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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14>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 집중 관측지는 대륙남부였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5-18 07:20:00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고대 우리 역사를 숨기고 우리의 대륙사를 반도사로 축소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인 것이다. 지그 우리나라 역사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를 바로잡고 가지 않으면 우리 역사는 영원히 바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직금까지 역사를 연구하며 그 의문을 갖고 추적한 결과의 결론이다.
 
일본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교과서를 보면 너무 잘 짜여, 그럴 듯하게 되어 있다. 허나 그 실상을 추적을 해보면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경각심을 갖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린 제대로 된 교과서 없이 우리의 대륙사(大陸史)를 반도역사(半島歷史)로 가르치고 있고 일제시대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는 우리 현실은 우리나라 교육부가 무엇을 해 왔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오늘날 일본은 왜곡사실이 다 들어나고 있는데도 고치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 교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음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에 관한 상고사(上古史)는 아예 가르치지도 않고 있으며 또한 우리 역사가 단군조선(檀君朝鮮)시대부터 5000년 역사라고 하는 그 자체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이 같은 무지가 광복73년이 지났어도 개선이 안 되고 있는 이유며 참으로 한심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고도 우리사학계가 제대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양자강 이남에 있던 왜(倭)가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 그 유민이 왜(倭)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대륙에서 타이완(臺灣)으로 밀려 난 뒤 여기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기 시작해서 「고사기(古事記)」3권과 「일본서기(日本書紀)」30권을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5세기 이전의 기술(記述)은 사실과 작위(作爲)가 혼합하고 있으며 사실 부분이 고증은 어렵고, 6세기 이후의 것은 주로 「백제사(百濟史)」를 참조해서 객관적 기술이 있음도 사실이다.
 
오늘은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서 있을 당시 왜(倭), 대륙에 있었을 때는 왜인(倭人). 타이완(臺灣)으로 가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고 있는 이유와 대륙의 역사를 숨길 필요가 없는데 왜 대륙 역사를 숨기려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백제의 멸망과 중국·일본의 역사조작
 
660년 백제의 멸망 후, 663년 백제와 왜(倭)의 연합 수군은 1000척의 군선(軍船)은 170척의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싸웠으나 패한다. 그 원인은 백촌강(白村江) 주변의 간만(干滿)의 차가 10m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조수간만의 차로 퇴적(堆積)된 니토(泥土)인 것을 모르고 끌고 들어와 진흙탕에 막혀 움직일 수가 없게 돼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궁시(弓矢) 화공(火攻)에 막혀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백제유민(百濟流民)이 왜(倭)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내정에 힘을 쏟으며 율령국가(律令國家)를 건설해 나라를 정비하고 법률(法律)에 의한 전국의 토지, 인민의 지배(公地公民制)를 정비(整備)해 천황(天皇)을 정점(頂点)으로 한 율령(律令)국가가 탄생(誕生)한 것이다. 
 
여기서 율령체제(律令體制)라는 것은 국가의 기본법전(基本法典)인 율령(律令)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701년 대보율령(大寶律令)이 완성돼서 19세기까지 이어온 신관(神官)의 독립, 관제(官制)의 간소화(簡素化), 형벌경감(刑罰輕減), 반전제(班田制)의 차이가 그것이다. 여기서 율(律)은 현재의 형법(刑法), 영(令)은 행정법(行政法)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라는 것은 호족(豪族)이 토지(土地), 인민(人民)을 소유(所有)하는 것을 폐(廢)하고, 모든 토지(土地)와 인민(人民)은 천황(天皇)의 것으로 한다는 제도인 것이다. 이렇게 백제유민은 왜(倭)로 가서 선진문물(先進)物)을 전하며 새 국가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건설한 나라가 중국과 같이 역사를 왜곡, 우리의 대륙역사를 반도역사로 하며 왜(倭)와 일본(日本)의 백제사(百濟史)를 감추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우리역사를 반도로 밀어 넣고 김유신(金庾信)의 삼국통일이 대륙이 아닌 반도에서 이루어졌다고 하기 위해서다. 
 
한편 중국은 우리나라가 대륙에서 중국을 지배한 것을 숨기기 위해 같이 보조를 맞춰 김유신(金庾信)이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룬 것 같이 조작, 왜곡한다.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우적도(禹跡圖)에 타이완(臺灣)을 빼고 지도와 책도 고려인에게는 주지도 팔지도 말라 하였다. 이것은 중국이 우리의 대륙역사를 황해(黃海) 동쪽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이다. 
 
일본은 월왕(越王) 때 역사를 일본열도로 가져가기 위해 반도로 가져 왔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초기 백제는 반도에 없었다. 역사도 대륙사이며 아시아 역사였다. 백제는 낙랑태수와 접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대륙 하북성이다. 
 
이곳은 반도가 아니다. 그리고 왜(倭)는 진번군(眞番郡) 동쪽이 왜(倭)라고 했다. 여기는 귀주성이다. 또한 왜(倭)는 한(韓)의 78개 제후국(諸侯國) 중의 하나라고 하고 있는데 이 한(韓)은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이 있는 지역으로 이를 바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 믿을 수 없게 한 역사왜곡
 
일본의 오랜 사서(史書)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8세기 처음으로 나온 712년의 「고사기(古事記)」와 720년에 나온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는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왜(倭)와 왜인(倭人)이라 불리던 시대에 과연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이다. 
 
고대 왜(倭)와 왜인(倭人)이라 불리던 시대는 대륙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은 중국의 사서(史書)에도 나온다. 일본열도(日本列島)라고 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중국 25사(史)에서 왜(倭);(衛)의 위치는 동이(東夷)의 위치인 대륙에서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동이(東夷)의 위치는 고구려·예(濊)·한(韓)·백제·사로신라(斯盧新羅)·가야의 위치와 함께 있어야 한다.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당서(唐書)」에도 왜(倭)의 위치는 담이(儋耳;南越)·회계(會稽)·단주(澶洲)·주작(朱雀)·태(台)·이주(夷洲)지역으로 이곳은 일본열도가 아니다. 
 
이 왜(倭)는 670년 사라진 나라의 명칭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및 「당서(唐書)」에서 670년 12월에 왜(倭)가 타이완(臺灣)으로 가서 국호(國號)를 ‘일본(日本)’으로 변경함으로 그때 왜(倭)가 사라지고, 일본이 타이완(臺灣)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를 숨길 수 없다. 일본은 이 대륙(大陸)에서 우리 지배를 받은 역사기록을 숨기려하여 오늘까지도 이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기기(記紀)는 5세기 이전은 숨기고 5세기 이후는 기록을 보고 쓰고 있는데 그 이전은 자연(自然)이나 선조(先祖)의 신화(神話)와 전승(傳承)을 천황(天皇)중심으로 신화(神話)로 꾸며 만든 것이 기술(記述)되고 있다. 그런데 5세기 이후의 기술(記述)도 허황되게 왜곡(歪曲)되어 있는데 일본에서는 일단 사료(史料)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에 관해서는 전혀 사실과 다르게 조작되고 엉뚱하게 왜곡(歪曲)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도(度)가 지나친다.
 
예컨대 제1대 천황은 진무덴노(神武天皇)이고 서력(西曆)으로 고치면 기원전 660년의 구력(舊曆)으로서 1월 1일(新曆 2월 11일)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제(日帝)시대의 메이지정부(明治政府)는 2월 11일을 기원절(紀元節)로 했다. 그러나 이는 조작된 것으로 태평양전쟁 후 폐지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다시 2월11일을 건국기념일로 부활하고 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학자들도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조작이라고 하고 있을 정도이다. 예컨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의 미스노 유(水野 祐)교수 조차도 ‘진무덴노(神武天皇)는 978년 조작이다’ 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미 이에 대해서도 다뤘기에 이를 줄이나 그들은 천년이나 일본 역사를 조작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왜곡은 전 후 다 밝혀지고 있다. 
 
가시마 노보루(鹿島 昇) 같은 일본 사가는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거짓 역사이지만, 일본이 놀랄 만큼 짧은 기간 내에 과학과 선진물질문명을 받아들여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 때 세계지배를 꿈꿀 정도로 자부심과 용기를 가지고 발전한 것은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에 대해서는 미안한 일이나 오로지 이러한 역사 위조의 공적이다”라고 실토하고 있다. 
 
한편 1988년 일본 후지산(富士山) 아래 지하 서고(書庫)에서 비서(秘書)인 <미야시타문서(宮下文書);신황기(神皇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200여년 전, 이 문서에는 백제인(百濟人)이 와서 일본(日本)을 가르치다가 그대로 일본왕(日本王)이 되었다고 전(傳)하고 있다. 
 
또한 일본 궁내성(宮內省) 소장(所藏)의 상기(上記)에는 ‘일본에 건너온 한 단군자손의 73대손이 일본 진무(神武) 일왕(日王)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神話)라고 꾸며내고 옛날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사실과는 180도 다른 역사를 강요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이 조작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본 칼럼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257面~268面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 관측은 대륙 남부로 나온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日蝕) 관측지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양자강 이남의 왜(倭)로 나오고 670년 이후에는 타이완;臺灣)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일본(日本)의 위치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고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대륙과 타이완(臺灣)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과 북으로 유·연·제·노(幽·燕·齊·魯)가 있을 때 그 곳에 있던 사로신라와 왜(倭)의 역사이지, 일본 열도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진(地震)으로 살펴보면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자연현상인 홍수 및 지진기록이 너무 미미하여 일본열도에 못 미치고 있다. 이것은 일본열도와 무관한 것이다. 
 
필자가 일본에 유학 시 지진이 자주 있었음을 볼 수 있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지진이 한제이덴노(反正天皇;433~438)부터 지토우덴노(持統天皇 687~697)까지 150여 년 간 13회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열도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열도는 지진의 수 없이 많은 나라이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살펴보면 장마와 홍수 기록이 3~4월에 장마가 오고 태풍과 폭우가 때를 맞추어 5월에 장마가 끝나고 홍수가 나는가 하면 4월에 모가 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분명히 대륙의 기록으로 일본열도(日本列島)의 기록이 아니다. 왜(倭), 가야(伽倻), 신라(新羅)와 백제가 같은 시기가 아닌 것은 분명히 대륙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를 일본열도라는 것은 상식이하이다.
 
우리나라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같은 시기인 6~7월에 장마가 오고 홍수가 나지만 2~3일이면 물이 빠지는데 반하여 대륙에서는 2~3개월까지도 가라앉지 않는다. 이곳은 일본열도가 아니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는 왜(倭)가 일본(日本)으로 국호(國號)를 변경한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왜(倭)라는 국호(國號)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없다. 세계 어느 국가(國家)가 국호(國號)를 바꾸는데 기록이 없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거짓된 역사가 숨겨져 있음이다. 
 
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가 7~8세기의 기록이라고 믿고 다른 사서(史書)를 논(論)할 수 있는 사서(史書)라 할 수 있겠는가! 이다. 일본이 국호를 변경한 것을 기록한 사서는 오직 「당서(唐書)」가 함형원년(咸亨元年 670년)에 왜(倭)가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변경하였다고 하였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같은 내용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서(史書)에는 국호변경사실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일식(日蝕) 관측지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양자강 이남의 왜(倭)로 나타나 대륙임이 확인되고, 일본(日本) 위치는 일본열도가 아니라 타이완;臺灣)으로 나타나고 있어 일본열도와 무관한 것을 제대로 알고 역사를 논했으면 한다. (以上은 吳在成, 九犂系, 倭-日本史’.58~64面,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왜(倭)는 조선의 일부이고, 왜인(倭人)은 조선인의 일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고 왜(倭)로 유민이 가서 나라를 세우고 타이완에 670년 일본국을 세워서 일본 사서를 만들었다. 일본은 원래 신(神)을 조선(祖先)으로 갖는 천황(天皇)이 통치했다고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내용 중심에는 국가의식(國家意識)의 고양(高揚)과 체제확립(體制確立) 및 천황중심(天皇中心)의 정치의식(政治意識)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712년의 「고사기(古事記)」 3권과, 720년의 「일본서기(日本書紀)」30권은 당시 정치권력(政治權力)을 잡은 측에 좋도록 만들어진 것임을 부인(否認)할 수 없다, 어찌해서 이런 조작(造作), 왜곡(歪曲)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차분히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바로잡고 가야 한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왜(倭)는 대륙남부에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으나 고구려·백제·신라·가라(加羅;伽倻)의 지배를 받은 대륙에서의 역사를 수치로 알고 이를 숨기려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일본 역사의 상반(上半)은 역사는 우리 역사이다. 저는 일본의 대륙에서의 역사를 부끄러워 할 것이 못 된다고 본다. 국가는 언제나 흥망성쇠가 있게 마련이고, 대륙 남단의 왜(倭)나 타이완(臺灣)의 일본(日本)이 지금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자리 잡은 후 대륙의 역사를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 오늘의 일본이 있기까지 모두 자랑스러운 역사만 있는 것일 수 없다.
 
백제는 넓은 영역으로 나당연합군에 패했으나 대륙의 대국으로 강성할 때는 100만 대군으로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하며 군림한 대국으로 발전한 나라였다. 이 전의 왜(倭)와 일본의 일식 관측지(觀測地)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닌 것이 다 밝혀진 오늘, 전과같이 역사를 숨기며 왜곡하기보다는 떳떳이 나서는 것이 낳다. 
 
오늘날 일본이 고대 대륙에서의 왜(倭)의 위치를 숨기려하나 당시 왜(倭)는 분명히 회계(會稽)·태현(台縣)·이주(夷洲)·단주(澶洲)·주작(朱雀)·담이(儋耳)가 있는 곳에 있었으니 이곳은 양자강 이남의 지명(地名)으로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당서(唐書)」 등의 기록도 이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고 대륙 양자강(揚子江) 이남 지역이다. 
 
이곳은 「삼국지(三國志)」에서 말하고 있듯이 왜인보다 먼저 소강(少康)의 후예(後裔)인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월왕 구천의 후예 즉 소강의 후예들은 회계(會稽)지역을 중심으로 있었다. 이 회계(會稽)는 절강성(浙江省)이다. 이곳이 일본열도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월(南越)과 진번(眞番)같은 지역으로 귀주성(貴州省)이 있었다. 송(宋)나라 때의 지도에서 남월(南越)과 진번(珍番)은 이웃하여 있다. 진(眞)과 진(珍)은 동음(同音)인데 남월과 진번은 같은 지역에 있었다. 지금 남월의 흔적은 월성령이 있고 진번의 흔적은 예파이다.
 
왜(倭)는 조선의 일부이고 왜인(倭人)은 조선인과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부인 것이다. 때문에 왜(倭)가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된 것이다. 19세기 이후 중국인과 조선인이 옛 일본인을 다른 민족이라는 전제(前提)로 모든 해답(解答)을 구함으로 역사왜곡을 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역사조작이나 왜곡은 통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자연현상을 가지고서도 다 밝혀지고 있음에서 수치스러운 기만인 것을 알아야하고 허구역사는 세계사를 어지럽게 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왜(倭)와 일본=타이완은 대륙의 이주(夷洲)이었다. (以上은 吳在成, 九犂系, 倭-日本史’.21~63面,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글을 맺으며 - 일본은 우리가 세운 나라이다
 
명치헌법시대 일본의 양심적인 사학자인 기다 사다기지(喜田貞吉) 박사는 1916년경 ‘일본왕실의 조상이 부여(夫餘), 백제계(百濟系)계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후인 1948년 도쿄대학(東京大學)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 「일본국가의 기원과 정복왕조」에서 ‘부여(夫餘), 고구려계(高句麗系), 도래인(渡來人)인 진왕(辰王) 등이 일본을 정복하고 일본왕실(日本王室) 조상이 되었다’는 ‘기마민족 국가설(騎馬民族國家說)’을 널리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내용은 기다 사다기지(喜田貞吉) 설의 현대판이라고 말하며....기마민족이 일본을 정복하고 그들이 대륙 북방계 문화복합체를 가지고 와서 일본에 보급(普及)시켰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가 말하는 기마민족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부여, 고구려 족 계통, 즉 우리나라의 삼국이 가야(伽倻)를 거쳐 일본으로 가서 정복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은 양자강 이남의 왜(倭)와 670년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쓰기 시작한 타이완(臺灣)을 말하며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후, 그 유민(流民)들이 가야(伽倻)를 거쳐 왜(倭)로 가서 나라를 세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왜국(倭國)-야마토(大和)로 보고 있다. 
 
부여는 예맥 조선족으로서 중국의 지배권에 들지 않고 독립해 있으면서 흥망을 되풀이하다가 고구려에 합쳐져 주로 고구려와 백제의 시원이 되고 일부는 가야(伽倻)를 거쳐 왜국(倭國)으로 가서 일본국의 조상이 되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는 외래(外來)의 천신(天神)이 일본에 내려와서 그 곳에 원주(原住)하던 국신(國神)을 정복지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의 국왕가(國王家)는 당시 우리 민족이 왜(倭)로 이주한 망명가(亡命家) 및 이주(移住)한 후손(後孫)이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가시마 노부루(鹿島 昇)는 계속하여 일본(日本)의 왕실계보(王室系譜)는 백제(百濟)와 가락국(駕洛國) 두 왕통(王統)을 합하여 이룬 것이고 텐지덴노(天智天皇 662~671)는 백제(百濟) 의자왕의 아들 부여 풍(扶餘豊)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사(佐佐克明)는 신라인(新羅人) 김다수(金多遂)가 일본왕 텐무덴노(天武天皇 673~686)라 하고, 다니가와(谷川健一)는 일본왕가(日本王家)의 진무(神武)라 하는 제1대~14대 츄우아이덴노(仲哀天皇)는 모두 있지도 않은 가공인물(架空人物)이고, 제15대로 되어 있는 오진(應神)이 실존(實存)한 최초의 일본 왕(王)이며 오진(應神)의 혈통은 우리나라 태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일본왕가(日本王家)가 조선혈통(朝鮮血統)에서 나온 것임을 시인(是認)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중진 사학자들도 고대 우리 땅이 일본민족의 핵심의 발상지이고 일본인의 조상 중에는 수많은 도래인(渡來人)이 있으며 일본국왕가(日本國王家)는 한인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 사학계도 자국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바로 잘 세우기를 기대해 본다. 
 (以上은 최태영, ‘일본국의 시원과 에가미나미오 비판’.-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所收의. 193面 ~ 202面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國會 文公分科委員會, 國史敎科書內容要求에 關한 請願-[國史公聽會 陳述人 發言內容].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이종호, ‘한국인의 뿌리’. 박영규, ‘고려왕조실록’.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李丙燾, ‘譯註 三國遺事’.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을 參照, 本文引用 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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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집&빌딩

100평 이상의 집을 소유한 연예인들은 누구일까?
신동엽
SM C&C
이민호
MYM엔터테인먼트
태양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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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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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아이들 세상의 소리 선물하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찾아주고 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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