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헤드라인 뉴스

 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성헌식의 대고구리

‘Made in Japan’ 단군신화, 명백한 불매운동 대상

일제가 만든 거짓된 단군신화…민족 미래위해 뿌리 뽑아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8-11 00:53:3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1910년 초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는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하면서 20만권이 넘는 단군 관련 사서를 압수해 불태웠다. 국조 단군을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화로 조작하기 위함이다. 식민지백성 조선인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거듭나게 하며 조선인을 뿌리 없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해군대장 출신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총독으로 보내 폭압정치에서 문화정치로 통치방식을 바꿔 식민지 백성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려고 노력했다. 문화통치는 조선인의 역사문화의 창달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조선인의 지지와 환심을 사기 위해 경찰력 사용을 약간 느슨하게 한 것뿐이었다.
 
 
사이토 총독은 ‘조선교육조서’에서 “조선인들이 자신의 일,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한 후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춰내고 그것을 과장해 조선의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와 조상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문화·위인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 조선일보 1985년 10월 4일자 기사 [사진=필자 제공]
 
이러한 취지 아래 1925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사 말살을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문기관인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했다. 이때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편수위원으로 선임돼, 우리 역사를 왜곡·말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한국역사학계의 대부로 추앙받는 이병도 박사가 그의 ‘충견(忠犬)’ 제자로 동참했던 것이다.
 
이마니시 류는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 문구를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해 환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아닌 환인·환웅·단군의 3대 신화의 가족인물사로 만들었다. 또한 단군을 부정하기 위해 삼국사기 이외 다른 책은 역사자료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두 위사로 규정했다. 현재 강단사학계가 이를 그대로 배워 민족의 성서인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나오는 단군은 단지 신화의 인물이며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므로 단군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못을 박았다. 또한 중국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삼국 이전의 기자와 위만조선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만주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한국사가 아니라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역사에 속하는 것이라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펼치기도 했다.
 
▲ 일제 식민사학자들 [사진=필자 제공]
 
이렇듯 이마니시 류로 대변되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은 2000년이 넘는 단군의 역사와 그 이전 배달국과 환국의 5000년 역사를 합쳐 도합 7000년의 역사를 도살함으로써 한국사의 영혼이 완전히 뿌리 채 뽑히게 됐던 것이다. 당시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조선인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저항의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쓴 조선사 35권의 주요 역사논리는 다음과 같다.
 
△ 조선은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끼어 있어 불가피하게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 한국의 민족사는 기자, 위만, 한사군의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시작됐다.
△ 고대 조선사는 역사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공된 허구의 역사다.
△ 패수는 대동강이며 한사군의 중심이었던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일본서기와 다르므로 믿을 수 없다.
△ 한국 민족은 천성적으로 서로 싸우고 분열하는 당파성이 강한 민족이다.
△ 일본의 한국 지배는 침략이 아닌 역사의 복원이다. (임나일본부) 등이다.
 
그 중에서 핵심은 한사군의 위치를 평양에다 옮겨 놓는 반도사관의 정착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 조선사편수회 조선사 강역 [사진=필자 제공]
 
이마니시 류가 주도적으로 조작한 단군신화와 반도사관은 해방 후 이병도 박사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뿌리내리게 된다. 그는 친일매국노 이완용 집안 출신의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중용되어 후학들을 길러내 지금의 강단사학계가 확고하게 구축됐던 것이다. 그의 역사이론은 당연히 그의 스승인 이마니시 류에게 배운 역사이론 그대로였다.
 
 
Made in Japan 단군신화와 반도사관은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정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망국의 식민사학은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주입되고 있다. 이제는 이 백해무익한 일본제 단군신화를 이 땅에서 걷어내야 할 때가 됐다. 그래야 민족의 희망찬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 우표로 발행된 단군신화 [사진=필자 제공]
 
참고로 단군신화의 단초를 제공한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를 소개한다.
 
“고기(古記)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었는데 종종 하늘 아래 세상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구제하길 탐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이 홍익인간할 만하다고 했다. 그래서 천부인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이 분을 바로 환웅천왕이라고 한다.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다. 이때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몸이 될 것이다’고 했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삼칠일(21일) 동안 참아서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신단수 아래에서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했고 웅녀는 잉태해 아들을 낳았으니 이 분을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한다”

  • 좋아요
    5

  • 감동이예요
    1

  • 후속기사원해요
    4

  • 화나요
    1

  • 슬퍼요
    1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의 집&빌딩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변호사 중 20억원 대의 집을 소유 중인 명사들은 누가있을까?
강보현
법무법인 화우
신영재
법무법인 율촌
이명희
신사합동법률사무소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소원 이뤄주는 크리스탈 볼처럼 꿈 이루고 싶어요”
다섯 명의 소녀들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

미세먼지 (2019-08-24 16:30 기준)

  • 서울
  •  
(좋음 : 28)
  • 부산
  •  
(좋음 : 30)
  • 대구
  •  
(좋음 : 23)
  • 인천
  •  
(좋음 : 27)
  • 광주
  •  
(양호 : 32)
  • 대전
  •  
(좋음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