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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135>

‘삼국사(三國史)’를 ‘삼국사기’로 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삼국사’ 재현으로 우리 역사 바로 찾아야 한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26 15:23:31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우리나라 역사사관
(歷史史觀)의 시점(視點)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관점에서 잘못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역사를 한반도(韓半島)로 주장하는 반도사관(半島史觀)과 또 하나는 대륙(大陸)이라고 주장하는 대륙사관(大陸史觀)이다. 이를 제대로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로 된다.
 
오랫동안 대륙에서 정립(鼎立)한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왜()의 시대에도 우리 역사는 반도(半島)가 아닌 대륙이었다. 이 역사를 한반도(韓半島) 안에서 삼국(三國)이 정립된 것 같이 왜곡(歪曲)한 중국과 일본의 조작(造作)을 우리가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삼국유사(三國遺事)’ 체제(體制) 하에서 논()하는 우()를 이제는 바로 잡고 가야 한다. 그리고 삼국사(三國史)’삼국사기(三國史記)’로 부르는 것도 이제는 모두 삼국사(三國史)’로 통일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삼국사(三國史)’를 일본 사크오(釋尾春芿)1908년에 삼국사기(三國史記)’로 바꾼 것을 그대로 따를 이유가 없다. ‘삼국사(三國史)’삼국사기(三國史記)’로 부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다. 무엇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둘로 나눠 부르는가, 부를 이유가 없다.
 
천년이 되는 사서(史書)로 세계에서 편찬한 날짜가 분명한 것이 삼국사(三國史)’ 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책을 굳이 111년 전에 일본인(日本人)이 표제(表題)를 바꾼 삼국사기로 가르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삼국사(三國史)’는 국보(國寶)임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삼국사(三國史)’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은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서 지금의 학자와 관리들 가운데 오경(五經) 제자의 서적과 진(), ()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통해 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작 우리나라의 사적(史籍)에 대해서는 그 전말을 알지 못하니 이는 심히 개탄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하며 삼국사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삼국의 고기(古記)는 문장이 거칠고 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적들이 누락된 경우가 있음국가사업(國家事業)의 평안(平安)과 위기(危機), 백성의 안녕(安寧)과 혼란(混亂)에 관한 사실들이 후세에 교훈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권위 있는 역사서(歷史書)를 완성해 자손만대(子孫萬代)에 전함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해와 별같이 빛나게 해야 할 것을 바라며 삼국사(三國史)’를 편찬한 기대에 실망을 줘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오늘은 역사학자라고 하는 분들이 진정 국보 제322호인 삼국사(三國史)’를 제대로 연구해 왔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너무 소홀히 해 왔음을 보면서 상고사(上古史)는 모르는 분도 삼국사(三國史)’만이라도 제대로 연구해 우리나라 역사의 진수를 밝혀주기를 바라며 붓을 들어 삼국사(三國史)’를 같이 연구하는 분들도 순서 없이 소개하고자 한다.
 
국보 제322호는 삼국사(三國史)’, ‘삼국유사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별 짓을 다 하고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서기 114624, 세계에서 편찬한 날짜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삼국사(三國史)’뿐인데 이를 아직도 일본의 사크오(釋尾春芿)1908삼국사기(三國史記)’로 표제를 바꾼 것을 그대로 할 이유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자랑스러운 삼국사(三國史)’를 송()나라 왕응린(王應麟)순희삼국사기(淳熙三國史記)’또는 해동삼국사기(海東三國史記)’, ‘삼국사기(三國史記)’로 부르고 있는데 이렇게 부를 이유가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세 가지 서명(書名)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고려시대 고려사 권17과 우리나라 국보 제322호는 그 서명(書名)삼국사(三國史)’인데 이를 일본의 사크오(釋尾春芿)1908년에 삼국사기(三國史記)’로 표제를 바꾼 것을 그대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표지제(表紙題)는 같아야 한다.
 
삼국사(三國史)’삼국사기(三國史記)’로 부르는 저의를 알 수가 없다. 정약용(丁若鏞) 선생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6집에서 김부식삼국사(金富軾三國史)’의 서명(書名)삼국사(三國史)’이다. 즉 그 표지제(表紙題)김부식(金富軾三國史)’이다. 이를 이중 삼중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자가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더욱이 이 삼국사(三國史)’가 국보(國寶) 322-1호와 국보 제322-2호로 되어 있는데 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아직도 삼국사기로 표기하는 것은 옳다 할 수 없다.
 
분명히 고려사(高麗史)’ 17의 기록과 1760년까지 조선시대 발행된 서명(書名)삼국사(三國史)’이면 당연히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아니라 삼국사(三國史)’로 복원해야 한다.
 
조선조 영조(英祖)때까지 삼국사(三國史)’로 돼 있는 것을 삼국사기(三國史記)’로 할 이유가 없다. 일제 암흑기에 일본인에 의해 삼국사기’로 출판된 명칭을 가지고 그대로 말하는 것은 사대주의로 밖에 볼 수 없다. 이것에서 벗어나 삼국사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사(三國史)’는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라 아시아를 무대로 한 1천년 간의 기록이며 유일한 사서임을 알아야 한다. 이 사서는 서기전 58년부터 서기 936년까지 994년의 기록이다. 이것은 사로(斯盧)기록이 있음으로 신라 4대가 축약(縮約)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즉 서기전 194~서기전 54년까지 1364대가 숨겨져 있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해모수 기록이 있음으로 해모수에서 주몽 사이가 축약(縮約)된 역사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三國史)’는 서기전 239~1175년의 역사기록이다. 이러한 사서(史書)가 어디에도 없다.
 
삼국사(三國史)’는 세계유일(世界唯一)의 사서(史書)인 점도 부인(否認)할 수 없음에도 우리나라의 사학계(史學界)는 거의 모두가 아시아를 기록한 사서(史書)라는 것을 숨기고 있다.
 
삼국사(三國史)’는 사대(事大)나 모화(慕華)로 쓰여진 사서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三國史)]가 사대주의(事大主義)나 모화주의(慕華主義)에 쓰여진 사서(史書)로 오해받고 있다. 필자 역시도 삼국사(三國史)’에는 단군과 그 이전의 상고시대 역사가 없었기에 이를 부정하고 있었으며 최태영 선생님도 그리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역사연구원에서 오재성 선생님을 비롯해 박완서 선생님·강호봉 교장·윤진영 선생· 최기동 선생·정노천 선생·조성만 선생 등 많은 역사 연구 선생님들과 같이 연구하면서 그 오해(誤解)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가 전성할 때 강병(强兵) 100만으로 남()으로 오월(吳越)을 정벌하고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정복해 장안조정(長安朝廷)의 근심거리였고 남북조를 통일한 수양제(隨煬帝)가 요주(遼州)를 정벌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남겼다.
 
여기서 고구려·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다물(多勿)했다고 남긴 것은 낙양(洛陽) , 서화(西華) 동쪽을 고구려·백제·신라가가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사대(事大)나 모화주의자(慕華主義者)라면 결코 남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立證)하는 것이 중국의 남제서(南齊書)’ 58이고, ‘중국18사 동이전(東夷傳)’이다. 또한 제노(齊魯)지역에 있는 고신(高辛) 씨나 소호(少昊) 금천 씨가 고구려(高句麗)와 신라(新羅)의 시조(始祖)로 한 것이 잘못이 아닌 것은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에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신라(新羅()는 동이(東夷)의 나라라고 하였다. 또 순()은 동이(東夷)이고 조상이 헌(軒轅)이고 아들이 소호금천 씨이고, 손자가 고신(高辛) 씨이다.
 
동이(東夷)나라에서 동이(東夷)를 조상으로 모시는 것은 모화(慕華)나 사대(事大)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땅이 명()나라 땅이 되었다고 해서 한-조선에서는 불가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고구려와 백제, 사로신라는 그 땅을 차지하였음을 기록한 것은 비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서(史書)를 보는 시각(視覺)이 편파적(偏頗的)이고 근시안적이다. 이것은 우리역사를 그르치게 했다. 우리나라 석학이라고 하는 최남선(崔南善) 선생은 삼국사(三國史)’삼국유사(三國遺事)’보다 비중이 적은 것으로 해제(解題)했다.
 
그는 일연과 김부식은 다 같이 ‘18사동이전을 참고했다. 위서(魏書)를 인용해 고조선을 기록하고 동이전을 인용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삼한을 반도에 맞춘 일연의 삼국유사는 가치가 있고 동이전을 인용한 삼국사(三國史)’는 사대(事大)나 모화(慕華)로 몰았다.
 
최남선(崔南善) 선생이 삼국사(三國史)’를 사대(事大)나 모화(慕華)로 몰아붙인 결과 후학들은 삼국사(三國史)’를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풍토가 사학(史學)에 만연해 우리역사를 반도사관(半島史觀)’으로 가는데 일조한 결과가 되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남선 선생이 삼국사(三國史)’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결과 고구려 백제가 유연제노오월을 다물한 것을 모름으로 삼국사를 버리고 삼국유사를 택한 결과는 역사비극을 낳았다.
 
김일연(金一然)은 고조선 이전의 역사도 지웠다
 
일연(金一然)은 동이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지웠다. 그 뿐이 아니다. 그 호동(好童)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로 잘 알려진 낙랑국을 지우고 낙랑군으로 덮었다.
 
또한 그는 김유신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한반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수로왕 이전의 조상도 지웠다. 일연(金一然)은 소동파(蘇東坡)역대지리지장도를 보고 밀려서 동이전으로 한반도지역을 메울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우리 역사왜곡의 시조가 되는 일을 했다.
 
김일연(金一然)의 작태는 오늘날 반도식민사관자들과 같은 행태를 가진 자로서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한반도 밖의 사람을 한반도 안으로 보는 민족사관에 빠지게 했다.
 
한편 최남선(崔南善)도 김부식찬(金富軾撰) ‘삼국사(三國史)’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김일연(金一然)삼국유사(三國遺事)’를 더 나은 것으로 잘못 선택(選擇)했다. 그리고 그 풍토(風土)는 우리역사 전반에 걸쳐서 후학(後學)들이 그의 명성(名聲)만 믿고 삼국사(三國史)’를 반도에 맞출 때, 취사선택(取捨選擇)하는 자료로 가치(價値)를 저하(低下)시켰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많은 자료가 동이전(東夷傳)’에서 기록되고 있다면 그 중 많은 자료가 삼국사(三國史)’ ()46남제서(南齊書)’ ()58 범위의 기록으로 보아야 하는데 이것을 김일연(金一然)과 최남선(崔南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쉽다.
 
이로 인해 우리역사는 삼국사(三國史)’ 이외의 중국사서에서 기록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남제서(南齊書)’동이전(東夷傳)’에서 고구려·백제 신라·가야(伽倻왜인(倭人)기록으로 밝혀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중국의 25삼국사는 고조선 이전 역사가 있다.
 
반면 삼국유사(三國遺事)’위서(魏書)’를 인용해 단군조선을 최초로 건국했다고 하지만, 그 이전 사기(史記)’에서는 치우천자(蚩尤天子;배달국(倍達國) 14대인 자오지천황(慈烏支天皇)때 국호를 구리(九黎)라고 하였는데삼국유사’는 고조선 이전을 삭제했다.
 
삼국사(三國史)’는 단국 이전 전전(前前)국가가 있었음을 말하는데 반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 역사를 요()와 동시대로 단군(檀君)을 설정함으로서 삼국사사기에서 말하는 구리(九黎)도 묻고 말았다. ‘사기오대사나 동이전에도 있는 구리(九黎)를 묻었다.
 
삼국사(三國史)’ 본기(本紀)28에 고구려 시조 고신 씨와 신라 시조 소호금천 씨의 기록도 있는데 이를 지우고 신라 역사에 묘예(苗裔)라고 해 구리(九黎) 백성의 호칭인 묘민(苗民)을 시원(始原)으로 하고 있는데도 일연(一然)은 단군조선을 쓰면서 단군조선 이전을 지웠다.
 
그러나 삼국사(三國史)’에서 고구려·백제·신라의 전통계승(傳統繼承)은 고조선(古朝鮮) 이전은 구리(九黎)라는 것이다. ‘삼국사각 나라는 구리(九黎)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구리(九黎)의 국호를 취하고 복원을 다물(多勿)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역사상 역사를 알고,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의 이정표를 제시한 주몽(朱蒙:동명성왕)삼국사(三國史)’에서 주몽(朱蒙)이 건국하면서 고구려 말에 옛 땅을 다시 회복하면 다물(多勿)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주몽(朱蒙) 이전에 고구려 땅이 있어야 하는데 주몽(朱蒙)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면 이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주몽(朱蒙)은 해모수의 17세 손이다
 
삼국사(三國史)’는 주몽이 해모수의 계승자로 되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주몽은 해모수의 계승자가 아니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비문(碑文)에 의하면, 해모수로부터 17세 손이라고 했는데 삼국사(三國史)’는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주몽으로부터 12세손이니 분명히 주몽(朱蒙) 이전에 고구려(高句麗)가 건국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몽(朱蒙)은 고구려의 중시조쯤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다물(多勿)이라는 용어(用語)가 성립된다.
 
또 하나는 고구려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된 전통계승에서 찾아야 한다. , 전국가(前國家) 조선이 아닌 전전(前前)국가 구리(九黎)를 계승할 때 또한 다물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주몽(朱蒙)이 고구려(高句麗)를 건국(建國)하였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건국 할 때 구토(舊土)가 있을 수 없다. 주몽(朱蒙)은 고구려를 건국(建國)하기 이전에 이미 북부여의 해모수가 건국하였고 주몽(朱蒙)은 몇 대가 지난 6대가 지나서 왕()에 오른 것이 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 역사는 726년이 아니라 907년이 넘는 역사라는 것도 이미 기술하였음에 생략하나 고구려 역사는 907년이 넘는 역사로 국호도 전전국가의 국호(國號)인 구리(九黎) ()을 따서 고구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려()의 발음을 국호일 때 로 한다고 했다.
 
국호(國號)와 함께 통치자(統治者) 칭호(稱號)도 전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단군과 천제(天帝)를 고구려(高句麗)에서만 칭했다. 또한 주몽(朱蒙)삼국사(三國史)’,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단군지자(壇君之子), 천제지자(天帝之子)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의 려()의 발음은 전운옥편이나 당서(唐書)’, ‘삼국지(三國志)’에 의하여 국호(國號)일 때 로 하는데 고구려(高句麗)의 발음(發音)고구리로 한다. 또한 고려(高麗)고리()’로 발음한다. 또한 영어 Corea 또는 Korea고리로 발음하고 고리의 땅에 대한 설명은 Koreaarea=Korea임으로 고리라로 발음한다.
 
()’의 발음은 로 하지만 사기(史記)에서 로 발음한다. 또한 구리(九黎) 는 자연수의 최고이고 또 모을() 이고 려()는 시작을 나타냄으로 동쪽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 역사는 제대로 연구를 통해서만이 바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삼국사 연구하는 [우리역사연구원] 원장이신 오재성 선생을 비롯해서 존칭과 순서를 약해서 올리면 박완서, 송준희, 윤진영, 윤부용. 서수열, 홍순희, 강호봉, 정태하, 이특제, 이강산, 김선녀. 임춘택, 추민호 강병태, 박상인, 박인기, 김진구, 박효원, 이상섭, 박천배, 김우성, 김민자, 서정란, 이지영, 성귀순, 한자민 선생님 여러분께 마음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以上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地圖)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外 多數 書冊參照하고 이를 발취하여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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