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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싸우더라도 퇴로는 열어둬야 한다

일본, 퇴로 열어두고 있어…무작정 싸우면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8-11 08:50:17

▲ 김상철 G&C Factory 대표
싸움은 시작됐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던 간에 한일 양국 정치의 불신이 골이 깊어지면서 결국 치킨 게임의 양상으로 발전했다. 경제의 발목을 지속적으로 죄어 오던 정치가 마침내 최악의 사태로 몰고 왔다. 내부에서 시작된 총질이 결국 외부 세력까지 끌고 들어온 셈이다.
 
문제는 이 싸움의 목표가 어디고,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분개는 차치하고 국론이 첨예하게 둘로 갈라져 서로 옳다고 연일 삿대질을 한다. 이런 자중지란으로는 결코 상대를 이길 수 없고, 결국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는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흥분할수록 국익은 더 새기 마련이며, 벼랑 끝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싸우면 이겨야 하지만 이 싸움이 우리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다. 분기탱천(憤氣衝天)하여 목소리만 높이면서 실속 없는 대응책이나 남발하면서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행위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정말 수를 크게 잘못 두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수를 먼저 읽어야 한다. 아베 정권은 치밀한 셈법을 가지고 이번 보복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사법부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위반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제3국에는 한국 정부가 전략물자 관리가 허술해 북한 등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안보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이는 이번 조치가 일본의 독자적인 결정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미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의 지나친 북한 감싸기와 친중(親中) 행보가 상황을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백색국가 리스트에서의 제외는 수출 전면 금지가 아닌 종전의 ‘포괄허가’방식이 아닌 ‘개별허가’ 방식으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이번에 바뀐 일본 정부의 수출대상국 분류 체계에서 한국은 B등급에 분류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부 품목은 종전과 같은 포괄허가를 받을 수도 있으나, 반대로 일부 품목은 개별허가의 수순을 밟아야 하도록 되어 있다.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일본 정부가 상당한 융통성을 가지고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일본 정부가 고심을 한 흔적이 노출되고 있다. 수출 관리 대상 1100 여 품목 중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은 것과, 종전의 3등급 체계에서 등급을 하나 더 늘려 한국을 B 등급에 끼워놓은 것은 여러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는 일본 기업이 입게 될 피해도 충분히 고려함과 동시에 글로벌 밸류 체인의 동요 여부에 따라 탄력적인 적용을 하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을 제외하면서 오는 부담을 완화시킴과 동시에 퇴로를 열어놓으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을 제외시키면서 생겨날 향후 파장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겠다는 의중이다. 한국의 대응 수위가 더 높아지거나 일본 기업의 피해가 의외로 그지 크지 않다고 판단되면 더 세게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치밀하면서도 장차 다가올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충분한 예측을 하고 수를 둔다. 물론 이에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생명과도 관련이 있으며, 현재는 여론이 우호적이나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하다.
 
 
일본의 수출보복 현실을 인정, 죽지 않으려면 현 상황에서 개별적 살 길을 찾아야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순진하고 외골수다. 정부나 국민 모두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무모한 싸움을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별별 목소리나 행위가 쏟아진다. 엄밀하게 보면 대부분 일본을 이기자고 하는 의도와는 역행하는 짓들이다. 도쿄올림픽에 불참하자거나 구청이 나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 ‘No 재팬’배너를 걸거나 도로변에 있는 만국기 중 일장기를 내리는 등의 촌극을 벌이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 항의에 의해 일부는 원상복구가 되었지만 민선 선출직들이 하고 있는 한심한 작태들을 보면 가관이다.
 
민간의 자발적인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다 보면 자영업자들을 더 수렁에 빠뜨리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없어지게 할 수 있다. 자칫 일본 국민이 한국 상품 불매라는 맞대응이라도 한다면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올 수 있다. 싸움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왕 시작된 이상 싸움을 당장에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길게 싸우지 않고 중단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싸우더라도 퇴로를 만들어놓고 해야 한다는 소리다.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선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기업의 입장에서는 연일 좌불안석이다. 정부가 할 일은 정부가 하면 된다. 단기적으로 우선 기업들에게 숨통을 터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대폭 수정하여 기업친화적 정부로 변신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염불이다. 당장 되지도 않을 평화경제니 하면서 헤픈 소리를 하면 기업의 정부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의 벽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일본과 거래를 하고 있는 기업들은 거래선과의 조율에 당장 나서야 한다. B 등급으로 강등된 상황에서 거래 품목의 포괄 혹은 개별 허가 분류 가능성에 대해 긴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현실을 인정하고 주어진 여건 하에서 기업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마당에 미-중 무역전쟁은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 기류로 바뀌고 있는 판세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이 실물 혹은 금융에 최악의 국면으로 빠뜨릴 수 있다. 초비상 경영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거대한 쓰나미에 졸지에 희생당하는 기업들이 속출할 수 있는 딱 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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