2, 언렴(彦瀲) 이전 송사(宋史)에는 23(), 당서(唐書)32(),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12명으로 기록하고,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신대(神代) 7()로만 기록하고 있어, 어느 왕계보(王系譜)’가 옳은지를 판가름하기가 참으로 난해(難解)하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기 이전의 동이(東夷) 왜전(倭傳)에 전하는 왕()들과도 구분을 할 수가 없다.
 
3, 서기 670년 타이완(臺灣)이 당()의 승인을 받고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 기록인, 왜국호갱일본(倭國號更日本)이라고 하여 국호(國號)를 변경한 기록이 당서(唐書)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있고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이 없다.
 
이것은 일본의 왕계보(王系譜)’가 정확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그 실체가 불분명함에서라고 보는데 분명한 것은 동이전(東夷傳)의 왜왕계보(倭王系譜)는 분명한 것이 없었고 잘 알지 못하였으나 당서(唐書)에서 언렴(彦瀲)에서 광효(光孝)까지가 수록된 것이 최초의 계보(系譜)이고 송서(宋書)에 수록된 것이 두 번째이다. 이같이 일본의 왕 계보는 종잡을 수가 없다.
 
어찌하든 왜()가 국호(國號)를 변경하고 390년이 지난 이후에 왕계보(王系譜)가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송()나라가 건국(建國)하고 100년이 지난 후인데, 서이(西夷)와 동이(東夷)를 중화(中華)로 묶는 시점에서 왜왕계보(倭王系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국호를 변경한 사실을 삼국사기(三國史記]당서(唐書)는 분명히 그 사실을 표기하고 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더 분명히 표기해야 함에도 이를 표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숨김에서다.
 
우리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을 하지 않은 의도(意圖)를 바로 알아야 일본(日本)이 대륙에 있었던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수차 밝힌 바와 같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일식 집중 관측지(觀測地)는 양자강 이남임으로 당연히 왜왕계보(倭王系譜)’ 역시 양자강 이남으로 이 지역의 왕통(王統)으로 봐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기 670년 이전은 왜왕(倭王)이고 그 이후는 일본 왕이다. 이를 연대와 왕을 숨겨가며 역사를 숨길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나루히토 덴노(德仁天皇)의 즉위를 계기로 역사연구도 한일공동으로 하여 독일 프랑스와 같이 교재도 제작을 기대해 본다. (以上吳在成, 九犂系, -日本史’.53~55, 參照하고 本文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國會 文公分科委員會, 國史敎科書內容要求請願-[國史公聽會 陳述人 發言內容].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이종호, ‘한국인의 뿌리’. 박영규, ‘고려왕조실록’.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李丙燾, ‘譯註 三國遺事’.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 .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參照, 本文引用 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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