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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약수에 살던 흉노족 조상은 단군의 신하

단군의 신하 색정, 유배지였던 약수에서 흉노 일으켜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2-08 09:30:00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단군세기’ 3세 가륵 단군조에 언급된 예(濊)의 위치가 ‘수경주’에 의해 산서성 동남부를 흐르는 청장수 부근임이 밝혀짐으로서 그 서쪽으로 하내군 부근에 있어야 할 낙랑군의 위치까지 명백해졌다. 따라서 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는 산서성 남부였고 흉노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까지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해가 될 수 있다.
 
같은 3세 가륵 단군조에 그런 흉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바로 “가륵 단군 6년 (B.C 2177, 갑진)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 명해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갇혀있도록 했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시조(匈奴之祖)가 됐다”는 기록이다.
 
위 기록은 조선대연방의 일원인 흉노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흉노와 조선은 한 핏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우기 위해 국명 대신 그 구성원이었던 흉노(匈奴), 동호(東胡), 숙신(肅愼), 동이(東夷), 서이(西夷), 북적(北狄), 견융(畎戎) 등 종족명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중국 사서에서 흉노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말이다. 기원전 318년 흉노가 한(韓)·조(趙)·위(魏)·연(燕)·제(齊)의 다섯 나라와 함께 진(秦)을 공격했다가 6국의 참패로 끝났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215년 진시황이 장군 몽염을 보내 흉노를 축출한 뒤 하남을 점령하고 장성을 쌓아 북방기마민족들의 침공을 막았고 한나라가 흉노에게 공주와 매년 엄청난 양의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등이 있다.
 
▲ 4세기 후반 ~5세기 중후반까지 유럽을 휩쓴 흉노족 아틸라 [사진=필자 제공]
 
참고로 흉노는 훈족(The Hun’s)으로 서방에 알려져 있다. 흉노의 후예 아틸라는 5세기 경 동로마제국을 공격해 초토화시킴으로써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을 일으켰고 서로마제국을 위협함으로써 유럽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아틸라 역시 색정의 후예일 가능성이 크다.
 
갑진년 기사는 그런 흉노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3세 가륵 단군 때 열양을 다스리던 지방장관 색정이 약수(弱水)에 종신토록 유배되다가 나중에 사면돼 그 땅의 제후에 봉해지니 그가 흉노의 시조라는 설명이다. 욕살은 한 지방을 다스리는 벼슬로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급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흉노를 다스리던 색정(索靖)의 후손으로 보이는 색불루(索弗婁)가 흉노의 우현왕이 됐다가 기원전 1286년 정변을 일으켜 조선의 22대 단군으로 즉위하고 그 후손들이 제위를 이어간다. 이렇듯 흉노는 조선의 제후인 동시에 조선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기 흉노열전’에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의 묘예인 순유다. 요순시대 있던 산융과 험윤과 훈죽이 북쪽을 살면서 목축하면서 떠돌아 다녔다”는 기록과 ‘산해경 대황북경’에 “견융과 하나라 사람은 같은 조상으로 모두 황제로부터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하나라 시조는 순임금 때 우사공(禹司空)으로 동이족이었다. 
 
청나라 때 왕국유가 지은 ‘귀방·곤이·험윤고’에 “흉노의 명칭이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은나라 때는 귀방(鬼方)·곤의(昆夷)·훈죽(獯鬻), 주나라 때는 험윤(獫狁), 춘추시기에는 융(戎)·적(狄)으로, 전국시기에는 호(胡)로 이 모두 후세에서 말하는 소위 흉노다”고 설명돼 있다.
 
▲ 산서성박물관 지도에 산서성 중남부에 그려진 흉노·오환 [사진=필자 제공]
 
색정의 유배지 약수는 어디일까
 
약수는 우리 고대사의 강역을 밝히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강이다. ‘환단고기’를 일본에서 처음 출간한 가지마 노보루(鹿島昇)는 약수를 유프라테스강으로 봤다. ‘한단고기’의 주해서를 낸 고 임승국 교수는 약수를 흑룡강으로 판단했는데 잘못 비정한 것으로 보인다.
 
5세 대음단군 10년(B.C 1652, 기축) 기록에 “단제께서 서쪽으로 약수로 가시더니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철 및 고유를 채취하도록 했다(帝西幸弱手命臣智禹粟採金鐵及膏油)”는 기록에서 약수는 단군이 다스리던 땅이었으며 조선의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색정의 유배지 약수(弱手)는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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