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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워킹 서울’ 길 끝서 만난 칼국수 한 그릇

점심만 장사한다는 그윽한 사골육수의 <명륜손칼국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2-01 18:03:12

 
▲ 맛 칼럼니스트 유성호
에게서 연락이 왔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8개월은 족히 넘은 듯하다. 8개월이 무슨 오랜만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의 느낌은 사람의 관계에 비례한다
 
그는 일반 회사원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역사 시층(時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잘 정련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소위 역사문화 해설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을 위해 그는 끊임없이 서울을 걷는다. 공부를 하는 것이다.
 
▲ 풍문여고 뒷길 풍경. 워킹 서울을 좋아하는 ‘그’가 담았다. [사진=정연재 제공]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그 중 한명이지만 인솔보다는 딸려가는 일원이다. 그만큼 역사적 지식이 딸리기 때문이다. 서울의 시층은 깊고 넓다. 그윽하고 다채롭다. 역동적이고 때론 비인간적이다.
 
따뜻한 서울이라기보다는 비정함이 더 큰 서울이다. 그것은 도시의 발달, 도시의 확장 과정서 겪는 시대적 아픔이다. 지금도 그 아픔은 계속되고 있고 도시는 발달을 가장한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어쩌면 후대에서는 지금을 퇴행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른다. 도시는 그런 측면에서 살아있는 생물이다.
 
갑작스런 워킹 서울제안에 흔쾌히 따라나서
 
▲ 서울의 가을 하늘은 아름답다. 지난 11월 23일 걷기에 딱 좋은 날을 만났다. 보신각 앞에서 올려다 본 서울 하늘.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사진=필자 제공]
 
그의 연락은 이러했다. “혹 내일 일정 여유 있으시면 9시 워킹 어떠신지요”. 저녁 9시 28분에 들어 온 페이스북 메신저 메시지다. 디타임(D-time) 12시간 전이다. 그것을 인식해서인지 다급히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란 꼬리말을 붙였다. 이런 워킹 제안은 로또.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만 물어보고 노타임으로 내일 보자고 답을 했다. 약속된 것은 ‘9시 종각이 전부다. 방향은 그때 가서 잡을 셈이다.
 
날이 맑았다. 정확이 말하자면 1123일 토요일이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서둘러 보신각으로 달려갔다. 겨울 초입 날씨가 가을 같았다. 기온이 그러했고 하늘이 가을가을했다. 푸르디 푸른 서울의 하늘, 워킹하기 최적의 날이다. 제 시간에 그가 왔다. 어디로 갈거냐고 물었다. 그는 길부터 건너자고 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공평빌딩, 지금은 센트로폴리스라는 요해(깨달아 알아 냄)가 어려운 빌딩이름을 가진 곳을 지나 동헌필방 앞 횡단보도에 섰다.
 
사람의 기억이란! 필자가 기억하는 그곳에는 분명 동헌필방이 있어야 했는데 이제는 카페가 들어섰다. 동헌필방을 기억하는 이유는 서울미래유산제도 때문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유산 중에 미래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것을 지정하는 제도다.
 
동헌필방은 1966년 개업해 같은 장소에서 현재까지 운영해 온 문구점(필방)이다. 상호는 고을 수령 등이 정무를 보던 동헌에서 따왔다. 지금 자리에서 50년 이상을 운영한 터주대감이었다. 창업주 이동하 씨는 서예용품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해 조계사 주변에 위치를 잡았다. 이 건물 1층은 원래 라디오 수리점이었다가 여러 점포가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게 됐고 정문이 있던 모서리에는 동헌필방 진열장이 들어섰다.
 
점포 안쪽에는 운산 강행원 화백의 친히 써준 東軒筆房간판이 걸려 있었다. 예전에는 서예학원 학생들이 많이 방문했으나 서화 인구가 줄면서 1990년대부터 사람들 발길도 많이 줄었다. 그것이 결국 동헌필방의 지취를 감추게 한 것으로 유추된다. 아니면 이전을 했거나 점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어 폐업한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본다. 외벽에는 주인을 잃은 서울미래유산 동판이 부자연스럽게 붙어있었다.
 
사라진 서울미래유산, 동헌필방
 
▲ 미래유산 동판만 남은 동헌필방. 지금은 카페가 들어서 있다. [사진=필자 제공]
 
동헌필방이 들어서 있던 건물은 남계양행이라고 1930년대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다. 양행이란 이름은 외국 물건을 많이 취급하는 상점을 말한다. 유한양행이 대표적인 양판점이었다. 남계양행 창업주 윤치창은 개화파 무신 윤웅렬의 서자다. 구한말 개화파 윤치호의 이복동생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개화기 신문물을 일찍 수용한 인물이다. 건물 출입구 상부 박공은 색다른 벽돌 쌓기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동헌필방보단 이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유산 내지는 미래유산적 가치가 높다.
 
길을 곧게 오르다가 인사동으로 살짝 틀었다. ‘안녕 인사동이란 집합건물을 마주했다. 놀랐다. 언제 이렇게 큰 덩치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놀랍기 그지없었다. 건물 주인이나 유래를 알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편협한 복고주의자란 손가락질을 받을지 언정 인사동에 들어설 건물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었다. 인사동을 더 이상 인사동 답지 않게 만든 개발욕심이라고 정리한다. 하기야 이런 생각도 세대차고 시대에 뒤떨어졌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생경한 풍경 속에 인사동의 아침이 붕 떠 있던 느낌을 적어 봤다.
 
▲ 검여 유희강이 쓴 ‘通文館’. 인사동을 지날 때 꼭 보길 권한다. [사진=필자 제공]
 
검여 유희강 선생이 쓴 通文館이란 돌간판을 이고 서있는 고서적 점포와 마주섰다. 통문관은 1934년 문을 열고서 매매와 출판업을 겸했던 서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서점으로 유명하다. 80년 넘게 같은 지역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관훈동 일대의 시대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곳이다. 그는 이날 후기를 유희강은 추사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화가이다. 뇌출혈로 오른손이 마비되자 왼손으로 같은 경지에 오른 신기원을 이룬 분이다. 통문관과 유희강의 만남을 여기서 보니 신기하다”고 썼다.
 
그와 필자는 서울공예박물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옛 안동별궁 터였던 풍문여고와 마주했다. 공사중이라 거대한 철제펜스가 사방에 둘러져 있었지만 정문이 열려 있어서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다. 건설현장은 외부인에게 매우 경계(警戒)적이다. 정문 수위아저씨가 마침 출근하는 시간이라 문이 열려 있던 것이다. 수위실에서 방문자 기록을 꼼꼼하게 적은 후 안전모를 착용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4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400년 된 안동별궁 터 은행나무 친견이 큰 소득
 
▲ 옛 안동별궁, 풍문여고 자리에 400년을 버텨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 노거수.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서지만 계속 그 자리에서 자랄 것이다. 매우 잘한 결정이다. [사진=필자 제공]
 
거대한 밑둥을 가진 은행나무가 다행스럽게 온전한 모습으로 공사판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무를 살리면서 공예박물관을 짓는 것으로 보인다. 은행나무 앞에는 현모양처의 요람지 안동별궁이란 비석이 서 있다. 1977년 당시 교장이던 민경현 씨가 노기환 대령의 기증을 받아 세운 것이다. 별궁은 교사(校舍)로 사용되다가 2006년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으로 옮겨졌다.
 
안동별궁은 1880(고종 17) 순종의 가례를 위해 세워졌다. 1882년 왕세자 순종과 세자빈 민씨(순명왕후), 1906(광무 10) 태자로 탈바꿈한 순종과 윤 씨(순정효황후)의 가례가 차례로 치러진 곳이다. 한일합방 이후 상구들 거처로 사용되다가 독지가 안유풍 여사가 휘문소학교를 설립했다고 비석은 적고 있다. 비석을 세운 교장 민경현은 민덕기의 아들이다. 민덕기의 부친은 감조관(監造官) 민병훈, 조부는 육군참령 출신 민대식, 증조부는 휘문학원 설립자 민영휘다.
 
조선맥주 사장을 지낸 민덕기는 1937년 안동별궁 부지와 부속건물을 매입해 경성휘문소학교를 열었다. 민영휘의 부인인 증조모 안유풍의 유지에 따라 애국, 애족정신에 투철하며 예절바르고 능력 있는 여성을 양성하기 위해서 19444월 재단법인 풍문학원을 설립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비석에는 독지가 안유풍이라고 슬쩍 문질러 놓았다. 이유는 민 씨 일가의 친일 행위 때문이다. 풍문여고는 20173월 서울 강남구 자곡로(자곡동)로 이전하면서 남녀공학으로 개편하면서 교명을 풍문고등학교로 바꿨다.
 
▲ 성균관 대성전 앞 은행나무. 비록 잎은 많이 떨어졌지만 위용만은 여전히 당당하다. [사진=필자 제공]
 
이날 워킹의 큰 소득은 옛 안동별궁 터에 있던 은행나무를 일견한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 지어질 공예박물관과 함께 계속 한 자리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필자는 이후 북촌 윤보선길을 관통해 중앙고, 고려사이버대, 성균관대를 거쳐 성균관에 이르렀다. 성균관도 역사만큼 오래된 각종 수목이 웅장하게 자라고 있다. 그중 대성전 앞 은행나무가 가장 유명하다. 마지막 단풍이 남아 있던 가을 끝 무렵, 겨울 초입이라 은행잎이 많이 떨어졌지만 바닥을 뒤덮은 황금빛 또한 장관이다. 워킹의 종착역인 식당으로 길을 잡았다.
 
멀리 명륜손칼국수 간판이 보였다. 노란색으로 명륜, 흰색으로 손칼국수를 적었다. 기세 좋은 한글 붓글씨체다. 점심 한때만 장사를 해서 손님이 늘 많은 집으로 소문나 있다. 다행이 이른 점심에 도착했다. 정확한 시간은 1118. 간판을 찍은 사진의 상세정보를 뒤져보니 시간이 나온다. 칼국수(8000), 설렁탕(11000), 수육, 문어 각각 대 35000, 25000, 생선전 25000원 등 메뉴가 단출하다. 그럼에도 이른 시간부터 점포 안에는 손님들로 그득하다.
 
혜화·명륜 일대 유난히 많은 사골베이스 손칼국수집
 
▲ 명불허전의 <명륜손칼수>. 곁들이는 수육, 문어숙회, 생선부침개도 일품이다. [사진=필자 제공]
 
11시 반부터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12시 경부터 대기가 생긴다. 주말이라 가족단위, 등산객 등이 많다. 그와 필자와 같은 조합은 생소한 식구’(食口). 수육과 문어를 섞어 작은 접시와 칼국수 주문을 넣었다. 거기다 두 시간 이상 걸으면서 물 한모금 먹지 않은 갈증을 풀기 위한 막걸리 한통을 더했다.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에는 칼국수 집이 많다. 혜화칼국수, 국시집, 성북동집, 일송손칼국수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 특히 대부분이 사골칼국수를 하지만 안동국시라는 표현이 하나도 없다. 안동지역 국수가 이 지역에 유래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생긴 것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 사골육수 베이스의 칼국수가 역사성을 가지 이유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구해 본 결과, 사료와 문헌에서 확인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의미있는 추론에 다다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촌(泮村)의 존재다.
 
반촌은 흔히 성균관에서 사역하는 노비들의 집단 거주지를 일컫는다. 이들을 반민(泮民)이라고 했고 조선 후기에 한양 소 도축 면허를 독점했다. 반인들 중 재인(宰人)이라고 불린 백정들이 도살업에 종사했다. 성균관의 제사 쓰이는 희생(犧牲)을 잡는 것이 이들 임무였다. 현방 혹은 다림방이라고 하는 푸줏간을 독점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는 이 일대에 소고기는 물론 소뼈의 유통이 많았을 것이란 짐작의 뿌리가 된다.
 
명륜손칼국수의 양지수육은 식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 마르기 시작하면 퍼석하고 살 끝이 굳어간다. 문어는 적당히 잘 삶아졌고 생선전은 아이 손바닥만한 것이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칼국수는 명불허전이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고소하고 간이 적절했다. 간장양념에도 오랜 연륜이 배어있는 듯 육수와 잘 어우러졌다. 겨울이 깊어지면 자주 생각날 맛이다.
 
주인 노부부가 워낙 바삐 움직이는 터라 취재를 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은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눈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서울을 걷다가 길 끝에서 만난 칼국수 한 그릇 속에서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보는 재미, 걷는 것만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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