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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연변대학의 조선학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다

북한, 미국, 일본 학자들 모여 한국학에 대해 열띤 토론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8-12 15:39:45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연변대학 조선학 국제학술회의는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한국을 비롯해 북한, 미국, 일본, 중국, 특히 연변대학의 동포 학자들 포함 2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한국학에 대한 최초의 국제학술대회로 기억된다. 물론 2년 후 1991년 2차 조선학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됐으며, 이 후 남북한 학술회의가 연변대학에서 각 분야에 걸쳐 개최된 것으로 볼 때 이번 학술회의가 남북한 학자들 간의 학술 교류의 기폭제가 됐다.
 
더구나 남북학자들이 처음으로 함께 참석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인 학술회의라는 점에서, 또한 40년간 단절된 학문적, 사상적 차이점과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민족적 동질성 회복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학술 대회에 참석한 주요 학자들을 보면, 한국에서는 박영석 국사편찬위원장 신용하 서울대 교수, 한국외대의 남성우(국어학), 박기덕(국어학)교수, 명지대의 홍문표 교수 등 이었으며, 북한 학자로는 김일성대학의 최영식(사학), 박진욱(고고학), 김영황(어학), 북한사회과학원의 류 민(문학), 김춘택(문학) 및 최봉익(철학)이 참가했다. 일본에서는 오사까경제법과대학의 오만, 하시모토 히사시, 정조묘 박사가 참가하였으며, 제일동포인 김양기 교수도 참석했다. 
 
미국의 이채진(정치학), 김남길(언어학)교수가 참가하였으며, 중국은 연변대학 교수 외에  중국사회과학원의 풍홍지(사학), 상해 남개대학의 유신순(사학), 조중병(사학)교수, 북경대학의 최용수(철학)교수, 길림대학의 장세화(경제학)교수 등이며 그 외 내가 만나지 못한 철학, 경제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했다. 
 
연변대학애서는 사학 분야에 강맹산, 고영일, 김광수, 최태호, 박경휘, 박진석, 방학봉, 김구춘, 김성호교수 등이, 언어학 분야에는 최윤갑, 류은종, 허동진, 리득춘, 염광호, 최명식, 최승일, 최희수, 심혜숙 등이 참가하였으며, 그 외에도 경제학과 철학 분야에도 저명한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특히 나와 항렬이 조카벌인 미국의 이채진 교수를 만난 것이 매우 반가웠다. 대구 출신인 이 교수는 전공도 같은 정치학을 연구했다. 지금은 클레어몬트 매케나대학교 석좌교수로 계시며 아직도 학계에 활동 중이다. 
 
연변대학의 박문일 총장의 환영사 등 개막식을 끝내고 200명에 가까운 학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사진을 보느라면 감회가 새로워진다. 치열하게 논쟁했던 북한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승을 타계했기 때문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후부터 각 분과별로 토론이 시작됐으며, 철학, 역사, 어학, 문학 네 분과 중 본인은 역사 분과에 참석해 질의 토론을 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역사분과는 북한의 김일성대학의 최영식 교수가 “15세기 중앙통치기구와 그 특성”을 발표했으며, 연변대학 김성호 교수의 논문 발포 후, 세 번째로 중국 남개대학의 유신순 교수의 “3·1운동에 대한 남북견해의 비교”를 발표하면서 남한에서는 3.1운동은 민족독립운동으로 봤으며, 북한은 부르주아적 민족주의 운동 성격으로 보고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북한 김일성대학의 최영식 교수가 3·1항일투쟁은 노동자, 농민, ·학생 위주의 프롤레타리아가 들고 일어난 투쟁이라 규정하고 유신순 교수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유신순 교수는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반반씩 함께 일어난 투쟁으로 볼 때 최영식 교수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유신순 교수의 처음 발표 논문의 결론이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또한 최영식 교수는 당시의 33인의 지주 부르조아지 계급은 일제에 항복하고 변절했다고 주장하면서 3.1운동은 노동자, 농민의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가 주동이 된 투쟁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최영식 교수의 발언은 마치 3·1항일투쟁의 정신을 북한이 계승한 것임을 은연중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영식 교수의 주장에 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1919년 3·1항일투쟁 당시의 한국의 사회계층은 부르조아지(유산계급)가 분화되지 않았다. 당시의 한국 사람은 모두 국가를 잃은 상황 하에서 농민·학생·지주·지식인들이 함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에 항거한 시기로써 한국사람 모두가 3월 1일을 기점으로 들고 일어난 민족항일투쟁이었다. 위와 같은 나의 반박에 최영식 교수와 유신순 교수 및 대부분의 중국 동포학자들이 수긍하는 입장이었다. 
  
또한 최영식 교수는 상해임시정부는 3·1항일투쟁의 영향으로 성립이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했다. 이와 같은 최영식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이를 반박했다.  3·1항일투쟁은 전 민족의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돼 한성, 상해, 만주의 3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급기야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최영식 교수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술회의 첫날부터 남북한 학자들이 치열한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당시 참석한. 중국 동포 학자들에겐 매우 신선한 학문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소문이었다.
  
네 번째 발표는 연변대학의 김기봉 교수였으며, 독일에서 참가하기로 한 조명훈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논문을 발표하기로 한 연변대학 박창욱 교수는 박영석, 신용하 교수와 함께 청산리 전적지를 답사 안내를 하느라 발표할 수가 없었다. 
 
8월12일 오후6시에 있었던 학술회의 개막 만찬회 석상에서 김일성대학의 김영황 교수와 함께 동석하였는데 김영황 교수가 당시 임수경양의 입북사실에 대해 나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임 양의 입북은 동기야 어떻던 한국의 실정법상 위반이기 때문에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당시의 북한 학자들은 임수경의 입북에 대해 대단히 찬양하는 언사를 사용했다. 만찬 석상에서 북한의 김춘택, 류만, 박진욱 김원삼 등의 학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8월13일 오전 발표자는 연변대학의 강맹산 교수가 “고구려의 5부”를 발표하였으며, 이어 장창희 교수, 엄장록 교수, 박용연 교수가 고구려와 관련된 옛 성터와 연변의 장성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오후 학술회의는 하시모도 히사시가 “오사카법정대학에 있는 간도문제사료에 대해”를 발표하였으며, 연변대 박경희 교수, 정조묘 교수, 남개대학의 조중병 교수, 연변대학의 김광수, 최태호 교수 순으로 발표했다. 토론에서 일본의 정조묘 강사가 “김부식의 사관”에 대한 발표가 있은 후 나는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1) 김부식은 고구려의 기원을 왜 B. C 37년으로 했느냐? 2) 김부식은 왜 발해사를 기술하지 않았느냐? 3) 김부식이 참고한 중국사서의 신빙성을 고증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한 정 강사의 답변은 시원치 못하였는데 신당서 등이 저술 당시의 왜곡된 점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고구려의 기원은 B. C 4세기 이전으로 보아야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사회를 보는 연변대의 강맹산 교수에게 고구려의 기원에 대해 견해를 물었다. 이에 강 교수도 B. C 4세기 이전이 고구려의 기원이 되어 고구려의 역년이 900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는 북한의 박진욱 교수에게 고고학적으로 본 고구려의 기원존속 기간을 물었다. 이에 박진욱 교수도 다음과 같은 근거로 고구려 기원의 연대를 B. C 4세기라고 했다. 즉 1)자강도 시중군 로남리 유적에서 명도전이 출토되었다. 2)자강도 중강군 토성리 유적에서 드러난 온돌이 가장 오래된 온돌로 그 연대가 B. C 3세기 이전이다. 3)집안 태평구 오도경구문 적석총에서 초기 세형단검 관계 유물이 나왔다는 것이 증거라는 것이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남북한 및 연변대학 학자들이 고대사의 가장 의문시되는 고구려의 건국 기원의 시기를 B. C 4세기로 보는데 일치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 영향인지는 몰라도 2년 후 한국의 고대사 학술회의에서 고구려의 기원을 B. C 2세기로 볼 수 있다는 이기백, 최몽룡 교수의 발표가 잇달았다.
 
학술회의 토론이 끝난 후 나는 학술회의 추진위원인 강맹산 교수에게 한국의 학자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해 “한국의 역사 연구 동향”을 내일 발표하기로 했다. 
 
이 날 저녁은 연변대학 부근 식당에서 김대식 선생, 황교수 등과 같이 자리를 같이 하면서 간도자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고영일 교수가 지은 책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고영일 교수가 편찬한 “중국조선족 역사연구 참고자료회편”을 직접 저자로부터 받을 수가 있어 간도연구에 매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연구원으로 있는 김대식 선생은 연변 시내를 안내해주는 등 매우 친절했다. 나는 내일 발표할 학술 논문 준비로 인해 늦게까지 잠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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