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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29>

백제는 건국과 패망까지 한수(漢水) 유역에 있었다

백제의 반도 진출은 5세기 초로 보는 게 맞아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9-14 16:42:39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백제 역사를 바르게 알기 위해선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 및 중국의 ‘25사 동이전(東夷傳)’과 중국의 ‘18사 동이전을 제대로 연구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강단학파들은 백제 연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三國遺事)’중국25()동이전(東夷傳)’을 해석함에 있어 반도지역에 맞추어 일치하지 않는다고 부정(否定)하고 수정(修正)하여 취사선 택하는 버릇은 우리 역사를 뒤엎어 놓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제사(百濟史) 연구를 경기(京畿충청(忠淸전라도(全羅道) 지역에 맞추기 위한 역사연구는 원전(原典)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제멋대로이다. 필자는 전에도 역사를 가르친 원로교수가 조선일보에 투고한 것을 보고 조선일보에 항의하고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게재(揭載)하라고 한 후, 위례성이 백제의 수도가 아님을 밝힌 적이 있다.
 
백제가 한반도에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자의 게으름이 빚은 결과이다. 이미 왜곡된 사서를 인용하여 말하는데 참으로 민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미 밝힌 내용을 다시 말하고 싶지 않으나 백제는 처음부터 패망까지 한수(漢水;황하)유역에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곡한 역사만을 배워서 우리가 반도 안에서 우리나라가 생성 발전한 것 같이 배워서 그리들 알고 있으나 전혀 아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대륙에서 시작하였고 우리역사의 주인공들은 반도사람이 아니고 대륙인으로 고대 모든 왕릉도 다 대륙에 있다.
 
치우천자(蚩尤天子):배달국 제14대 자오지천황릉(慈烏支天皇陵)도 산동성 동편군 수장현에 있었다고 하는데 양산박 서쪽에 있다. 어느 나라에 끌려가서 묻힌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자의 묘()가 안휘성(安徽省)의 몽성(蒙城)에 있고,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가 기자(箕子)가 살던 땅으로 주()나라와 조선의 경계에 있는 조선 땅이다. 이 서화(西華) 서쪽에 낙양(洛陽)이 있고, 서화(西華)동쪽의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과 왕자, 부여(夫餘) ()이 서화(西華) 서쪽으로 끌려갔는데 반도에서 황해 서쪽으로 끌려 간 것이 아니다.
 
의자왕은 서화(西華) 동쪽의 산동성, 대산(大山) 서쪽의 웅진(熊津)사람으로 이곳은 서화(西華)동쪽이며, 태산(太山)(대산(大山;垈山)으로 불리는 곳으로 의자왕시대 지명(地名)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하북성의 평원(平原)이 있고 산동성에 동명(東明) 황산·태산·박산(薄山제성(諸城백마하(白馬河);백강(白江)과 하남성의 항성(項城)이 있다.
 
이 외에도 안휘성(安徽省)에 동성(桐城잠산(岑山독산(獨山)이 있고, 강서성(江西省)에 덕안(德安), 무주(撫州)가 있다. 이로 미루어 전쟁터의 지명과 모든 상황은 의자왕과 부여 융이 반도인으로 볼 수 없다. 이는 삼국사기’, ‘중국25사동이전’, ‘삼국유사가 뒷받침하고 있다.
 
오늘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백제가 반도에서 건국되었다는 것에 대해 백제는 반도에서 건국된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건국했고 반도진출은 5세기 초에 진출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백제는 한수(漢水), 지금의 황하유역에 있었다
 
우리나라 식민사학에서는 아직도 백제가 한반도에서 건국한 것 같이 말하는 자가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국가민족을 팔아먹는 무지한 억지주장을 할 것인가! 도무지이해가 되지 않는다. 광복 73년이 지나는 오늘날까지도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것을 그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
 
그들의 주장은 백제가 한반도 경기·충청·전라도에 있었다고 하는데 제대로 연구를 하고 말하기를 바라진다. 백제는 그들의 말과 같이 직산위례성광주남한성한양북한성공주웅진사비성인가? 또 남한산성과 밀접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몽촌토성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가관이다. 백제연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중국25()’ 동이전(東夷傳)을 제대로 보면 이는 모두 잘못 알고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백제의 건국은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임은 학계의 일치된 통설로 매국적인 반도사관자만이 한반도라고 말하고 있다. 백제는 삼국사기백제본기에 시조 온조왕(溫祚王) ()에 말하기를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두 강을 건너 미추홀(彌鄒忽)에 가서 살았다고 돼 있다.
 
고구려 졸본(卒本)에서 살던 비류(沸流), 온조(溫祚)형제가 주몽이 부여(夫餘)에 있을 때 예 씨에게서 난 아들 유류가 와서 그를 태자로 삼으니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올 때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넜다 하는데 이강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는 강이다.
 
, 이 두 강()은 낙랑군(樂浪郡)을 흐르는 강()으로 지금의 발해(渤海) 서안(西岸)을 흐르는 강()이다. 비류(沸流)는 이곳에 그대로 살기로 이곳에서 나라를 세웠으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그곳은 땅이 습()하고 물에 염분이 많아 당시 농사도 할 수 없는 땅이었다.
 
한편 온조(溫祚);(도조)는 서기전 18년에 위례성(慰禮城)에 나라를 세우고 동명왕(東明王) 사당(祠堂)도 지었다. 온조(溫祚) 3(서기전 16)에 말갈(靺鞨)이 북변(北邊)을 침입함으로 왕은 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급히 쳐 이를 크게 깨트려 물리친다.
 
그런데 5년 후인 서기전 112월에 다시 말갈(靺鞨)3000명의 군사가 다시 침입하여 위례성(慰禮城)을 에워싸 포위함으로 수성(守城)하니 10일 후 말갈군(靺鞨軍)이 군량(軍糧)이 떨어지니 적()이 돌아가는데 온조왕(溫祚王)은 이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온조왕(溫祚王)은 정병(精兵)을 뽑아 거느리고 대부현(大斧峴)까지 추격하여 5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고 했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싸움터가 모두반도 아닌 대륙이다. 이는 백제가 건국 때부터 대륙에 있었음이 입증된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왜곡한 이병도(李丙燾)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거쳐 패수(청천강), 대수는(서흥강)‘이라 우겨 오다가 그 지역에는 막강한 낙랑군을 의식해서 백제시대 패수는 지금의 예성강, 대수(帶水)는 임진강이라 고쳐서 왜곡하며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없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거쳐 왔다고 하는데 이런 거짓 억지논리를 펴는 강단학파의 만행은 참으로 동정이 갈뿐이다.
 
삼국시대 역사 분석만으로도 위치추정 가능해
 
고대 동이족(東夷族)의 위치배열(位置配列)이 어떻게 되었는가?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알기 쉬운 방법은 당시 고구려, 백제의 패망시대에 관한 기록이 있는 사서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하기 때문에 중국25() 동이(東夷)’의 위치를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런데 삼국시대 지명(地名)이 반도에는 없으나 중국에는 있고, ()나라 제작의 1000년 전 우적도(禹跡圖)의 고지도에도 반도에 없는 동이 지명이 황해 서쪽 대륙에는 다 있다. 동이 위치는 분명히 중국에 있는데 역사에 무지한 자는 백제도 한반도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이는 당치가 않다. 당시 우리나라 삼국은 반도에서 건국도 하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와 왜()도 모두 대륙에서 건국했다. 대륙에서 건국사실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백제 지명은 몇 안 된다. 웅진·공주·부여 등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도 삼국시대의 360곳의 지명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지명들이 대륙에는 다 있다. 우리 역사를 몰라도 너무 무지한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당서(唐書) 동이(東夷)의 배열지명(配列地名)을 봐도 백제는 동명(東明덕안(德安제성(諸城박성(簙城백강(白江대산(大山주류성(周留城(((() 등이 백제의 지명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백제 패망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공통으로 그 지명들은 반도에 없고 모두가 중국에 다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이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나와 있는 사비성(泗泌城석문(石門대방(帶方독산성(獨山城황산(黃山항성(項城)등 수 백 개의 지명이 반도에는 없고 대륙에만 다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백제 패망(敗亡)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한데, 패망 시의 지명이 반도에는 없고 요()동쪽 대륙에는 다 있다. 섣불리 조선조 때에 왜곡한 사서(史書)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혼란만 가져올 뿐이다.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46남제서(南齊書)’ 58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강성(强盛)할 때에는 백만의 대군(大軍)으로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을 다물(多勿)하고 지배한 것을 역사는 말한다. 바로 보고 말을 해야 한다
 
반도에 정통 왕이 아닌 자칭 무강왕(武康王) 있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왜()가 대륙에서 건국을 하고 중원을 지배한 사실이다.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왜곡한 역사를 가지고 우리 역사를 폄하하거나 당시 사실을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해야 하고 제대로 말을 해야 한다.
 
당시 반도에는 정통적(正統的)인 왕()이 아닌 자칭, 무강왕(武康王)이라는 왕()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총독과 같은 것이었다. 이 무강왕(武康王)은 과부의 아들로 정통(正統) ()이 될 수 없는 신분(身分)이었다. 공주에는 백제 사마왕(斯麻王)이 확인되고 있고, 삼국사기에는 무령왕(武寧王)의 휘가 사마(斯摩)라 하였는데 사마(斯麻)와 사마(斯摩)는 음()이 같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한 무강왕(武康王)은 과부의 아들이라 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무강왕(武康王)을 무왕(武王)으로 고쳤으나 삼국지 30에서는 자칭 무강왕(武康王)이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원전(原典)에 기록된 무강왕이 옳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스로 왕이라고 하였고 과부의 아들이라면 반도 그것도 공주의 익산에서는 정통 백제왕 계통과 또 다른 백제가 존재했다는 것인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삼국사기삼국유사중국25에 의해서 백제의 웅진이 되려면, 동명(東明덕안(德安평원(平原황산(黃山탄현(炭峴), 사비수(泗泌水백강(白江우이도(嵎夷道마한(馬韓금연(金漣)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반도에는 공주와 익산 근처에는 황산(黃山)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자(箕子)가 살던 조선 땅, 현 중국의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의 동쪽에는 평원(平原황산(黃山동명(東明백강(白江;(白馬河우이도(嵎夷道항성((桐城),·잠산(岑山덕안(德安)이 있다. 그렇다면 웅진은 서화의 동쪽에 있다.
 
그러면 과부(寡婦)의 아들 무강왕(武康王)의 정체는 무엇인가? 여기서 과부의 아들이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건국자는 건국의 시조(始祖)이거나 별지(別地)에 두는 총독(總督)일 때만이 가능한 기록이다. (당시는 총독이라는 말은 없고 간()제도가 성행했다.)
 
그러나 당시 통치를 하는 본국(本國)이나 별지 모두 왕()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익산의 무강왕은 총독이며 반도 공주(公州)를 중심으로 백제의 본국외의 땅 즉, 식민지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사마왕(斯麻王)은 서화 동쪽에서 이동을 시켰든지 아니면 반도의 총독인지 연구 할 필요가 있다. 웅진(熊津)은 태산(太山);대산(大山);대산(垈山) 동쪽에 있었다고 했다. 반도에 태산(太山);대산(大山);대산(垈山)이 있는가! 도 살펴봐야 한다. (以上吳在成,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右犂)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高句麗史’, 九犂系,‘斯盧新羅史’,‘百濟史’ ‘加羅史’.外 多數 書冊 參照 引用하였음 밝힙니다.)
 
글을 맺으며
백제가 한반도 서해안 일대라는 것은 허구이다. 백제는 대륙 중원을 제패하고 패망당시 인구도 76만호가 되는 대국(大國)이었다. 이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삼국사기46남제서(南齊書)’ 58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음부터 패망 시까지 대륙에 건재한 대제국이었다.
 
천문학을 전공한 박창법(朴昌範) 교수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천문기록의 독자관측 사실증명과 삼국위치의 재조명이란 논문을 통해 백제가 대륙의 현 북경지대에 있었음을 밝혔다. 즉 백제일식(日蝕) 기록의 천문학적 분석을 통한 삼국 위치도(位置圖)를 밝혀냈던 것이다.
 
백제의 일식(日蝕) 관측지(觀測地)
 
▲ 백제의 일식관측지
 
이제는 지위와 금전 때문에 침묵만 할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왕과 제후의 지위의 간()의 왕이라는 것도 제대로 구분하고 백제의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이 백제를 철저하게 왜곡한 이유는 김유신을 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당()나라 때부터 왜곡한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일본은 많은 돈을 하바드대학 등에 지원하며 백제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일본은 이런 만행을 하는 것인가? 이것도 바로 알았으면 한다. 백제의 한성(漢城)은 황하유역(黃河流域)에 있었고 황하(黃河)는 한수(漢水진수(晉水면수(沔水)로도 불렀다.
 
우리 국민은 강단학파라는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의 사람들보다 무지(無智)하지가 않다. 뒤엎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이제 우리 모두가 솔선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 우리의 장래(將來)는 기대(期待) 할 수가 없다. 역사(歷史)가 바로 설 때 이 사회(社會)의 변질(變質)된 가치관(價値觀)도 바로 설 수 있기에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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