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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역사에 누락된 정복군주 근초고왕의 실상

근초고왕 본명은 황과(黃果), 시조 비류계의 계승자 천명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1-12 14:20:11

▲ 정재수 작가
근초고왕(13)은 백제 영토를 확장시킨 정복군주의 표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근초고왕의 업적은 평양성(남평양)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16)을 전사시킨 내용이 전부이다. 이 기록만 가지고 근초고왕을 정복군주로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근초고왕의 정복군주 타이틀은 어떻게 해서 붙여진 것일까, 또한 그 타이틀은 적정한 역사 판단일까 의문이 든다.
 
근초고왕, 시조 비류계의 계승자 천명
 
근초고왕은 비류왕(11)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으나, 남당필사본<고구려사략> <신라사초>에는 보과(宝果/寶菓)로 나온다. 보과는 대방국 왕녀 출신으로 고이왕(8)이 대방국과 혼인동맹을 체결하며 처음 백제왕실과 인연을 맺는다. 이후 남편 책계왕(9)과 아들 분서왕(10)이 모국(대방국)을 지원하다 사망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어 보과는 시조 비류계인 재야출신 비류왕을 옹립한다. <고구려사략>은 보과가 비류를 총애()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비류왕은 보과의 정부(情夫)이다.
 
비류왕 사후 분서왕의 아들 계왕(11)이 즉위한다. 보과의 손자이다. 그러나 계왕은 재위 3년만에 갑자기 사망하며 근초고왕이 뒤를 잇는다. <신라사초>에는 보과가 자신의 아들 근초고왕을 옹립한 것으로 나온다.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당연히 첫째 아들도 있다. 두 아들은 왕위 다툼을 벌이고 결국 둘째인 근초고왕이 승리한다.일설에는 근초고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계왕을 몰아냈다고도 한다.
 
왕명 근초고(近肖古)는 시조비류계인 초고왕(5)의 계승을 천명한 사후의 시호(諡號)이다. <고구려사략>은 근초고를 대초고(大肖古)로 표기한다. ‘()’()’와 같이 ‘크다는 뜻이다. 근초고왕의생전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일본문헌인 <고사기>, <일본서기>, <신찬성씨록> 등이 조고(照古), 속고(速古), 초고(肖古)로 쓰고 있는 점을 착안하여()’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372년 동진(東晉-사마예) 간문제로부터진동장군영낙랑태수관작을 받은 백제왕 여구(餘句)를 근초고왕으로 이해하고, 이름을()’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왕 여구는 근초고왕이 될 수 없다. 근초고왕은 여(-부여)씨가 아닌 해()씨이다. <책부원귀>는 백제왕 여구를 위구태의 후손으로 명확히 기록한다여구는 비류계열이 아니다. 한반도 부여 기마족인 부여백제(충남공주)의 구태계열 왕이다.
 
<상장돈장>(남당필사본)에 근초고왕 이름의 단서가 나온다. 보과의 계보도를 보면 보과는 첫 번째 남편 책계왕(9)을 통해 분서왕(10) 뿐 아니라 용과(龍果), 봉과(鳳果), 홍과(紅果)를 낳는다. 또한 두 번째 남편 비류왕(11)을 통해 청과(靑果)와 근초고를낳는다. 모두 보과(宝果)의 모계이름을 딴()’자 돌림자이다.
 
청과는 근초고의 형이다. 근초고가 시호인 점을 감안하면 생전 이름은 ‘~()’일 확률이 크다. 참고로 음양오행과 짝을 이루는 오방색은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이다. 이 중 청적황(靑赤黃)은 천지인(天地人)에 대비되는 색이다. ()과 홍(-)은 이미 이름에 사용했으니 나머지는 황()이다. 근초고왕의 이름은 황과(黃果)’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근초고왕은 군대를 사열하며 모두 황색(黃色) 깃발을 사용한다황색은 근초고왕의 상징색이다. 혹여 황색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근초고왕은 초고왕의 계승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다. 초고왕(5) <삼국사기>가 왕력에 포함시킨 시조 비류계의 최초 왕이다. 아버지 비류왕이시조 비류 이름과 같은 왕명을 썼기에 근초고왕은 비류계 최초 왕의 왕명을 차용한다. 그래서 근초고왕이다. 근초고는 고이왕 계열인 계왕으로 넘어간 왕통을 다시금 시조 비류 계열로 회복하면서 붙여진 승자의 왕명이다.
 
근초고왕의 정복사업 내용
 
<삼국사기>는 근초고왕을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며 원대한 식견을 가진[體貌奇偉 有遠識]’ 인물로 평한다. 근초고왕은 야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근초고왕은 재위 초기 왕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
 
근초고왕은 346~375년까지 30년을 재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보면 근초고왕의 재위초기 20년간 기록이 아예 없다. 기록이 없으니 역사가 없다. 이는 전체 재위기간 30년 중 2/3에 해당한다. 근초고왕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원 세력이 있다. ()씨 귀족이다. 근초고왕은 즉위 직후 처족인 진정(眞淨)을 조정좌평에 임명한다. 그런데 진정에 대한 <삼국사기> 평가가 매우 혹독하다. 성질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며 일을 처리함에 까다롭고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이다.
 
한마디로 악인(惡人)의 표상이다. 달리 말하면 진정은 근초고왕의 권위와 왕권을 능가한다. 진정은 근초고왕 백제의 실질적인 권력자이다. 이후 근초고왕은 진정이 실각하면서 비로소 왕권을 행사하며 기록을 남긴다.
 
▲ 근초고왕의 정복사업. [그래픽=필자제공]
 
일반적으로 근초고왕의 정복사업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①고구려공격(고국원왕 사망마한연맹 복속 가야 진출 ④일본열도 왜국 지배 대륙 요서지방 경략 등이다.
 
근초고왕은 동으로 가야와 일본열도에 진출하며, 서로는 대륙 요서지방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남으로는 마한연맹을 복속하고, 북으로는 고구려의 남진을 억제하며 오히려 백제 영토를 넓힌다. 한 마디로 근초고왕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며 지배력을 강화한다. 당연히 정복군주 타이틀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기록한 근초고왕의 정복사업은 단지번 뿐이다. 나머지 ②~⑤번은 일본 및 중국 기록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②~⑤번이 근초고왕의 실제 정복사업인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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