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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연변 동포들의 문학과 예술의 수준은 어떠할까

문학 수준 높은 단계…항일정신이 깃든 시 ‘광야’ 등 돋보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8-25 17:43:38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전편에 이어) 연변 생활에 접한 지 오늘이 열흘째다. 마치 먼 고향에 와서 놀다가 가는 느낌이다. 어디가나 우리말이 들리고 한글 간판이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선배 학자들이 이 지역을 우리의 고토(故土), 또는 북방고토라고 부르면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땅이라고 주장했던 이유를 실감했다. 44년 만에 찾아온 이 간도 지역을 광복 후 그 동안 우리 정부는 관심을 가질 영유가 없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의 혼란과 두 해 후의 동존상잔의 6.25 동란,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았던 60, 70년대 국내정치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더구나 간도지역은 ‘중공’이라는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어서 쉽게 교류가 불가능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간도 고토의 말이 북한의 말투와 가깝고, 연변학자들은 평양의 김일성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오곤 했다. 이번 여행단에 합류했던 모 부처의 김 선생이 처음 실토한 내용은 우리 정부가 첫 시도한 과업이라 했다.   
       
연변공항에서 프로펠러 소형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갈 예정이다. 비행기가 출발 시간이 오전 11시 15분이라 아침 일찍 모두들 분주하다. 막상 연변을 떠난다고  마치 명절날 고향에 왔다가 떠나는 기분이다.
 
9시경 공항에 도착하니 김영만 조선족자치주 부주석, 김재호 연변조선족 해외연의회 부비서장, 최근갑 용정시 대외경제문화교류협회 이사장, 강봉선씨 등이 나와 있었다. 공항 내에 걸려 있는 백두산 천지 사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비행기에 올라 연변의 하늘을 나르면서 눈에서 멀어지는 구름 속의 백두산의 자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이번 연변 방문과 학술회의에서 얻은 성과를 되새겨 봤다.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형성의 시원지인 이 간도지역을 광복 후에도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데 놀랐다. 이곳에 180만 명의 동포가 엄연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정치지도자도들이 잊은 것인지 무시한 것인지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 변화를 분석해야 알 것 같다. 반세기만의 간도지역의 답사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토록 연구해야할 학문적 대상이 우리의 고토인 ‘간도’임을 확고히 해줬다. 
 
남한에서 온 한 핏줄이라고 해서, 연변 동포들이 진심으로 반겨주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200명 가까운 연변 동포들과 명함을 주고받았으며, 연변의 풍속과 백두산, 용정, 화룡, 안도, 연길 지역의 들과 산, 강이 어찌 우리 한국의 땅과 거의 비슷할까 하고 찬탄했다. 단재 신채호의 “송화강은 우리 민족의 최초의 아리수다”라고 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송화강 물의 원천인 백두산 “천지”야말로 동양의 모든 문명과 사상의 시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연변의 문예지 앞표지와 뒤표지 [사진= 필자제공]
         
나는 누구에게서 받았는지, 혹시 일본에서 온 김양기 교수일지도 모르지만 좌석에 앉아 연변에서 발간되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잡지를 펼쳐보았다.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 읽고 나니 연변 문학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광복 이후 연변 문학에 대해 한국에 그 실상이 소개된 예는 거의 없었다. 미수교 국가라는 벽이 가로막혀 있었기에 이 잡지는 연변 문학의 수준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순 한글로 제작한 문예지의 체제는 연변의 말처럼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작가의 이름이나 단편 소설의 제목도 모두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리성권, 리여천, 리화숙, ‘랍치당한 여자’와 같이 식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앞표지의 빨강 바탕의 여성 사진은 제목이 ‘사색’이고 뒤표지 그림은 ‘청춘의 불길’이라는 제목이다. 이번 연변 방문단에 함께 참석한 김양기 교수의 글인 ‘조선인과 일본인’과 연변 문단의 이름 높은 김학철의 수필인 ‘야릇한 인연’도 보였으며, 2006에 알게 된 류연산의 ‘인생숲’이라는 단편도 보였다. 그리고 허설의 시인 ‘함성’과 금성의 문예평론 외 3편 및 단편인 ‘금공녀인들’, 가찌메아쯔사의 ‘랍치당한 여자’를 연재하고 있었다.
 
목차 다음 장에는 조득현의 얼굴 스케치와 문예좌우명인 “무용예술의 지향은 잠자는 령혼을 깨우쳐주는데 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조득현이는 무용가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변 문단의 ‘화랑’들인 차세대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대부분 내 또래의 50년대 출생 문인들이다. 즉 우관훈, 송준남, 리화숙, 리철룡, 리성권, 리여천, 최룡국이다. 이들이 현재 연변 문학계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중견 문인이 되었으리라.
 
김학철의 ‘야릇한 인연’은 40여 년 전 서울에서 일어난 프락치사건에 연류 되었던 김학철씨와 경무부장인 조병옥의 비서인 이계향씨와 3년 전의 만남을 감칠 맛있게 쓴 수필이다. 또한 김영규의 ‘륙사의 시가창작을 론함’은 항일투사이며 민족 저항시인인 육사 이원록의 시에 내포된 창작정신을 분석했다. 1933년 처녀작인 ‘황혼’을 비롯해 ‘절정’, ‘고목’, ‘꽃’, ‘청포도’, ‘광야’, ‘독백’의 시구를 인용해 육사는 시인이기 전에 진정한 항일투사이며, 자신의 시어에서 굳은 신념과 절개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 필치로 낭만주의가 색체가 농후한 시편들을 읊으며 새로운 조국의 앞날을 그려 놓았다고 했다. 윤동주와 더불어 암흑기에 민족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다운 시인이라 규정지고 있다.
 
이번에 동행한 김양기 교수의 ‘조선인과 일본인’은 조선과 일본의 문화의 특징을 비교한 글이다. 두 민족의 특성을 예리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조선인은 자연의 미를 즐겨하는 반면 가공한 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인은 가공된 미를 즐겨해 자연까지 압축시키고 축소시키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로 ‘김치’와 ‘왜김치’를 들면서 일본인은 물체에 나타나는 개성을 중성화를 즐겨해, 강렬한 개성을 언제나 중화해버린다는 것이다. 
 
조선의 김치는 배추의 생기를 그대로 살려 만들지만 일본의 왜 김치는 배추의 생기를 지지눌러 꼬깃꼬깃 오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왜김치의 모습에서 일본인의 특질을 본다는 것이다. 물체를 원래 그대로 보는 조선인과 물체에 마음을 기탁하는 일본인은 대조적이며, 변형된 가면(탈)이라도 인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조선탈의 특징이며, 조선 백자와 신라 첨성대도 인체의 조형적인 표현으로 보여 그 속에 조선인의 개방적이면서도 낙천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류연산의 ‘인생숲’은 사시사철 전개되는 숲의 변화되는 현상 속에서 작가의 고향 집과 가족사를 슬쩍 내비치어 결국 ‘인생숲’이란 정답고 품이 넓으면서 정갈하고 우아했던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허설의 시 3수는 ‘함성’, ‘눈꽃 피는 밤’, ‘새별의 노래’는 사실적이고도 상징적인 어휘의 사용이 돋보이는 시로 보인다. ‘장백산 려행’이라는 제목이 있기에 읽어보니 백두산의 별칭인 장백산의 여행이 아니고 ‘장백산’이라는 문학지를 문인들이 비평한 글의 모음이었다. 
 
그 중 강학룡은 “장백산 잡지는 우리 백의동포의 고귀한 령혼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천태만상의 인간들의 얼굴과 성격을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 “장백산”은 우리 연변 동포가 발간하는 문학잡지로 보인다.
 
이와 같이 ‘문학과 예술’지로 통해 당시 느낀 감정은 연변의 문학 수준이 상당히 높은 단계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육사의 항일정신이 깃든 시인 ‘광야’를 비롯한 육사의 여러 시를 분석한 김영규의 평론과 김학철의 수필은 매우 돋보였다. 
 
이 잡지를 읽는 사이 우리가 탄 비행기는 심양 공항에 착륙했다. 이 소형 비행기는 북경까지 비행하기 위해서는 중간 연료 보충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에서 본 심양 부근은 야산도 보이지 않은 온통 평야다. 중앙에 요하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원(元)의 공주의 탕목지로 부마인 심양왕(瀋陽王)인 고려의 충선왕이 다스리던 심요(瀋遼)지역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고려의 유민과 전쟁포로 등의 집단이 많이 거주했다. 당시 부왕인 충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원에 머물던 충선왕아 무종(武宗)을 원나라 황제로 옹립하는데 공을 세워 처음으로 심양왕의 봉작을 받았다. 충선왕의 뒤를 이은 이는 조카인 연안군 고(暠)였다. 이는 고려 말까지 심요지역까지 고려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인 셈이다.  
 
한 시간 동안 급유를 한 후 우리 일행을 실은 비행기는 다시 북경을 향해 날아 오후 3시가 지난 후에 북경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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