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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사진과 건축이 담고 있는 시공간의 의미

시간 경험의 주체에 따라 공간 역사 달라져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13 17:59:16

▲ 이정일 인문학 칼럼니스트
경치 좋은 곳이나 예쁜 카페에 가면 어김없이 셀카족이 눈에 띤다. 혼자 혹은 여럿이 셀카봉 앞에서 제각각 재미있는 포즈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그 순간에 몸담았던 공간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고 보면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특정 시간과 공간을 붙잡아두는 마술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이 감동을 주는 근거는 일정하지 않지만, 이것을 새삼 느낀 계기가 있다. 몇 해 전 좋아하던 배우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날 주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배경은 생각난다. 구정 명절로 텅 빈 서울 도심이었다. 당시 프로그램 출연자인 김주혁, 차태현, 김종민은 온종일 뛰어 다니며 미션을 수행했다. 이들은 저녁 때 자신들이 그날 사진을 찍은 곳과 똑같은 공간에서 오래 전 부모님이 찍은 사진이 오버랩 됐을 때 비로소, 그날 미션의 의미를 이해하며 눈물지었다.
 
1967년 김주혁의 부모님이 데이트를 하던 명동성당에 2014년 겨울 아들 김주혁이 서 있고, 1973년 봄 차태현의 부모님이 신혼여행 사진을 찍었던 남산 팔각정에 2014년 겨울 아들 차태현이 서 있고, 1978년 봄 김종민의 아버지가 사진을 찍은 창경궁에 2014년 겨울 아들 김종민이 서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경관은 그저 풍경이나 경치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경관에는 인물이 들어가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추억이 완성된다는 걸, 오버랩 된 두 장의 사진이 보여줬다.
 
장소에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처음부터 특별한 장소는 없다. 추억이 깃들 때 그곳은 특별해진다. 1955년 조선 마지막 황실가 순종(純宗) 황제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李堈)과 왕비 김숙(金淑)이 장면 부통령을 대부로 영세를 받았다. 그로부터 160년 전인 1795년 가회동에서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Mass)가 드려졌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호수처럼, 북촌로 4차선 도로변에 위치한 가회동 성당엔 시간이 묻어 있다.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 중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란 가사가 나온다. 여기서 교회당은 정동제일교회를 가리킨다. 130여년 전인 1885년 4월 5일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조선에 왔다. 그는 정동에서 4명의 한국인 성도와 함께 첫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모퉁이 어딘가에 흔적으로 품고 있을 것이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경동교회도 인상적이다. 장충동에 소재한 교회는 붉은 파벽돌로 마감하여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간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화된다
 
가회동 성당, 정동제일교회, 경동교회가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다. 장소 혹은 공간은 사람들과의 유대를 만들면서 의미화 된다는 사실이다. 이들 공간은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너’의 관계로 바뀌었다. ‘나-그것’은 상대를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고, ‘나-너’는 상대를 고유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나-너’의 관계가 될 수도, ‘나-그것’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폐가(廢家)에서 보듯, 사람이 떠난 자리는 의미가 없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공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간은 그 공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기억, 추억들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때 불었던 세시봉 열풍은 1970년대란 시간을,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란 시간을, ‘무한도전’의 ‘토토가’는 1990년대란 시간을 보여준다. 빛바랜 사진은 기억과 함께 추억을 남긴다. 그래서 앨범을 뒤적이다 보면 지나가 버린 하루를 다시 사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된다.
 
인생이란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여행이다. 그리고 추억이란 각자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인생이 함께 만나 부딪친 흔적이다. 사진이든 건축물이든 시간의 흔적을 담아두는 것들은 우리의 추억을 소환해 낸다.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문화의 해석》에서 이 흔적을 ‘동료’와 ‘동시대인’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동료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무리로, 동시대인을 시간은 공유하지만 공간은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로 설명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가 있다.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SF영화의 명작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진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 레이첼도 사이보그이다. 그녀에겐 어린 시절 기억도 심어졌기에 자신이 인조인간인 걸 알지 못한다. 영화에서처럼 어린 시절이란, 혹은 집이란 공간도 시간의 추억들이 켜켜이 쌓인 그릇이고, “먼 훗날 아련히 꺼내는 추억을 담는 크나큰 나무상자”이다. 가족이 가족으로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 더없이 소중하다.
 
물론 여성학자 김미선의 지적처럼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희미해진다. 과거를 읽어내는 의미는 시대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시간이 함께 한 장소가 소중하다. 요즘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과 서초동이란 공간도 우리의 시간과 함께 후에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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