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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도미부인 설화의 미스터리

백제 개루왕의 몰락을 촉발시킨 도미사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1-05 10:39:28

 
▲ 정재수 작가
열전(列傳)은 신하의 행적을 기록한 일종의전기(傳記)다. <삼국사기>의 경우, 열전에 수록된 인물은 52명이다. 나라별로는 고구려 8명, 백제 3명, 신라 41명이다. 단연코 신라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 중 백제는 흑치상지, 계백, 도미 등이다. 그런데 흑치상지와 계백은 명성(名聲)과 충절(忠節)의 표상이기에 당연히 수록될만하나 도미가 포함된 점은 다소 의문이다.
 
도미부인 설화의 의문점
 
도미(都彌) 열전은 도미가 아닌 도미부인설화가 배경이다. 내용은 이렇다. 백제왕은 도미부인이 지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해 도미부인의 정절을 시험한다. 이에 백제왕은 다른 사람을 왕으로 변장시켜 도미부인에게 보내고 도미부인 또한 몸종으로 자신을 대신한다. 나중에 속은 사실을 알게 된 백제왕은 도미의 눈을 멀게 하는 형벌을 가해 추방한다. 그리고 직접 도미부인을 찾아가고 도미부인은 몸을 치장한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친다. 이후 도미부인은 천성도(泉城島)에서 남편 도미와 재회하며 고구려 산산(蒜山)으로 망명한다. 종합하면 도미부인 설화는 백제왕이 평민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술수를 부리다가 도미부인이 절개를 지키는 바람에 결국 실패한 사건이다.
 
먼저 사건의 발생시기이다. <삼국사기>는 백제개루왕(蓋婁王·4대) 때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병도는 <삼국사기> 역주본에  ‘개루왕 때라면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대낙랑군(大樂浪郡)이 있을 때이므로 아래의 이야기와 맞지 않는다. 아마 제20대 개로왕(蓋鹵王)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고 주석을 단다. 이병도의 ‘개로왕 때’판단은 학계의 정설로 돼 있다. 그런데 <고구려사략>은 도미부인 사건의 발생 년도와 달을 명확히 기록한다. ‘4년 무신 5월, 백제사람 도미가 찾아와 항복해 산산(蒜山)땅에서 살게 했다. (四年戊申五月濟人都彌來降置之蒜山.)’. ‘4년 무신’은 고구려 신대왕(8대) 4년으로 168년이다. 다만 <삼국사기> 기년을 적용하면 10년이 빠른 158년이며 개루왕 말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미부인 사건의 발생시기는 <삼국사기>의 ‘개루왕 때’가 맞다.
 
다음은 도미의 신분이다. <삼국사기>는 도미를 편호소민(編戶小民) 즉 범속의 평민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설화내용 중에 도미부인이 몸종을 둔 사실이 있어 도미의 신분을 평민으로 단정할 수 없다. 귀족 또는 왕족의 신분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도미와 도미부인이 재회한 천성도(泉城島)의 위치다.일반적으로 한강하류인 지금의 경기 파주지역으로 추정한다.<삼국사기>지리지의 ‘천정구현(泉井口縣)을 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고도 한다(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는 기록에 근거한다. 천성(泉城)과 청정(泉井)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는데 따른다. 어을매곶은 파주 교하다. 다만 당시 경기 파주지역이 백제 지배영역임을 감안하면 개루왕의 통제범위에 속한다. 이에 반해 천성도를 충남 보령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오래 전부터 보령시 오천면 일대에 전해지는 도미부인 구전설화에 근거한다. 도미항, 상사봉, 미인도 등 관련 지명이 존재하며, 현재 소성리에는 도미부인 사당인 정절사가소재한다.
 
정절의 표상으로 둔갑시킨 조선사회
 
도미부인 설화의 출처는<한산기>로 추정된다. 704년(성덕3) 한산주도독(漢山州都督)에 임명된 신라 김대문이 지금의 경기 하남지역에 부임하여 이 일대 전설이나 풍물 등을 묶어 정리한 책이다. 이 중에는 구전(口傳)의 도미부인 설화도 있었을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부식이 도미부인 설화를 수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남녀간의 성문화가 비교적 개방된 삼국시대인 점을 감안하면, 김부식의 인용은 단순히 여성의 정절이나 정조개념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 도미부인설화를 다룬 <삼강행실도> 미처담초(彌妻啖草)[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문제는 조선사회다. 유교적 도덕관념을 매몰된 조선은 도미부인 설화를 적극 활용한다. 도미부인을 정절의 표상인 열녀로 격상시켜 백성을 계도(啓導)하고 여성의 수절(守節)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질시킨다.
 
도미부인 설화는정치적 망명사건
 
<삼국사기>는 개루왕을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이 바르다.(性恭順有操行)’고 평한다. 개루왕의 성품은 도미부인 설화속에 나오는 개루왕의 행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도미부인 설화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예를 들어 도미부인 설화에서 정절부분을 빼면 이렇다. 귀족(또는 왕족)인 도미는 반역죄에 해당하는 정치적 갈등을 일으킨다. 이에 개루왕은 도미의 죄를 물어 안구적출(眼球摘出)의 형벌을 가해 추방한다. 또한 개루왕은 혼자 남게 된 도미부인을 후궁으로 맞이하려다가 도미부인이 도망가는 바람에 실패한다.
 
결과적으로 도미부인 설화는 도미의 정치적 망명을 다룬 사건이다. 도미의 망명사건을 기록한<고구려사략>이 이를 증명한다. 만약 도미가 일개 평민이라면 기록할 리만무하다. 적어도 귀족계층의 정치적 망명사건이기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특히 도미사건이 개루왕 말기에 발생한 점이다. 망명사건이 도화선이 돼 개루왕이 몰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루왕의 뒤를 이은 왕은 초고왕(5대)이다. 초고왕은 시조 온조계통이 아닌 비류계통이다. 도미부인 설화는 백제 왕통교체를 암시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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